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Estate - 철도정비창·서부이촌동 분리 개발 유력
Real Estate - 철도정비창·서부이촌동 분리 개발 유력
코레일이 9월 5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하 용산개발사업)의 땅값으로 받은 자산유동화증권(ABS) 1조197억원을 대한토지신탁에 납입하면서 총 2조4000억원의 토지대금을 모두 상환했다. 코레일이 토지소유권 등기 이전을 하게 되면 사업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는 땅을 되돌려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드림허브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보유한 토지는 전체 개발 대상 토지의 66.7%에서 59.6%로 줄어든다. 현행 도시개발법상 토지 면적의 3분의 2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면 사업 시행사 자격을 잃게 된다.
통상적으로 등기 이전은 일주일이면 완료된다. 코레일은 9월 16일 현재 등기 이전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애초 9월 12일자로 51만㎡에 이르는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지구지정 해제를 고시할 예정이던 서울시도 등기 이전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자 일정을 미뤘다. 용산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민간 출자사들은 코레일에 새로운 사장이 부임한 뒤 용산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등기 이전을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지구지정 해제 때 31조원 사업 종지부코레일이 토지 대금 상환 후 곧바로 등기 이전 절차에 착수하지 않은 것은 용산개발사업 중단에 따른 손실이 너무 큰데다, 사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따른 부담감이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 간의 갈등의 골이 너무 깊고 사업성과 사업 방식에 대한 인식 차가 현저해 사업 재개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구지정이 해제되면 총 사업비만 31조원에 달해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불린 용산개발사업은 첫 삽을 떠보지도 못하고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다.
용산개발사업 무산은 사업참여자들의 과욕이 빚은 참사다. 부동산 경기 활황기에 막대한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너무 크게 사업을 벌였다. 특히 시장 환경이 급변했는데도 장밋빛 미래에 취한 나머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게 결국 사업 좌초로 이어졌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과 교수는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의욕만 앞섰기 때문에 사업 무산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용산개발사업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의 옛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까지 포함해 51만5483㎡ 부지에 사업비 31조원을 들여 주거·업무·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복합개발 프로젝트다. 사업 시작은 2006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레일은 고속철도(KTX) 건설로 불어난 부채 4조5000억원을 해결하기 위해 철도정비창 개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철도경영정상화 정부 종합대책’을 내놨다.
애초 용산차량기지로 한정된 사업이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이 프로젝트에 자신의 주요 정책인 ‘한강르네상스’를 연계시킬 것을 요구해 2007년 8월 서울시와 코레일은 서부이촌동을 포함하는 통합개발 합의안을 발표하고 사업자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이 서부이촌동 통합 개발은 나중에 두고두고 용산개발사업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같은 해 12월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개발사업자로 선정되고 시행사와 자산관리위탁회사(AMC)를 설립할 때만 해도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했다. 그러나 곧 엄청난 암초를 만났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된 것이다. 이미 2007년을 기점으로 침체기로 접어든 국내 부동산 경기는 금융위기 탓에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건설경기가 침체가 빠지자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자금난이 불거지자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의 갈등이 시작됐다. 자본금 확충이 절실한 코레일은 삼성물산을 비롯한 건설사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을 요구했다. 삼성물산은 이에 반발해 2010년 9월 대표 주관사 지위를 반납하고 주요 주주로만 남았다.
사실상 사업에서 발을 뺀 것이다. 삼성물산의 주관사 지위 포기는 용산개발사업의 주요 변곡점이 됐다. 삼성물산으로서는 추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의사결정이었지만 국내 최대 기업군인 삼성그룹이 용산개발사업을 끝까지 주도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드림허브 자본금 1조원 허공으로삼성물산이 내놓은 용산역세권개발(AMC) 지분 45.1%는 2대 주주였던 롯데관광개발이 인수했다. 지분 70.1%로 최대 주주가 된 롯데관광개발과 2대 주주인 코레일은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투자 유치가 안돼 용산역세권개발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사업 방식을 둘러싸고 입장이 크게 엇갈리면서 1·2대 주주 간의 갈등은 첨예화됐다.
코레일은 사업 환경의 변화에 맞춰 철도정비창 부지부터 단계적으로 개발하자고 주장했고,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민간 출자사들은 애초 계획대로 서부이촌동을 포함해 일괄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지난해 말 2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을 놓고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을 비롯한 민간 출자사들의 갈등이 폭발했고, CB 발행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CB 발행 무산으로 자금난에 봉착한 용산역세권개발이 3월 12일 만기가 도래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2000억원에 대한 선이자 52억원을 내지 못하면서 용산개발사업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놓였다. 코레일은 연말까지 필요한 2600억원의 긴급 자금을 수혈하는 대신 사업 주도권을 쥐고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사실상의 마지막 제안을 했다. 하지만 민간 출자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4월 8일 코레일 이사회는 사업 청산을 결의하고, 토지대금 상환 절차에 들어갔다.
용산개발사업 무산을 놓고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지만 사업참가자들은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 드림허브의 자본금 1조원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코레일 2500억원, 롯데관광개발 1510억원, KB자산운용 1000억원, 삼성물산 640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 490억원 등이다. 코레일의 경우 드림허브에 투자한 자본금뿐아니라 선매입한 랜드마크빌딩의 1차 계약금 4161억원도 날렸다.
드림허브 자본금 1510억원에다 CB 226억원 등 총 1763억원을 투자한 롯데관광개발은 사업 중단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어 3월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나마 대주주가 1100억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고 출자전환 등을 통해 8월에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삼성물산은 랜드마크빌딩 시공사로 선정되면서 인수한 800억원의 CB가 손실로 남게 됐다.
이처럼 막대한 손해만 입힌 채 용산개발사업이 무산되자 책임소재와 자본금 회수를 두고 출자사 간의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롯데관광개발 등 민간 출자사들은 2월에 코레일을 상대로 7000억원 규모의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코레일도 정상화 방안을 끝내 거부한 민간 출자사들에 사업 무산의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이다. 여기에다 사업 대상지로 편입되면서 6년 동안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한 서부이촌동 주민들도 현재 6000억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을 준비 중이다. 사업 무산에 따른 후폭풍이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문제의 근원은 사업참가자들의 경험과 준비 부족이다. 코레일이나 민간 출자사 모두 30조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경험이 일천한 상태에서 막대한 개발이익을 노리고 준비없이 뛰어들었다. 준비 부족은 자본금 규모에서 드러난다.
사업기간이 10년이 넘는 대형 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자본금이 사업비의 10% 정도 돼야 시장 환경 변화에도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용산개발사업의 경우 자본금이 최소한 3조원이 돼야 하는데 1조원에 불과해 사업기간 내내 자금난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사업 규모가 너무 컸다. 용산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던 2006년은 집값이 다락같이 오르고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팔리던 호황기였다. 금융권도 대형 PF사업에 ‘묻지마 대출’을 해주던 시절이었다. 사업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시장 상황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서부이촌동까지 사업 대상지를 확대한 것이 패착이 됐다는 분석이다. 사업 규모가 커진 만큼 개발 주체의 자금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사업도 지체됐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에 대한 보상금 규모만 2조3000억원에 달한다.
흔히 대형 개발 프로젝트는 활황기가 끝나갈 무렵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다. 경기가 호황기를 누리면서 돈이 많이 풀리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 더 높은 건물을 짓게 되지만 건물이 완공될 시기가 되면 경기가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불황이 시작돼 텅텅 비게 되는 등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용산개발사업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당분간 소송전 줄 이을 듯사업 무산의 결정적 원인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외부 요인을 꼽는 이들이 많지만 내부 요소도 간과할 수 없다. 막대한 개발이익을 노리고 같은 배를 탔지만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들은 ‘동상이몽’이었다.
부채 감축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코레일은 대형 개발 경험이 전무했음에도 시행사와 AMC에 주주로 참여하면서 민간 출자사와 이해 충돌을 일으킬 여지를 만들었다. 토지주로서 땅값만 받아도 부채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음에도 과욕을 부렸다.
민간 출자사들도 의욕 과잉이었음은 매한가지다. 특히 롯데관광개발이 대표적이다. 30조원이 넘는 사업을 주도하기에는 기업 규모가 너무 왜소했다.
투자금 1700억원 때문에 회사가 휘청거렸다는 점이 잘 말해준다. 건설투자자(CI)와 재무투자자(FI)는 몸을 너무 사렸다.
건설경기 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 위기 등으로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으나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 간의 틈바구니에서 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지 못했다.
CB 발행 등 추가 자금 조달에도 소극적이었다. 과실만 따 먹으려 했지 정작 농사는 등한히 한 격이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용산이라는 지역 특성을 고려할 때 공공성이 어느 정도 담보돼야 하는 사업이었지만 민간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이 되면서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 간의 갈등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용산개발사업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의 구역 지정 해제와 함께 용산개발사업은 당분간 휴지기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 간, 코레일·서울시와 서부이촌동 주민 간의 소송전이 이어질 경우 향후 몇 년간은 사업 진행이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용산개발사업이 용산 철도 정비창과 서부이촌동이 분리돼 별도 개발이 추진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당장 서부이촌동에 대한 개발제한이 풀리게 되면 2300여 가구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땅이나 주택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고, 노후된 아파트나 단독주택은 개별적으로 조합을 결성해 재건축·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6년여 동안 거래다운 거래가 이뤄지지 않은 서부이촌동은 서울시의 구역지정 해제 발표 이후 저가 매물을 찾는 외부인들의 문의전화가 부쩍 늘었다. 직접 찾아와 매물을 확인하는 이들도 생겨났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B공인의 한 관계자는 “단독 주택지에 2억~3억원으로 투자할 수 있는 물건을 찾는 사람이 최근 여기저기 매물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대형 개발사업 50년 장기 계획일각에서는 구역지정이 해제된 후 서부이촌동 일대가 난개발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업 무산으로 용산역부터 한강변까지 걸쳐 있는 서부이촌동 일대 56만여㎡를 체계적으로 개발할 계획이 없어진 탓이다. 구역지정 해제로 서부이촌동이 사업 계획이 수립되기 전인 2001년 당시의 지구단위계획으로 환원됨에 따라 서울시가 올해 말까지 도시관리계획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내년에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세우기로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제각각이어서 체계적인 개발이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거환경이 불량하고 낡은 구역을 골라 가로 정비나 마을 만들기 등 지역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부이촌동 지역 주민의 의견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울시가 미리 나서서 계획을 결정할 수는 없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개발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 44만여㎡는 코레일이 독자 개발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레일은 상업·업무시설의 규모를 축소하고 주거시설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개발계획을 다시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정부의 주택정책에 보조를 맞춰 행복주택 등 임대주택도 많이 지을 것으로 관측된다. 민간 출자사와의 소송 때문에 당분간 사업 추진이 여의치 않겠지만 서울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을 장기간 폐허로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 역시 독자 개발을 용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용산개발사업이 재추진 되면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짜야 한다고 주문한다. 미군 기지가 주둔하던 자리에 용산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주한유엔사령부·주한미군수송사령부 터도 개발되는 등 도시구조상 용산이 향후 서울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는 만큼 공공성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개발이익도 함께 얻을 수 있는 사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철도정비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서울시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용산개발사업은 국가 경제나 지역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사업이다. 그럼에도 민간이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것이 사업 좌초에 이르게 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SH공사를 통해 드림허브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음에도 수수방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용산개발의 가장 큰 패착은 공공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라며 “중국 상하이 로완구는 지분 5%만 가지고도 민간 디벨로퍼를 모두 컨트롤해 지금의 신천지를 만들어냈듯이 서울시도 인허가권자라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개발 파트너로서 적극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도크랜드 개발 사업이나 프랑스 라데팡스, 일본 록본기 힐스 등 외국의 대형 개발사업이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40~50년에 거쳐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긴 안목과 호흡을 가지고 개발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단기간의 개발 이익만 좇다 보면 사업성이 부풀려지고 경기 상황에 쉽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공공 중심의 사업구조를 만들되 민간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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