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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쓰거나, 할인 티켓 쓰거나

덜 쓰거나, 할인 티켓 쓰거나

자산 증식보다 지키기 급급 … 지방은행·신용금고 ‘+α’에 관심 두기도



일본은 초저금리를 넘어 제로금리 사회다. 물가를 감안하면 마이너스 금리다. 돈을 맡겨도 이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양적 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 전략 추진의 ‘세 가지 화살’을 동시에 쏘겠다는 강력한 경기 부양 의지를 밝혔다.

최근 급등락을 거듭했지만 일본 증시가 올 들어 가파르게 올랐고 일본 기업의 이익도 급증했다. 그러나 일본 국채시장의 혼란 등 부작용도 나타나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확신하긴 어렵다. 유효기간이 길어야 1~2년인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의 장기 저금리 추세를 꺾기란 쉽지 않다.

‘저성장+고령화’는 저금리를 낳게 마련이다. 자연스런 수순이다. 일본처럼 유동성 함정에 빠지면 더더욱 그렇다. 초저금리는 일본 가계에 대형 악재이지만 이를 피하긴 어렵다. 무대책의 장수 위기에 노출된 현역 세대의 노후 빈곤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살아남으려면 곳간을 늘릴 수밖에 없다. 다만 방법이 마땅치 않다. 저금리 탓이다.

기대 수명이 길어지고(고령화) 불황이 깊어갈수록(저성장) 한숨 소리만 깊어진다. 청년 세대는 특히 불운하다. 종잣돈이 없는데다 투자 환경이 더욱 열악해져서다. 결국 무연(無緣)사회의 고독사(孤獨死) 예비군으로 전락할 처지의 열도 청년에게 자산관리는 필수불가결한 난제란 의미다. 이들의 냉엄한 현실은 ‘높아진 필요와 줄어든 희망’으로 정리된다.

원래부터 그렇진 않았다. 왕년에는 좋았다. 한때는 지나가는 개조차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대형 버블의 진원지가 일본이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급격한 엔고(달러당 360엔→80엔)의 부작용을 막으려고 금리를 내린 게 버블의 씨앗이 됐다. 5%에서 2%로 내린 통화팽창 유도정책이었다(1986년). 풀린 돈은 투자자산으로 몰렸고 이후 지가는 5배, 주가는 3배나 폭등했다.

놀란 정부는 금리 인상(2%→6%)을 결정했고 이후 자산 가격이 폭락했다(1991년). 버블 붕괴다. 상환 압박은 거세졌고 불량 채권은 쏟아졌다. 이때부터 금융 시스템은 마비됐고 일본 경제는 디플레 시대로 진입했다. 20년간 어떤 정책 카드도 먹히지 않았다. 예외는 있었지만 효과가 오래 나타나지 않았고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만 커졌다. ‘저축에서 투자로’의 범정부적인 슬로건마저 일본 가계의 마음을 얻진 못했다. 이에 따라 재테크 자체가 자취를 감췄다.

사실상 20년의 제로금리 환경에서 일본 가계는 자산을 불리기보단 지키기에 급급했다. 안전 지향성이다. 지난해 말 현재 일본 가계의 금융자산은 1547조엔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408조엔으로 줄었지만 최근 급격히 회복됐다. 이 중 55.2%가 현금과 예금(854조엔)에 집중됐다. 이 비중은 중장기적으로 변화가 거의 없다. 불확실성에 적응한 결과다. 보험·연금(429조엔)까지 더하면 전체 자산의 82.9%가 안전자산이다. 금융상품의 선택 기준도 1순위는 안전성(44.9%)이다(금융광보중앙위, 2009년).

국제 비교에선 보수성향이 더 도드라진다. 일본 가계의 현금·예금 보유 비중은 56%이지만 미국(15%)과 유로존(35%)은 일부에 불과하다(2011년). 주식·채권·펀드 등 이른바 위험자산 비중은 일본이 10%로 미국(53%)·유로존(31%)보다 낮다. 극단적인 안정지향성이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을 낳는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절망적인 투자 환경 탓에 빚어진 일이다. 투자 활동의 잣대인 시중금리가 제로 상태이니 ‘+α’는 기대하기 어렵다. 기준금리는 0~0.1%로 떨어졌다. 결국 예·적금은 운용 범주에서 벗어났다. 불리려면 고위험·고수익의 위험자산뿐이다. 주식·펀드를 활용해야 한다. 문제는 일본 가계의 안정지향적 투자 성향이다. 일본 가계의 선호 자산은 안전성이 최우선이다.

증권·운용사가 저금리에도 은행·우체국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는 근본 이유다. 그만큼 기대수익이 낮다. 기대수익 3~4%대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소개한 잡지 편집이 일상적일 정도다. 해외 주식·채권을 비롯한 외환거래 등 위험자산에 관심이 없진 않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수익 늘리길 포기한 대신 지출도 줄였다. 웬만해선 ‘+α’가 힘든데다(자산소득) 일자리조차 악화됐다(근로소득)는 점에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것이다. 유니클로의 저가 공세나 500엔 동전한 닢으로 민생고를 해결하는 ‘원 코인(One Coin) 마케팅’이 활발한 배경이다. 킨켄 등 할인 티켓, 적립카드, 우대권 등으로 생활비를 아끼려는 가계도 많다. 적게는 2~3%에서 많게는 최대 10%의 ‘+α’가 기대되니 인기가 높다.





절약 심화: 덜 써야 더 모은다=저성장·저금리라고 손 놓고 있기엔 답답하다. 길거리를 압도한 저성장 공포가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최고의 장수국가답게 고령사회의 불협화음은 놀라울 따름이다. 인간성을 포기한 채 최소한의 생을 상실·거부당한 장수사회 탈락 인생이 수두룩하다. 이는 반대로 서둘러 대안을 찾자는 자발적 학습효과를 심화시킨다. 눈에 띄는 첫 번째 결과는 ‘허리띠 졸라매기’다. 한 푼이라도 아껴 불확실한 노후를 위해 쟁여두자는 차원이다. 이 결과 저가(低價)는 소비시장의 만능 열쇠다.

폭탄 세일에 비유되는 ‘게키야스’는 상식이다. 어정쩡한 가격으론 지갑 공략이 불가능하다. 최근엔 500엔 동전 한 닢으로 일상 생활의 민생고를 해결한다는 ‘원코인(One Coin) 마케팅’까지 등장했다. 식당·술집은 물론 레슨·마사지·법률상담 등도 500엔 한 닢이면 거뜬히 해결되는 추세다. 절약 피로 탓에 ‘작은 사치’로 돌아선 수요도 있지만 대세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다.



생활 틈새: 할인 티켓으로 재테크=절약은 또 다른 재테크다. 적극적인 자산 증식까진 아닐지언정 결과적으로 적잖은 ‘+α’를 얻는 소비생활이다. 이왕 쓸 소비항목이면 저비용·고효율로 지출하자는 차원이다. 대표적인 게 ‘킨켄’이다. 할인 티켓·상품권 정도로 해석되는데 화폐에 준해 유통되는 유가증권이다.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사 액면대로 쓰는 형태다.

‘싸게 사는 법’의 최고 경지답게 주부·샐러리맨 등에게 필수품으로 정착됐다. 종류는 많다. 백화점·슈퍼마켓 상품권과 여행·음료·도서·문구·휴대폰·엽서 등을 비롯해 영화·교통(회수권)·공연티켓 등 일일이 셀 수조차 없다. 잘만 쓰면 10% 이상 남는 장사다.

‘토모노카이’도 인기다.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적립해주는 ‘+α’의 부가서비스다. 현금·계좌이체로 ‘토모노카이’에 가입하면 특정 기간 만료 이후 원금에 보너스를 더한 상품권을 준다. 가령 연 12만엔을 쌓으면 1만엔을 덤으로 얹어주는 식이다. 연 이율 8.3%에 해당하는 고금리다. 금융상품은 아니지만 결과는 짜릿한 +‘ α’다.



현지 예금: 절실한 ‘+α’ 찾기=예·적금 가입은 신중하다. 한 푼이라도 건지려는 ‘+α’에 사활을 건다. 전통적인 증식 기능이 사라져서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의 5월 27일 기준 이자 수준은 보통예금(0.02%)은 물론 수퍼정기예금(0.025%·1년)조차 무이자나 마찬가지다. 300만엔 이상 10년을 맡겨야 0.12%다. 2만여 지점망의 우체국(유초)도 통상저금(0.03%)·정액저금(0.035%) 모두 민간 은행보단 좀 높지만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제로금리를 이겨낼 묘안이 모색되는 이유다.

관심권은 지방은행 정기예금이다. ‘현지 예금’으로 불리는데 고금리를 내세워 인기가 높다. 현지 예금은 금리 자체가 다르다. 대략 0.5%대로 대형 은행의 20배다. 0.5%라면 한국에선 새 발의 피지만 제로금리에선 상당한 고금리다. 현지 예금은 대부분 지방은행·신용금고의 인터넷 지점에서 제공한다.

비용 절감분을 되돌려주는 구조다. 일부는 복권 증정, 기프트카드 제공, 마일리지 누적 등 부가 혜택에 지역 특산물도 선물해 눈길을 끈다. 입출금 제한과 수수료 부과, 복잡한 계좌 개설 등 장벽이 있음에도 입소문을 타고 연일 확대되고 있다.



무인 전용: 인터넷 전업 은행 전성시대=은행권에서 ‘+α’를 노리려는 손바꿈이 비교적 활발하다. 틈새 상품의 주도권은 인터넷 뱅킹이 쥐고 있다. 최근 인터넷뱅킹 수요가 늘었다. 인터넷 전업은행(7개사)의 계좌 합계가 1000만개를 돌파했다. 상대적 고금리와 다양한 기간 설정 등으로 가계 자금을 흡수 중이다. 이자수준은 비교적 높다.

정기예금(0.2~0.34%·1년)은 물론 보통예금(0.02~0.05%)도 금리가 높다. 소니은행의 경우 최대 0.32%의 ‘고금리’를 제시했다. 예금상품은 아니지만 기본 구조가 비슷한 만기 1년 SBI채권(SBI증권)은 1.6%로 시선을 모았다. 각종 수수료가 무료도 많아 인기가 높다. 역시 비용 절감분을 돌려주거나 부가혜택을 얹은 경우다.



외환 거래: 와타나베 부인 활약=‘불리기’보단 ‘줄이기’나 틈새상품의 ‘+α’ 찾기는 결정적으로 손에 쥐는 덤과 비교할 때 기대효과가 낮다는 게 한계다. 그래서 아예 고위험 고수익의 위험자산에 베팅하는 가계도 생겨났다. 공격적 성향의 가계는 위험자산에 과감히 투자한다.

외환거래(FX)가 대표적이다. 안전자산 짝사랑의 국민 성향과 배치되는 현상이다. 외환 거래는 대표적 위험자산이다.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 모델이다. 안전 지향적인 일본 가계가 위험자산에 관심을 갖는 건 그만큼 수익을 갈망해서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매도한 뒤 고금리 통화를 사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일본 FX거래의 30% 안팎이 개인투자자다. 이 중 대부분은 30·40세대의 여성 투자자로 알려졌다.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이다. 언론에선 성공 사례를 끊임없이 소개한다. 여름·겨울 상여시즌이면 FX가 필수 자산으로 추천된다. 다만 손실 사례가 늘면서 경계론도 적지 않다. 한탕을 노리는 부작용은 고질적이다. 금융 당국이 증거금 규모 제한 등 규제 강화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주식·펀드: 아베노믹스의 수혜=역시 위험자산인 주식·펀드는 장기 침체를 겪었다. 아베노믹스 덕에 올 들어 급등하며 닛케이지수가 1만5000선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점(3만8916엔) 대비로는 반 토막 났다.

다만 최근의 주식 매입과 펀드 가입 열기를 감안할 때 꽤 짭짤한 투자자산으로 명예회복을 시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장기 추세로는 이탈 우려가 여전하다. 틈새를 공략 중인 건 펀드다. 위험하지만 분산효과도 한 몫 했다. 실제 위험자산 중 꾸준한 자금 유입이 목격된다. 4년 전 47조엔이던 보유비중이 지난해 말 61조엔으로 늘었다.

특히 매월 분배금 지급 펀드가 돋보인다. 주식형 펀드의 70~80%를 차지하며 인기가 높다. 매월 용돈처럼 안정적인 분배금을 원하는 고령 세대가 핵심 고객이다. 인기 확산에 힘입어 지금은 청장년층에서도 가입 수요가 증가세다. 인기 펀드는 몇 가지로 압축된다.

통화선택형 펀드와 리츠(REITs, 부동산투자신탁), 엔화 채권펀드 등이다. 통화선택형은 외국 채권 등에 투자돼 통화 간 금리 차이와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브라질 등 자원부국 통화가 관심 대상이다. 리츠에 대한 관심도 크다. 평균 배당금(5.21%)이 10년 국채(0.95%)보다 월등히 높다.



채권: 개인 판매 관심 증가=그렇다면 안전지향성의 대표 선수인 채권은 어떨까. 정부 채권의 절대 다수를 가계예금 수탁기관이 사들이니 채권 인기는 불문가지다. 다만 직접적인 채권 투자는 일부에 그친다. 특히 가계의 국채·재융채 보유 비중은 36조엔(2008년)에서 32조엔(2012년)으로 줄었다. 물론 개별 단위의 해외 채권 직접 투자는 증가세다. 관심을 끄는 채권 자산은 개인 대상 판매 국채다. 일본 정부가 재 확보 차원에서 라인업을 강화하는 등 투자 환경을 우호적으로 바꾼 게 주효했다.

원래 개인 대상 국채는 최소 5년에 제공 금리도 시중금리보다 크게 높지 않아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인터넷 정기상품보다 약간 낮은 금리(0.12%·1년)의 3년짜리를 매월 발행해 유동자금 피난처로 매력도를 높였다. 만기 3·5·10년의 3종류에 1만엔부터 투자할 수 있다. 덕분에 국채 상환액을 포함한 상당 자금은 국채에 재투자돼 일본 부도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다만 최근 국채금리의변동성 심화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부동산: 침체가 대세=일본 부동산은 운용자산으로서 매력을 거의 상실했다. 대신 거주공간으로서 기능성이 강조된다. 젊은 세대일수록 자가(自家) 보유 욕구가 적다. 집을 사는 이유는 시세차익보단 저금리, 저가 메리트, 세제 혜택 등이다. 은퇴 세대의 고령자에게도 집은 골칫덩이다. 단독 주택이 태반으로 노후화되면서 지가만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매매도 없지만 가격 자체가 헐값이다. 상속해줘도 안 받겠다는 경우까지 있다. 유동화를 위한 역모기지 등이 시도될 뿐이다.

물론 여기에도 틈새는 있다. 도심 역세권에 위치한 맨션(아파트) 등의 매수 수요는 증가세다. 내진 설계, 역세권 여부 등이 중시되면서 직주(職住) 환경에 대한 갈망이 커진 결과다. 최근의 일부 물건은 내놓자마자 팔리기도 한다. 세제 보조와 인구 유입, 물량 감소 등이 엇물린 덕분이다. 복수 물건을 매입해 월세 수입을 거두려는 투자 사례도 자주 소개된다.



세 가지 화살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핵심 요소인 양적 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 전략 추진을 말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해 12월 취임하면서 옛날 일본 무사가 아들들에게 화살 한 개를 부러뜨리긴 쉽지만 세 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기는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며 힘을 합쳐 가문을 세우라고 한 일화를 언급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1990년 이후 20여년 동안 시차를 두고 따로 실시한 양적 완화, 재정지출, 성장 전략 등의 정책을 시차를 최소화해 밀고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아베는 6월에 세 번째 화살인 성장 전략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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