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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MEDIA - 소셜 미디어의 긴 그림자

SOCIAL MEDIA - 소셜 미디어의 긴 그림자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겪는 정체성 혼란을 부추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SNS를 더 많이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악성광고와 사이버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인터넷망 구축이 가장 잘 돼 있는 나라다. 스마트폰 사용을 포함한 한국 가정의 인터넷 사용률은 60%를 넘는다. 한국의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문자를 보내고, 게임을 하고, 뭔가를 검색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인 대부분은 이런 추세를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정말 바람직한 현상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아이들로 하여금 재미와 편리함만을 쫓는 성향을 절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해한다. TV보기, 게임하기, 백화점에서 쇼핑하기 등. 그럼에도 10대들(그리고 많은 성인들)은 자나깨나 휴대전화를 곁에 끼고 산다.

휴대전화, 소셜 미디어와 같은 기술적 편의에 의존하게 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에도 한국에서는 거의 아무런 논의도 벌어지지 않는다. 기술의존성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과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감을 기록한 데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논하기에 앞서, 먼저 ‘행복’이나 ‘자살’ 같은 주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자살과 행복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잘못된 논리에 근거를 둔다. 언론은 사실 상관관계에 있는 사항을 인과관계로 잘못 판단하지만, 잇달아 일어난다고 해서 그 사건들이 항상 인과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 널리 알려진 ‘선풍기 괴담’이 바로 그렇다. 더운 여름날 저녁 어떤 사람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가 다음날 아침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이는 ‘선풍기때문에 죽었다’는 잘못된 정보로 이어졌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선풍기로 인해 수면 중

에 사망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때 선풍기를 조심하라는 경고는 아직도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TV 뉴스에서 소개된다.

그런 미신이 뉴스를 보다 더 흥미롭고 자극적으로 만들기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뉴스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TV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불행이나 자살처럼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도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된다.

물론 이런 왜곡이 한국에서만 일어나진 않는다. 최근 미국과 영국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젊은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간다고 비난하는 추세가 일고 있다. 8월 2일 자살한 영국 10대 소녀 한나 스미스가 사이버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터넷, 특히 소셜미디어를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었다.

아이들은 사이버공간에서 현실과 가상의 괴리를 겪기 쉽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자살 소식도 한국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수많은 연예인, 정치인, 사업가,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 바 있다. 저런 유명인사들은 평범한 한국들이 보기엔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사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사회 전반에 퍼져가는 심각한 집단병리 현상의 피해자로 전락했다.

중·고등학생들의 자살도 그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하다. 노령 인구의 자살 건수는 10년 전에 비해 400%나 증가했다. 자살은 40세 이하 인구의 첫째가는 사망 원인이고 그 비율이 미국의 거의 세 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어떤 경고 메시지를 준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휴대전화나 소셜 미디어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비록 사이버 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결국 자살을 선택한 것은 비극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원인을 소셜 미디어에서 찾는 것은 잘못이다.

자살의 원인을 흔히 거론되는 직장 스트레스, 학업에 따른 부담, 재정적 어려움에서만 찾으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우리가 ‘현대사회’라 부르는 사회적, 기술적 집단의 일부로 짜여진 개인과 그 근저에 놓인 문제들을 도외시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의 원인으로 소셜 미디어, 첨단기술, 그밖의 외부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건 마치 어떤 사람이 섭식 장애를 겪고 있을 때 그 원인을 음식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다. 괴로움을 겪고 있는 개개인도 물론 비판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피해자다. 다른 요소를 탓하기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스스로가 자세히 살펴보고 부끄러워 하는 일 없이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자살의 경우, 모든 자살 피해자의 90%는 미확진 정신질환을 앓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질환이 바로 우울증이다.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를 자살이 증가하고 행복이 감소하는 추세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지만 그런 기술은 ‘원인의 고리’ 한 부분에 속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총기규제 논란과 비슷하다. “사람을 죽이는 건 총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은 유명한 문구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총은 그런 사람을 돕는다. 사람들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SNS를 더 많이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더 많은 악성광고와 사이버 폭력에 노출된다. 실제처럼 보이려고 가공되고 왜곡된 사진이나 선정적인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다.

젊은이들이나 유명인사처럼 자아상에 깊이 사로잡힌 사람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서로를 비교하고 비난하며 자괴감에 빠지고 그로 인해 실망과 좌절, 수치심을 느낀다. 사람들은 보다 더 멋지고 이상적인 자신을 원하지만 항상 그에 못 미치는 ‘현실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하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다. 사실처럼 꾸며진 가상 현실로 인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한층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한 개인의 정체성이 가상세계 내에 구축되면서 현실세계에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한 교육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는 아이돌 또는 연예인이다. 그 문항이 ‘훌륭한 음악가나 배우되기’가 아니었던 점을 보면 온라인으로 전파된 왜곡된 이미지의 강력한 힘을 알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최근 다른 설문조사를 보면 20대 여성 98%가 수술의 공포와 비용만 감당할 수 있다면 성형수술을 받겠다고 응답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모보다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여성은 없었다.

오늘날 한국인은 ‘사이버 폭력’에 집중하지만, 진짜 문제는 정서적 학대다. 그리고 그런 학대는 폭력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TV, 언론, 광고, 심지어 온라인 친구에 의해 일어나는 온라인 가상세계의 현실 왜곡에서 비롯된다. 한국인들이 중시해 온 성실, 절제, 겸손, 체면 같은 가치들은 한국의 발전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거기에는 비용도 따랐다.

한 개인을 공동체의 유행에서 분리시키거나 개인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화가 생겼다. 상류층이나 부유층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리고 전통적 가치가 현대적으로 발현된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한국인들은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심지어 부족한 것 없이 사는 듯한 사람들조차도 그렇다.

결국 한국에 사는 개개인은 각자가 얼마나 많이 인터넷을 이용할 것인지, 그리고 인터넷이 얼마나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할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술, 쇼핑, 게임 등 잠재적으로 중독 가능성이 있는 다른 것들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다. 우울증 같은 자살 징후를 인지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2008년 배우 최진실 씨가 자살한 뒤 세 달 동안 자살률은 70%가 증가했다.

원인이 뭐든 간에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와 소셜 미디어로 인해 중독과 우울 등 많은 문제를 겪는다. 어떤 경우에는 강박적인 행동과 혼란스러운 인간관계, 불안정한 정서를 보이는 경계선 성격장애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정체성이 확고하지 못해 흥미나 가치관,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를 빠르게 바꿔나간다.

공허함과 지루함을 느끼고 혼자 있기를 꺼리며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는 등의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은 기술을 잠시 멀리하고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소셜 미디어에 수많은 ‘친구’가 있다고 한들 그들이 정말로 친구일까? 기술을 건강하고 바람직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부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에 퍼져나가는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추세를 역전시킬 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 필자 크리스 라슨은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과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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