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lture BOOKS - ‘섹스 앤 더 시티’의 원조

메리 매카시가 1963년 발표한 소설 ‘그룹(The Group)’은 당대 여성들과는 사뭇 다른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1933년 바사대를 졸업한(실제 매카시의 출신대학과 졸업연도다) 가상의 여자 친구 여덟 명을 주인공으로 했다. 이들은 ‘여성의 신비 (The Feminine Mystique)’ 저자 베티 프리던보다 조금 앞선 세대다.
매카시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은 도시 교외 지역에서 답답하게 살아는 주부가 아니라 여성의 진로와 성적인 문제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다. 성교부터 피임, 자위행위까지 섹스가 이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언론은 매카시를 싸구려 포르노 작가라고 혹평했다. (매카시는 이전에 ‘파르티잔 리뷰’ ‘뉴 리퍼블릭’ ‘네이션’ ‘하퍼스’ 등 명망 있는 잡지에 글을 기고해 존경받던 작가였다.) 노먼 밀러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기대를 모았던 책이 질척거리는 불쾌한 기분만 남겼다”고 평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좋아했다. ‘그룹’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거의 2년 동안 올라 있었다.
매카시의 친구와 연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소설 속 일화로 등장하는 걸 지켜봤다. 이 책이 출판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섹스이야기는 여전히 여성의 지위 향상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일례로 TV 드라마 ‘걸스’는 여주인공들의 직업적 야망과 좌절보다 우스꽝스러운 성생활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룹’은 이런 불균형의 뿌리를 조명한다. 주인공들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진보’라는 정치적 개념을 건드리긴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투쟁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에로틱한 장면들이다. 매카시의 여주인공들은 처음으로 직업적인 진로를 개척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빨리 승진할까”보다 그들의 직업이 “연인이나 남편감을 찾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생각한다. 여자가 직업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잠자리에서 남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의문시한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거의 모두가 처녀였던 주인공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순결을 잃는다. 결혼할 때까지 처녀성을 지키는 쪽이 있는가 하면 케이(어느 정도 매카시 자신을 모델로 했다)는 대학 시절부터 약혼자와 성관계를 한다. 한 친구는 별거 중인 유부남과 첫 경험을 하고, 또 다른 친구 도티는 “(섹스는 섹스일 뿐) 사랑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난봉꾼에게 순결을 잃는다.
또 리비는 노르웨이의 남작인 남자친구가 프로포즈를 할 거라고 기대하고 그를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하지만 성폭행을 당한다. 그녀는 원피스가 찢기고 양 손목이 그의 힘에 눌려 꼼짝달싹하지 못한다. “그는 공격을 앞둔 야수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 그는 리비에게 처녀냐고 물는다.
그녀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잠시 주춤했다. “이런 따분한 여자를 봤나!” 그가 책망하듯 말했다. “강간하는 재미도 없겠는데.” 남자의 이런 반응과 여주인공들의 성생활은 오늘날 HBO 방송이나 실생활에선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비극적이든 그 반대든 사랑 이야기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해 준다.
매카시의 소설은 허구였지만 그 당시 여자들의 성생활과 그렇게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실생활에선 그런 이야기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춰졌을 뿐이다. 매카시는 그런 사실을 잘 알았다. 그녀는 자서전 ‘지적인 회고록(Intellectual Memoirs)’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어느날 나는 24시간 동안 세 명의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날 아침에는 누군가와 침대에 누워서 그의 머리 위로 다른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 피임이 합법화되기 수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예외적인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성생활이 문란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누구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더 많은 남성과 잠자리를 하는 여성들이 많다.”
하지만 매카시는 이런 자유로운 성관계가 여성을 해방시켰다기보다는 딜레마에 빠트렸다고 생각한다. ‘그룹’에서 성적 탐험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상대가 남성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여덟 친구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우며 냉담한 캐릭터인 레이키는 1장 이후로 모습을 감춘다. 미술 공부를 하러 유럽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녀의 연애 이야기가 언제 나오려나 고대한다. 다른 어떤 주인공의 경우보다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녀는 가무잡잡하고 다부진 체격의 여자 남작과 함께 돌아온다. 처음에 친구들은 레이키가 자신들을 “레즈비언이 아니라는 이유로 얕보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 “레이키에게 일어난 일이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레이키와 동성 파트너의 성관계가 자신들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일 거라고 상상한다. 결국 레이키는 다른 모든 특성을 제쳐놓고 성적 취향(동성애)으로만 평가받게 된다.
‘그룹’은 1966년 영화화돼 한층 더 유명해졌다. 이들의 이야기 중 일부는 오늘날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바람둥이 딕을 연인으로 둔 도티는 첫 경험 당시 절정에 이르려는 순간 큰 충격을 받는다. 딕은 그녀에게 성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르치려 든다. “겉보기와 달리 당신은 성욕이 강한 여자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딕은 또 여러 가지 피임법을 알려준다. 체외사정부터 콘돔과 페서리(여성용 피임기구)까지.
그가 페서리를 준비하라고 말할 때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부인과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그녀에게 몸안에 기구를 삽입하는 연습을 시키고 두쉬백(douche bag, 성관계 후 임신 방지 목적으로 쓰이던 질 세정 도구)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준다.
(남자들은 이 도구에 관심이 많다. 어떤 남자가 여자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두쉬백이 욕실 문에 버젓이 걸려 있다면 “그 여자를 단번에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리비는 자신이 노르웨이 남작에게 “그런 종류의 여자”라는 인상을 준 게 아닌가 걱정한다. 그녀는 “가끔 자위행위를 하는데” 그러면 “눈 밑에 서클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매카시는 이전에 성에 드리워졌던 커튼을 과감히 열어젖혔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이 이상성욕이나 비난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1971년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쓰는 것이 끔찍한 문제를 낳았다. 도덕적인 문제다.
섹스와 관련된 문제는 물론 아니다. 내가 주인공 캐릭터들을 괴롭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성적 요소를 포함한 소설을 쓰면서 ‘성에 관한 책’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이 실제 그런 성향을 지닌 여성들만큼이나 거세게 비난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룹’은 출판된 지 반 세기가 지난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 소설 자체에는 좋은 소식이지만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측면에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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