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vore SPORTS - 중국에 뿌리내리는 프로 야구
Omnivore SPORTS - 중국에 뿌리내리는 프로 야구
레온 셰가 실수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자포자기한 순간이 있었다.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스폰서십 책임자를 맡았었다. 수십 개의 주요 경기장에서 수천가지 중요 상품의 판촉을 담당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러나 6개월 뒤엔 딱 한 가지 상품의 홍보를 맡았다. 탁구·농구·비디오게임이 가장 인기를 끄는 나라에서 진행이 느리고 헷갈리는 룰을 가진 야구였다. “이제 뭘 어떻게 하지?”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중국 대표를 맡은 첫날 셰는 생각했다. 그야말로 직함 하나만 들고 허허벌판에선 격이었다.
중국에서 야구가 그렇게 생소한 스포츠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중국인들이 열광하지는 않는 듯했다. 야구를 즐기는 사람은 1만 명에 못 미치는 괴짜들, 뛰어난 기량을 지닌 외국인 선수 그룹, 그리고 야구장 인기 스낵 크레커 잭의 현지 팬이 전부였다. 6개팀으로 이뤄진 신생 프로 리그에는 길가의 고장 난 자동차보다 구경꾼이 더 적게 몰렸다. 그리고 중국에서 야구는 “선수와 직접적인 연고가 없으면 구경 가지 않을 스포츠”라고 당시 셰의 상사 중 한 명이 털어놓았다.
야구를 세계의 보편적인 스포츠로 만들기위한 가장 유망한 시도가 그대로 무산될 뻔한 순간이었다. 다음에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이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셰의 아버지가 전 직원 3명의 MLB 차이나 사무실 문을 열고 느린 걸음으로 들어섰다. 아들의 새 직책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 순간 그 78세의 은퇴한 기계공학자는 뜻하지 않은 기여를 했다. 아들은 두 가지를 떠올렸다. 첫째는 아버지도 이젠 나이가 드셨구나 하는, 단순하면서 슬픈 관찰이었다. 그뒤 그는 일순 눈을 의심했다. 아버지가 야구 배트를 들고 있네? 아버지가 설명했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거든.” 그리고 배트의 굵은 부분에 자신이 한 말을 한자로 큼지막하게 써넣었다.
아버지는 1950년대 대학 시절 가느다란 금빛 배트를 사용했었다. 중국의 민족주의의 물결에 떠밀려 야구가 사라지기 전의 시절이었다. 아들이 신세대 중국인에게 야구에 대한 열정의 씨를 심어주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배트를 기증했다. “그 일로 중국에서 야구의 역사가 길다는 깨우침을 얻었다.” 셰가 베이징의 사무실에서 전화로 당시를 돌이켰다.
4년이 흐른 지금 메이저리그 야구 시즌이 다시 돌아왔다. 셰는 야구를 현대적 특성을 지닌 유교적 여가활동, 전형적인 중국 스포츠로 포장하고 있다. 그 전략이 먹혀 드는 듯하다. 중국에서 다시 야구 경기가 열리고 팬들이 몰려든다. 때로는 원조인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10개 국영TV 채널에서 중계하며 수억 명이 시청한다. 그밖에 광고 캠페인, 기념품 판매점, 카니벌 같은 순회 행사, 국가 후원행사가 수백만 명을 끌어 모은다.
베이징의 러시아워 때마다 통근자들은 시내 버스에 설치된 1만2000개 TV 스크린을 통해 금주의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함께 해요’라는 홍보 캠페인도 방송된다. 야구 선수 또는 팬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만한 매력적인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자신을 소개한 다음 셰의 아버지처럼 “야구를 즐긴다”는 뜻밖의 고백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과정에서 야구의 특성이 중국 고유의 미덕으로 선전된다. “유교사상 얘기를 해보자”고 아시아 지역 MLB 책임자이자 셰의 상사인 짐 스몰이 말했다. 그는 중국의 윤리 철학과 그 미국 스포츠 간의 유사성을 늘어놓았다. “시계가 없고,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모든 일이 3 또는 3의 배수로 진행된다….” 또한 중국 관료들과의 대화에선 야구가 지정학적 무기로 소개된다. 경쟁에 열광하는 중국으로선 수십 년 전부터 야구가 성행한 대만·한국·일본 등의 지역 라이벌들을 누를 기회라고.
그렇다면 중국에서 MLB의 걸림돌이 뭐란 말인가? 한 마디로 선수 부족이다. 중국 인구는 10억 명이지만 투수가 없다. 청년이 수억 명이지만 타자가 없다. 중국의 조직력은 세계에서 알아주지만 야구선수 육성 아이디어가 없다. 대만·한국·일본 모두 여러 명의 선수를 미국 메이저 리그로 보냈지만 프로 계약을 체결한 중국 태생 선수는 5명도 안 된다. 모두 마이너리그를 전전해 왔다. 언제 미국생활을 포기하고 귀국할지 모른다.
최근 중국 야구국가대표팀은 베이징 올림픽에 앞서 캐치볼 훈련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올해 야구월드컵 격인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중국팀의 타자는 호리호리했으며 투수는 살랑살랑 공을 던졌다. 프로 유망주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쪽에는 정말 재목이 없다”고 벤 배들러가 말했다. 베이스볼아메리카 잡지에서 세계 유망주를 담당하는 기자다.
그것은 셰에게는 큰 문제다. 2002년 휴스턴 로켓츠가 229㎝의 야오밍과 입단계약을 체결했을 때 2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중국 팬들을 미국프로농구(NBA)로 끌어들였다. 지난 3월의 WBC 대회는 한국·대만·일본인들에게 자국의 스타가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적하는 모습을 볼 기회였다.
덕분에 WBC는 21세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스포츠 종목의 대열에 올라섰다. 그것이 스타의 힘이다. 그러나 셰가 취임했을 때 중국은 인재를 발굴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중국 전체에 제대로 된 야구 경기장이 3곳에 불과했다. 그중 하나인 2008년 올림픽 스타디움은 쇼핑몰을 세우기 위해 최근 헐렸다.
그러나 이 문제도 MLB는 개선해나가는 중이다. 로비를 통해 중국 120개 초등학교 체육 시간에 야구를 도입하도록 했다. 수 세대 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8~12세 어린이들이 스트라이크아웃의 특별한 슬픔, 그리고 진루의 특별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밖에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MLB의 이동 타격훈련장과 피칭 연습장에서 야구의 매력을 경험한다.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독립적인 야구 프로그램에서 받아준다.
MLB가 이들 수십 개 일반인 단체에 장비나 훈련을 지원한다. 모두 인재 발굴 목적이다. 12세 어린이까지 포함해 최고 유망주는 MLB ‘양성소’ 입소를 권유받는다. 이들은 1년 12개월동안 거의 매일 프로 선수처럼 훈련을 받는다. “이것은 큰 실험”이라고 짐 스몰이 설명했다. “야구의 전통이 없는 나라의 청소년을 데려다가 올바른 훈련·영양·코칭으로 유망주로 만들 수 있는가?”
MLB는 곧 그 답을 얻게 된다. 최초의 트레이닝 센터가 2009년 우시에 문을 열었다. 중국 동남부의 에머럴드빛 양쯔강 하구에 자리잡은 회색 톤의 도시다. 올 가을에는 첫 교육생 중 최소 3명의 프로 재목이 배출된다고 MLB의 경기력향상 책임자 릭 델이 말했다. 델은 야구의 다음 개척지인 필리핀의 옥수수밭 개활지 가장자리에서 전화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말은 옆에서 진행되는 야구 경기의 소음에 파묻혔지만 자부심만은 전달됐다. “그 아이들을 보면 ‘야, 진짜 물건들이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그들이 대단한 재목이 아니더라도 MLB는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1차 교육생의 뒤를 이어 ‘완성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매번 전 기수보다 약간 더 크고 강하다. 강속구를 던지는 호리호리하고 한 16세 선수는 두 정상급 배구선수 부부의 아들이다.
“미국인들이 걸작을 그릴 수 있는 순백의 도화지와 같다”고 그의 아버지가 2012년 한 중국 기자에게 말했다. 올 여름 그 소년을 비롯한 유망주들이 미국으로 공수되어 캘리포니아와 뉴저지의 일류 고등학교 리그에 투하된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출발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고 델이 말했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면 그런 날이 온다.”
그 사이 레온 셰는 2009년 초창기 막막하던 날들의 회의론자들을 떠올렸다. 그는 회의를 나타냈던 모든 전문직 친구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 그들은 야구가 ‘외계’ 스포츠라서 번창하는 중국에서 잊혀질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그들의 메일 수신함에는 그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차곡차곡 쌓인다. 경기장, 파트너십, 외계인 침공의 진척이 새로 이뤄질 때마다 “반드시 그들에게 알려준다”고 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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