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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 - 35시간 안에 사업거리 만들어라

Repo - 35시간 안에 사업거리 만들어라

크루즈 선상에서 벌인 창업 경진대회 … 벤처 대표·벤처캐피털도 선수로 참가
12회 ‘스타트업 위크엔드’ 참가자들. 이번 행사는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크루즈 오하마나호에서 열렸다.



“이 애플리케이션으로 지인들과 사진을 실시간 동기화할 수 있습니다.” “기존 서비스와 다른 점이 뭐죠?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이 애플리케이션을 새로 다운받아서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저희 팀이 만든 건 여자 친구의 선물 고르기를 어려워하는 남성용 큐레이션 서비스입니다.” “디자인은 좋아요. 그런데 이건 큐레이션(정보수집) 서비스가 아니라 단순한 선물 추천 앱(애플리케이션) 같네요.”

제주도 NXC센터에서 참가자들이 본격적인 모바일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9월 8일 새벽 5시 제주행 크루즈 오하마나호의 3등 대형 선실에 열기가 감돌았다. 이들은 10개 팀, 70여 명의 예비 창업자들로 2박3일 간 밤새 만든 모바일 서비스를 발표하는 중이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 ‘스타트업 위크엔드’ 현장이었다.

제12회 스타트업 위크엔드가 9월 6~8일 인천~제주를 오가는 크루즈와 제주 NXC센터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창업을 희망하는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가 모여 2박3일 간 모바일 기반의 서비스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이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해 2009년 미국 시애틀에서 비영리 단체로 등록하면서 글로벌 창업 지원 행사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앱센터가 2010년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연간 4회 행사를 주최한다. 앱센터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지원을 받아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돕는 사단 법인이다.

그동안의 행사가 주로 수도권 대학에서 열린 것과 달리 이번 대회는 크루즈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9월 6일 오후 5시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로 속속 모여든 참가자들도 행사에 대한 기대가 큰 듯했다.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선상에서의 왕복 26시간과 제주도에서의 9시간, 총 35시간 내에 개발을 끝내야 하는 강행군을 앞두고 있지만 결연한 표정이다.

스타트업 위크엔드는 54시간 동안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크루즈 운항 시간을 맞추다 보니 개발 시간이 다소 줄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의 진행 방식은 이렇다. 행사 첫날인 금요일 참가자들이 사전에 제출한 모바일 기반의 창업 아이디어를 발표한다. 보통 30~40개의 아이디어가 발표된다.

참가자의 투표로 이 가운데 우수 아이디어 10개를 뽑는다. 선정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기획자 2명, 개발자 3명, 디자이너 2명이 한 팀을 만든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시연이 가능한 단계까지 서비스를 개발하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일요일에 참가자들 앞에서 발표한다. 김진형 앱센터 이사장은 “아이디어 기획부터 팀 빌딩-개발-펀딩을 위한 프레젠테이션까지 창업의 전 과정을 2박 3일에 압축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크루즈에 올라 저녁 식사를 마친 오후 8시. 아이디어 발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발표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100초. 그 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해야 한다. 내 스마트폰을 자주 훔쳐보는 아내 감시용 패턴 인식 몰래 카메라, 여행 때 무료 숙박을 위한 집 바꾸기 서비스,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온라인 납골당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다양한 아이디어의 근원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다. 스타트업 위크엔드는 참가자 제약이 없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18~48세의 폭넓은 연령층이 참가했다. 최연소 참가자 길형진(18)군은 친구 박새인(19)군과 배에 올랐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창업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광철(48)씨는 이번 행사의 최고령 참가자다.

프로그램 개발자 출신으로 지금은 모바일 기술 기반의 NGO(비정부조직) 활동 중이다. 그는 “이번이 세 번째 스타트업 위크엔드 참가”라며 “올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특히 이번에는 크루즈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힐링’ 기분으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직업군도 다양하다. 대학생과 정보기술(IT) 계열 회사의 직장인은 물론 현직 스타트업 대표도 선수로 참가했다. 이희우 IGD 벤처코리아 대표는 지난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벤처캐피탈리스트다. 그는 “이 대회를 심사하면서 직접 개발에 참여하고 싶어졌고 오랜만에 현장의 자극을 느껴보고자 이번에는 선수로 나섰다”고 밝혔다.

아이디어 발표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김민석 스위트해피니스 대표는 제조벤처 사업가다. 그는 “새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에 필요한 디자이너를 찾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김세진 앱센터 본부장은 “행사에 능력 있는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많이 오기 때문에 리크루팅 차원에서 벤처 창업가들이 오기도 한다”며 “업무 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최고의 면접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저녁 10시께 아이디어 발표가 끝났다. 이희우 대표와 김민석 대표의 아이디어 ‘패턴 인식 몰래 카메라’와 ‘반려견 돌봄 커뮤니티 서비스’는 참가자 전원의 투표 결과 상위 아이디어에 선정됐다. 박새인·김광철씨의 아이디어는 ‘베스트 10’ 안에 들지 못했다. 이들은 선정된 다른 아이디어의 팀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100초 스피치로 마음 훔쳐라김명지(덕성여대 경영학과 4년)씨는 뽑힌 10명의 팀장 중 홍일점이었다. 여성 디자이너는 많지만 기획자 중에는 여성 인구가 적다. 김씨는 올해 초부터 창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여러 창업경진대회에서 경험을 쌓고 있다. 직전 스타트업 위크엔드에도 참가해 팀장으로 뽑혔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심기일전한 이번 대회에서는 ‘책 공동구매 플랫폼’ 아이디어를 내 상위 아이디어로 뽑혔다. 첫 단계는 통과한 셈이었다. 그러나 안도도 잠시, 그는 “팀 빌딩이 관건”이라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아이디어 선정 후 잠시 쉬는 시간, 참가자들이 팀장들 주위로 모여들었다. 기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팀 합류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김씨도 몇몇 개발자와 디자이너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발표 때 기획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인지 기획자보다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걱정했다. 잠시 후 크루즈의 갑판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그러나 어두운 밤바다를 수놓는 불꽃도 팀 구성을 고민하는 참가자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참가자들은 인천~제주를 오가는 크루즈 위에서 ‘기획-개발-발표’의 창업 전 과정을 수행했다.





직원 뽑으려고 참가하기도참가자들이 이처럼 팀 빌딩에 신경을 쓰는 것은 구성원에 따라 팀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 행사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서로를 모른 채 사업 아이디어만 보고 모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6~7명의 소수 조직이기 때문에 팀원 한 명 한 명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획자와 개발자·디자이너가 충돌해 팀이 와해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이번 행사의 심사위원로 참가한 강수남 모두의주차장 대표는 “이것도 실제 스타트업이 겪는 과정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지난해 열린 8회 스타트업 위크엔드의 수상자다. 당시 만든 주차장 공유 서비스로 지난해 창업했다. 그는 “잘 맞는 팀원을 만나고 팀워크를 맞추는 것도 스타트업의 생존 비결”이라고 말했다.

팀 선택은 A4용지에 출력한 아이디어에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팀 구성이 끝난 것은 저녁 11시. 김명지씨의 팀은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바로 기획회의에 들어갔다. 팀명을 ‘림보’로 짓고 도서 구매 플랫폼을 구체화 시켜나갔다.

“그냥 공동 구매가 아니라 모바일로 주문 제작이 가능하게 하면 어떨까?” “그건 기술적으로도 구현이 가능할 것 같아요.” 다수를 위한 공동 구매냐, 특별한 소장본을 원하는 소수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지만 기획자와 개발자·디자이너가 다 같이 매달린 토론을 통해 특별판 한정 구매로 방향을 바꿨다. 김씨는 “좋은 팀원을 만나서 애초 아이디어의 문제점을 토론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들의 회의는 새벽 3시 반까지 이어졌다.

개발 방식은 팀마다 달랐다. 박새인군이 속한 팀은 일찌감치 분업 체제를 택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서비스의 기본 플랫폼을 만드는 동안 기획자들이 기획을 다듬는 방식으로 시간을 아낀다는 전략이다. 이튿날 업무량이 많아질 개발자는 휴식을 취하고 기획자과 디자이너만 먼저 작업을 시작하는 팀도 있었다.

김광철씨가 합류한 ‘서울링’ 팀의 디자이너 이동엽씨는 “어차피 내일도 밤을 새야 하기 때문에 지금 자두는 게 전략적으로도 좋지만 이미 개발에 발동이 걸려 어쩔 수 없다”며 새벽까지 작업했다. 이번 행사의 심사위원이자 첫 회 스타트업 위크엔드 수상자인 김규호 삼성전자 게임서비스팀 전무는 “각자의 아이디어마다 개발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며 “어떤 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한시간이 있기 때문에 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요일 아침 제주항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게임회사 넥슨의 지주사인 NXC 본사로 이동했다.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비교적 한가했던 개발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밤 사이 가닥 잡힌 기획과 디자이너가 만든 UI(User Interface, 유저 인터페이스)에 따라 본격적인 코딩(coding, 프로그램 명령문을 사용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 작업에 들어갔다. 개발자들의 노트북 모니터에는 복잡한 프로그램 언어가 지나갔다. 이 때 기획자들은 아이디어 구성을 최종 점검하거나 작업간 조율에 나선다. 진도가 빠른 팀의 기획자는 최종 발표 준비를 시작했다.

오후 6시. 제주도를 떠날 시간이 됐다. NXC센터에서 제주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김명지씨는 “개발에 집중하느라 관광은커녕 제주도에 온 것 조차도 실감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제주항에서 일행이 탄 크루즈는 인천에서 타고 온 것과 같은 오하마나호다.

선내 구조에 익숙해진 참가자들은 진행요원의 안내 없이도 서둘러 자리잡고 개발에 빠져들었다. 제주로 올 때의 선실보다는 조용했다. 팀원 간 대화가 다소 줄었기 때문이다. 기획자·개발자·디자이너가 각자에게 맡겨진 작업을 마무리 지어야 할 시점이었다.

기자는 복잡한 코딩 작업을 이해할 수도 없고 최종 발표를 앞두고 바빠진 참가자들을 귀찮게 하기도 뭣해 선실로 돌아왔다.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시계 바늘은 오전 4시 10분을 가리켰다. 최종 발표 시작 시각은 4시. 허겁지겁 참가자들이 모여있는 대형 선실로 갔다. 이미 두 번째 팀이 발표 중이었다.

9월 8일 모든 행사 일정을 마친 뒤 인천 앞바다를 항해하는 크루즈의 갑판에서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발표자들은 사업 가능성을 설명하고 애플리케이션 시연 영상을 보여주며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실제 투자자 앞에서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듯한 치열함이 느껴졌다. 참가자들의 질문과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평가가 이어졌다. “확실히 수요는 있을 것 같은데, 기획에서 많이 흔들린 티가 나네요. 이 서비스가 어떤 건지 한 마디로 표현되는 맥이 없습니다.” “타겟팅이 확실해서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여행 정보를 제공할 거죠? 광고성 정보에 치우칠 가능성이 있지 않나요?”



투자자 앞에서 설명하듯 진지동틀 무렵 모든 팀의 발표가 끝났다. 심사위원들은 A-1호 선실에 모여 의견을 교환했다. 사업모델, U I·U X ( U s e r Experience, 사용자 경험), 엔지니어링 세분야로 나눠 평가한다. 발표상은 참가자들의 투표로 결정한다. 심사 끝에 UI·UX 부문은 지인과 사진을 공유하는 서비스 ‘모아모아’가 수상자로 뽑혔다. 동작인식센서와 연동해 스마트TV에서도 활용 가능한 점을 인정받았다. 엔지니어링 부문은 사용자 패턴을 분석해 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하거나 삭제해주는 ‘큐레이저’가 수상팀으로 선정됐다.

김민석 대표의 강아지 돌봄 커뮤니티 플랫폼 ‘펫 메이트’는 사업모델 부문에서 상을 탔다. 제주도에서의 기획회의 때 추가한 사료업체 브랜드를 광고 아이디어가 주효했다. 김 대표는 “기대 없이 참가한 대회에서 상도 타고 믿음직한 디자이너도 찾아서 일석이조”라며 기뻐했다. 고인 추모 서비스 ‘애프터 라이프’는 참가자들이 선정한 발표상을 받았다.

시상이 모두 끝났을 때 멀리 인천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행 모두가 갑판에 나가 기념 촬영을 하면서 수상 팀을 축하하고 상을 받지 못한 팀의 아쉬움을 달랬다. 림보 팀의 발표는 기자가 놓친 첫 번째 순서였다. 발표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에게서 짙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마지막 전략이 미흡했어요. 플랫폼 위주로 설명해서인지 저희가 만든 서비스의 의미를 80%밖에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러

나 이 팀의 디자이너 김동현(31)씨는 “상을 받지 못해서 오히려 더 이 서비스를 끝까지 만들고 싶어졌다”며 “앞으로도 팀원들과 따로 만나 이 아이디어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명지씨도 어두운 표정을 지우고 덧붙였다.

“사실 전 전공도 IT 쪽이 아니라서 창업을 꿈 꾸면서도 ‘할 수 있을까’라고 망설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그 아이디어에 동조해준 팀원을 만나고, 실제로 제 생각이 구현돼가는 걸 보면서 ‘이 길을 가도 되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상보다 더 큰 수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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