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THE ECONOMIST - “전문가를 믿지 마라”
Features THE ECONOMIST - “전문가를 믿지 마라”
노리나 허츠는 경제학자치고는 다소 글로벌한 매력을 뿜어낸다. 다보스 포럼과 TED(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 강연의 고정 멤버인 그녀는 한때 빌 클린턴(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화 회의에서 그와 같은 연단에 섰다), 가수 밥 겔도프,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같은 유명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세계 각지의 글로벌 수도(이스탄불·칸·암스테르담)에서 글로벌 경제 동향과 전략적 의사결정에 관해 강연을 한다.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는 런던의 자택으로 그녀를 초대해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세계화와 민주주의에 관한 그녀의 지론을 들었다. 고(故)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도 전화를 걸어 그녀의 저서를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열성 팬을 둔 영국인 컬트 디자이너(그리고 친구)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2012년 그녀의 웨딩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그녀의 결혼식에는 영화배우 레이철 와이즈와 다니엘 크레이그가 참석했다.
록 가수 보노는 그녀를 친구이자 스승으로 꼽는다.(보노는 아프리카의 에이즈 퇴치 기금 모금을 위한 RED캠페인을 전개한다. 그 캠페인을 시작한 데 그녀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그녀는 변화에 관심이 많다.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 말이다.”) 지난 9월 중순 허츠의 신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의 의사결정법(Eyes Wide Open: How To Make Decisions in a Confusing World, 이하 의사결정법)’의 출판을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초대손님 리스트는 런던의 저명인사 인물정보 서비스 목록 같았다. 닉 클레그 부총리, 영화배우 루퍼트 에버렛, 철학자 알랭드 보통, 그리고 이브닝 스탠더드, 파이낸셜 타임스 주말판, 인디펜던트 신문 편집자 등이 참석했다.
10년 전까지는 허츠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성싶다. 1990년대 후반 그녀는 영국 학계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땀 흘리고 있었다. 정부에 협력하고 은행과 투자회사에 조언을 했다. 2001년에 펴낸 그녀의 저서 ‘소리 없는 정복(The Silent Takeover)’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다국적기업들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기업들에게 도덕적으로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2004년의 후속작 ‘부채 위협(The Debt Threat)’에선 다가올 금융시장의 붕괴를 정확히 예견했다. 그와 함께 허츠는 좌파 반세계화 진영의 젊고 날씬한 선지자로 일약 저명인사가 됐다(참고로 그녀 자신은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자본주의가 공익을 위한 강력한 변수가 될 수 있으며 다만 정부의 견제가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출판된 ‘의사결정법’은 우리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지 그리고 정보과잉의 시대에 과연 전문가를 신뢰할 만한지를 다룬다. 허츠는 경제학자로서 자신의 뿌리를 훨씬 뛰어넘는 문제와 씨름한다. 바로 전문지식의 성격이다.
허츠의 삶은 항상 우상타파적인 아웃사이더와 인사이더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그녀의 부모는 이스라엘계 런던 이민자다. 그녀는 세속적이고 정치색 강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증조부 조셉 H 허츠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유대교 최고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잘 나가는 패션 니트웨어업체 크로체타를 경영했다. TV수사물 시리즈 ‘스타스키 앤 허치’에서 스타스키 역의 폴 마이클 글레이저가 그 브랜드의 흑백 카디건을 착용했다. 모친은 1987년 보수당 의원으로 출마하기도 했다. 그녀는 허츠와 여동생에게 “남자 양말을 빨지 말라, 군중을 따르는 양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곤 했다.
허츠는 신동에 가까웠다. 19세 때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을 졸업하면서 철학과 경제학 학위를 취득했다. 곧이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MBA, 그리고 훗날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의 지도교수 중 한 명인 데임 샌드라 도슨은 현재 케임브리지대 부총장이다. “군계일학의 뛰어난 학생이었다”고 그녀를 기억한다. “항상 미래 이슈를 예견하고 남들보다 앞서 그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1991년 허츠는 할리우드로 건너가 연예 기획사에서 일했다. 하지만 와튼 스쿨에서 그녀를 지도했던 교수 중 한 명의 설득으로 진로를 바꿔 러시아 주재 세계은행에 들어갔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최초의 증권거래소 설립을 돕는 일이었다(처음에는 담배와 납골함이 거래품목의 전부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허츠는 5년간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초창기 자본주의의 의도하지 않은 영향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리고 병원과 학교 같은 러시아의 제도가 사유화의 압박으로 붕괴되는 광경을 목도했다. 이 기간에 경제개발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하버드대의 마이클 포터를 알게 됐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집트·요르단의 재계 지도자와 관료 40명으로 구성된 팀의 책임자로 허츠를 발탁했다. 정부가 그 지역의 격차를 메우는 데 실패한 참이었다.
그에 따라 기업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구성된 팀이었다. 2001년까지 그녀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비용(그리고 역으로 사회적 이익을 확대하는 본질적인 잠재력)을 충분히 목격했다. 그것을 토대로 ‘소리 없는 정복’을 펴냈다. 그런 이론이 등장하기 알맞게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회의는 폭력 시위로 얼룩졌다.
전형적인 미국 기업탐욕의 상징인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매장들이 박살났다. 2년 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회담에선 한 이탈리아인 시위자가 경찰관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경제학자는 세계화에 찬성하거나 아니면 반대하거나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기업이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보통사람을 억압한다는 시각 아니면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제한다는 관점이었다.
허츠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인간적 맥락이 배제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한 인간적 요소를 되살려 기업과 사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다국적 기업들이 이익과 주주에만 시선을 두지 않는 ‘포용적(inclusive)’ 자본주의를 그렸다. 그리고 기업들이 사회적 요구를 묵살한다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또한 새 글로벌 경제에선 기업들이 정부의 권력을 잠식한다고 내다봤다. 그리고 규제 받지 않는 시장의 부정적인 영향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허츠는 그 책에서 세계의 취약한 인구집단에 자본주의가 남긴 폐단 중 일부를 기업이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들이 앞장서 지속가능성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환경파괴나 근로자 착취와 관련된 제품은 보이콧 당한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기업들에게 알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 같은 윤리적 자본주의론에 전통 좌파와 우파 모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현재 그 이론은 버젓이 주류 대열에 올라섰다. 요즘 다우나 나스닥 상장기업 중 일정 형태의 지속가능 개발팀을 두거나 공익성 광고 캠페인을 실시하지 않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10여년 뒤 마지막으로 웃고 있는 사람은 허츠다. “역시 내가 옳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때의 비판론자들이 이념적 컴퍼스를 당시에 내가 서 있던 자리로 옮겼다.”
그 책은 17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와 같은 엄청난 성공으로 허츠는 “반세계화 운동의 상징적 여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글로벌 경제에 관해 준비된 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허츠의 새로운 명성에 모두가 갈채를 보낸 건 아니었다.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좌파 학자 타릭 알리의 ‘소리 없는 정복’에 관한 서평이 대표적이다.
그녀가 주장한 제3의 길 자본주의는 “동종요법 물약으로 암이 치료되기를 기대하는” 격이라고 평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마틴 울프는 “지적으로 알맹이가 없다”고 혹평했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진부한 관측 투성이의 장황한 넋두리다 … 이 책에는 경제와 시사문제에 약간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알지 못할만한 새로운 사실은 전혀 없다.” 가디언지는 “숨 막힐 듯한 글로벌 헛소리(breathless globaloney)”라고 비꼬았다.
허츠는 그와 같은 비판자들을 “어린 여성”이 각광받는 걸 원치 않는 구세대 패거리로 일축한다. “내 연구에 대한 한 가지 비판이 특히 기억난다. 그 평론가는 [저자 사진 속의] 내 구두에 관한 이야기에 주어진 시간의 절반을 썼다. 나는 지적 비판의 수준이 그 정도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두 번째 저서 ‘부채 위협’이 출판됐을 때도 마찬가지로 평가가 엇갈렸다. 인디펜던트지 평론가는 “부채에 관해 앞뒤가 맞지 않는 안이한 주장들의 모음”이라고 묘사했다. 모든 빈국의 부채를 탕감해줘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을 비웃었다. 가디언지는 “온갖 날짜와 이름이 엉망진창”이라고 평했다. 반면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대단히 명쾌하다”고 칭송했다.
허츠는 ‘부채 위협’ 출판 후 몇 년 동안 케임브리지와 에라스무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다보스 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글로벌 경제협상으로부터 대중의 정치참여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에 관해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조언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음의 대형 캠페인을 모색하는 듯했다.
2007년에는 영국 채널 4의 다큐멘터리 ‘축구선수들의 100만 파운드 기부(The Million Pound Footballers’ Giveaway)’를 진행했다. 그녀가 영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프리미어 리그 축구선수들을 설득해 하루 치 급여를 영국의 저임 간호사들에게 기부하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약속된 75만 파운드의 25%만 모였다고 알려졌다.
그뒤 2010년 허츠는 런던에서 ‘전문가를 어떻게 이용하고 언제 이용하지 않는가’ 라는 주제로 TED 강연을 했다. 의학으로부터 정치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얼마나 자주 그릇된 조언을 하는지 거듭 강조했다(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의학 전문가가 병명을 알아 내지 못한 수수께끼의 소화기 질환으로 1년에 걸쳐 큰 고생을 하면서 얻은 통찰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중 개개인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라고 촉구했다. ‘의사결정법’의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책의 바탕을 이루는 기본 전제는 디지털 시대에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매일 1960년대의 3배에 달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갈수록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는 본능적 그리고 계획적인 다수의 전략을 구사해 온갖 데이터를 걸러낸다고 허츠는 말한다. 게다가 우리는 “전문가들에 중독된” 사회라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의 분석방법은 종종 불완전한 논리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감정적 한계를 토대로 한다. 그리고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건 우리뿐이 아니라 대다수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행동과학과 심리학으로부터 경제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최신 리서치를 연구하며 5년을 보낸 뒤 허츠가 도달한 결론이다. 현실 세계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를 숱하게 찾아냈다.
때때로 그 책은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뻔한 소리 같은 인상을 준다. 예를 들면 정보과잉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디지털 안식일을 가지라고 제안하거나, 하룻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나서 배가 든든할 때 대체로 더 좋은 결정을 내린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또한 흥미로운 사례 연구를 다수 제시한다.
한 두 가지 불완전한 가정이 어떻게 직장생활의 위기, 결혼의 파탄, 나아가 의학적 비극과 재정파탄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에서 허츠는 영화제작자 고(故) 리처드 자눅이 어떻게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대형 흥행작의 바로 뒤를 이어 ‘헬로 돌리’와 ‘닥터 두리틀’ 같은 실패작을 내놓게 됐는지 해부한다. 자눅의 경우 문화의 시류 변화를 잘못 읽었다고 분석했다.
1960년대 초의 황금기에서 4년만에 베트남전과 케네디 암살의 대혼란으로 시대상황이 급변했다. 자눅의 관객들은 부담 없는 뮤지컬을 더는 원치 않았다. “그는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미국의 환경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이는 미래성공의 지표로 “과거에 지나치게 연연한” 사례라고 허츠는 말한다. “오로지 경험에 근거한 직감에만 의존해 새 정보의 변화흐름을 간과했다.”
“우리는 하루에 1만 건의 사소한 결정을 내리며 그중 227건이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다,” “뮤추얼 펀드 운영자의 70%가 시장지수보다 수익률이 낮다.” 허츠는 이와 같은 통계로 무장한 채 심리학·사회학·경제학을 넘나들며 모든 사람이 최적의 선택을 간과하도록 만드는 외적·내적 요인들을 추적한다. 그리고 우리의 심장을 절개하려는 외과의사든 국회의원이든 왜 우리가 그렇게 권위에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기 두려워하는지를 탐구한다.
의사결정을 잘 하려면 자신의 충동을 재검토하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허츠는 리먼브러더스와 그 문화의 예를 들어 반대의견을 권장한다. 리먼에서는 불화를 일으키면 “직장 생활이 끝장난다”고 간주됐다(리먼은 2008년 파산해 금융시장 붕괴를 촉발했다). 그녀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뿐 아니라 일반대중의 조언을 구하라고 분명하게 제안한다. “경험은 전문지식보다 열등하지 않다. 비즈니스에서 가치 있는 통찰은 종종 현장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허츠는 정말로 지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 필요한 훌륭한 안테나를 갖고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학장을 지낸 데보라스파 버나드 칼리지 학장이 말했다. 15년 전 한 학술회의에서 허츠를 처음 만났으며 ‘의사결정법’이 출판되자마자 독파했다. “그녀가 지닌 매력 중 하나는 어려운 학술이론을 일반 독자가 알기 쉽게 풀어 쓰는 능력이다.”
물론 여기서 허츠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를 하고 있다. 전문가이면서 사람들에게 전문가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라고 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면 ‘의사결정법’은 그녀의 저술활동 초기의 회의적인 충동으로 복귀하려는 시도를 상징한다. 실용적 지침서라기보다는 우리 일상생활을 어지럽히는 데이터에 비판적 안목으로 대처하라는 촉구에 더 가깝다. 본질적으로 이 책은 허츠의 탈무드 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모든 사람과 사물에 의문을 던지도록 제안한다는 점이 그렇다. 실제로 초기의 윤리적 자본주의론으로부터 ‘의사결정론’에 이르기까지 허츠의 모든 저작을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는 현재 상태에 도전하려는 그녀의 끊임없는 욕구다. 그것이 경제모델이든 의술이든 정치권력이든 상관 없다.
도전하라(기업·경제학자·의사). 의문을 던져라(글로벌 경제 시스템, 주식 투자 방식). 통념을 타파하라. “나는 정말로 권력과 홍보 같은 문제를 고찰한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 다음에 현명하고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한 더 큰 통찰을 주는 현실세계 스토리 또한 찾는다.”
‘의사결정법’의 출판으로 허츠는 사이비 메시아의 땅에서 또 하나의 처세술 권위자로 간주되는 위험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책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관한 토론을 활성화하는 불씨가 되기를 그녀는 희망한다. “사람들은 확실성을 찾는다”고 그녀가 말했다.
“세상이 더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에게 확실성을 주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말해줄 사람을 더 많이 찾는다. 지난 수년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세상에 확실성은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따라야 할 하나의 전략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다.”
- 필자 스테이시 퍼먼은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의 매체에 기고하는 언론인이다. 근저로 ‘전설적인 시계 개발 경쟁(A Grand Complication: The Race To Build the World’s Most Legendary Watch)’이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韓 밸류업 선도 사명감 갖고 노력”
2‘은둔형’ 정유경 회장, ㈜신세계 ‘미래 메시지’ 던질까
3HD현대重, 캐나다 잠수함 포럼 참석...현지 맞춤 모델 소개
4함영주 회장 “글로벌 시장 눈높이에 맞는 주주환원 이행할 것”
5케이뱅크 “앱에서 한국거래소 금 시장 투자 가능”
6DGB금융, ‘디지털 상생 기부 키오스크’ 이웃사랑 성금 전달
7'고가시계 불법 반입' 양현석, 법정서 입 열었다
8연일 추락 코스피, 2,400선마저 하회…반등 여지 있나
9두나무, ‘업비트 D 컨퍼런스 2024’ 성료…현장 방문객만 135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