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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통화전쟁에 유로존 동상이몽

세기의 통화전쟁에 유로존 동상이몽

프랑스·스페인 통화 가치 절하로 경기 부양 노려 … 독일은 반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대폭 절하되면 이 나라와 수출전선에서 경쟁하는 다른 나라는 피해를 입게 된다. 일본의 공격적인 통화정책과 이에 따른 엔화 약세가 전 세계의 불만을 야기해 통화전쟁 논란이 뜨겁다. 최근에는 영국이 가세해 파운드화 절하를 노골적으로 꾀하고 있다.

선진 경제대국 가운데 유일한 예외는 유로존(유로화 통용 17개국)이다. 미국·일본·영국과는 달리 유로존은 재정위기 당시 푼통화를 대거 거둬들여 본의는 아니겠지만 유로화의 강세를 자초했다. 여타 나라에게 반가운 일이겠지만, 그 자체로 전 세계 경제에 엄청난 위험을 가할 잠재성을 잉태했다. 통화 강세를 버티기 어려운 남유럽 국가 사이에서 유로존 탈퇴 정서가 다시금 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이체방크의 분석에 따르면 유로존이 감내할 수 있는 환율은 유로당 평균 1.33달러다. 모건스탠리 분석으로는 1.37달러가 적당하다고 한다. 1.34달러 안팎 수준인 현재의 유로화 환율은 적정 수준에 근접해 있다.



영국도 통화전쟁에 뛰어들어그러나 여기에는 ‘평균’의 함정이 있다. 독일이 평균을 끌어올린 것이다. 유로화라는 단일 화폐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의 통화는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절하돼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현재보다 훨씬 낮은 1.24달러가 적정하다. 독일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1.53달러까지도 감내할 수 있다. 두 나라의 생산성 격차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유로 환율이 적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달리 말하면 독일을 제외한 대다수 유로존 국가들이 환율 고평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2월 5일 기자회견에서 “유로존은 각국 정상이 정하는 중기적인 환율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의회연설에서는 “유로화가 시장의 분위기에 휘둘리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며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게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외환시장 개입을 주창했다. 올랑드 대통령의 발언 직후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피코 총리는 “경제 성장을 지원할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맞장구 쳤다.

유로존이 통화전쟁에 동참하려면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이나 일본의 중앙은행처럼 공격적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 그러나 독일과 ECB는 반대 입장이다. 몇 가지 타당한 이유가 있다. 먼저 유로화 절상에 따르는 이익이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유로화 절상은 그 자체로 금융환경을 긴축적으로 이끌지만, 이 과정에서 남유럽 시장금리가 큰 폭 하락하는 부양적인 효과도 상당히 발생한다. 유로화 절상을 기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남유럽 국채를 대거 매입한 결과다.

골드먼삭스 분석에 따르면 유로·달러 환율이 1.4 달러로 상승할 경우 발생하는 긴축 충격은 45~70bp 수준이다. 1bp는 0.01%포인트를 의미한다. 이와 달리 이를 통해 유로존 국채 수익률이 하락하는 효과는 80~90bp에 달한다. 지금처럼 유로화가 1.4달러 아래에 있는 동안에는 유로화 강세에도 부양 효과가 더 크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 절하를 노려 금리를 인하하면 유로존에는 필요 이상의 완화정책이 지원되며,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게 된다.

평가 절하를 통한 부양은 유로존의 개혁 정책에 반한다. 내핍을 통해 균형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독일 중심의 북유럽 진영은 남유럽 국가들이 긴축적인 거시 환경의 압력 하에서 생산성을 높여 나가는 분투를 지속하기를 원한다.

게다가 ECB가 평가 절하를 위한 완화정책에 나서면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독일 국민들의 희생을 대가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남유럽 국가를 보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스페인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최근 독일을 상대로 경기 부양을 통한 유로존 경제 활성화를 요구했지만 독일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스페인이 요구하는 정책은 일견 유로존 내부의 균형회복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독일의 이해 관계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ECB가 유로화 가치 절하로 통화전쟁에 개입하면 유로존은 미국과 일본처럼 무한정 통화증발 경쟁에 나서야 한다. 이는 분데스방크(인플레이션에 매우 엄격한 독일 중앙은행) 전통이 지배하는 독일과 ECB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 와중에 영국은 ‘통화전쟁’을 향해 더 깊숙이 발을 디밀었다. 대담하게도 엔 약세 논란이 달아오를 모스크바 G20 재무장관 회의를 목전에 두고서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의 머빈 킹 총재는 2월 13일 기자회견에서 “이런 방법으로든 저런 방식으로든 영국은 외국산 상품에 대한 상대가격을 분명하게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파운드화의 평가 절하가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킹 총재는 “해외에 대해서는 우리 상품을 더 사도록 설득하고, 국내에 대해서는 해외 상품을 덜 사도록 해 무역적자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올 1월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에 달했다. 영란은행은 목표치(2%)를 넘는 물가가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지속될 것으로 최근 수정 전망했다. 오는 2015년이 돼도 물가가 2%선을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영란은행은 “필요한 경우 추가적인 화폐발행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유로존 탈퇴하는 나라 나올 수도물가 목표치를 무시한 공격적 화폐발행 정책의 원조는 캐나다 중앙은행의 마크 카니총재다. 그는 오는 7월 국적을 바꿔 영란은행의 총재로 취임할 예정이다. 이에 맞춰 영국 경제계에서는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helicopter money)’ 논쟁이 한창이다. 할거냐 말 거냐의 문제가 아니라, 쏟아 부을 것이냐 뿌릴 것이냐의 시비다.

바람을 한껏 잡아 놓은 덕에 지금 전 세계 투기적 트레이더 사이에 파운드화 약세에 돈을 거는 유행이 일고 있다. 엔 약세 베팅에서 본 재미를 영국에서 다시 한 번 재미를 만끽하자고 작심한 듯하다. 그 결과로 파운드화는 연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영국까지 가세하면서 남유럽 국가의 환율 고평가 고통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여름 메릴린치가 분석한 걸 보면, 유로존 17개 회원국 가운데 단일 통화제도를 탈퇴할 유인이 가장 큰 나라로 이탈리아가 꼽혔다. 독자 화폐에 대한 평가 절하를 통해 대외 경쟁력을 개선하는 이익이 매우 큰 반면, 유로존 이탈에 따른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더라는 평가다.

지난해 4분기까지 이탈리아 경제는 6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이탈리아 총선에 전 세계가 주목한 이유다. 그리고 새로 들어설 이탈리아 정부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탈리아가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은 다시 요동 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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