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 초파리가 알코올을 좋아하는 이유는?
Science - 초파리가 알코올을 좋아하는 이유는?
몸길이가 2~5mm에 불과한 초파리는 곰팡이와 박테리아 등을 먹고 산다. 이들 먹이는 너무 익어서 발효가 진행되는 과일에서 자란다. 발효된 과일의 알코올 농도는 최대 15%에 이르기 때문에 초파리는 알코올의 독성에 상당한 면역력이 있다. 초파리의 대표적 천적은 애벌레의 몸에 알을 낳는 기생 말벌이다.
알과 함께 독소를 주사해 애벌레의 면역 체계를 억제한다. 애벌레의 면역계가 알을 죽이는 데 실패하면 알은 부화해 애벌레를 몸속에서부터 먹어 치운다. 기생말벌을 기생충이 아니라 포식 기생자로 부르는 이유다. 이것이 기생충과 다른 점은 숙주를 죽인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천적이 얼쩡거리는 상황에서 알을 낳아야 하는 초파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발효한 과일, 즉 알코올 농도가 높은 곳에 알을 낳는 것으로 확인됐다. 알코올의 독성을 이용해 말벌의 애벌레를 퇴치하는 것이다. 미국 에모리 대학 연구팀이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지난해 연구팀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말벌에 오염된 초파리 애벌레는 알코올 함량이 높은 먹이를 더 좋아한다. 이 같은 행태는 애벌레의 생존율을 크게 높여준다. 초파리는 알코올의 독성에 저항력을 가지도록 진화했지만 말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쉴렌케 박사는 “초파리 애벌레가 혈중 알코올 농도를 높이면 혈액 속에 살고 있는 말벌 애벌레는 고통스러워진다”고 말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면역계라고 하면 백혈구나 면역 단백질을 생각하겠지만 행동도 유기체의 면역 방어에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파리 시각으로 말벌 암수 구분이번에 연구팀은 초파리가 자식들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지, 위험할 경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알코올을 찾는지 알아보았다. 연구팀은 암컷 노랑초파리들을 기생말벌이 있는 망사 우리와 없는 우리에 각각 풀어놓았다. 우리 안에는 애벌레의 먹이(효모)를 담은 배양접시 2개를 놓아뒀다. 한 곳의 접시에는 먹이가 6%의 알코올에 담겨 있었고 다른 접시는 그렇지 않았다. 24시간 후 확인 결과 말벌 우리의 초파리는 알의 90%를 알코올 접시에 낳았다. 말벌이 없는 우리에선 이 비율이 40%였다.
슐렌케 박사는 “알코올은 초파리에게도 약간의 독성이 있지만 말벌에게는 큰 해를 미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초파리가 어떻게 말벌을 알아보느냐 하는 것이다. 슐렌케 박사는 “이들 초파리는 연구실에서만 계속 번식했기 때문에 수백세대 동안 한 번도 말벌을 본적이 없다”며 “그런데도 말벌을 보고 이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다른 실험에서는 초파리가 말벌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우리 안에 암컷 말벌이 있으면 알코올 접시에 알을 낳는 경향이 있었지만 수컷 말벌이 있을 경우엔 이 같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말벌 암수의 외관상 차이는 미미하다. 수컷은 더듬이가 더 길고 몸집이 약간 더 작으며 산란관이 없다는 정도다. 초파리는 수백 세대 동안 본 적이 없는 말벌을 미세한 외관의 차이로 암수까지 정확히 구별한 뒤 후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초파리는 말벌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눈으로 본 것일까. 연구팀은 이것도 확인해보았다. 돌연변이로 인해 냄새를 맡지 못하는 초파리와 앞을 보지 못하는 초파리를 이용했다. 실험 결과 앞을 보지 못하는 초파리는 말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비해 시각이 살아있으면 냄새를 맡지못해도 알코올 접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밖으로, 후각이 아닌 시각으로 말벌을 파악한 것이다.
초파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알코올이 있는 산란 장소를 선호하게 되는 것일까. 기존 연구에 따르면 초파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특정 신경전달물질(NPF:신경펩티드 F)의 양이 줄며 이것은 알코올을 찾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주변에 기생말벌이 있으면 뇌 속의 NPF 양이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알코올을 선호하는 산란행태는 말벌이 없어진 뒤에도 평생 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이는 초파리에게 장기 기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다. 인간의 경우에도 초파리의 것과 흡사한 물질인 ‘신경 펩티드 Y’가 알코올 중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해충 공격 받으면 식물도 독성물질 방출노랑초파리는 자연계의 독물을 후손을 위한 예방약으로 이용하는 유일한 종이 아니다. 슐렌케 박사는 “우리는 많은 종의 파리를 검사해봤는데 부패한 과일을 먹이로 삼는 모든 종이 기생 말벌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전략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예방약을 이용하는 행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널리 자연계에 퍼져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생물의 진화가 보여주는 놀라움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해충이 식물에 알을 낳으면 식물은 그 해충의 천적을 부르는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지난해 9월 네덜란드 생태연구소 등이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배추와 그 사촌인 흑겨자를 왕성하게 먹어 치우는데 기생말벌은 이들 나비와 애벌레의 천적이다. 연구팀이 확인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나비가 자신에게 알을 낳으면 흑겨자는 특정한 화학물질을 방출하면서 구조적으로도 변화가 생긴다. 이런 현상은 각기 다른 종의 기생 말벌을 유인하는데 말벌들은 종에 따라 나비의 알을 공격하기도 하고 부화한 애벌레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알을 낳는 나비도 퇴치한다. 다만 흑겨자는 배추흰나비만큼 흔하지는 않은 해충인 배추좀나방에는 이 같은 방어태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벌레에게 먹히는 식물이 내뿜는 화학물질은 그 애벌레의 천적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이런 물질은 그 천적의 천적을 부르기도 한다. 식물에는 ‘적의 적의 적’이니 결국 자신의 적군도 함께 부르는 셈이다. 여기서 천적이란 기생충처럼 숙주의 몸에서 살지만 결국은 몸 자체를 먹어 치우는 포식 기생자를 말한다. 포식기생자에 기생하는 천적은 중복 포식기생자로 불린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의 에릭 폴만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공‘ 공과학도서관 생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애벌레에게 먹히고 있는 식물이 방출하는 화학물질 칵테일 중 두 종류를 중복 포식기생자에게 제공했다.
하나는 건강한 애벌레에게 먹히고 있는 식물에서 나오는 물질이고, 또 하나는 포식기생자에게 오염된 애벌레에게 먹히고 있는 식물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중복 포식기생자는 두 종류의 냄새를 구분하며 후자, 즉 자신이 앞으로 알을 낳을 대상인 포식기생자와 관련된 냄새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포식기생자에 감염된 애벌레와 그렇지 않은 건강한 애벌레의 침(타액)은 색이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타액의 성분은 식물이 냄새를 내뿜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타액 성분이 변화하면 식물이 내뿜는 화학물질 칵테일에도 변화가 생길것으로 예상했는데 이것이 확인된 셈이다.
연구팀은 이를 야생 상황과 실험실 상황에서 모두 확인했다고 밝혔다. 폴만 박사는 “이 같은 결과는 중복 포식기생자가 식물·해충·포식기생자의 연쇄반응을 이용할 줄 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면서 “현재의 친환경 농업은 주로 포식기생자를 이용해 해충을 퇴치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중복 포식기생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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