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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 ‘스펙’보다 실력 쌓아라

CEO - ‘스펙’보다 실력 쌓아라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5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박근희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했다. 사장으로 임명된지 1년 만의 파격 승진이었다. 폭넓은 경영 안목과 추진력으로 삼성생명의 제2 도약을 이끄는 박 부회장을 포브스코리아가 단독 인터뷰했다. 3월 15일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6층 대표실에서 만났다.
1953년 충북 청원 출생, 청주대 상학과 졸업, 2004년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2005년 삼성그룹 중국본사 사장, 2011년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 2012년 12월~ 삼성생명 대표이사 부회장



2008년 12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되던 무렵 박근희 부회장은 당시 삼성그룹의 중국본사 사장으로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다. 새치가 많아 30대부터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백발을 ‘휘날리며’ 종업원 수 6만5000명의 거대조직을 이끌던 그였지만 눈앞에 놓인 경영환경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경영진단팀장(부사장), 삼성카드 사장 등을 거치며 여러 차례 경영 체질개선과 경쟁력 제고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중국에서도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마음이 괴로웠다.



백발 염색해 변혁 의지 다져결국 자기최면을 걸 듯 중국 기자들 앞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선언한 그는 그해 12월 30일 종무식을 마친 후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기암시이자 이런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의지였다.

“염색하러 왔다니까 단골 미장원 주인이 ‘무슨 소리냐’며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1월 2일 서울 본사 시무식에 갔더니 임원들이 아무도 못 알아보더군요. 다행히 1분기에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염색사건’을 통해 보여준 박 부회장의 결단력과 솔선수범 리더십은 이후 삼성생명 CEO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빛을 발했다.

2010년 삼성생명 보험담당 사장으로 부임 당시 145조원이었던 자산은 지난해 말 179조원으로 늘어났다. 보험 영업에서 나오는 고유이익 1조원 시대를 열면서 안정적인 이익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영업의 근간인 컨설턴트도 2010년 3만6000명에서 작년 말에는 4만명으로 10% 이상 늘어났다.

보험사의 대표적 건전성 지표인 RBC 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421%로 국내 최고 수준이다. RBC 비율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과 비슷한 개념이다. 2012년 4~9월 삼성생명의 누적 순이익은 5000억원을 넘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6%나 늘었다.

1978년 삼성전관(현 삼성SDI)에 입사해 치열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 대표이사 중 최고 직급(삼성 금융 계열사에서 부회장이 나온 것은 2006년 배정충 삼성생명 부회장 이후 6년 만이다)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맡은 업무에 관한 한 최고의 프로가 되기 위해 상식과 순리에 따라 모든 열정을 쏟은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학연과 지연을 배제하고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삼성의 조직문화도 큰 요인으로 꼽았다.

충북 청주상고와 청주대 상학과 출신인 박 부회장은 학벌중시 풍조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주목 받아왔다. 국내 몇 안 되는 금융계의 스타 CEO 중 한명인 그는 대학생들과 만날 때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스펙보다 실력을 쌓으라”고 강조한다. “삼성에서 ‘스펙’ 안봅니다. 심지어 제가 회사에 들어오면 다 교육시켜준다고 해도 마음 속으로 믿지 않는 것 같아요. 하다못해 영어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지 밤낮 앉아서 공부만 하면 입사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박근희 부회장(서 있는 앞줄 왼쪽에서 둘째)이 삼생생명 직원들과 함께 2011년 경기도 여주군 하림마을을 찾아 모내기와 고구마 심기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삼성생명은 매년 5월경 전국 110여개 농어촌 마을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또한 기업에서는 나이와 성별·직위·성향 등을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해야 하는 만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대목에서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게 있는데 바로 이해와 배려입니다. 지는 것도 이기는 것이란 생각으로 먼저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대하면 일이 대부분 잘 풀립니다. 아울러 실행력을 키워야 합니다. 기업은 실행으로 성과를 내는 조직이고 아무리 생각이 훌륭해도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임직원·컨설턴트와 소통하기 위해 사내 인트라넷에 'CEO 메시지'를 만들어 격주마다 직접 e메일을 보내고 있다. 메시지를 읽은 임직원들이 e메일 답장을 보내면 한 통도 빠짐없이 직접 회신할 만큼 직원들과의 소통에 공을 들인다. “바쁘면 새벽에도 일어나 씁니다. 제가 영업현장을 자주 방문하는 것도 현장과 소통하려는 뜻입니다.”

최근 저금리·저성장 기조의 장기화 전망에 대한 우려로 보험업계를 포함한 금융시장 전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국내 생명보험업계의 성장 잠재력을 여전히 높게 평가했다. 2010년 12월 부임한 이후 “국내 1등을 넘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자는 기치 아래 ‘창조적 변화와 혁신’을 경영방침으로 정했다. 삼성생명은 중장기적인 발전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산 500조원, 글로벌 15위 보험사로 도약한다는 ‘2020년 장기 비전’을 수립한 바 있다.

“보장성 보험의 대표 지표인 가계 사망보장 금액이 아직도 미국 등 선진국 대비 5분의 1에서∼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개인연금 가입률도 20% 수준에 그칩니다. 은퇴 후 소득도 미국이나 일본은 은퇴전 소득의 70∼80%에 달하지만, 우리 나라는 40%에 불과한 만큼 보장성보험 뿐 아니라 연금·은퇴 분야 등 개척해야 할 시장이 보험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중국시장 성급한 접근 말아야보험업계 최대 현안인 저금리 문제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전략을 통해 보유 계약에 대한 이자 부담을 커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박 부회장은 조언했다. 보험사는 리스크 관리가 가장 중요하기때문에 장기 국공채나 우량 회사채 등 안정적인 자산을 중심으로 운용하되 해외 성장시장이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 수익성이 담보된 투자대상과 함께 새로운 대체투자자산 발굴에도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판매채널의 효율화를 통해 사업비를 절감하고, 보험 본연의 상품인 보장성 보험 판매를 확대하려는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또한 새로운 성장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은퇴·부유층 시장에서도 타 금융업종에 비해 생명보험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만큼 특화된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겠습니다.”

삼성생명은 은퇴·부유층 시장의 선점을 위해 2011년 업계 최초로 국내 최대 은퇴관리 싱크 탱크이며 은퇴관련 종합포탈을 갖춘 ‘은퇴연구소’를 열었다. 지난해에는 삼성생명의 초부유층 자산관리 전담조직인 삼성패밀리오피스를 설립했다. 박 부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보험은 곧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라는 말이다.

극심한 저출산 완화를 위해 출산 전후 산모와 신생아를 부모와 사회가 함께 돌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세살 마을’ 사업, 드럼 연주를 통해 청소년의 폭력성을 낮추고 공동체의식을 키워주는 ‘세로토닌 드럼클럽’ 등 삼성생명의 사회공헌 사업도 ‘사랑경영’을 중요시 여기는 박 부회장의 믿음과 맞닿는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지만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진다. 늘 바쁜 일정에 쫓겨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이리라. 두 남매의 아버지인 그는 특히 시집간 딸에 대한 애뜻한 사랑을 드러냈다.

“딸 시집 보내기 한달전에 갑자기 ‘얘가 아빠와 무슨 추억을 간직하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 녀석 대학시절에는 내가 중국에 나가 있어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임원들에게는 절대 저처럼 살지 말고 아이들과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노력만 하면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전업주부가 많았지만 지금은 남자 혼자 벌어서 안되는 현실이 됐어요. 또 여성들도 사회생활 하려는 욕구가 많기 때문에 회사가 배려해 줘야죠. 그게 안되면 요즘 다 나가요(웃음).”

재계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인 박 부회장에게 중국 사업 노하우를 묻자 “6년간 주재원으로 있었지만 갈수록 더 모르겠다”며 중국에 대한 성급한 접근을 경계했다. “중국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국가 체제가 복잡합니다. ‘선무당보다는 무식한 게 낫다’고 이야기 하는데 중국이 실제 그렇습니다. 차라리 모르면 겸손하기라도 해야죠.”

중국전문가인 박 부회장은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이후 2010년까지 무려 33년간 연평균 10% 고도성장을 했는데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우리나라가 그 성장의 과실을 충분히 따 먹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중국은 앞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커질겁니다. 그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우리가 확실한 성장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중국을 더 열심히 연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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