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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PERSONS OF INTEREST - 뉴스위크 화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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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아라! - 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 부패 혐의로 조사 받아중국인들은 지금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보시라이는 태자당 대표 인물로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할 유력 인물이었으나 뇌물 수수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보시라이의 재판이 마무리돼가면서 이제 중국의 사정기관은 더 큰 ‘호랑이’의 목에 올가미를 조이고 있다. 그동안 보시라이를 적극 밀어주었던 저우융캉(70)이다.

저우융캉은 전임 후진타오 지도부에서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로 10년 동안 공안·검찰·사법기관을 총괄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현재 가택 연금 상태에 있다. 중앙기율위의 류젠화 주임이 이끄는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중국의 사정기관은 주로 먼저 깃털(심복과 측근들)을 제거한 뒤 몸통을 노린다. 현재 저우융캉의 측근 다수가 연금돼 조사를 받고 있다. 중국 국영 매체는 9월 1일 저우융캉의 최측근이자 장관급인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의 장제민 주임이 “엄중한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석유방(石油幇·석유업계 출신 정치세력)의 거물인 장제민은 공금을 유용해 지난해 11월 고위 관리의 아들이 일으킨 사고로 심한 부상을 당한 젊은 여성 2명의 입을 막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 직전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의 저우융캉 측근 6명도 연금됐다.

저우융캉과 그의 가족에 대한 수사 가능성은 몇 달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흘러나왔다. 2012년 2월 왕뤼진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신청했을때 저우융캉은 당시 충칭시 당서기였던 보시라이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왕리쥔이 영사관에서 나오게 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알려졌다. 보시라이는 무장경찰 수백 명을 보내 미국 영사관을 에워싸고 왕뤼진을 납치하려 했다. 또 저우융캉의 지시에 따라 보시라이는 왕뤼진이 “치료차 휴가를 냈다”고 주장해 망명 신청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2012년 4월 저우융캉은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영국 사업가 닐 헤이우드의 죽음에 연루됐다며 지도부가 보시라이를 연금하려 했을 때 강하게 반대했고 여러 차례 보시라이를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해외 중국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보시라이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다. 또 보와 책략을 꾸며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을 탈취하려 했다는 설도 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저우융캉은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중국의 입법, 공안, 사법 기능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는 기관이다. 그는 직원 1000만 명을 거느렸으며 연간 예산이 12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알려졌다. 저우융캉의 제국은 당, 정부, 군에 이어 중국의 제4부로 불렸다. 그는 공안 병력을 동원해 티베트 독립시위를 진압하고 파룬궁, 지하 기독교인, 반체제인사들을 탄압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저우융캉이 중국을 사실상 경찰국가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2012년 4월 해외 중국어 미디어는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저우융캉이 바람둥이였으며 자신의 우상인 J 에드거 후버의 수법대로 고위 지도부의 통화를 감청하도록 지시했고 그들의 개인 자료를 취합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보도에 격분한 저우융캉은 지난해 해외 중국어 웹사이트에 대한 해킹 공격을 지시했다.

저우융캉은 중앙정법위원회 서기가 되기 전 대부분의 경력을 중국의 석유업계에서 보냈고 6년 동안 CNPC 대표를 지냈다. 중국과 약 30개국의 석유와 천연가스 탐사 및 생산을 관장하는 기관이다. 중국의 에너지 수요가 크게 늘면서 저우융캉은 국제 비판을 무시하고 수단을 14차례나 방문해 부패했고 민간인을 학살한 수단 정권과 관계를 돈독히 했다고 비판자들은 지적했다.

중국의 석유산업은 국가가 독점하고 예산이 한도가 없기 때문에 늘 부패의 온상이었다. 근년 들어 석유업계의 많은 관리들이 부패와 횡령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해외중국어 매체에 따르면 저우융캉의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이용해 석유사업 투자로 수십억 달러를 벌었다. 현재 그의 가족은 중국, 프랑스, 미국, 스위스에 부동산과 투자 자산을 보유한다.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반체제 중국어 사이트 보쉰닷컴(Boxun.com)은 저우융캉의 아들이 ‘보호비’를 갈취했으며, 한번은 뇌물 330만 달러를 받고 폭력조직 삼합회의 수감된 핵심 지도자 한 명을 석방시키려고 로비했다고 보도했다. 저우융캉은 2012년 11월 퇴임했다. 그후 그의 권력 기반이 약화됐다. 새로운 지도부 구성에서 중앙정법위원회의 지위가 격하됐다. 그의 후임자는 정치국상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 거대한 국가기관의 권력이 크게 줄었다.

최근까지 분석가들은 저우융캉이 사정의 칼날을 피해가리라 예측했다. 베이징의 언론인 가오위는 “집단통합을 위해 정치국 상무위원은 범죄 수사와 기소에서 면책권을 부여 받는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당원로들이 당의 안정을 위해 지도부를 숙청에서 제외하는 불문율을 만들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베이징의 한 고위 관리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이 불문율을 깨라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우융캉과 측근들에 대한 조치는 보시라이 지지세력 숙청의 연장선으로 비쳐지지만 중국 석유산업과 사법체제의 개혁을 위한 수순일지 모른다. 석유산업의 만연한 부패가 중국의 유가 상승과 환경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저우융캉이 이끈 중앙정법위 아래서 사법부의 권한이 크게 약화됐다고 널리 인식됐다. 시진핑 주석은 법원을 중앙당 내부의 위원회에 소속시킴으로써 지방정부의 간섭을 줄여 사법부의 독립을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 대다수는 저우융캉과 측근들의 숙청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어 웹사이트 보쉰의 한 분석가는 “새 지도자가 등장하면 초기에 ‘몸집 큰 호랑이’ 두어 마리를 잡아들이는 것이 중국 정치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고위 관리를 법정에 세우면 새 지도자의 부패 근절 의지를 천명하는 동시에 권력을 넘보는 정적들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저우융캉의 미래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의 아들은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출국했다. 저우융캉이 보시라이처럼 법정에 세워질지 아니면 가벼운 내부 징계만 받고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부패 혐의 조사는 중국인들에게 당의 부패척결 약속이 이행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월 “당 지배의 존립을 위협하면 호랑이(부패 고위관리)든 파리(부패 하급관리)든 가리지 않고 모두 잡겠다”고 말했다.

— WENGUANG HUANG, PIN HO





인도의 구원투수로 나선 스타 경제학자 -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인도 경제가 추락하는 시점에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무슨 일이든 처음 맡으면 첫 주는 매우 힘들다. 하물며 세계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고 경제 규모가 10위인 나라에서 중앙은행 총재를 맡는다면 어떨까? 그것도 1991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 직면한 시기에. 좀 더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바닥에 구멍이 난 거대한 배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상황에서 선장을 맡는다고 상상해 보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시카고대 교수 라구람 라잔(50)이 바로 그 역할을 떠맡았다. 라잔은 9월 5일 3년 임기로 인도 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했다. 그는 시카고 남부 고딕 양식의 평온한 캠퍼스를 지난 20년 가까이 고향이라고 불렀지만 뭄바이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거의 전쟁터 수준이다.

그러나 라잔은 선진국의 상아탑과 개도국의 현실적 문제 둘 다를 아우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인도 보팔 출신인 라잔은 기술관료가 꿈꾸는 이력을 자랑한다. 유명한 인도 공대(IIT)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시카고대 교수로 부임한 뒤 2003~06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고 인도에서 공식, 비공식 경제 자문역을 맡았다.

그러면서 논문도 많이 쓰고 호평 받은 책도 펴냈다. 특히 그의 저서 ‘폴트 라인-보이지 않는 균열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가(Fault Lines: How Hidden Fractures Still Threaten the World Economy)’는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2010년 최고의 비즈니스 도서로 선정됐다.

중앙은행 총재는 합의를 추구하고 평지 풍파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라잔은 입바른 소리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5년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회의에서 그는 “과열된 금융산업은 잠재적 보상이 거의 없이 위험만 가득하다”는 요지의 논문을 발표했다(당시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총장은 라잔의 견해를 두고 “신기술 반대자의 입장”이라며 일축했다).

더 최근에는 수요를 부양하려면 외채를 늘려야 한다는 케인즈 학설을 반박해 좌익 경제학자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그의 2012년 포린어페어지 기고문은 노벨 경제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반발을 불렀다. 라잔은 이렇게 썼다. “정부는 경제위기 이전의 인공적으로 부풀려진 GDP 수치로 돌아가려고 하기보다는 경제 자체에 내재된 결함을 해결해야 한다.” 또 거기에는 탄력성이 떨어지는 노동시장과 다른 구조적인 문제가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구조적인 문제라면 사실 인도 경제가 대표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인도는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다 신흥대국 중 인플레이션이 가장 높고 회사채 수익률이 10%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루피화 가치가 달러 대비 20% 하락하면서 수입 석유와 식품 가격이 치솟고 있다. 경제성장도 둔화됐다. 분석가들은 정부 채권 등급의 하향 조정이 필요한지 모른다고 말한다.

해독이 쉽지 않은 지독한 독약 칵테일이다. 올해 초 인도 중앙은행은 성장을 끌어올리기 위해 금리를 낮췄다. 그 결과 허약한 루피화의 가치가 더 떨어졌다. 인플레이션을 막고 통화 가치를 올리기 위해 금리를 높이면 경제는 더욱 둔화해 사회적, 정치적 긴장이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라잔은 가장 먼저 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시카고대의 가을 학기가 시작되는 9월 30일이 되면 라잔은 그 캠퍼스의 평온함을 몹시 그리워할 듯하다.

— DANIEL GROSS





이탈리아 최고의 섹시남 - 나폴리 출신 배우 토니 세르빌로, 대머리에 주름살 많지만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최고 인기토니 세르빌로(54)는 머리가 벗어졌고 지혜의 주름살도 많다. 그래도 이탈리아 영화광들은 그를 소피아 로렌 이래 가장 섹시한 스타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이탈리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주연상을 숱하게 탔다. 보그지 이탈리아판은 그를 “이탈리아 영화 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배우”라고 불렀다.

이제 그가 주연을 맡은 새 영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가 개봉되면서 세계가 그의 매력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생겼다. 이탈리안인들의 과장이 심하긴 하지만 세르빌로가 국제 스타로 발돋음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탈리아에서 세르빌로는 이미 전설이다. ‘일 디보(Il Divo)’에서 총리를 여러 번 지낸 줄리오 안드레오티 같은 유명한 인물을 연기했다. 또 이탈리아 마피아의 지저분한 내면을 묘사한 세미다큐멘터리 ‘고모라’에서 폭력적인 마피아 보스 프랑코 역을 맡았다. 두 영화 모두 2008년 개봉됐다. ‘그레이트 뷰티’에서 세르빌로는 쾌락주의에 빠진 저명 언론인 역을 맡았다.

1959년 나폴리에서 출생한 세르빌로는 나폴리 외곽의 카세르타에서 테아트리 우니티 극단을 운영한다. 지난 6월 세르빌로는 배우 30명을 데리고 시카고로 가서 에두아르도 데 필리포의 ‘내면의 목소리’를 5회 공연했다.

시카고 선타임스는 세르빌로를 “절묘한 주연 배우이자 감독”이라고 격찬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뛰어난 배우”이며 “베켓, 채플린, 피터 셀러스를 혼합한 듯하다”고 묘사했다. 세르빌로는 전형적인 나폴리 사람이다. 그의 매력과 강렬한 연기가 나폴리 출신이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듯하다. 시카고의 이탈리아문화연구소 소장인 실비오 마르체티는 “그의 연기는 전부 그가 나폴리 사람이라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미국 관객들이 이탈리아인들만큼 그를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세르빌로는 자신의 강한 나폴리 색채가 거부감을 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최근 시카고 트리뷴과 가진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겐 자신이 “너무 이탈리아인처럼 느껴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 BARBIE LATZA NADEAU



인터뷰의 전설 - 영국 방송인 데이비드 프로스트(1939-2013), 닉슨도 그 앞에서는 자신의 잘못 시인해사상 최고의 인터뷰어로 이름을 날린 영국 방송인 데이비드 프로스트가 8월 31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강연을 위해 유람선 퀸엘리자베스2에 승선했다가 선상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프로스트는 1964년 이래 영국 총리 전부, 그리고 1969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대통령 7명 전부를 인터뷰한 유일한 방송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프로스트를 두고 “매력, 위트, 재능, 지능, 따스함을 골고루 갖춘 뛰어난 인물”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유명한 닉슨 인터뷰 외에도 수많은 훌륭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친구인 동시에 두려운 인터뷰어였다.”

프로스트는 생전에 런던과 뉴욕을 콩코드를 타고 300~500차례 왕래했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알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헨리 키신저 등 할리우드 스타, 스포츠 스타, 정치인을 가리지 않고 인터뷰한 팔방미인이었다.

특히 그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후 처음으로 닉슨을 인터뷰했다. 대단한 성과였다. 닉슨은 대통령 사임 후 은거하며 그 스캔들에서 자신이 한 역할을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프로스트는 집념과 금전적인 인센티브(거금 60만 달러)를 혼합해 닉슨을 설득했다. 결국 닉슨은 1977년 사전 질문서 없이 다섯 차례의 인터뷰를 하기로 동의했다. 그 인터뷰 성사 과정이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2009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프로스트/닉슨’ 영화로 각색됐다.

닉슨은 인터뷰 마지막 날 프로스트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에 무너져 결국 잘못을 시인했다. 닉슨은 프로스트에게 대통령 사임 후 측근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갑자기 자신이 한 일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불쑥 말이 나왔다. ‘미안하다. 당신들을 실망시키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 말이 전부다. 친구를, 조국을, 정부를, 정부를 위해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꿈을 저버렸다.”

수년 뒤 전 노동당 당수 존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스트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질문을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다.”

— NICO H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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