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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 털면서 판촉·홍보 효과도

재고 털면서 판촉·홍보 효과도

연중 30~50% 세일 경쟁 … 할인 판매로 매출 늘어도 손해보는 가맹주 많아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에서 명동역 부근까지 약 1000m 길거리에는 50여 곳의 저가화장품 브랜드 매장이 있다. 약 50m 거리에 각기 다른 여섯 개 화장품 매장이 줄지어 있는 곳도 있다. 3월 5일 찾은 이 곳 대부분 화장품 매장 안팎에는 ‘세일’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각 매장 직원들은 샘플을 나눠주며 고객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2월 22일부터 12일간 최대 50% 세일을 하는 더페이스샵 매장에는 10여 명의 고객이 계산대 앞에서 길게 줄 서 있었다. 매장은 테스트 제품을 바르고 향을 맡아보는 고객으로 붐볐다. 대학생인 이미연(23)씨는 “파우더와 마스카라를 사려고 했는데 절반 가까이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됐다”며 “스킨과 로션도 함께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저가 화장품 매장인 미샤·더페이스샵·아리따움·네이처리퍼블릭 등이 2~3월 사이 실시했거나 실시 중인 세일 기간은 30일 가까이 된다. 2월에 더페이스샵·네이처리퍼블릭·토니모리 등이 30~50% 할인 행사를 한 데 이어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는 에뛰드하우스는 3월 5~9일, 미샤는 8~10일 최대 50% 세일을 진행한다.

저가 화장품 매장이 세일 경쟁에 나선 것은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저가 실속’ 제품으로 몰리고 있어서다. 또 무리한 경쟁을 감수하더라도 세일을 무기로 20~30대 고객층을 끌어 모으자는 전략도 있다. 미샤와 1, 2위를 다투는 더페이스샵은 지난해 3월부터 한 달에 한번 20~30%의 정기 세일을 한다.

LG생활건강 김지숙 대리는 “그 전까지 정기세일은 없었지만 모든 브랜드가 (세일을) 하는 만큼 우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결정했다”며 “시장 후발주자로 늦긴 했지만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미샤, 사상 최대 매출 올려할인 마케팅은 실적과도 연결된다. 미샤를 제조·판매하는 에이블씨앤씨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45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37% 늘었다. 서영필 에이블씨앤씨 사장은 “매달 10일마다 전 품목을 20% 할인 판매하는 ‘미샤 데이’와 반년마다 50% 할인 판매하는 ‘빅 세일’ 등의 공격적인 마케팅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에뛰드하우스와 이니스프리의 매출액도 전년보다 각각 31%, 63% 늘었다.

국내에서 경쟁하는 저가 화장품 브랜드는 20여 개다. 그렇다면 이들 저가 화장품은 연중 할인을 하면서도 어떻게 이윤을 남길 수 있을까. 대부분 저가 화장품들은 판매가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용기·유통비 등을 줄여 가격은 낮추고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화장품 업계에서 고·저가 화장품 모두 용기·포장재 같은 부재료 비용이 원재료 비용보다 2배 정도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코리아나화장품은 부재료 비용이 원재료보다 1.8~2배에 달했다.

미샤 역시 원료에 비해 부재료 비용이 1.5배 정도 많다. 에이블씨앤씨 마케팅기획팀 김선아 과장은 “처음 출발은 가격 거품을 빼고 가격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였지만 2000년대 중반 어려움을 겪고 난 후 품질과 디자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미샤는 제품 디자인 등에 뒤쳐지면서 2005~2007년 더페이스샵 등 후발 주자들에게 밀려 적자를 기록했다. 더페이스샵 김지숙 대리는 “저가 화장품이라고 해도 포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마케팅을 위해 어쩔 수 없지만 세일을 하면 매출을 높이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저가 화장품 업계가 사실상 연중 세일을 하면서 저가 화장품에도 가격 거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직장인 이주연(31)씨는 “세일 기간에도 해당 브랜드의 멤버십 카드를 갖고 있으면 적립 또는 중복 할인이 되기 때문에 제 돈주고 사면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손해보고 팔 리가 없고, 재고 처리하는 것도 아니라는데, 매일 할인판매할 거면 아예 평소에 가격을 더 낮춰 팔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선아 과장은 “세일은 떨이 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의 개념”이라고 해명했다. 이익보다는 박리다매를 통한 매출 확대와 시장점유율 경쟁, 홍보·마케팅 효과를 노린다는 얘기다.

에뛰드하우스 이수민 과장은 “세일 기간에는 평소보다 매출이 3배 정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가화장품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달갑지 만은 않다. 원칙적으로 행사 상품의 손해율에 대해서는 회사와 5대 5로 부담지지만, 세일 기간마다 진행되는 행사비와 판촉비 등은 가맹점주가 부담해야하기 때문이다.



행사·판촉비 가맹점주 부담서울 건국대역 근처에서 이니스프리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45)씨는 “건대 근처에는 유동 인구가 많기 때문에 할인 행사 기간에는 아르바이트생이 더 필요하고 판촉물 비용도 배로 든다”며 “가맹점 입장에서는 남는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열등한 상권이라면 할인 행사 부담은 더 커진다.

경기도 구리시 근처에서 5년째 토니모리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35)씨는 “재고가 남아있어도 프로모션 하는 제품들은 할당량만큼 받아와서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본다”며 “불황이 겹치면서 할인 행사가 더 많아져 이렇게 계속 세일만 하다가는 문을 닫게 될 것 같다”고 푸념했다.

가맹점들은 할인 행사나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하지 않을 수도 없다. 저가화장품 회사와 가맹주는 보통 2~3년짜리 계약을 한다. 본사의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계약 연장을 못할 수도 있다. 또 프로모션을 거부하는 가맹점에는 출고 정지 처분을 내리는 곳도 있어 가맹점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행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회사 측 입장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오히려 가맹점주들이 타 브랜드가 할인 행사를 하고 있으니 우리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청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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