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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 삼성·소니의 운명 ‘조직 몰입’에서 갈려

Interview - 삼성·소니의 운명 ‘조직 몰입’에서 갈려

『적의 칼로 싸워라』 출간 … 경영자는 다름·균형·본질을 생각해야



한양대 경영대학 특임교수의 이력은 남다르다.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그는 주로 해외 마케팅을 담당했다. 미국·유럽·중동에서 TV·VTR·컴퓨터를 팔았다. 이후 본사 해외본부 마케팅 팀장, 미국 가전사업 총괄 부문장을 역임했다. 2001년 말, 24년간 몸 담았던 삼성전자를 나온 그는 경쟁사인 소니코리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삼성·소니 중 어디가 이길 것 같으냐”였다. 2006년 한국코카콜라 회장, 2007년 레인콤(현 아이리버) 부회장을 거친 그는 2010년 가을부터 한양대 경영대학 특임교수로 강단에 선다.

이 교수가 최근 책을 냈다. ‘남다른 가치를 만드는 차별화 경영’이라는 부제가 붙은 『적의 칼로 싸워라』이다. 33년의 비즈니스 현장 경험과 경영 이론을 결합한 경영서다. 그는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한양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말하는 ‘남다른 경영’은 무엇일까. 2월 27일 이명우 교수를 만났다.

비즈니스에서 ‘적의 칼’은 무엇인가.

“무협지에 등장하는 고수는 적의 칼을 빼앗아 그것으로 적의 목을 친다. 궁극의 경지다. 비즈니스에서도 진정한 고수는 적의 칼로 싸운다. 적의 칼은 경쟁사의 전략을 말한다. 기존의, 시중의, 타인의 전략과 전술이나 상품과 서비스를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해 새롭게 활용한다는 뜻이다. 애플이 좋은 예다. 애플은 1999년 소니가 만든 디지털 뮤직플레이어를 독창적으로 활용해 아이팟을 만들었다.”

책을 쓴 동기.

“내가 만약 33년간 삼성에서만 근무했다면 못 썼을 책이다. 여러 회사에서 일하고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업종과 회사 규모, 제품과 상관없이 경영자의 고민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객은 누구인가, 누구와 어떻게 경쟁하나, 어떻게 회사를 지속할 것인가, 업(業)의 개념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는가 등이다. 이런 고민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 바로 ‘다름’이다. 차별화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업의 개념’을 강조했는데.

“업의 개념이란 자신이 다루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무엇인지 대한 명확한 정의이고, 나아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업의 개념은 경영의 본질이자 궁극적인 목표다. 제록스는 복사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의 효율을 올리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코카콜라도 경쟁상대를 탄산 음료가 아닌 모든 음료수로 넓게 재정의했다. 디즈니는 업의 개념을 ‘행복을 파는 것’으로 정의했다.”

업의 개념을 명확히 하거나 전환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마켓 센싱(Marketing sensing) 능력이 중요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마켓 센싱은 지금 우리 회사가 속한 시장이 어떤 곳인지, 그곳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발 빠르게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역량이다. 노키아의 추락도 마켓 센싱과 관련이 있다. 마켓 센싱을 잘 하기 위해서는 고객에 대한 관찰과 열린 마음,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책에서 마켓 센싱의 성공 사례로 꼬꼬면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 꼬꼬면은 판매부진에 시달린다. 뭐가 잘못됐을까.

“꼬꼬면은 보이지 않는 소비자의 니즈, 잠재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성공한 사례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생각이 든다. 면밀한 검토를 해봐야겠지만, 성장관리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성장관리란 단기적으로 성장의 기회가 있다고 무조건 성장하지 않고,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성장을 위해 숨 고르는 일이다.”

삼성전자에 24년간 근무했다. 그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내가 입사했을 때 삼성전자는 성장의 가능성을 엿보는 회사였다. 나올 때는 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글로벌 회사로 나간다는 지향점이 확실히 선 회사로 변했다. 지금은 정말 많은 것을 이루고 성공한 회사가 됐다. 이제는 지속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건희 회장을 다룬 책이 많은데, 정말 제대로 이 회장의 생각을 제대로 담은 책은 보기 힘들다. 그는 일반인하고 다른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추구하는 수준이 다르다. 지향점이 뚜렷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리더다.”

책에서 삼성전자와 소니를 비교했다. 두 회사의 차이는 무엇인가.

“두 회사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두 회사의 조직문화 차이는 말할 수 있다. 삼성은 ‘한 방향의 중요성’을 아는 회사다. 조직이 집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있다. 이에 비해 소니는 전체가 하나가 되는 조직 결속력이 다소 부족하다.

회사의 다른 역량이 비슷할 경우, 속도감 있는 경영과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힘이 중요하다. 『삼성과 소니』라는 책에서, 내부의 조직 프로세스와 경영진의 리더십 차이가 두 기업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평가한 배경이다.”

상생경영을 언급하면서, 절차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대기업과 하도급 업체 간 상생 경영은 단지 단가를 더 높게 해주고, 어음을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되는 것아 아니다. 갑을 관계를 깨고 동등한 파트너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KT가 보유 특허 1000여 건을 협력사에 무상 양도하겠다고 한 것은 그런 면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적과 평가를 이유로 오너의 상생 경영에 반하는 결정을 하는 중간 관리자가 있다면 철저히 패널티를 줘야 한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는 어떻게 보나.

“IBM이 PC 판매회사에서 솔루션 회사로 변신해 성공한 것은 고객이 얼마나 만족했는가라는 관점에서 회사를 운영한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내부 거래도 이런 고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단지 공정거래의 시각이 아니라,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려면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만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같은 관행으로 과연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독서경영·펀경영 등 경영론이 유행한다. 이벤트 경영이란 표현도 하는데.

“독서경영·펀경영은 경영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단지 보조 수단이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펀경영에 주목한 것은 다른 메이저 항공사에 비해 너무나 바쁘고 힘든 직원들을 다독이려는 것이다. 이벤트 경영은 한 기업에서 부족한 면을 채우는 보조 수단으로는 적합하지만, 대단하게 내세울 건 못된다.”

기업 경영자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이 책을 쓰면서 세 가지 포인트를 잡았다. 남다른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영을 위해서 경영자는 늘 다름·균형·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남과 달리 생각하고, 조직에서 자기 부서의 이익만 추구하는 현상(사일로 효과)을 막기 위해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또한 승자는 달콤한 성공에 젖지 말아야 한다. 시장은 항상 새로운 승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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