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INSIDE THE HERMIT KINGDOM - 북한 그때와 지금
Features INSIDE THE HERMIT KINGDOM - 북한 그때와 지금
1995년 봄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기자 약 20명이 평양을 일주일 동안 방문했다. 당시 북한은 지금보다 더 고립된 나라였다. 방문단 중에 타임지의 베이징 특파원 하이메플로르크루츠와 부인 애나가 있었다. 내 부모님이다. 방문단 일행은 여느 관광객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관광명소를 찾아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금까지 북한에 세 번 다녀온 아버지는 내가 베이징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 ‘은둔의 왕국’에 한번 다녀오라고 권유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곳에 갔을 때 웅장한 기념물들과 북한이 자랑하는 주체사상과는 별도로 이 나라의 독특하고 복잡한 특성을 감지했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한 느낌이었다. 1970년대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아버지는 북한 주민들이 정보에 굶주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창조성과 기업가 정신이 억눌린 듯한 분위기도 느껴졌다고 했다. 미학적 측면에서는 최신 건축물들도 이미 오래 전에 한물간 스탈린주의의 디자인 콘셉트를 찬양하는 듯 보였다. 이웃의 중국과 한국은 고속 성장을 시작했지만 북한은 과거 속에 얼어붙은 듯 보였다. 당시 나로서는 흥미가 느껴지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나라였다.
열다섯 살에 봄방학을 북한에서 보낸다는 생각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7년이 흐른 뒤 평양 여행에 대한 내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북한의 호전적인 핵위협,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31세의 새 지도자 김정은 등을 지켜보면서 부모님께 들었던 것들을 직접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북한이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람들은 김정은이 북한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 궁금해한다.
내가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낸 중국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에서 큰 역할을 하기 시작하자 가벼운 호기심은 곧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두 나라는 수십 년 동안 거의 가족 같은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북한이 서방에 핵무력을 사용하겠
다고 위협하면서 중국의 대미 경제 이해관계가 위태롭게 되자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아버지는 언제나 외부 세계에 반항적이고 비밀이 많은 나라 북한에서 내가 경험하게 될 일이 부모님의 경험과 거의 흡사할 거라고 예상했다. 여러 면에서 그 예상은 적중했다. 하지만 1995년 당시 북한은 세계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반면 현재 북한의 지도자들은 비밀주의와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세계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를 즐기는 듯하다.
이 모든 것이 북한에 가보고 싶은 마음을 한층 더 부추겼다. 그래서 베이징의 북한 전문 여행사인 고려여행사에 예약을 했다. 1995년 우리 부모님과 기자 방문단 일행도 이 여행사를 이용했다. 9월 초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떠나기 전 부모님은 오래된 가족 앨범을 뒤져서 북한 여행 당시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다. 그 사진들이 내 여행의 안내서 역할을 한 셈이다.
북한에 도착하자 우리 일행은 부모님이 들렀던 곳과 똑 같은 관광명소들을 찾아가 카메라 앞에서 비슷한 포즈를 취했다. 시간만 한 세대가 흘렀을 뿐이었다. 부모님의 북한 여행 하이라이트 중에는 통상적으로 관광객들이 이끌릴 만한 요소가 아닌 대목도 있었다. 한 골프 코스에서 북한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고급 스포츠 골프를 즐긴 일과 어떤 호텔 앞에서 미국의 전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를 만난 것 등이 그 예다.
알리는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 스포츠·문화 축제’에 외국인 프로 레슬러단의 일원으로 참석 중이었다. 이 행사는 평양에 외국인과 관광객들을 유치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긍정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시기적으로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지 1년 남짓 지났고 그의 아들 김정일 장군이 북한 지도자로서의 새 역할에 적응해 가던 때였다.
내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골프 코스를 이용하거나 전설적인 복서와 악수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와 유사한 경험은 했다. 난 볼링장에서 볼링화를 신고 10프레임 게임을 했다. 북한 주민들이 그렇게 서구적인 스포츠를 즐길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내가 평양에 있는 동안 알리와는 매우 다르지만 역시 상징적인 미국 운동선수 한 명이 그곳을 방문했다. 미 프로농구(NBA) 슈퍼스타 데니스 로드먼의 기이하면서도 논란 많았던 평양 방문이 내 여행 일정과 딱 하루 겹쳤다.
로드먼도 알리처럼 기행과 독특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하다. 로드먼은 1990년대에 자서전 홍보 당시 웨딩드레스를 입고 대중 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로드먼은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그의 두 번째 ‘농구 외교’ 방문 길에 오른 참이었다. 그는 김정일이 사망한 뒤 1년이 조금 더 지난 2013년 3월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김정일의 후계자인 그의 막내 아들 김정은은 농구광으로 약 20년 전 그의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지독히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의 전능한 지도자로서 새로운 역할에 첫 발을 내디딘 참이었다.
우리는 인민대학습당의 컴퓨터 학습실도 방문했다. 조용한 방안에 가지런히 줄지어 놓인 컴퓨터 앞에 북한 주민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인트라넷에만 연결된 그 컴퓨터들로 북한 출판물의 디지털판으로 보이는 콘텐트를 열람했다. 학습실 안은 불안감이 돌 정도로 조용했다. 평양의 도서관 겸 강연장인 인민대학습당은 우리 아버지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컴퓨터 학습실이 없었다. 그 대신 우리 부모님은 줄줄이 놓인 책상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 찬 조용한 학습실을 구경했다.
인민대학습당에서 우리의 안내를 맡은 안내원은 지난 1월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와 구글 대표단이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들을 안내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를 한 컴퓨터 앞에 앉히고는 검색어를 외쳐보라고 했다. 누군가가 ‘USA’라고 외쳤다. 수백 건의 검색 결과가 떴는데 대다수가 과학 출판물과 관련된 것이었다.
인민대학습당 안에는 “음악감상실”도 있었다. 대형 휴대용 카세트 라디오가 놓인 책상들이 줄지어 있는 큰 학습실이다. 안내원(내가 필리핀 태생이라고 말하자 곧바로 “럼주!”라고 외칠 정도로 재미있는 성격이었다)이 한 카세트 라디오에 비틀스 모음집 CD를 넣었다. 그러고는 누구나 가사를 아는 노래라며 ‘Yellow Submarine’을 다 함께 따라 부르라고 했다.
난 CD 케이스를 집어 들고 북한 주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노래는 어떤 것들인지 살펴 봤다. 그 중엔 비틀스의 열성 팬인 아버지가 그 제목을 따서 내 이름을 지은 노래 ‘Michelle’(‘Rubber Soul’ 앨범 수록곡)도 있었다. 나는 북한 여행이 어땠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 나라의 현재 정치·경제 상황과는 상관 없이 매혹적인 여행지”라고 대답한다.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그곳에 가면 북한과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이 언론이나 정치 선전을 통해서만 북한을 접한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직접 가서 보면 이 수수께끼 같은 나라를 이해하는 데, 아니면 적어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평양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과 우리 여행을 인도한 안내원들은 생각보다 솔직했다. 자신들의 일상생활과 포부를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한 안내원은 아내와 갓 태어난 딸과 함께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인터넷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위험한 허위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희망은 세계 다른 곳의 사람들에겐 하찮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대다수 북한 주민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또 바깥 세상의 삶에 순수한 호기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양의 데이트 풍속은 어떻게 다른지, 학교 생활과 스포츠 활동은 어떤지 등을 물었다.
사실 내가 북한에서 가장 이상하게 느낀 점 중 하나는 그 나라가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부모님의 눈을 통해서 이미 모든 걸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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