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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파스타의 종말

COVER STORY - 파스타의 종말

밀은 기온상승, 강우패턴 변화, 가뭄 심화 같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파스타가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분명 그렇게 된다면 마카로니치즈(Mac-andcheese)를 좋아하는 미국 어린이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이탈리아인들은 문화적 심장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국수가 주식인 중국 북부에선 사회불안이 촉발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터무니없는 공상도 아니다. 우리가 더 진지하게 지구온난화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파스타를 못 먹게 되는 날이올지도 모른다. 파스타는 밀로 만든다. 앞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태풍과 가뭄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특히 밀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연구와 현실세계의 현상이 갈수록 늘어난다.

지난해 10월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주를 비롯한 미국 동해안을 강타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보여준 새로운 현실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기후가 극심해지고 극심한 이상기후는 극단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걱정거리는 홍수피해뿐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존재기반 자체를 위협한다. 바로 우리의 식량 자급능력이다.

인류가 소비하는 식량은 밀·옥수수·쌀 등 3대 곡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모두 이미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밀이 앞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밀은 특히 고온에 취약하다. 밀 수확량이 줄면 파스타뿐 아니라 빵 생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파스타는 듀럼밀로 만드는 반면 빵은 보통 적색 봄밀(red spring) 같은 더 일반적인 품종을 이용한다.

“밀은 호냉성작물(cool-season crop)이다. 고온이 밀의 생육과 품질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다코타밀위원회 자문위원인 노스다코타 주립대학 프랭크 맨데이 교수의 말이다. 지난 50년 동안 지구기온이불과 0.6도 상승할 때 밀 수확량은 5.5% 감소했다. 지구온난화가 없었을 때와 비교한 수치다. 스탠퍼드대 식량안전·환경 연구소의 데이비드 로벨 교수가 발표한 연구결과다.

미국과 캐나다 중서부, 중국 북부, 인도, 러시아, 호주가 세계의 주요 밀 생산지대다. 이 지대가 2050년까지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현재까지 기록된 가장 더운 여름보다 더 무더운 여름을 경험하게 된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면 그 기간 동안 밀 수확량이 23~27%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막으려면 기온상승을 억제하고 고온에 강한 작물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인 농업 연구소와 민간기업들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온상승은 거의 불가피한 현실이 됐지만 그에 대응할 수 있는 품종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IFPRI 선임연구원 제럴드 넬슨의 말이다.

2012년 여름 미국은 역사상 가장 무더운 7월과 50년래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당시 가뭄은 아직도 미국의 60%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이는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를 암시한다. 2012년 옥수수와 콩 수확량이 급감했다. 그에 따라 세계적으로 식량가격이 상승하고 기근이 확대됐다. 인도네시아에서 항의시위가 촉발됐다. 2007~08년의 식량가격 폭등 이후 수십 개국에서 발생했던 폭동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 노스다코타주는 세계 파스타 생산중심지 중 하나다. 세계 최고급 듀럼밀의 유력한 산지다. 듀럼밀은 파스타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높은 단백질 함량과 연한 황금색을 자랑한다. 강우량이 적고 한랭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노스다코타주는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췄다. 지난해 10월 말, 더그 오플랜드(51)는 2011년 듀럼밀을 재배했던 300에이커의 농지로 픽업트럭을 몰고 나갔다. 얕게 쌓인 눈 위로 차 타이어 자국이 찍혔다.

오플랜드는 “이 주변이 주내 듀럼밀 재배의 새로운 중심지”라고 말했다. 노스다코타주 북서부 도시 마이노트 근교에서 사는 그는 미국듀럼생산자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듀럼밀은 과거 노스다코타주 전역에서 재배됐다. 그러나 지난 30~40년 사이 주요 생산지가 서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기후환경변화가 그 원인이다. “강우패턴이 달라졌다”고 맨데이 교수가 설명했다. “노스다코타주 동부는 듀럼밀을 재배하기에는 너무 습도가 높아졌다.”

기후변화가 이미 노스다코타주의 밀 생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로저 존슨이 말했다. 전에 듀럼밀을 경작했던 그는 1996~2009년 주의 농업 위원을 역임했다. 다코타그로어 스파스타사는 미국의 주요 파스타 제조업체 중 하나다.

존슨에 따르면 그 회사는 1993년 노스다코타 동부 도시 캐링턴에 듀럼밀 제분 겸 파스타 생산 복합공장을 세웠다. 당시엔 경제적으로 타당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듀럼밀 산지가 서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운송비가 증가했다. 캐링턴 공장이 가격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물류비용 측면에서 확실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에드 아이리온 공장장이 말했다.

극단적이고 변덕스러운 기상패턴이 특히 듀럼밀에 악영향을 미친다. 듀럼밀은 재래식 밀품종보다 더 민감하다. 안 좋은 시기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듀럼의 품질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 비가 너무 적어도 좋지 않다. 듀럼밀은 재배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농민들은 재래식 밀보다 높은 프리미엄 가격을 요구한다.

곡물회사들이 이익마진을 높이려고 이 같은 프리미엄을 깎아 내린다고 벌써부터 오플랜드를 비롯한 농민들은 푸념한다.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듀럼밀 재배는 더 어려워진다. 가격 프리미엄을 얼마나 더 높여야 농민들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려 할까? 오플랜드는 올해 듀럼밀을 심어야 할지 고민중이다.

기후가 적합한 지역으로 작물을 옮겨 심으면 기후변화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은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때때로 그렇게 묻는다. 지난해 7월 엑손모빌 CEO 렉스 틸러슨은 기후변화를 가리켜 “공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공학적인 문제”라고 불렀다. 그 대책 중 하나가 “경작지를 순차적으로 이동해가며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은 틸러슨의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 “세계 최빈국의 많은 농민은 경작한 작물을 대부분 소비한다. 그들에게는 농지를 옮기는 선택권이 없다”고 IFPRI의 넬슨은 지적한다. 실제로 노스다코타주의 더 부유한 농민이라도 변화하는 기후환경을 따라 항상 옮겨 다닐 수는 없다.

틸러슨의 방안은 또한 농업의 근본인 토양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체로 (노스다코타주의) 서쪽과 북쪽으로 갈수록 흙이 메마르고 비옥도가 낮아진다”고 존슨이 말했다. “따라서 듀럼밀을 재배할 만한 장소가 갈수록 줄어든다.” 그뿐이 아니다. 서부쪽으로 갈수록 인류역사상 가장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다른 산업체들과 토지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 업계는 노스다코타주 북부의 대초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도니 넬슨(제럴드 넬슨과 무관하다)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땅에 농사를 짓는다. 할아버지는 100년 전 클라크 크리크 옆의 국유지를 공여받아 노스다코타 북서부로 이주했다. 넬슨은 10월 추위를 피하기 위해 귀덮개가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언덕 배기에 있는 20에이커의 토지를 향해 트럭을 몰았다. 지난해 동생과 함께 듀럼을 경작했던 곳이다.

지금은 그중 14에이커에 철조망 담장이 둘러쳐지고 콘크리트가 덮였다. 헤스오일사의 녹색과 황색 시추펌프 두 대가 땅 속 깊은 곳으로부터 석유를 퍼올리고 있다. 연못에 부리를 박아 먹이를 집어 올리는 거대한 새 모형처럼 시추장비가 코를 박았다 올리기를 반복한다.

“우리는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부지 저쪽 끝의 파이프에서 황백색의 불꽃을 내뿜는 천연가스의 굉음 속에서 넬슨이 소리쳤다. 왜 못하는가? 그의 가족에게는 20에이커 부지에 대한 ‘지상권’만 있기 때문이다. 지하 ‘채굴권’은 다른 사람에게 있으며 그가 그 권리를 헤스에 임대했다.

마찬가지로 90여m 더 뒤에 떨어져 있는 제2의 시추기지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 또한 그가 듀럼밀을 경작하던 땅에 세워졌다. 이들 시추기지에서 퍼올린 석유와 가스를 시장으로 운반할 2개의 파이프라인을 매설할 때도 그냥 지켜봐야 했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셰일오일(지하 깊숙한 암반층에 포함된 원유)을 퍼올린다. 이 일대 지하에는 거대한 바켄 셰일오일 유전이 펼쳐져 있다. 넬슨은 흩뿌리는 눈 속으로 차를 몰아 역시 듀럼밀을 경작했던 땅에 자리잡은 더 큰 제3의 시추기지로 향했다. “헤스는 우리 주거구역에서 150곳, 이웃 구역에서 또 150곳 등 이 주변에서만 300곳이나 신규 채굴허가를 신청했다.”

바켄 유전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붐을 불러일으켰다. 수압파쇄법(fracking)은 지금까지 접근하지 못하던 지하 깊숙한 곳으로부터 석유와 천연가스를 퍼올리는 기술이다. 이 논란 많은 기술 개발로 생산이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11월 국제에너지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에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오를 전망이다. 거기서 바켄 유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노스다코타주에 오일 붐은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었다. 실업률이 2%로 떨어지고 주정부의 세수가 늘어나 16억 달러의 예산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주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붕괴되고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면서 한탕주의 산업지대로 변했다.

미국 자연보호 운동의 대부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대초원 지대에서 큰 뿔 사슴을 사냥했다. 그의 옛 사냥터를 마주보는 땅에 지금은 수천 개의 유정과 천연가스를 토해내는 수많은 파이프가 점점이 세워졌다. 거대한 토치램프 같은 그 파이프의 불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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