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 책장보다 스크롤 내리는 재미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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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이 콘텐트 산업의 새로운 금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기 웹툰이 잇달아 영화로 제작되는 등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웹툰 작가의 처우 개선등 풀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웹툰은 인터넷을 뜻하는 ‘web’과 만화의 ‘cartoon’을 합성한 단어로, 인터넷을 매개로 유통되는 만화다.
단행본이나 잡지 연재 만화를 스캔해서 웹에 올리는 ‘웹진’ 서비스가 스마트폰 보급으로 웹툰이라는 고유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반복성과 일상성이 강하고 빠른 스토리 전개에 스크롤을 내리는 재미까지 더했다.
인기 웹툰 영화화 열풍국내 온라인 포털의 양대산맥인 네이버와 다음은 인기 웹툰의 산실이다. 5월 초 기준으로 두 포털에 연재 중인 웹툰은 190편(네이버 126, 다음 64)이다. 3월 기준 네이버 웹툰 순방문자는 1700만명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인기 웹툰이 영화제작으로 이어지면서 문화산업 분야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봉을 앞둔 판타지 영화 ‘신과 함께’에는 10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됐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600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아야 한다. 원작에 대한 제작사와 투자자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액수다. 이 영화는 주호민이 2010년부터 3년간 네이버에 연재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저승과 이승, 신화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로 2011년 대한민국 콘텐트 어워드 만화부문 대통령상과 같은 해 부천만화대상 ‘우수이야기만화상’을 수상했다.
2010년 강우석 감독의 스릴러 영화 ‘이끼’는,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웹툰 ‘미생’으로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윤태호 작품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고도 관객 340만 명을 불러 모았다. 강 감독은 이종규(글)·이윤균(그림)의 ‘전설의 주먹’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 4월 개봉했다. ‘순정만화’ ‘아파트’ ‘바보’ ‘이웃사람’ ‘26년’ 등 스타 웹툰작가 강풀의 작품은 줄줄이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6월 초 개봉하는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올해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인 ‘더 파이브’ 역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이 외에도 ‘조명가게’ ‘미생’ ‘목욕의 신’ 등 웹툰 10여 편이 스크린 데뷔를 앞뒀다.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인기를 끄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이현세 원작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허영만의 ‘식객’ 등 많은 인기 만화가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허 화백의 80년대 야구만화 ‘제7구단’은 중국과 한국에서 7월 동시 개봉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중국에서 50억원이 넘는 투자를 이끌어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인기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까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아이언맨’ 시리즈는 1963년 미국의 공상과학(SF) 만화 잡지 ‘Tales of Suspense’에 처음 등장한 이후 아직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 밖에도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도 만화 주인공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샘 레이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3D 액션 영화 ‘프리스트’는 형민우의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이달 개봉 예정이다.
국내외에서 150만부 넘게 팔린 ‘프리스트’는 신의 규율에 따라 통제되는 미래세계에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신의 뜻을 거역하고 복수를 시작한다는 판타지 액션물이다. 한국 만화를 바탕으로 한 첫 할리우드 영화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인터넷 시대 이전의 만화는 작가 명성과 스토리 힘으로 승부했다. 하지만 웹툰은 재능을 알리고 싶은 젊은 만화가 지망생의 욕구와 자체 콘텐트로 방문 수를 늘리려는 대형 포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공간에 구애 받지 않고 시간 때우기로 웹툰을 보는 사람이 많아 기존 만화에서 강조되던 서사성과 복선은 오히려 인기의 장애요인이다.
경기도 이천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11년째 만화창작을 가르치는 박인하 교수는 웹툰의 ‘쏠림현상’을 지적한다. 외견상으로는 이야기 소재가 다양한 듯 보이지만 가벼운 일상적인 이야기 위주로 흘러가기 쉽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친숙한 소재와 몇 회를 읽지 않아도 재미있게 연결되는 익숙한 코드의 ‘생활툰’이 인기 웹툰의 주류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등단은 쉬워졌지만 작품의 완성도나 기술적인 면에서 예전보다 향상됐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술적으로 미숙해도 트래픽을 올릴 수 있는 요소가 한 부분이라도 있으면 등단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죠. 웹툰시대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출판만화 시장의 오랜 불황에도 불구하고 웹툰은 단행본 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네이버 웹툰 최고 인기작 중 하나인 조석의 ‘마음의 소리’는 단행본으로 출간돼 무려 40만 권 팔렸다. 현재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의 절반가량은 이미 단행본으로 출판됐거나 출판 예정이다.
‘빈익빈 부익부’ 심화 우려도웹툰의 영향력은 영화와 출판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김규삼의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최근 모바일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난다(필명)의 ‘어쿠스틱 라이프’와 네온비(필명)의 ‘다이어터’의 캐릭터는 텀블러와 문구류에 등장했다.
일부 웹툰이 2·3차 문화상품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자 한 경제 일간지는 3월 총 상금 4000만원을 내걸고 웹툰 공모전을 개최했다. 특정상품을 그대로 노출하는 간접광고(PPL)도 등장했다. 2011년부터 산악구조대원을 소재로 다음에 연재 중인 홍성수의 인기 웹툰‘Peak’에는 지난해 구조대원의 검은색 바지에 코오롱 스포츠 로고뿐만 아니라 등산복과 등산화에 같은 회사의 디자인이 반영됐다. 해당 업체는 1년 간접광고비로 2000여 만원을 지불했다고 알려졌다. 윤태호의 ‘세티’에는 캐논 카메라 로고가 등장한다.
웹툰 인기가 높아지면서 작가 지망생도 급격히 늘었다. 박인하 교수가 지도하는 만화창작과에도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이 적지 않다. ‘전설의 주먹’의 그림작가 이윤균, ‘비흔’의 황영찬 등이 박 교수의 졸업생 제자다. 네이버에 ‘이런 영웅은 싫어’를 연재 중인 삼촌(필명)과 ‘미숙한 내 친구는 G구인’의 작가 최삡 (필명)은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재학생이다.
박 교수는 부와 명예가 집중되는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있다며 인기 웹툰 작가에게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예전 잡지 단행본 시절에는 최고 인기작가와 신인의 고료 차이가 3~4배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30배까지 벌어졌습니다.” 그에 따르면 양대 포털의 웹툰 신인작가가 주 1회 연재로 받는 고료는 월 120만~150만원 정도다.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적다.
“편집 시스템이 갖춰졌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작가가 모든 책임 져야 합니다. 고료도 10년 전보다 낮은데 편집까지 책임져야 하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허영만 화백은 최근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문하생 포함 직원 6명과 화실을 운영하는데 한 달에 3500만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포털 다음에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연재했을 때 다른 만화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았지만 월 1000만~2000만원 적자가 났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방송과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규제의 벽에 막힌 간접광고가 웹툰에 파고드는 것도 작가의 열악한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NHN은 콘텐트 창작자의 수익원을 다양화하기 위해 ‘PPS(Page Profit Share)’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콘텐트 유료판매, 광고모델, 파생 상품 등 3가지로 구성됐다.
4월 30일부터 작가 희망에 따라 20여 개 웹툰의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상당수 작품은 텍스트형 광고 노출이 적용됐다. 작가와 협의 하에 웹툰 내용과 상품 광고를 노출시킬 수 있다. 김준구 NHN 웹툰사업부장은 “연재되는 웹툰 작품의 무료 연재는 계속하되, 수익 창출을 위한 다양한 유료화 모델을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 창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모바일 문화 콘텐트 강자인 카카오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허영만 화백은 최근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식객2를 연재한다). 박 교수는 “카카오가 메신저에 이어 게임으로 크게 재미를 봤고 콘텐트 확장에 나서면 위협적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형 웹툰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해외 사이트도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지난해 5월 프랑스어권 최초의 웹툰 포털사이트 ‘델리툰(Delitoon.com)’에 이어 올 초에는 김창원 씨가 북미 최초 웹툰 포털 ‘타파스틱(tapastic.com)’을 열었다. 프랑스 최대 만화 전문 출판사 카스텔만의 편집장으로 델리툰 운영을 맡고 있는 디디에 보르그는 최근 프랑스 현지 기자회견에서 “델리툰이 한국의 웹툰 시스템을 모델로 삼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웹툰 작가의 해외 성공에 부정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 국내 웹툰 시장 성장의 구심점이 된 대형 포털이 서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세계 어디에도 주당 200편 가까운 만화를 전 회 무료제공하는 사이트는 없다”며 웹툰의 급성장에 양대 포털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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