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vore - 드러내 놓고 불륜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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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9월 26일. 등화관제가 시작되자 영국계 아일랜드인 소설가 엘리자베스 보웬은 런던 리젠트 파크에 있는 자택 인근의 길거리에서 공습대피 안내요원으로 활동한다.
그레이엄 그린도 본업인 정보부 일이 끝나면 철모를 쓰고 인근 블룸즈베리 지구를 순찰한다. 그는 36세에 이미 소설을 10편이나 발표했다. 5편을 펴낸 보웬과 마찬가지로 런던 문학계의 중추세력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공도 죽음에 대한 그린의 낭만적이고 병적인 동경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세대를 “제1차 세계대전의 엄청난 환멸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 묘사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험을 추구했다.” 그는 십대 시절 장전된 총으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했다. 이제 역사는 그린에게 다시 한번 사신과 게임할 기회를 주고 있다.
그의 연인 도로시 글로버도 그의 안내원 활동에 동참한다. 그린의 아내와 아이들은 시골에 안전하게 피신했다. 그동안 두 사람은 당시의 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불륜행각을 벌인다.
밤 9시 30분, 전면적인 폭격이 시작된다. 보웬의 친구인 59세 소설가 로즈 매콜리는 망설임 없이 메러번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나선다. 메러번은 보웬의 동네에서 남쪽으로 몇 블록 떨어진 곳이다. 구급차 기지에서 야간 근무조로 일하기 위해서다. 매콜리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힘든 일에 자원했다.
타오르는 불빛을 조명 삼아 폭격으로 파괴된 거리를 누비며 들것을 들고 구급차를 오르내린다. 무너진 주택 아래 깔린 생존자들이 구출되기만을 가슴 졸이며 기다린다. 오늘은 캠든 타운에서 바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상수도 본관이 터져 건물잔해와 뒤섞이며 길바닥은 진흙탕이 됐다. 주위로 폭탄이 계속 떨어질 동안 그 속에 서서 건물더미 속에 갇힌 여성을 안심시킨다. 그녀와 아이들을 곧 구해주겠노라고.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아이들 사체 4구만 밖으로 끌어낸다.
옥스퍼드가 아래쪽으로 좀 더 내려가면 고급주택지 메이페어의 데이비스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헨리 요크를 만난다. 실험 소설가 헨리 그린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전체 소방대원 중 요크의 근무시간이 가장 길다. 48시간 일한 뒤 24시간 휴식을 취한다.
그가 맡은 풀타임 보조 소방대원은 가장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1939년 에블린 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같은 위험이 그래도 훨씬 낫다고 썼다. “히틀러와 미트포드가 자매들(영국 귀족가문 출신으로 히틀러와 가까웠다)이 지배하는 세상은 상상도 하기 싫다”고.
하지만 에블린 워는 1955년작 소설 ‘사관과 신사(Officers and Gentlemen)’에서 요크와 동료 자원봉사자들을 비웃는다. 피커 딜리 지구의 한 고급 클럽에 불이 났을 때의 일이다. “소방관 제복을 입은 일단의 진보적 소설가들”이 화재를 진압한 뒤 클럽의 파손된 주류매장 배수로를 따라 흘러나오는 위스키와 브랜디를 퍼 마셨다고 그녀는 묘사했다.
그린과 마찬가지로 요크의 아내와 아들은 전란을 피해 런던을 떠났다. 요크도 새로 얻은 자유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는 그린과 달리 거의 매일밤 여자를 갈아치웠다. 그의 친구인 소설가 로저먼드 레이먼에 따르면 “터무니없이 어린 여자들이 그에게 줄을 섰다.”
요크는 부유한 상류층 사교계 인사였다. 낮에는 가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세련된 젊은 친구들과 파티를 벌였다. 하지만 오늘밤엔 의회 건물이 처음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요크는 소방대의 일원으로 화재를 진압하는 중이다. 한편 템스강 남쪽의 녹음 우거진 윔블던 지구에선 오스트리아 작가 힐데 슈필이 남편·딸·부모와 함께 아파트에서 몸을 웅크린 채 밤을 보낸다. 유리 파편을 막기위해 창문 앞에 침대 매트리스를 세워놓았다. 투하되는 폭탄 소음을 차단하려고 전축 볼륨을 높였다.
이들 다섯 작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시인의 후계자들이다. 목격자로 남기보다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매일 밤 죽음을 무릅쓰고 도시를 지켰다.” 영국 학자 라라 파이걸의 그룹 전기 ‘폭탄 속 사랑의 마법(The Love-charm of Bombs)’의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대공습(the Blitz) 당시의 작가들을 만난다.
1940~1941년 사이 계속된 독일군 폭격으로 민간인 3만 명이 사망하고 런던 시민 2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그러나 이 한밤의 위험은 생존자들에게 강력한 최음제 역할을 했다. 언론인 겸 작가인 맬컴 머거리지에 따르면 이 기간은 “방종의 연속이었다. 규칙적인 생활패턴이 깨지고, 모든 규제가 없어지고, 장벽이 모두 허물어졌다.”
파이걸은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주인공들의 성적인 탈선을 추적하며 이 같은 방종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도시를 집어삼키는 불길처럼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애정행각을 그린다.
책에 묘사된 부부생활은 좋게 보면 길동무 수준이요(보웬과 공무원인 남편 앨런 캐머런은 부부관계가 거의 없는 결합이었다), 심할 경우 대립적이고 불행했다(힐데 슈필은 육아에 짓눌렸지만 남편이자 동료 작가인 페터 드 멘델스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당시는 간통이 횡행하는 세상이었다. 흔히 픽션에나 등장하는 온갖 정열, 흥분, 뜨거운 사랑이 흘러 넘쳤다.
보웬은 중립적인 아일랜드를 정탐하는 영국 스파이 역할을 한다. 아일랜드 공화국 군인이자 소설가인 전 애인 션 오페일런으로부터 정보를 캐낸다. 그 뒤 캐나다 외교관 찰스 리치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연인관계는 30년 넘게 지속됐다. 매콜리의 열정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렀다.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제럴드 오도너반과 20년간 관계를 유지했다. 결혼해 자녀를 둔 전 아일랜드 가톨릭 사제였다.
그린은 여자를 계속 바꿔가며 불륜행각을 벌였다. 매춘부를 선호하는 취향도 있었다. 서아프리카에서 스파이 활동을 할 때는 매음굴을 열고 마담에게 고객들로부터 정보를 빼내는 역할을 맡기자고 제안한다. 그 아이디어는 상급자들로부터 퇴짜를 맞는다(상급자 중에 소련 이중첩자로 악명높은 킴 필비도 있었다. 당시 그린은 아직 모르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돈 많고 아름다운 미국인 사교계 여성 캐서린 월스턴을 만난다. 그녀는 ‘정사의 종말(The End of the Affair)’에서 세라 마일즈의 모델이다. 그린은 그녀와 완전히, 하지만 비극적인 사랑에 빠진다.
한편 요크는 사생아를 낳고는 혈육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당신 아기이니 사랑해줘야겠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기를 바랄 뿐이오.” 그는 애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편지를 써보냈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부정행위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거의 아무런 소동도 벌어지지 않는다. 언니가 동생과 바뀌거나(요크는 결혼 전과 후에 처제와 잠자리를 했다) 또는 형이 동생을 대신해도(그린의 형은 동생이 아프리카에 있을 동안 동생의 연인 글로버를 자신의 침대로 끌어들였다) 아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파이걸은 이들 작가의 가장 유명한 몇몇 작품의 기원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 격동기 동안 작가들의 ‘불안정한 사생활’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소설작품들에 대한 분석과 작가들의 일대기를 버무린다. 그린은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캐럴 리드 감독의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를 조사하기 위해 1948년 비엔나를 방문한다. 그리고 영국문화원 강연 투어의 일환으로 그 도시를 찾은 보웬을 만난다.
보웬은 전시 런던 생활에 관해 다소 환각처럼 느껴지는 일시적인 경험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단편적인 스냅샷(disjected snapshots)”으로만 정확하게 표현이 가능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파이걸은 단념하지 않았다. 이 다양한 조각들을 치밀한 리서치로 연결해 정교하게 표현된 완벽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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