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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FORBES KOREA AGENDA - 정신·물질·사회적 가치 3박자 갖춰야 존경 받는 부자

2013 FORBES KOREA AGENDA - 정신·물질·사회적 가치 3박자 갖춰야 존경 받는 부자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패밀리 오피스에서 좌담회를 했다. 왼쪽부터 한동철 교수, 이충희 대표, 최염 회장, 윤태경 상무.


2월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패밀리오피스에서 ‘부자의 품격’ 이란 화두로 좌담회를 마련했다. 포브스코리아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앞으로 10년을 이끌 어젠다로 ‘부자의 품격’을 선정했다. 부자란 그 시대의 부와 파워를 상징한다. 누구나 부자를 되길 꿈꾼다. 한편으로 사회에는 반 부자 정서가 심하다.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당당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포브스코리아가 부자의 품격을 높일 방안을 모색했다. 평소 참부자를 실천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최염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 회장, 한동철 부자학연구학회장, 이충희 듀오 대표이사, 윤태경 삼성패밀리오피스 상무다.

최염 회장은 경주 최부자 집 후손이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한국 속담을 깬 곳이 최부자 집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무공 최진립으로부터 마지막 최준까지 300년 동안 부를 이었다. 그 비밀은 이 집안 가훈에 있다. 흉년기에는 재산을 늘리지 말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는 게 선조의 당부였다. 흉년에는 곳간을 열어 주위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고, 관청이나 향교 등에서 물품이 필요한 경우 아낌없이 지원해서 원성 사는 일이 없도록 했다. 악착같이 재산을 늘리기보다 대대로 나눔을 실천했다.

한동철 부자학연구학회장은 국내 최초 부자학 전문가다. 부자학을 학문 영역으로 들여왔다. 지난 2004년 서울여대에 개설한 부자학 강좌가 인기를 끌었다. 2007년에는 부자학연구학회를 만들었다. 학회의 가장 큰 과제는 한국의 존경 받는 부자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학회에선 23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개론』 『1% 부자를 잡아라』 『부자학 강의』 등이 있다. 최근 부자학 이론을 하나로 묶어 『부자학 원론』을 출간했다.

이충희 듀오 대표는 나눔에 관심이 많다. 듀오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에트로(ETRO)’ 수입사다. 그는 사업이 안정궤도에 든 2002년 백운장학재단을 세웠다. 지난해 100여명의 대학생에게 모두 2억8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틈틈이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고 가난한 젊은 화가들에겐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윤태경 상무는 지난해 1월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삼성패밀리오피스를 총괄한다. 삼성패밀리오피스는 한국에 제2의 록펠러, 카네기 가문이 나오도록 돕는 일을 한다. 삼성 헤리티지 플래닝 서비스(Heritage planning)와 가문위원회(Family Board)를 활용해 피상속인 재산뿐 아니라 철학과 가치관까지 상속한다. 이는 후대에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최염 회장이 부를 일군 11대조 최국선 할아버지 얘기를 들려줬다. 조선 후기에는 밭에 씨를 뿌리는 직파법으로농사를 지었다. 최국선은 새롭게 들어온 농사기술 이앙법에 도전했다. 이앙법은 못자리에서 모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 그 모를 논으로 옮겨 심는 재배 방법을 말한다. 모를 키우는 동안 빈 땅엔 다른 작물을 심어 춘궁기를 때웠다. 농사 방식을 바꾸니 생산량이 확 늘었다. 모를 옮겨 심다 보니 잡초가 준데다 이모작을 하면서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었다.

최국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개간 사업에 나섰다. 정부는 농기구를 빌려줄 정도로 토지 개간 사업을 장려했다. 그는 개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토지 경작을 하도록 했다. 당시 소작료로 수확물의 80%를 주는게 관행이었다. 소작인 손에는 남는 게 없었다. 음력 설 전에 양식이 떨어졌고, 지주에게 고리에 쌀을 빌렸다. 그의 재산이 불어날 무렵 삶을 깨우칠 일이 생겼다. 밤에 횃불을 들고 약탈을 하는 명화적이 침입해 돈이며 채권 서류를 훔쳐갔다.

다음날 관가에 달려가 고발하기보다 소작료를 절반으로 낮췄다. 소작인을 비롯한 백성들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도둑이 됐음을 이해한 까닭이다. 낮은 소작료가 소문이 나면서 그의 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소작인들이 늘었다.





한동철 부자학연구학회장 최 회장의 얘기 속에 부자의 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부자는 ‘정신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물질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최부자 집처럼 우리나라에서 참부자라고 지칭할 수 있는 유일한 박사, 간송 전형필 선생, 김만덕의 삶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자로서의 가치관이 뚜렷했고, 물질적인 풍요를 획득하는 창조적인 방법을 터득했으며, 사회를 위한 봉사에 여생을 보냈다는 점이지요.



윤태경 삼성패밀리오피스 상무 부자가 존경 받는 사회가 건강합니다. 물질만 추구하는 부자들은 사회적으로 비난받기 마련이에요. 이제 부자들의 품격을 높일 때입니다. 그 동안 물질에 치우친 삶을 살았다면 사회적인 자산과 인적 자산을 키워야 해요. 사회적 자산이란 기부나 나눔을 통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인적 자산은 자신의 가치를 계승할 수 있도록 후계자를 교육하는 거에요. 즉 재정적 자산을 비롯해 사회적 자산과 인적 자산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이충희 듀오 대표 우선 자신의 삶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려고 노력하지요.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고기를 잡아서 주는 게 문제죠. 최염 회장 얘기에서 느꼈지만 도적이 침입했을 때 벌하지 않고 더 베푼 정신이 후손들에게 이어진 겁니다. 우리가 솔선수범해 나눔 활동을 한다면 자녀들은 보고 배우게 될 겁니다. 품격 있는 부자란 순수한 나눔이 물질을 앞설 때가 아닐까요.



한동철 이 대표는 사회부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요. 부자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신부자·물질부자·사회부자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족의 전체 재산이 30억원 이상일 경우 부자라고 봅니다. 부동산·주식·현금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지요. 30억원 이상 갖고 있으면 물질부자입니다.

돈을 버는 만큼 사회에 나누려는 사람들이 사회부자에 속합니다. ‘부자는 의무적으로 사회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가치를 실현하는 거에요. 정신적인 부자로는 법정 스님,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면 포브스코리아의 어젠다인 ‘품격있는 부자’라고 할 수 있겠죠.



최염 경주최씨 중앙종친회장 가훈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호가 있는 분이 계십니다. 할아버지 최준의 호는 대우헌(大愚軒)이지요.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증조부 최현식의 호는 둔차(鈍次)로 재주가 둔해 으뜸 가지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자기가 가장 잘난 듯 살지말라는 얘기입니다.

어리석은 듯 드러내지 않고 버금가라는 최부자 집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6훈을 보면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조선시대 진사는 벼슬이 아니고 일종의 양반 입문 자격시험이에요. 학문을 하되 벼슬을 목표로 하지 말고 양반으로서 기본 자격만 갖추라는 말씀이었죠. 끝없는 욕망을 견제하도록 했습니다.



윤태경 부를 쌓는데 절제가 필요하고, 감사에서 나오는 나눔이 큰 덕목인 것 같아요. 최부자집이 존경 받는 이유겠지요.



부자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패널 모두 부자들의 사회활동은 당연한 일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째 혼자서는 부자가 될 수 없어서다. 한 교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사과주스를 가리키며 “우리가 지금 사과주스를 구매했기 때문에 이 제품 회사 사장이 돈을 버는 것”이라며 “사회 여러방면에서 지원을 받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부자의 재산을 지키는 게 사회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부자들은 곤욕을 치렀다. 부자였지만 자선활동을 열심히 한 톨스토이는 폭동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주 최부자 집도 마찬가지. 동학농민전쟁 때 성난 농민들이 탐관오리와 부자들을 습격했어도 최부자 집은 안전했다. 한 교수는 사회를 위하는 것이 부자가 자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방식으로 리세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할까요.



이충희 나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친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는 늘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하셨어요. 교사 월급으로 8형제를 키웠으니 힘드셨을 거에요. 저희 집엔 친척들이 몰려왔어요. 부족한대로 나눠 먹고 산 게 몸에 밴 듯해요. 샐러리맨으로 살았다면 나눠 줄게 많지 않았을 거에요. 돈이 없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장학재단은 부친의 호인 백운(白雲)을 따서 백운장학재단이라고 지었습니다.



한동철 가치를 실현하고 전승하는데 재단설립은 유용합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나 미국 록페러 가문을 보면 재단에서 기업을 관리하는 구조입니다. 후손이 개인적인 용도로 돈을 쓸 수 없어요. 재단 설립자의 의지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구조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재단 운영에 제약이 많습니다. 한 예로 2002년 황필상수원교차로 대표가 모교에 210억원을 기부해 구원장학재단을 세웠습니다.

6년 뒤 세무서에서 140억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어요. 기부금으로 냈던 회사 주식에 증여세가 매겨진 겁니다. 국내엔 재단 설립이 부의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지요. 재단을 설립할 때는 개인재산과 법인재산을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문제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개인재산으로 재단을 설립할 만큼 부의 규모가 크지않다는 거에요. 빌 게이츠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금액은 무려 291억 달러에 이릅니다.



이충희 맞습니다. 2002년 개인 돈 3억원을 갖고 재단을 설립했어요. 재단에선 이자 수입의 70%를 재단운영에 쓰도록 하고 있어요. 저는 100%를 써도 부족해요. 재단기금이 작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월급을 아껴 재단에 넣었습니다. 현재 30억원 규모로 불렸지만 여전히 부족해요. 지난해 장학금으로 2억8000만원을 지급했는데 부족한 부분은 회사에서 기부했습니다. 앞으로 재단기금을 50억원까지 키울 계획입니다. 훗날 제가 빠져도 재단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윤태경 국내에도 신탁이나 재단설립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형제간 재산 다툼이 있을 수 있고, 대를 이어 가다 보면 의미가 퇴색될 수 있어요. 앞서 얘기했듯이 정신을 지키려면 물질적 자산과 인적 자산을 강화해야 합니다. 삼성패밀리오피스에서도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가문들을 벤치마킹 해 가문위원회(Family Board)를 만들었습니다. 패밀리보드가 가문이 지켜야 할 원칙을 정하고, 회사의 경영과 관련된 의사 결정을 하며 후계자를 양성하는 교육까지 맡습니다. 즉 가문의 핵심 가치를 계승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겁니다.



최염 부자가 될 때까지 구두쇠였다가 부자가 되고서야 나눔을 실현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11대조 최국선 할아버지께서 명화적의 침입을 당한 날 밤새 고민하지 않았을까요. 이웃이 못 사는데 나 혼자 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거 부자들이 성인군자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사회가 어렵고 불안했기 때문에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겁니다.



이충희 좋은 말씀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를 하는 것도 품격 있는 부자의 조건이라고 봅니다. 저는 재산의 80%를 사회에 환원할 생각입니다. 나머지 20%는 자녀에게 물려주고요.



최염 할아버지가 만석꾼 지위를 포기한 것은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 국권 회복을 도우려면 부를 포기해야 했고, 부를 얻으려면 친일을 해야 했어요. 당시 30대였음에도 할아버지는 독립군을 위해 전 재산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이 키운 논밭과 임야를 아낌없이 백신상회에 쏟아부었습니다. 대단하셨죠.



윤태경 최부자 집의 정신이 300년 넘게 이어온 비결은 집안의 가훈에 있다고 봅니다. 대를 이어 가훈이 계승된 거에요. 앞으로 부자들이 가문헌장(Family Mission Statement)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가문의 핵심 가치를 뽑아서 사회에 환원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기업을 키운다면 국내에서도 존경 받는 부자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한동철 이번 좌담회를 계기로 가치 있는 나눔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면 좋겠습니다. 작게는 가문철학 계승으로 볼 수 있고 크게 본다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문화운동까지 펼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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