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ial Report - 교육·투자·세금···해외로 해외로
Spcial Report - 교육·투자·세금···해외로 해외로
“일본 부자는 수수하다. 시샘이 많은 사회라 눈에 띄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일본 부자를 상대로 세무 컨설팅을 해온 오쿠무라 싱고 세무사의 말이다. 그런데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일본 부자가 달라졌다. 미야모토 히로유키 노무라종합연구소 컨설턴트는 “엔화가치 하락과 주가 상승으로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었다”며 “자산 5억엔 넘는 고소득 계층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부유층의 구조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이다. 일본의 새로운 부유층은 어떤 이들이고 어떻게 돈을 쓸까.
새로운 일본 부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보석도 와인도 주식도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를 계승할 자녀 세대의 교육’이라고 얘기한다. 고급 주택가에 사는 이이즈카 가문의 가장 이이즈카 케이스케는 도쿄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일본 적십자사 의료센터 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간암 유전자 의료 전문병원인 ‘아이클리닉’의 원장이다.
그의 아내 키요코는 중동 대상 의료사업 컨설팅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경영자다. 이 부부는 자녀 교육에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장녀 미도리(31)는 14살 때부터 캐나다의 명문 보딩스쿨(기숙제 중등교육기관)에 다녔다. 고교 시절 중국의 장래성을 보고 베이징대 의학부에 진학했다. 중국 유학 시절 중동인과 교류하면서 중동 의료 컨설팅 사업 기회를 포착해 2007년 오케스트라를 설립했다.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에 동업자가 있어 중동에 진출했다.
장남 소스케(30)도 의사다. 차남은 대형 금융사에서 일한다. 세 자녀 모두 유학 경험이 있다. 키요코는 “지금이야 유학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딸이 중학생이었던 1990년대에는 도쿄대에 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때였다”며 “세계화가 급격히 진전될 것이라고 생각해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해외 학교로 진학시켰다”고 말했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자녀를 일찍부터 해외로 보내는 일본 부자가 늘었다. 그러면서 유학지 선택이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한 부유층 인사는 “조금만 노력하면 중산층 가정도 자녀를 유학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수준을 장담할 수 없는 유학지가 늘었다”며 “8살, 6살 두 아이가 유학할 곳을 신중하게 고르려 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주변 지인들의 입소문이 그나마 믿을 만한 정보”라고 귀띔했다. 최근 일본 부자들이 주목하는 곳은 예전부터 상류층 자녀만 받은 스위스의 전통 보딩스쿨이다. 스위스 유학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도쿄 치요다구의 ‘스위스 러닝’ 일본 사무국이다. 2008년 도쿄 주재 스위스 대사관에 설립된 이래 유학 희망자 설명회나 비자 수속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해 준다. 이곳의 이이누마 유키코 유학 어드바이저는 “이미 행선지를 정해놓고 구체적인 수속 절차를 밟기 위해 오는 가족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진짜 부자들이 스위스 보딩스쿨을 선택하는 이유는 보통 부자들이 선택하는 영·미 국제학교와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다국적화를 도모한다는 점이다. 스위스 보딩스쿨은 대부분 소수 정예시스템이다. 같은 국적의 학생 비율이 10%를 넘지 않도록 제한한다.
영·미 국제학교에서는 자국 학생이 절반을 넘는 학교가 많다. 스위스 제네바의 에이글롱 칼리지의 경우 전체 학생은 350명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의 국적은 52개국에 걸쳐있다. 이이누마 어드바이저는 “영·미의 국제학교에서는 일본인이 소수의 입장으로 그 나라 학생들 사이에 섞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위스는 전원이 유학생으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국제성과 다양성이 스위스 보딩스쿨의 매력입니다. 최근 일본의 젊은 부자들이 중시하는 점이기도 하고요.”
스위스는 어학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스위스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로망슈어 4개 국어를 공용어로 쓴다. 영어말고도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 있다. 이이누마 어드바이저는 “중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많지만 상류 계층에서는 교양이나 관습이 중요한 요소”라며 “와인 지식이나 유럽의 전통을 알기 위해서는 프랑스어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스위스의 생활환경도 부자들의 눈에는 영·미보다 좋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상류층이 모이는 명문 학교라도 소박한 생활을 선호한다. 2인실이나 좁은 2층 침대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스위스 학교는 호수나 산에 둘러 쌓인 환경에 넓은 1인실의 기숙사를 갖춘 곳이 대부분이다. 스키나 등산 등의 레저 활동은 물론 무도회까지 열려 상류사회 생활 관습을 익힐 수 있다. 수업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러 가는 등의 국제적인 과외 활동도 많다.
다양한 국적 학생 모이는 스위스오사카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스기모토(가명) 부부는 중학생 두 아들을 스위스 보딩스쿨에 보냈다. 딸도 곧 보낼 계획이다. 주변 친구들도 자녀를 스위스로 보내는 일이 많아 자주 만나 정보를 교환한다. 아들이 다니는 스위스 학교도 남편의 친구가 졸업하고 소개한 곳이다. 스기모토는 “스위스의 유명 학교는 인기가 많아 아무나 입학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우수한 졸업생의 추천이 있으면 가능하다”며 “친구 추천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학교 입장에서는 졸업생 추천으로 입학 지원학생 가정의 교우 관계와 생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학비를 도중에 지불할 수 없게 되는 위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자녀의 스위스 유학에 드는 비용은 학년에 관계없이 1인당 연간 1000만엔 정도다. 워낙 비싸다 보니 실제로 도중에 학비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스위스 유학 비용은 영·미의 약 2배가 든다. 체류 허가를 받기 위해 풍족한 자산을 증명할 필요도 있어 웬만한 부자라도 진입 장벽이 높다. 그러나 스기모토는 “그렇기 때문에 보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의 조건을 충족시킨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교제도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학이 쉬워지면서 부자들은 이전보다 자녀의 교육환경이나 만나는 사람의 질을 따져 유학처를 선별하기 시작했다. 유학 비용이 올라가도 진정한 상류층과 교제할 수 있다면 결코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해 세제 개혁으로 자손에 대한 교육 자금 증여가 1500만엔까지 비과세되는 사례도 있어 스위스 유학은 더욱 주목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부자의 투자처도 달라졌다. 일본의 고소득층은 자산 규모에 운용 방법이나 투자 대상이 다르다. 금융 자산이 1억~30억엔인 사람은 ‘부유층’이다. 이들은 프라이빗뱅커(PB)을 통해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와 같은 대체투자 상품(주식·채권 등 전통 투자 상품 이외의 신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PB 서비스는 외국계 은행의 일본 법인에서 운영하는 곳이 많다.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 계약부터 증권 상품 등 일본계 금융사에서는 다루지 않는 상품도 취급한다. 그러나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PB와 비교하면 일본의 상품군은 변변치 않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PB는 수천 가지 대체투자 상품을 갖고 있지만 일본은 약 100개에 불과하다. 일본의 금융 규제가 엄격한 데다가 PB를 이용하는 부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초부유층 싱가포르 고급주택 선호일본의 부유층 중에는 금융상품을 통한 자산운용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사업으로 성공해 부유층이 된 사람은 자산운용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일만 열심히 한다는 의식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사업가라도 사업 이외의 수단으로 자산을 늘릴 수단을 갖고 싶다는 부유층이 늘었다. 실제로 20~30대 젊은 부유층 사이에서는 해외에서 자산운용을 시작하거나 해외로 이주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인기가 많은 곳은 싱가포르다. 금융 규제가 일본처럼 심하지 않아서다. 부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의 미국·유럽계 글로벌 유력 은행의 PB 서비스의 경쟁이 치열하다. 금융뿐 아니라 좋은 주거 환경도 부유층이 싱가포르를 선호하는 이유다. 교육 환경도 매력적이다. 다수의 국제 학교가 있고 설비나 수업내용이 충실하다. 대부분의 국제학교에서 영어는 물론 중국어 수업이 유년기 학급부터 포함된다.
싱가포르에 이주한 부유층은 최대 쇼핑가 오차드 근처의 고급 콘도미니엄에 산다. 가정부 방이나 스포츠센터, 수영장 등을 구비한 건물이 많다. 쇼핑이나 운동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어 부유층에게 인기가 좋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오를 대로 올랐다. 오차드 중심부의 건물의 시세는 1㎡ 당 500만엔에 달하기도 한다. 부유층이라도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가격이 됐다.
이런 물건에도 손을 뻗는 것이 자산 30억엔 이상의 ‘초부유층’이다. 초부유층은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의 부유층이 받는 PB 서비스는 금융사의 상품 판매 수수료가 걸려있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 제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패밀리오피스는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에 항상 고객 입장에서의 제안을 내놓는다.
초부유층의 투자대상은 부유층보다 다양하다. 최고 수준의 운용 실적을 남긴 펀드 중에는 10억엔 단위로만 투자 가능한 곳도 많다. 자산 규모 1억~30억엔의 부유층은 이런 펀드 투자가 어렵지만 30억엔 이상의 초부유층은 가능하다. 초부유층은 세계 주요 도시의 최고급 부동산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런던·뉴욕·모나코·스위스 등지가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홍콩·싱가포르·두바이 등지도 인기다. 세계 주요 도시 곳곳에 부동산을 보유하면서 자신의 비즈니스나 가족의 생활에 맞춰 거주지를 바꾸는 사람도 있다.
부유층에게는 부담스러운 싱가포르의 부동산도 초부유층에게는 그다지 비싼 게 아니다. 런던·뉴욕·모나코·홍콩에는 1㎡당 1000만엔에 달하는 물건도 나온다. 초부유층은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단독주택도 선호한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싱가포르에도 초부유층에게 인기 있는 고급 단독주택이 있다. 약 1000㎡ 단독주택의 가격은 대략 20억엔(약 238억원)이다. 근방에서 가장 좁은 주택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의 최고급 주택은 ‘블랙&화이트’나 ‘콜로니얼’이라고 불리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축 양식 건물이 많다. 역사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규제로 주택 소유자가 주택외관을 마음대로 변경하지 못한다. 유지·보수에도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최근 콜로니얼 양식의 2만㎡ 대저택이 약 250억엔(약 3000억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유지 비용을 포함해 초부유층 이상만 살 수 있는 건물이다.
자녀 교육 목적으로 최고급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싱가포르의 최고 공립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서다. 싱가포르로 이주한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도 자녀를 싱가포르의 명문 공립학교에 보낸다. 외국인이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는 데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 부모가 자원봉사를 하거나 기부를 해야 하며 학교 근처 1km 이내에 거주하는 것이다.
초부유층은 부동산을 세계 각지에 나눠 보유할 뿐 아니라 자녀 교육에서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중시한다. 이런 움직임에 맞춰 이 지역 명문 학교들도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가 자녀를 보내면서 유명해진 뉴욕의 사립학교 ‘애비뉴 스쿨’은 두 번째 캠퍼스를 베이징에 열 계획이다. 이후 싱가포르, 인도 뭄바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등지에 개교해 각 학교 간 교환 유학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사업이나 자산운용은 물론 자녀 교육까지 초부유층 사이에서는 세계화에 최적화한 거점 선택이 대세가 됐다.
초부유층의 자산 규모를 넘어서는 ‘대부호’는 어떤 투자를 할까? 초부유층이 구입하는 최고급 콘도미니엄 개발 자금은 대부호의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런던의 ‘원 하이드 파크’는 카타르 왕실이, 뉴욕의 ‘원57’은 아부다비의 왕실이 돈을 댔다.
이렇게 개발된 초대형 부동산은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대부호는 최고급 부동산 개발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견고한 자산운용을 하는 것이다. 대규모 부동산 투자에 대한 고급 정보는 대부호에게 쉽게 흘러 들어간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부자가 되는 구조로 부자들 세계는 움직이는 듯하다.
과세 강화에 해외로 이주하기도일본의 부자도 세금 문제에 민감하다. 자민당·공민당의 올해 세제 개정안에는 ‘고소득층을 상대로 일정한 세금 부담 증가를 요구하겠다’는 표현이 포함됐다. 부자들에 대한 과세 강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이후 3월 29일 발표된 올해 세제 개정에서 소득세 최고 세율 개정(과세 소득 4000만엔 초과에 대해 45%의 세율 신설), 상속세의 세율 구조와 기초 공제 개정(과세 소득 6억엔 초과 때 55%의 세율, 상속세가 발생하지 않는 기초 공제액 40% 축소) 등이 결정됐다. 부자들의 자산 현황을 조사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졌다.
특히 올해부터 시작하는 국외자산조서 제도에 부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졌다. 5000만엔이 넘는 국외 자산을 올해 말 시점에서 소유하는 일본 거주자는 내년 3월까지 그 재산의 종류·수량·가격 등을 기재한 국외재산조서를 제출해야 한다. 고의로 조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허위 기재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과세 강화에 일본 부자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일본보다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에 법인을 설립해 관리하는 방법이 있다. 이 자산에서 발생한 이익은 저세율 국가에 신고하기 때문에 세금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개인 자산을 해외 법인이 갖고 있어 국외자산조서의 보고 의무가 없어진다는 이점도 있다. 국외자산조서제도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제도로 법인에게는 의무가 없다.
하지만 일본에는 ‘조세피난처 과세 제도’가 있다. 일본 거주자가 세금 부담률 20% 이하의 저세율 국가에 법인을 설립(출자)하면 그 법인의 소득을 개인 소득으로 간주해 일본에서 과세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피해 법인을 설립할 수 있는 국가로는 세금 부담률이 20%를 조금 넘는 미크로네시아 등이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직접 해외로 이주해 일본의 과세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서류상의 일본 비거주자가 돼서 소득세뿐 아니라 상속·증여세까지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비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소가 해외에 있어야 한다. 과거 판례를 참고하면 거주 상황·체류 일수·직업·자산·가족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거주자인지 아닌지 결정한다.
종합적인 시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레이존(합법인지 위법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탈법 행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에는 체류 일수가 183일 이상인지 따지는 ‘183일 규정’이 있지만 일본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세무조사에서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부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커진 절세방법 중 하나는 태양광발전 사업 투자다. 고정가격 매수 제도로 일정 수익이 나오는 데다,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그린투자감세’ 적용을 받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퇴직금에 따른 원천소득세를 전액 환급 받을 수도 있다. 부자들에 대한 과세는 계속 강화되는 추세다. 앞으로도 부자와 조세 당국의 숨바꼭질이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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