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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LETTERS - 논리로 무장하고 피아노와 마주한 여인

MUSIC LETTERS - 논리로 무장하고 피아노와 마주한 여인

포브스코리아는 이번호부터 박용완 월간 객석 편집장의 ‘음악 편지’를 싣는다. 매달 가상 인물이 동료나 가족에게 음악을 매개로 이야기한다. 첫회는 과장급 직원이 입사 1년 차 후배에게 쓰는 편지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유정씨가 입사한 지 벌써 1년입니다. 1년을 버티면 축하편지 한 장 써줘야겠다, 마음먹고 있었어요. 나는 ‘사수’ 노릇을 했죠. 유정씨는 내게 무척 특별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우린 참 징그럽게 붙어있고, 의지했고, 상처도 많이 주고받았어요. 유정씨처럼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논리적인 여자는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남자 치고 감성적이라서 유정씨를 감당하는 게 쉽지않았어요. 그럼에도 유정씨가 회사 윗분들과 대립할 때마다 나는 중재인을 자처했습니다. 논리적으로 납득하지 못한 지시에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유정씨를 변호하기 위해 부장님과 몇 번이나 술자리를 했죠. 물론 여전히 몇몇 분들은 유정씨를 ‘경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곧은 성품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유정씨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를 좋아합니다. 내가 차에서 늘 틀던 그 쇼팽 녹턴 음반의 주인공 말이에요. 손열음은 여러 면에서 유정씨와 닮았죠. 그러고 보니 나는 논리적인 여자와 마주하는 걸 괴로워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지 모르겠네요. 이제부터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합니다.

손열음은 유정씨와 동갑내기로 1986년생입니다. 2011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죠.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독일 하노버로 건너간 그는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여섯 살에 동네 학원에서 ‘일반적으로’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그렇게 일년을 배우다 곧 서울로 레슨을 다녔다니 ‘일반적인’ 재능은 아니었겠죠. 어린 시절 밖에서는 애들이랑 잘 놀고 집에서는 어른스러운 꼬마였다네요. 꼬마이면서 또래들을 보면 ‘애들은 역시 애들 같다’ 생각했다니 어떤 아이였는지 상상이 되죠? 심지어 어머니는 딸이 세 살이었을 때 이미 다 키웠다고 느꼈답니다.

어른스러운 꼬마는 책을 좋아하고 생각이 많은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동시에 소녀는 피아니스트, 즉 음악가이기도 했죠. 비록 어리지만 자기 생각과 논리가 분명한 이 피아니스트는 한때 공연기획자들 사이에 ‘다루기 어려운 원석’으로 인식됐습니다. 유정씨 처음 입사했을 때 내가 느낀 바도 비슷하고, 지금 회사 윗분들이 갖고 있는 인상도 마찬가지일 거라 봅니다.



나는 논리 내세우면 설득 쉬운 사람오랫동안 세상을 살았다고 자신하는 조력자들. 그들 눈에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피아니스트. 어려서부터 연주활동을 했던 손열음이기에 음악회를 열 때마다 ‘연주자’와 ‘공연기획자’ 관계는 애매했습니다. 손열음은 아예 그 관계를 피해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관계의 불편함’에는 언어의 영향이 없지 않습니다. 존댓말과 반말이 분명한 우리말 특유의 ‘관계 지어짐’ 때문이죠. 실제로 하노버로 건너간 손열음은 그곳에서 영어를 쓰면서 무척 편하게 열어놓은 제 모습에 놀랐다고 하네요. 사실 유정씨도 영문 보고서를 쓰며 부장님을 당신(You)이라고 지칭할 때마다 비슷한 쾌감을 느끼지 않나요? 솔직히 나는 그렇던데.

손열음이 우리 나이로 스물여덟이니 주변 어른들이 마냥 어린아이 대하듯 하진 않겠죠. 그럼에도 손열음은 ‘어른 대 어른’으로도 대하기 쉽지 않은 인물인 듯합니다. 논리적이기 때문이죠. 언젠가 그는 스스로를 “논리적으로 얘기하면 설득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이런 말을 덧붙이더군요. “그러나 주변엔 무 논리가 많잖아요.” 어쩜 그렇게 유정씨와 비슷한지.

생판 모르는 곡을 접했을 때 손열음이 음악을 익히는 단계는 이렇습니다. 일단 악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습니다. 악보를 쉽게 읽는 편이라 그 시간은 짧다고 하네요. 다음엔 구조를 파악하고 효과를 생각합니다. 그 후엔 좀 더 연습을 하고, 실제 무대에서 연주를 하며 발전시켜나 갑니다. 그가 곡을 분석하고 효과를 연구하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서 입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나 자신’을 간과하죠. 유정씨도 그렇지 않나요? 스스로 만족하지 않은 결과물을, 100%가 아님이 분명한 결과물을 발표해야만 하는 회의시간은 고역이죠.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는 일은 남들을 설득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손열음은 강조합니다. “나를 설득하면 그걸로 그만이에요.”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대화 내내 ‘논리’라는 표현을 쓰는 손열음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논리란 무엇입니까. 그는 “언행의 이유, 기반”이라고 답했습니다. 하노버로 유학을 떠날 때도 ‘내 음악에 논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포르테, 즉 소리를 크게 낼 때는 크게 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를 만들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입사 1년을 맞는 유정씨에게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건, 논리는 사고(思考)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님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가끔 유정씨는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갇혀있는 듯 하니까요. 논리는 ‘행동’의 이유일 수도, ‘소리’의 이유일수도, 심지어 ‘무논리’의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3월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독주회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유명함에 비해 늦은 무대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혈혈단신’ 서는 일은 논리로 꽁꽁 무장한 그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고, 그만큼 대단한 설렘일 겁니다. 2000명 관객 앞에 오직 피아노에 의지한 채 홀로 선, 똑 부러지는 유정씨를 꼭 닮은 피아니스트. 나와 함께 손열음을 만나러 가지 않을래요? 유정씨에게 1년 만에 처음 써본 내 편지는, 사실은 빙빙 돌아 이 한마디를 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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