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S RICHEST CITY❼ - 자유방임주의가 빚어낸 걸작
THE WORLD’S RICHEST CITY❼ - 자유방임주의가 빚어낸 걸작
홍콩은 ‘동양의 진주’라고 불린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5만1494달러에 이른다. 카타르(10만221달러), 룩셈부르크(7만9785달러), 싱가포르(6만410달러), 노르웨이(5만5009달러), 브루나이(5만4389달러)에 이어 세계 6위다. 1인당 명목 GDP는 3만6667달러다. 2009년보다 12% 증가했다. 2만 달러 대에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홍콩은 부자가 많다. 미화 10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가구 비율이 8.5%다. 스위스·카타르·싱가포르 다음으로 높다. 대부호들이 사는 억만장자의 도시이기도 하다. 올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리스트에서 세계 100대 부자에 든 홍콩인은 5명이다. 한국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유일하다. 이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홍콩이 어떻게 부자도시가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시아 최고 갑부 리카싱(李嘉誠)이 재산 310억 달러로 홍콩 부자 순위 1위, 세계 부자 순위 8위에 올랐다. 부동산 부호 리샤우키(李兆基)가 203억 달러로 홍콩 2위, 세계 24위다. 홍콩 최대 규모의 부동산 개발회사를 운영하는 토마스 콱(郭炳江), 레이먼드 콱(郭炳聯)과 그 가족이 200억 달러 재산을 보유해 홍콩 3위, 세계 26위에 올랐다. 홍콩과 마카오를 오가며 사업을 벌이는 청유퉁(鄭裕彤)은 재산 160억 달러로 홍콩 4위, 세계 44위였다. 최근 마카오에 초호화 카지노를 개장해 화제가 된 루이처우(呂志和)가 107억 달러 재산으로 홍콩 5위, 세계 83위를 기록했다.
홍콩의 세계적 대부호 5인방리카싱은 홍콩 최대 기업 집단인 청쿵(長江)그룹의 회장이다. 캐나다 허스키에너지의 공동회장이기도 하다. 중화권을 넘은 세계적 사업가다. 장남인 빅터 리(李澤鉅)가 청쿵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홍콩·캐나다의 이중 국적자다. 1971년 설립된 청쿵그룹은 부동산 회사로 시작해 투자·생명과학·정보통신·호텔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지주회사인 청쿵홀딩스의 직원이 9500여 명에 달한다.
리카싱은 투자회사 허치슨 왐포아 그룹(HWL)의 회장이란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그는 1979년 이 그룹을 인수해 청쿵그룹 명의로 지분 49.97%를 보유하고 있다. HWL은 54개국에서 23만 명 직원이 일하는 다국적 투자회사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회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항만·부동산·유통·에너지·통신 등 사업 분야가 다양하다.
리카싱의 차남 리처드 리(李澤楷)는 홍콩의 통신회사 퍼시픽 센추리 그룹(PCG)을 창업했다. 다국적 정보통신 지주회사 PCCW의 회장도 맡고 있다. 13세에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닌 그는 자립하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맥도널드 점원, 골프장 캐디로 일하며 사회 경험을 쌓았다. 형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국적이 있어 외국인 소유 제한에 구애 받지 않고 에어캐나다·벨캐나다 같은 현지 기업의 지분을 확보했다.
홍콩에서 두 번째 갑부인 리샤우키는 ‘아시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다. 헨더슨토지개발 회장으로 이 회사 주식을 61.88%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부동산 개발과 함께 가스 공급, 페리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리샤우키 회장은 홍콩중화가스와 미라마르 호텔의 회장을 겸한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인 1997년에 세계 4위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중국 본토 기업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홍콩 부자 3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다. 토마스 콱과 레이먼드 콱, 그리고 가족이라고 표현한 것은 기업지배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콱과 레이먼드 콱 형제는 홍콩 순훙카이부동산의 공동 회장이다. 이들은 선친 콱탁성(郭得勝)의 차남과 3남이다.
장남인 월터 콱(郭炳湘)은 1990년대 순훙카이부동산 회장이었으나 의문의 납치를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분 끝에 결국 2010년 ‘일시적’이라는 조건을 달고 회사를 떠났다. 순훙카이부동산은 부동산과 인프라 개발, 호텔 운영에서 통신·정보기술(IT)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집안은 끊임 없는 재산 싸움으로 많은 가십을 양산해 경영의 투명성을 의심받는다.
홍콩 부자 4위에 오른 청유퉁 회장은 부동산 개발과 호텔·카지노·항만 운영, 운송, 보석 판매, 통신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초우타이푹의 회장이다. 이 회사는 1972년 홍콩 증시에 상장된 뉴월드개발의 지주회사다. 홍콩은 물론 마카오 개발에 투자해 재산을 불렸다.
홍콩 부자 5위인 루이처우는 케이와그룹 회장으로 홍콩과 중국 본토와 마카오·싱가포르 등 중화권의 부동산 개발에 투자해 회사를 키웠다. 그는 홍콩의 발전 방향에 맞춰 비즈니스를 바꾸는 변신과 적응의 귀재로 이름이 높다. 건축자재 사업으로 돈을 모은 그는 1960년대 부동산 투자로 재산을 늘렸다.
1980년대 호텔 개발에 뛰어들어 1990년대 중국 본토로 영역을 넓혔다. 2002년 루이처우는 마카오의 카지노 산업에 진출해 현재 마카오의 6대 카지노 부호로 알려졌다. 2011년 5월에는 20억 달러를 투자해 갤럭시 호텔을 세우고 이곳에 MICE(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단지를 조성했다. 도박이라는 오락 시설을 세계적 수준의 MICE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한 예다.
홍콩 억만장자들의 면모에서 볼 수 있듯이 홍콩은 사업하기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거의 없다. 홍콩 당국은 경제 문제에선 수동적이다. 손 놓고 있는게 아니라 일부러 민간에 맡긴다. 이런 자유방임형 경제체제는 홍콩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낮은 세율, 자유무역과 함께 홍콩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홍콩이 세계적인 국제금융센터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은 홍콩을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실험장’이라고 표현했다.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미국 카토연구소 역시 홍콩을 자유방임형 경제정책의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자유방임형 경제체제의 목적은 민간의 창의성과 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정부가 무책임하게 방임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뜻에서 적극적인 불개입주의라고도 한다. 정부는 주식시장 같은 경제기구를 만들고 일정 부분을 관리하는 역할만 한다.
다만 홍콩은 모든 부동산이 정부 소유이고 민간에 장기간 임대한다는 특징이 있다. 영국의 전통에 중국의 상황이 더해져 만들어진 정책이다. 장기 임대한 부동산의 매도를 제한해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한다. 일부 전문가는 이로 인해 낮은 세율로도 공공 지출을 감당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홍콩 정부의 규제가 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이를 뜯어보면 수출신용보장제, 연금 의무가입제, 최소임금제, 차별금지법, 정부의 모기지 지원방안 등이 나온 정도다.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 최저임금제다. 대부분의 나라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놓고 정부가 규제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간 정부 간섭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그 덕분에 홍콩은 2011년 사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주목할 점은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싱가포르가 사업하기 좋은 나라 1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도 민간에 쓸데없는 간섭은 하지 않는다. 더 나은 경제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부가 장단기적으로 전략과 계획을 마련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싱가포르는 자유방임형 홍콩과 통하는 면이 있다.
17년 동안 경제자유도 세계 1위경제자유도는 홍콩이 부동의 세계 1위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도 지수에서 홍콩은 1995년 이래 17년 동안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 지수는 영업·교역·투자·금융·재산권·노동·부패도 등 183개 부문을 살펴 정한다. 홍콩은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기록한 세계 유일의 나라다.
국제금융센터와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본부가 상당수 홍콩에 위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에서 직장을 구하는 한국인도 점점 늘고 있다. 홍콩은 세계에서 자본을 모으기 가장 쉬운 곳으로도 꼽힌다. 홍콩 주식시장은 세계 7위 규모다. 상장 규모가 2조3000억 달러에 이른다. 2009년 세계 기업공개(IPO)의 22%를 차지해 최대 IPO 시장으로 떠올랐다. 홍콩 달러는 1983년부터 미국 달러와 연동돼 달러 경제권에서 환율 손실 가능성이 작다.
홍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출주도형 경제로 고속성장을 이뤘다. 한국·대만·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다. 홍콩은 제조업 중심에서 탈피해 더 높은 단계로 성장했다. 지금 홍콩경제는 서비스 산업이 주도한다. GDP의 90% 이상이 서비스 산업에서 나온다. 금융과 서비스 산업을 비약적으로 키워 세계적인 부자도시를 이뤘다. 현재 제조업은 9% 수준이다. 1%에 불과한 농·어업은 고급 음식재료를 수출하는 고부가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홍콩은 세계 11위의 교역국가다. 재수출 물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물류 시설 역시 발달했다. 홍콩항은 세계 2위의 컨테이너 항구다. 홍콩 첵랍콕 신공항은 세계 1위의 항공화물 공항이다.
홍콩은 부동산 개발로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기에는 땅이 비좁다.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과거에는 도시 개발로 건설업자가 많은 돈을 벌었다. 홍콩의 억만장자 대부분 건설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별도 지역의 신규 개발은 어려웠고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가 주를 이뤘다. 이런 부동산 개발은 도시개발과 경제성장의 도구 노릇을 해왔다.
가장 높은 빌딩은 484m의 국제상업센터(ICC)다. 세계 3위의 고층건물이다. 주룽반도 남부의 번화가 침사추이에 있다. 침사추이에서 빅토리아 항구 건너편에 있는 곳이 센트럴(中環·중환) 지역이다. 홍콩섬 북부인 이곳은 홍콩을 상징하는 고층건물이 유독 많은 금융중심지다. 센트럴 지역의 HSBC 빌딩에 영국 HSBC은행, 뱅크오브 차이나 빌딩에 홍콩 2위의 상업은행인 중국은행이 자리하고 있다. 홍콩 3위 금융회사 동아은행과 유력금융사 항셍은행 역시 이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센트럴 지역에 있는 금융회사들은 홍콩의 스카이라인과 함께 홍콩의 활기찬 경제를 잘 보여준다. 이곳에 서면 홍콩의 미래가 보인다. 센트럴 지역은 해변 재개발과 정부청사 건립 등 추가적인 부동산 개발로 또 한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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