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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가 뉘 집 개 이름인가

증세가 뉘 집 개 이름인가



요즘 세금이 잘 안 걷혀 걱정이라고 한다. 국세청이 여기저기서 고강도 세무조사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정치권에선 이미 올해 세수 차질액이 2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지금처럼 징세권력에 의존하는 건 한계가 있다. 국세청이 한 해 세무조사로 걷어들이는 세수는 전체의 약 3%(5조~6조원)다. 올해 세무조사를 더 세게 하더라도 추가로 걷을 수 있는 돈은 2조원쯤이라고 한다.

그 정도 더 걷느라 치러야 할 비용은 결코 작지 않다. 무엇보다 세무조사에 대한 기업의 반발이 크다.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를 축소하면 근로자들도 열 받는다.

쓸 곳은 많다. 지난해 대선 때 뭉칫돈 들어가는 공약을 많이 내 놓았다. 돈은 많이 필요한데, 세금이 안 걷히면 어떻게 하나.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씀씀이를 줄이거나, 증세를 하거나,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지출 축소는 공약 폐기나 유보를 의미하므로 정치적 부담이 크다. 증세는 가뜩이나 나쁜 경기를 더 악화시킨다. 국채 발행은 재정건전성을 해친다. 어느 게 그나마 감당하기에 덜 힘드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의 ‘대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고나 할까.

문제는 정치권이다. 여당은 공약의 차질 없는 이행을, 야당은 재정건전성을 각기 주장한다. 둘 다 양보할 태세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증세가 등 떠밀리듯 부상하는 형세가 됐다. 특히 적자 국채 발행에 반대하는 야권이 상대적으로 증세에 우호적이다.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세수가 모자라니 세율을 높이자는 식의 증세는 위험한 발상이다. 국제적으론 법인세율을 낮추는 나라가 많다. 영국은 23%인 법인세율을 2015년 4월 20%로 낮추기로 했다. 아일랜드·네덜란드·벨기에도 적극적인 조세 감면에 나섰다.

소비세율 인상을 앞둔 일본에서도 35.64%인 법인세율을 25%로 낮추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들은 돈 쓸 데가 없어서 세율을 낮추나? 그렇지 않다. 세율이 낮은 곳으로 기업과 투자 자금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기업의 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해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게 법인세율 인하의 취지다. 지금과 같은 침체 국면에 증세를 하면 미래의 세수 기반이 허물어질 위험이 크다. 일본이 1997년 4월 소비세율을 높인 뒤 이듬해부터 장기 디플레가 시작됐다.

세율을 낮춘다고 세수가 감소하는 건 아니다. 성장 곡선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세원(稅源)을 확대하면 세수는 되레 는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법인세 감면에도 2012회계연도 세수가 전년보다 1조9000억엔 증가했다. 특히 법인세가 4100억엔 늘어 세수 증가세를 이끌었다. 아베노믹스 효과로 경기가 살아난 덕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설익은 증세론이 고개를 든다. 심각한 불황이라고 판단되면 국민을 설득해 공약 이행을 늦추거나, 재정건전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경기를 먼저 살리는 게 순서다. 경기가 살아나면 재정은 저절로 좋아진다. 그 뒤 공약을 충실히 이행해도 된다. 공약과 재정은 신앙이고, 증세는 뉘 집 개 이름인가. 지금이야말로 유연한 정책 스탠스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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