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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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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출신의 가수 파투마타 디아와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노래로 맞선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말리 출신 싱어 송 라이터 파투마타 디아와라(30)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목에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를 칭칭 두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치 그녀의 얼굴 주변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진 듯한 느낌이랄까? 카페 밖 이슬비 내리는 거리엔 칙칙한 겨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지나가지만 그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난다.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질 정도다.

그곳에서 3200㎞ 남쪽에 있는 말리에선 프랑스군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성전주의자들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사막의 도시 팀북투가 마침내 해방됐다. 말리의 문화적 수도로 불리며 음악 없인 살아갈 수 없는 이 도시가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됐다(이슬람 광신자들이 도시를 장악했을 당시 음악이 전면 금지됐었다). 하지만 디아와라가 느끼는 승리의 기쁨은 단지 전쟁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말리 북부 도시들을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반군은 사헬 사막 깊숙한 곳으로 숨었다. 디아와라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그녀는 ‘승리’라는 말을 했다가 번복했다). 하지만 자신이 개인적인 전투에서 거둔 승리의 기쁨을 감출 생각은 없다. 디아와라는 지난해 데뷔 앨범 홍보차 유럽과 북미 지역을 수개월 동안 여행한 뒤 바마코(말리의 수도)를 방문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개인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내 나라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디아와라는 그 느낌을 살려 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말리의 톱 뮤지션 40명을 불러모아 그 노래를 녹음했다. 시각장애인 부부 듀오 아마두와 마리암, 존경 받는 여가수 우무 상가레, 전설적인 코라 연주자 투마니 디아바테, 응고니의 거장 바세쿠 쿠야테(코라와 응고니는 서아프리카 전통 현악기다), 그리고 말리의 대표적인 래퍼들이 참여했다. 아이보리코스트의 슈퍼스타 티켄 자 파콜리도 힘을 보탰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Mali-ko(평화)’다. 뮤지션들은 7분짜리 이 뮤직 비디오에서 말리 북부 지역을 정복한 원리주의자들을 규탄한다. 또 말리인들에게 투아레그족(일각에서는 이들이 내란을 사주했다고 비난한다)에 대한 불만을 접고 단합할 것을 촉구한다. 디아와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유일한 무기인 기타와 코라, 응고니를 들고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당시 반군은 바마코로 진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때 상황을 디아와라는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군이 개입할 줄은 몰랐다. 아프리카 연합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반군은 엄청난 기세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뉴스 보도가 제대로 이뤄지지않는 바마코의 주민들이 유럽인들보다 정보에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난 이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소리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나세요! 우리는 말리를 잃게 될지도 몰라요! 우리의 문화와 전통과 뿌리를 잃어가고 있어요!’라고. 이런 생각이 내 마음 속에서 매우 강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프랑스군이 개입했을 때 마치 신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

서아프리카의 내륙 국가 말리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지만 음악적 전통은 매우 풍요롭다. 말리의 사회·문화·정치적 측면에서 음악이 지니는 도덕적 권위는 대단하다. 이 나라에는 전통적으로 그리오(griot, 과거 서아프리카에서 민족의 구비설화를 이야기나 노래로 들려주던 사람)라는 세습제 계급이 있었다.

이들은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고 의식에서 공연을 펼치는 역할도 담당했다. 디아와라는 “음악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가 그리오를 부르면 자녀를 위해 갈라서지 말라는 내용의 노래를 불러준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속의 메시지는 말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다.”

말리의 소중한 소프트파워 자산인 뮤지션들은 문화 대사다. 팀북투 근처에서 매년 열리는 북아프리카 전통음악 축제 ‘페스티벌 인 더 데저트’는 서양 관광객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누린다. 로버트 플랜트와 보노 등 세계적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사실 미국 흑인 블루스의 원천인 말리는 록과 재즈, 소울 등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에 영향을 주었다.

디아와라는 “음악이 없는 말리는 말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음악을 중단시키려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탓에 그런 특성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었다.” 원리주의자들은 말리의 북쪽 3분의2 지역을 장악한 뒤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엄격하게 시행했다. 율법을 어기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태형(floggings)이나 돌팔매질(stoning), 또는 사지절단(amputations) 형에 처해졌다. 음악은 전면 금지됐다.

당국은 휴대전화 벨소리를 낸 사람을 매질했고 전화기와 녹음 장비를 부쉈다고 알려졌다. 또 뮤지션들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팀북투의 가수 카이라 아르비는 혀를 자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르비는 ‘Mali-ko’ 녹음에 참여해 첫 솔로 부분 2행을 불렀다. “말리의 남자와 여자들이여, 우리 함께 일어서요/ 말리는 호전적인 나라가 아니에요.”

사실 디아와라가 말리를 해방시키고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한 음악 프로젝트를 이끌게 된 건 아이러니컬하다. 디아와라는 오래 전 말리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억압적인 관습의 틀을 깨고 싶었던 그녀는 10년 전 말리를 떠나 파리로 도망쳤다.

디아와라는 1982년 아이보리코스트에서 말리인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녀는 아버지가 이끄는 무용단에서 춤을 췄다. 디아와라의 부모는 열두 살이 된 그녀를 바마코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친척 아주머니에게 보냈다. 반항적인 딸을 길들이려는 생각에서였다. 디아와라는 열네 살때 한 영화촬영장에서 스카우트돼 연기를 시작했고 서아프리카 영화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 되던 해에 파리에서 공연되는 연극에 캐스팅돼 그곳으로 갔다. 하지만 디아와라의 가족은 그녀가 곧 관습에따라 결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TV 생방송에 출연해 연기생활을 접겠다는 발표를 하라고 강요했다. 프랑스의 한 흥행업자가 디아와라를 루아얄 드 뤽스 극단에 입단시키려고 바마코로 찾아갔지만 그녀의 가족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치기로 결심한 디아와라는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그 기회를 놓쳤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디아와라는 말했다. “아마 아이를 아홉 명쯤 낳고 일찌감치 늙어버렸을 것이다. 학력이 신통치 않으니 직업도 없었을 거고 다른 많은 여성처럼 평범한 주부가 됐을 것이다. 그 여성들은 말리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을 텐데 가족과 전통이라는 굴레에 묶여 조국의 발전에 참여하지 못한다.”'

디아와라는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했다(“서로 좋아서 결혼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루아얄 드 뤽스 극단에서 5년 동안 일한 뒤 우무 상가레와 디디 브리지워터(미국의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의 백업 싱어와 댄서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다. 허비 헨콕과 바비 워맥의 앨범 피처링에도 참여했다. 팝그룹 블러의 리더 데이먼 얼반은 최근 세 프로젝트에 디아와라의 음악을 차용했다. 또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베이스 주자 존 폴 존스와 애프로비트(아프리카 여러 음악의 리듬을 따서 만든 음악) 드러머 토니 앨런은 디아와라의 데뷔 앨범 ‘Fatou’에 참여했다.

디아와라는 ‘Fatou’에 수록된 모든 곡을 직접 작곡했다. 와술루 지방 특유의 비트에 록과 팝, 포크를 혼합했다. 밤바라어 가사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매끈하지만 때때로 거칠어지기도 한다. 그녀는 소외된 젊음, 절망에 빠진 이주자들, 강요된 결혼, 여성 할례 등의 이야기를 일인칭으로 풀어간다.

디아와라의 노래는 부드럽게 들리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녀는 여성 할례에 관한 곡 ‘Boloko’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프리카 여성들은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죠/ 우리는 조상들의 신념을 다시 보고 평가해야 해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지키고 해가 되는 것은 거부해야 해요.” 디아와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짧다. 여성들이 그 짧은 생애 동안 꽃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나도 할례를 받았다. 할례는 내게 문제만 안겨줬을 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덧붙였다. “난 어려서부터 여행할 기회가 많았지만 대다수 말리인은 그럴 기회가 없다. 따라서 내 경험을 그들과 나누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한다. 난 유럽 여성들이 투쟁을 통해 현재의 지위를 차지하는 걸 목격했다.”

디아와라는 사실 말리의 나이든 뮤지션들이 먼저 ‘Mali-ko’ 같은 프로젝트를 기획해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디아와라에게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을 벌이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하지만 그녀의 ‘Mali-ko’ 프로젝트는 계획보다 더 큰 성과를 올린 듯하다. 그동안 그녀의 자유분방한 활동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가족 중 대다수가 이젠 생각을 바꿨다.

그녀가 말리의 거물급 뮤지션들을 불러모아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디아와라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난 아직 젊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언젠가 그 사실을 깨닫고 ‘좋아, 그럼 한 번 해보자’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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