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은 색깔 없고 체제 순응적이며 파리 여성 같은 뜨거운 에로티시즘이 부족하다. 프랑스에 나가 살던 미국인 소설가 헨리 밀러가 1934년 뉴욕으로 돌아온 직후 그렇게 개탄했다.
뉴욕 연극 무대의 배우들을 “불과 1온스의 개성을 가진 불쌍하고 깡마르고 꼴불견의 프랑스 여성”으로 대체한다면 “큰 호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가 투덜댔다. “그녀는 미국인들이 항상 거론하면서도 성취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지닌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있지만 미국에는 ‘그것’이 없다.”
혼자 사는 기술 소피 퐁타넬 지음8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고정관념이 여전히 남아 있다. 프랑스 여성이 모든 면에서 미국 여성보다 얼마나 우수한지를 설파하는 내용의 책들이 숱하게 깔려 있다.
데브라 올리비어의 ‘내 안의 프랑스 여성을 찾는 법(Entre Nous: A Woman’s Guide to Finding Her Inner French Girl)’, 실용적인 육아법을 다룬 파멜라 드러커먼의 ‘프랑스 아이처럼(Bringing Up Bébé)’, 미레유 줄리아노의 ‘왜 프랑스 여성은 살 찌지 않는가(Why French Women Don’t Get Fat)’, 제이미 캣 캘런의 ‘왜 프랑스 여성은 혼자 자지 않는가(Why French Women Don’t Sleep Alone)’ 등.
그러나 프랑스판 엘르 잡지 편집자 소피퐁타넬은 자신의 회고록 ‘혼자 자는 기술(The Art of Sleeping Alone)’에서 밀러가 묘사한 고전적인 이미지를 뒤엎는다. 프랑스 여성의 전설적인 요염함과는 달리 퐁타넬에게 섹스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예 포기하기로 작정했다. “아마도 우리 시대 최악의 반항적인 삶을 택했다”고 그녀가 책 서문에 밝혔다. 섹스에 매몰된 프랑스 문화에서 금욕생활은 일종의 신성모독(다름보다 더 나쁜 유별남)임을 시인했다.
책의 금욕적인 전제에도 불구하고 퐁타넬은 여성적인 신비감(미국 여성들이 내뿜는 어떤 ‘묘사하기 어려운 좋은 특질’)을 유지한다. 그리고 모든 세속적인 경험을 황홀한 공상으로 탈바꿈시킨다. 스키 휴가 때 리조트의 “구리빛 피부의 근육질” 주인과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지만 대신 홀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섹스 없는 삶에 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온천지가 눈으로 덮여있고, 내게는 새들이 달콤하게 지저귀는 에덴이 내 운명인 듯했다. 내 삶은 부드럽고 솜털 같으리라. 내 몸을 갖게 하는 데는 이젠 신물이 난다.”
퐁타넬의 자아발견 회고록은 그렇게 시작된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베스트셀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에 대한 더 어두운(더 프랑스적인) 대안이다. 길버트는 자아성찰 여행의 모든 단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이혼 후의 비참함으로부터 그 뒤 이탈리아에서 쾌락의 탐닉, 인도 아슈람에서의 갱생 그리고 예상대로 발리에서 새로 찾은 사랑과 행복까지). 반면 퐁타넬은 일련의 서정적인 비네트(그림처럼 생생한 토막글)로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그녀는 “한참 동안” 섹스를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게 언제였는지 또는 그 상태가 얼마나 오래 계속됐는지 정말 말하고 싶지 않다.” 그뒤 인터뷰에서 성관계 없는 삶이 12년 동안 지속됐다고 털어놓았다. 퐁타넬은 13세 때 훨씬 나이 많은 남자에게 강제로 순결을 잃었다.
2쪽에 걸쳐 그 사건을 대충 언급하고 넘어간다. 마치 이 초기의 정신적 충격이 그뒤 12년간의 금욕생활과 관련됐다고 주장하는 건 유치한 짓이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퐁타넬의 스타일이다. 길버트보다는 ‘제2의 성’의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에 더 가깝다. 그 프랑스 여성 소설가가 글쓰기에 매료된 이면에는 신중함이 깔려 있다. 퐁타넬도 그와 똑같은 신중함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얼마 동안은 주효한다.
퐁타넬은 처음에는 라벤더 스파에 몸을 담근 채 토요일 밤을 보낸다. 그녀의 가슴은 “물 위의 부표처럼 솟아오르고 마법사의 손바닥이 그녀의 엉덩이를 어루만진다. 상상 속 남자의 등에 몸을 맡기며” 연인에게 하듯이 베개에게 애정을 표시한다.
이 같은 쾌락에는 뻔히 들여다보이는 유아론(唯我論)적인 에로티시즘이 있다. 그녀는 금욕생활을 통해 자신이 더 섹시해졌다고 느낀다. “사진을 보니 내 몸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고 그녀가 썼다. 이 같은 변신에 어리둥절해진 전 남자친구와 친구들은 그녀가 분명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아 퐁타넬의 비네트에 독선적인 기운이 스며든다. 친구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고상함에 경탄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독신임을 견딜 수 없었다. 내게 샘이 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옛 친구와 다시 만난다. 친구의 채워지지 않는 성욕을 그녀는 코미디로 여긴다. “그녀의 성적 쾌락에 대한 탐닉은 그녀가 가진 진정한 축복, 오르가슴을 느끼는 재능에서 비롯됐다.”
퐁타넬이 비아냥을 듬뿍 담아 썼다. “바젤에서 그녀는 발코니로 나가 난간의 나무를 어루만지며 자신의 색욕, 그리고 타액·고형크림·주스·육체에 대한 감식안을 준 데 하느님께 감사할 것이다.” 퐁타넬은 3명이 함께 하는 섹스를 고려할까? “사양하겠다”고 그녀는 말한다. 자신은 “사람들이 엑스트라 역할로 가장 많이 상상하는 인물”이라며 재미있어 한다.
그녀가 금욕 생활로 더 깊이 빠져들수록 그녀의 문장은 갈수록 얄팍하고 무감각해진다. 지하철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의아해 한다. “추레한 사람들, 땅딸막한 뚱보들, 주름살투성이 노인네들, 꼴불견 옷차림을 한 사람들” 등이 어떻게 성적인 존재로 보일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라벤더 목욕, 상상의 연인들과만 지내던 12년 동안 퐁타넬은 사람의 손길이 약간 그리워지게 됐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을 듯하다. 육체적인 삶은 다른 누군가가 주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그녀가 썼다. “온갖 꿈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털어 놓았다. 책의 끝부분에서 퐁타넬이 오랫동안 잊고 지낸 욕구를 일깨워주기 위해 한 기혼자 친구가 등장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닿지 않았던 곳에 내 손이 얼마나 빨리 다가갔던가. 거기에 손길이 닿았을 때 그렇게 큰 위안을 얻게 되다니 정말 놀라웠다.” 물론 그녀는 어디에 손길이 닿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밝히기는 분명 거북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이 부드럽고 솜털 같지는 않았음은 확실한 듯하다.
퐁타넬의 책은 그 솜털 같은 삶에 대한 송가다. “결코 시시하지 않은 삶 … 풍요로웠으며 내 육신과 자아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책은 금욕에 관해 그렇게 화려하게 쓴 작가가 없었다는 측면에서 문학적인 쾌거다. 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아마도 미국 여성에게는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쾌감이라고 하면 고상한 측면보다 육체적인 측면을 더 떠올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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