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개국에 2억달러 수출, 한국 맛 심는다
95개국에 2억달러 수출, 한국 맛 심는다
수요가 많은 만큼 입맛도 까다로운 곳이 한국 라면 시장이다. 까칠한 한국 소비자 입맛에 맞게 상품을 개발해 파는 과정에서 라면 사업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다. 라면 국내 1~4위 업체인 농심·오뚜기·삼양식품·팔도는 국내에서 쌓은 품질·기술력과 사업 노하우를 살려 해외로 보폭을 넓혔다. 연간 수출액도 해마다 증가세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0년 1억5720만 달러였던 수출액은 2011년 1억8673만 달러, 지난해 2억622만 달러로 늘었다. 라면 수출 연 2억 달러 시대가 열렸다. 수출국은 95개에 이른다.
한국 라면을 가장 많이 찾는 나라는 어딜까. 재밌게도 ‘라면 종가’를 자처하며 라면에서도 한국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일본이다. 관세청 통계를 보면 한국은 지난해 일본에 4293만 달러어치 라면을 수출했다. 중국(2864만 달러)·미국(2212만 달러)보다 많았다.
일본 원자력발전 사고로 인한 특수로 5278만 달러를 수출한 2011년 기록에는 못 미쳤지만 꾸준히 팔린다. 이전까진 중국에 가장 많이 팔았지만 2010년부터 일본에 더 많이 팔았다. 50년 전 인스턴트 라면을 처음 생산할 때만 해도 기술력이 부족해 일본의 노하우를 전수받던 한국이 50년 지난 지금은 맹추격 중이다.
미국 공략 선두 주자도 신라면한국 라면이 일본에서 인기인 이유는 뭘까. 우선 연간 라면 소비량이 55억개로 시장 규모가 세계 3위다. 여기에 한국 라면 특유의 맛이 일본에 잘 먹혀들었다는 평가다. 최남석 삼양식품 실장은 “일본은 2011년 대지진 때 비상식량인 라면을 한국에서 전년보다 35% 이상 많이 수입했다”며 “이 과정에서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 라면 맛에 친숙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매운 음식을 꺼리는 일본 사람들이 때마침 한국에서 인기를 모은 하얀 국물 라면에 매료됐다. 삼약식품이 지난해 일본에 수출한 ‘나가사끼짬뽕’은 나가사키현이 있는 일본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모았다. 오뚜기 ‘기스면’과 팔도 ‘꼬꼬면’도 일본 시장을 파고들었다. 다만 최근 국내에서 하얀 국물 열풍이 식으면서 수출 전선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연간 소비량 세계 5위 국가인 미국도 주요 공략 대상이다. 미국 라면 시장은 도요수산을 비롯한 일본 업체의 점유율이 80%가 넘는다. 하지만 한국의 도전도 만만찮다. 농심의 미국 현지 법인인 농심아메리카는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3위(14%)였다.
농심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2005년 공장을 설립해 연간 생산능력이 4억4000만개에 이른다. 올해는 3월 안에 생산라인을 증설해 5억5000만개로 늘릴 목표다. 신동엽 농심아메리카 법인장은 “증설 효과와 현지화 전략으로 3년 안에 미국 시장점유율이 2위에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시장 공략의 선두주자는 신라면이다. 농심 신라면은 최근 미국 월마트 ‘아시아 푸드 섹션’에서 판매량 1위를 달릴 만큼 인기다. 월마트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로 농심은 1월부터 월마트와 직거래 계약을 해 미국 3600여개 매장에 라면을 공급했다. 특히 신라면 블랙은 미국에서 인기인 가수 싸이의 CF 덕에 특수를 누렸다. 신라면 블랙은 지난해 해외 전체 매출의 60%인 1500만 달러어치를 미국에서 팔았다. 농심은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국방부조달청(DeCA)과 공급 계약을 하고 세계 250여개 미군 마트에도 신라면 블랙을 납품 중이다.
농심은 이밖에 미국인이 좋아하는 식재료인 바닷가재와 쇠고기를 쓴 ‘랍스터 사발’ ‘비프 사발’ 등 현지화 용기면으로 라인업 강화에 나섰다. 오뚜기 ‘참깨라면’과 팔도 ‘남자라면’도 최근 미국에 수출돼 호평을 받았다. 팔도는 지난해 미국에 12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오뚜기도 올해 500만 달러 넘게 판다는 목표다.
중화권에서도 한국 라면의 인기가 꾸준하다. 중국 상하이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 라면 브랜드를 안다고 응답한 비율이 90%가 넘었다. 오뚜기는 홍콩에서 ‘보들보들 치즈라면’으로 인기를 얻었다. 느끼한 음식에 익숙한 중국인의 입맛을 공략해 지난해 매출 12억원을 올렸다. 중국·대만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23억원 어치를 수출했다.
황성만 오뚜기 라면연구소장은 “교민을 겨냥해 우리 맛 그대로 수출하면서 현지인에게 친숙한 맛을 개발해 공급하는 일도 병행한다”며 “우리보다 매운맛을 선호하지 않는 걸 감안해 ‘진라면’은 순한맛에 초점을 둬 수출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에선 팔도 ‘도시락’ 인기러시아에서는 네모난 용기에 담긴 팔도 ‘도시락’이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용기 라면 시장에서 점유율 60%로 독보적 존재다. 도시락이란 단어가 러시아에서 용기 라면의 대명사로 쓰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팔도 관계자는 “경쟁사 제품보다 면발이 늦게 퍼져 품질로 인정 받았다”며 “국토 면적이 넓은 러시아 소비자들이 원형보다 휴대하기 편한 사각형 용기로 만든 것도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라멘스코예·라잔 등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판매한다.
해외 진출 지역도 계속 늘리고 있다. 팔도는 연간 라면 소비량이 세계 2위인 인도네시아에서 지난해 ‘일품해물라면’과 ‘일품짜장면’을 집중적으로 팔았다. 이 덕에 전년보다 매출이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브라질·싱가포르 등 신흥시장 개척에도 나섰다. 농심 신라면 블랙은 아랍에미리트연합·필리핀·뉴질랜드 등지에서도 인기다.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유럽 공략에도 나섰다.
해외 진출 땐 현지 바이어와 접촉해 국가별 트렌드를 파악하고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한다. 예컨대 멕시코 시장이면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히스패닉 소비자를 겨냥해 다른 향신료를 첨가하거나 입맛이 비슷한 미국 남서부의 사례를 연구한다. K-팝을 비롯한 한류 콘텐트 바람을 마케팅에 응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황성만 연구소장은 “값싼 먹거리인 라면은 불황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에 요즘처럼 세계적 경기 침체에도 적극적으로 마케팅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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