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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FOOD - ‘가을의 첫 바람’ 같은 요리

culture FOOD - ‘가을의 첫 바람’ 같은 요리

‘미국 최고의 새로운 레스토랑’으로 평가 받는 알마의 아리 테이머, 자연을 떠올리는 순한 맛으로 주목 받아



차세대 미국 요리의 모양과 맛을 알고 싶다면 오랫동안 잊혀졌던 로스앤젤레스 도심으로 가 보자. 빈민가와 고층 건물이 뒤섞여 있는 이 지역은 최근 들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올림픽 불러바드로 가서 클럽 라스 팔마스의 간판을 찾아라. ‘호스티스 댄싱(Hostess Dancing)’이라고 새겨진 점멸식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곳이다. 그 바로 옆에 알마(Alma)라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다. 허름한 건물들이 늘어선 황량한 거리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나무 판자로 장식된 정면이 눈길을 끈다.

안으로 들어가면 임시 케이터링 업소나 와인 바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평범한 흰색 벽에 걸린 선반 위에는 각종 유리병과 책, 허브 통들이 놓여 있다. 칠판 위에 누군가가 ‘Alma’라고 휘갈겨 써 놓았다. 음식 전문 잡지 본 아페티는 이곳을 ‘미국 최고의 새로운 레스토랑’으로 소개했다.

흰색 코리안(천연 대리석 대신 사용되는 첨단소재)으로 된 바의 한쪽 끝에서 뾰족한 귀에 턱수염을 기른 호리호리한 청년이 주방 쪽에 대고 주문받은 내용을 외친다. 열성적인 인턴 직원처럼 보이지만 이 레스토랑에서 2013년의 가장 매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요리를 책임지고 있는 개성 강한 주방장 아리 테이머(27)다.

과거 미국의 요리사들은 손님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10년 전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 이후로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와 그들의 레스토랑이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동서양의 퓨전 요리로 주목 받은 데이비드 장의 모모푸쿠, 색다른 육류 요리로 명성을 얻은 비니 도톨로와 존 슈크의 애니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알마의 테이머는 다르다. 그는 미국의 동년배 요리사들보다는 스페인의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스처럼 소수 팬에게만 알려진 유럽 거장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테이머는 자신이 먹고 싶다기보다(물론 자신의 요리를 먹는 걸 좋아하기는 한다) 느끼고 생각하며 기억하고 싶은 음식을 만든다.

“내 음식은 매우 개인적인 특성을 지녔다”고 테이머는 설명한다. “기억에서 영감을 얻어 맛과 식감과 온도를 혼합한 결과물이다. 어쩌면 내가 말하고 싶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게 내버려둔다.”

최근 어느 수요일 저녁 테이머는 자신의 비전을 두 시간짜리 시식 메뉴(1인당 90달러) 형태로 선보였다. 이 메뉴는 밝은 색상의 깔끔한 ‘스낵’들로 시작됐다. 초록색의 진한 물냉이 소스를 얹은 태평양산 굴 한 개, 성게알과 부라타 치즈, 캐비어, 감초잎을 잔뜩 얹은 작은 영국식 머핀, 예루살렘 아티초크(돼지감자)와 소고기 타르타르를 곁들인 타코, 해초와 두부 튀김 등이 입맛을 돋궜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9가지 코스 요리가 나왔다. 테이머는 대학 시절 요리를 시작했다. 현재 그의 요리가 개인적인 특성을 내세우듯이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이유 또한 개인적이다. 유전적으로 담낭 기능장애를 타고난 데다 어린 시절 기름지고 자극적인 타코 벨 찰루파를 즐겨 먹었던 그는 복통이 시작됐다 하면 16시간씩 꼼짝 못하고 누워 있곤 했다.

“그래서 내가 내 몸안에 집어넣는 음식, 더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의 몸안에 집어넣는 음식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테이머는 말했다. “그 생각은 내가 요리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알마의 가장 인상적인 요리들은 자극적이지 않고 순한 맛이다. 테이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요리를 할 때 소금이나 식초를 많이 쓰지 않는다. 지방이나 버터도 거의 안 쓴다. 애니멀 레스토랑에서 하는 방식과는 정반대다.”

단풍나무로 훈연한 뒤 버번 위스키에 담가서 살짝 얼린 오리 간과 수비드(진공저온 요리법) 방식으로 조리한 당근, 커피 그래놀라, 회향 꽃가루에서는 가을의 첫 바람 같은 맛이 났다. 또 던저니스크랩에 얇게 저민 배 조각과 바삭바삭한 케일 플레이크, 발효시킨 양배추 퓨레를 곁들이고 위에 생강 가루를 흩뿌린 요리는 게살 맛이 한층 더 살아났다.

시식 메뉴에서 가장 놀랍고도 테이머의 개인적 특성이 돋보이는 요리는 ‘프로즌 섬머’라는 이름의 디저트다. 캐모마일 세미프레도(아이스크림과 비슷한 이탈리아식 디저트)와 감초 아이스크림, 괭이밥 소스, 레몬밤(향수박하) 머랭, 천수국과 야생 회향 등의 허브, 캐모마일 꽃은 어린 시절 테이머가 산타 크루즈의 산에서 보낸 여름을 떠올린다. 테이머에 따르면 그곳은 “안개 낀 아침의 차갑고 습한 공기가 오후가 돼야 가시는 곳”이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면 야생화와 야생 허브의 향이 한층 더 강렬해지는 곳”이다. 테이머는 식사 전에 디저트를 먼저 내놓을 때도 그 이유를 설명하는 법이 없다(알마는 테이머가 직접 손님들에게 음식을 날라다 줄 정도로 분위기가 편안하다). “손님들이 재료 하나 하나에 관심을 쏟기보다 요리 전체의 느낌을 이해하기 바란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요리를 했기 때문에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테이머의 부드러우면서도 자기성찰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요리가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유행했던 트렌디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대체하게 될까? 알마는 로스앤젤레스 시내에 문을 연 후 첫 9개월 동안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지난 3월에 그곳을 찾았을 때는 그 작은 레스토랑의 테이블이 반쯤 비어 있었다. 하지만 본 아페티의 레스토랑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8월 이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 중 하나가 됐다.

그곳에서 만난 한 여성은 최근 남편과 이혼한 후 곧 시내의 로프트를 팔고 매사추세츠주로 이주할 계획이라며 그 식당을 찾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평판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NPR(미 공영 라디오)에서 미국 최고의 새로운 레스토랑이라고 소개하는 걸 들었다. 게다가 집 근처에 있으니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기 전에 꼭 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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