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CRIME - 미결 사건 종결자
FEATURES CRIME - 미결 사건 종결자
캐롤 버크는 LA 카운티 검찰청의 성범죄부 부장이다. 일과 시간엔 부서를 이끄는 일에 매달린다. 그러나 일과외 시간엔 개인적으로 이미 사망한 강간범, 살인범, 연쇄살인범의 DNA를 추적한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순전히 사명감에서 시작한 일이다. 악명 높은 흉악범의 DNA를 미결 사건의 증거물과 대조해 사건을 종결 지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검찰청에서 아동학대 사건 담당자 앤 머리 슈버트가 ‘데드 맨 토킹(Dead Man Talking)’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버크는 곧바로 파트너로 참여했다.
캘리포니아주 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들이 저질렀지만 증거가 없어서 흐지부지된 사건을 파헤치는 프로젝트다. 오래 전에 사망한 범인의 사건을 끝까지 추적해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
“보람이 아주 크다(It’s really rewarding)”고 버크는 말했다. “범인이 이미 사망했기때문에 기소할 순 없지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There is a lot of value to it, even though we can’t prosecute the offenders because they are dead). 적어도 희생자 가족이 진실을 알고 종결지을 수 있다(Families can at least have some closure).”
캘리포니아주에는 흉악범 프로필 약 200만 건이 저장된 DNA 데이터뱅크가 있다. 거기에는 특정 범인과 연결되지 않은 살인, 강간, 강도, 절도의 범죄현장 증거도 약 2만 5000건이 들어 있다. 침대 시트에 묻은 정액이나 담배 꽁초 같은 증거물을 말한다.
버크와 슈버트는 흉악범 프로필이 보강되면 수많은 미결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많은 범죄자의 프로필이 데이터베이스에서 누락돼 있다. 슈버트에 따르면 1984년 이후 캘리포니아주의 재소자 약 2만5000명이 교도소에서나 가석방 중에 사망했다. 그중 약 1만9000명의 DNA는 채취된 적이 없다. 그중 사형수가 40명이 넘는다.
그들의 흔적을 추적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특히 정규직을 가진 두 여성이 과외 시간에 부하 직원도 없이 혼자서 일하기 때문에 무척 어렵다. 버크와 슈버트는 먼저 사형수에 초점을 맞춘다. 그 다음 가석방 가능성없이 종신형을 선고 받은 범죄자들로 범위를 넓혀간다.
버크는 특히 악명 높은 ‘프리웨이 살인마(Freeway Killer)’ 윌리엄 보닌의 DNA를 추적하고 싶었다. 범인의 희생자 다수가 서던 캘리포니아 프리웨이 노변에 버려졌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그가 내 표적 1호(He’s my No. 1 target)”라고 버크가 말했다. “그는 정말 죄질이 나빴다. 너무도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보닌은 1979년과 80년 사이에 LA와 오렌지 카운티에서 소년과 젊은 남성 13명을 납치, 강도, 성폭행, 살인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보닌은 체포된 뒤 공장 직공이던 버논 버츠 등 여러 공범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으며 소년과 젊은 남성 21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가 살해한 희생자가 30명에 이르리라고 믿는다.
보닌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96년 샌켄틴 주립 교도소에서 형이 집행됐다. 하지만 그의 DNA 샘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가 저지른 더 많은 살인사건을 규명할 기회도 사라졌다.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샌켄틴 교도소에서 당연히 부검을 했으리라고 생각했다(I originally assumed they autopsied people in San Quentin).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That’s not the case). 그들은 교도소에서 자살하거나 살해당한 사람만 부검했다. 따라서 자연사하거나 보닌처럼 사형이 집행된 사람은 부검이 이뤄지지 않았다.”
보닌의 재판 관련 서류와 증거물도 이미 파기된 상태였다. 보닌의 혈액, 정액, 타액도 찾지 못했다. 보닌이 체포된 후 공범으로 지목했던 버츠는 LA 카운티 교도소에서 자살했기 때문에 그의 DNA는 잘하면 추적할 수 있을 듯했다(자살한 사람의 경우는 부검이 실시된다). 그러나 경찰이 2010년 그 증거물을 파기해 버렸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보닌은 가장 악명높았고 여죄가 있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며 버크가 좌절감을 표했다. “그의 DNA 샘플만 있으면 미결 사건 중 일부를 종결할 수 있는데...”
버크는 롤런드 콤토이스 사건에선 그보다 운이 좋았다. 콤토이스는 1987년 10대 소녀 두 명을 납치해 한 명을 살해하고 다른 한 명을 성폭행했다. 콤토이스는 수감 중 병에 걸려 1994년 65세의 나이로 교도소 병원에서 사망했다. 자연사였기 때문에 부검은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버크는 끈질긴 노력으로 콤토이스의 피묻은 셔츠를 찾아냈다. 그는 체포를 피해 달아나려다가 경찰이 쏜 총을 맞았고, 그 때 입었던 셔츠가 증거물로 보관돼 있었다. 하지만 그의 DNA는 미결 살인 사건과 연결되지 않았다.
슈버트는 1970년대 새크라멘토 카운티의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 중 일부 미결 사건을 해결하려고 2008년 ‘데드 맨 토킹’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킬링필드였다”고 슈버트가 말했다. 새크라멘토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주 전역에 버려진 시체가 수없이 많았다.”
슈버트가 그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리스트에서 우선 순위에 있는 범인 중 한 명이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Original Night Stalker)’다. 그는 1986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시작해 샌타바버라, 오렌지, 벤추라 카운티까지 내려가면서 강간 사건 50건 이상과 다수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전부 미결로 남아 있다. “그 범인은 이 지역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슈버트가 말했다. “그가 교도소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 외에도 슈버트는 연쇄살인범 제럴드 갈레고의 DNA를 1년 이상 추적했다. 갈레고는 아내와 함께 1970년대 말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서 젊은 여성 10명을 살해했다. 사형을 선고 받은 갈레고는 2002년 네다바주 교도소에서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자연사였기 때문에 역시 부검이 실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슈버트는 증거물 14박스를 샅샅이 뒤져 깊숙이 들어 있던 타액 샘플을 발견했다. “그는 유죄를 선고 받은 사건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살인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된다”고 슈버트가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다른 사건들과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버크와 슈버트는 LA 연쇄살인범 후안 차베스를 60세 린펜 살인사건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최초의 중요한 성과였다. 60세였던 펜은 1990년 7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교살된 채 발견됐다.
차베스는 동성애 남자 5명을 살해한 죄로 수감된 후 3개월 뒤 자살했다. 슈버트는 차베스의 부검이 실시됐으며, 그의 혈액 샘플이 증거물로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의 DNA가 데이터뱅크에 올려졌다. 결국 지난 2월 차베스가 린 펜을 살해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희생자 펜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담배 꽁초가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 꽁초에 범인의 타액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슈버트는 타액의 DNA와 차베스의 DNA 샘플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너무도 기뻐 비명을 질렀다”고 말했다. “그 때 내가 어디 있었는지 기억한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It’s like how everyone remembers where they were when Elvis died).”
슈버트는 ‘데드 맨 토킹’ 프로젝트를 캘리포니아주 전체로 확대하고자 한다. 또 상근 수사관도 채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결 사건 해결에 필요한 비용을 확보하기는 매우 어렵다. 2012년 그들은 당국에 재정지원을 신청했지만 거부 당했다.
슈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범인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아’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범인에게 당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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