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기획사는 스타·대작으로 대학로에선 시리즈 연극으로 승부
대형 기획사는 스타·대작으로 대학로에선 시리즈 연극으로 승부
공연기획사인 ‘이다 엔터테인먼트’는 2003년 극단 차이무와 함께 ‘생연극시리즈’를 선보였다. 생맥주처럼 시원하게 관객과 호흡하는 연극을 올리자는 취지의 이 프로젝트는 당시 경영난을 겪던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을 살리려는 의도로 시작했다.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거기’ ‘늘근도둑 이야기’ ‘돼지사냥’ 등 차이무의 대표작을 공연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행사를 기획한 이상우 차이무 예술감독은 “여러 작은 극단과 함께 작업하면서 규모를 키워보려고 했는데 예상이 들어 맞았다”고 말했다.
‘생연극시리즈’로 연극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자 동숭아트센터는 씨어터컴퍼니를 구성해 본격적인 흥행몰이에 나섰다. 2004년 연우무대의 ‘한씨연대기’, 실험극장의 ‘에쿠우스’, 미추의 ‘허삼관 매혈기’ 등 15개 작품을 공연하는 ‘연극열전’을 시작했다.
대학로를 찾는 관객을 치밀하게 분석해 그들의 욕구를 파악했다. 이 프로젝트는 패키지 티켓, 회원제, 기념품 증정 등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도입한 첫 연극 프로젝트였다. ‘연극열전’은 1년간 총 730회 공연에 17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스타 캐스팅과 대중적인 작품을 내세운 ‘연극열전’이 성공하면서 대학로 시리즈 연극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당시 연‘ 극열전 1’을 기획한 손상원 이다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시‘ 어터그룹 이다’라는 공연장 네트워크 브랜드를 만들었다. 전국 극장을 연계된 사업이다. 손 대표는 “다양한 공연기획을 하면서 극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며 “극장에서 독해나 워크숍을 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관객 성향 분석해 패키지 상품 내놔대형 기획사들도 고유 브랜드를 내건 작품을 선보였다. 대학로 소극장 연극과 구분되는 메이저 기획사가 들어서면서 전체 시장 규모가 더 커졌다. 뮤지컬 ‘맘마미아’ ‘시카고’ 등을 제작한 신시컴퍼니는 2010년 들어 신경숙 원작의 ‘엄마를 부탁해’와 미국 토니상 수상작 ‘대학살의 신’ 같은 중·대형 연극을 집중 선보였다.
뮤지컬 ‘삼총사’ ‘살인마잭’ 등을 제작한 엠뮤지컬컴퍼니는 영화감독 허진호·장항준이 연출하는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를 내놨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연극 ‘쉬어 매드니스’ 등을 제작한 뮤지컬해븐은 ‘노네임 씨어터 컴퍼니’라는 연극 브랜드를 만들어 실험적인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브랜드 연극’을 선보인 대형 기획사들은 체계적인 조직과 제작 시스템을 토대로 브랜드 마케팅을 전개했다. 대형 뮤지컬을 제작한 노하우와 홍보 마케팅 능력이 연극 제작에서도 통했다. 많은 제작비를 들이고, 수준 높은 스태프가 참여한 ‘고급 무대’로 기존 소극장 연극과 차별화했다.
연극무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스타를 캐스팅하고 베스트셀러 소설과 영화, 브로드웨이 최신작 등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을 선정한 점도 성공의 요인이었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을 세종문화회관·두산아트센터·예술의전당 같은 유력 무대에서 공연하며 대형 기획사의 흥행 파워를 증명했다.
‘잘 갖춰진 무대’ 덕분에 브랜드 연극은 기존 관객인 매니어층과 젊은층을 넘어서 40~50대의 발길까지 붙잡았다.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작이 어려운 중극장·대극장 공연을 만들어 연극의 활성화·대중화를 이루려고 한다”며 “대규모 투자로 풍부한 무대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으며 그만큼 많은 관객을 유치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비싸다’는 선입견을 지닌 관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각종 할인 전략도 펼친다. 판소리 ‘배비장 타령’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첫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1960년대 제작된 작품이다. 최근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각색해 인기를 끌었다. 원작 음악을 최신식으로 편곡하고, 현대적인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차용했다.
제작사 측은 옛 노래를 추억하는 부모 세대와 뮤지컬에 익숙한 자녀 세대를 모두 아우르기 위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관람하면 최대 반값에 입장할 수 있는 ‘가족 할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공연은 헌혈증을 가져 온 관객에게 할인 혜택을 줬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연극 홍보에 활용하고 영화표를 가져오는 관객은 우대하는 전략도 있다. 단순히 티켓 값을 할인해주는 수준을 넘어 공연의 특성을 내세운 차별화 전략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소선 CJ E&M 공연 투자팀 과장은 “공연 특색과 그에 맞는 타깃층을 확보하는데 주력한다”고 설명했다.
소셜커머스를 활용하는 곳도 늘었다. 소극장 연극뿐만 아니라 고가의 초대형 공연도 할인 혜택을 내놓는다. 지난해 7월 티켓몬스터에서 업계 최초로 선보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카지’ 티켓 첫 판매에서 1300여장이 나갔다. 앵콜 판매에서도 이틀 만에 2400여장의 티켓이 팔렸다. 이에 따라 소셜커머스 업체에서도 컬쳐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다.
티켓몬스터는 45만원짜리 ‘라보엠’ R석 티켓을 87% 할인된 가격으로 내놔 인기를 끌었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높은 가격때문에 공연 관람 기회를 얻지 못한 고객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소셜커머스는 저예산 대학로 공연은 물론, 대형 공연을 위한 새로운 온라인 마케팅 채널로써 티켓 파워가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도한 마케팅 경쟁으로 실험작 설 자리 잃어이러한 흐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브랜드 연극이나 각종 할인 마케팅은 침체된 연극시장을 활성화하고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다만 대중의 취향에 영합한 상업주의로 흐를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극장 수가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관객 수는 그에 못 따라가는 실정”이라며 “관객을 끌어들이려는 극장의 과도한 경쟁이 오히려 실험적인 작품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소극장협회는 올해부터 창작 활동을 하는 공연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연습 공간과 제작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은 소규모 예술단체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정 이사장은 “극장이 많아졌지만 대관료도 함께 상승해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단체가 적지 않다”며 “적은 돈으로 실험적인 연극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야 말로 극장 공연의 질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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