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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 - 복지 갈등 극복할 한국형 모델 모색

Forum - 복지 갈등 극복할 한국형 모델 모색

정·재계와 학계 전문가 18명 열띤 토론 복지 확대에 공감, 재정 마련 방안엔 이견
2013 유민포럼 3부 종합 100분 토론이 진행중이다. 왼쪽부터 옥동석 원장, 김정호 교수,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 신예리 JTBC 국제부장, 홍종학 민주당 의원, 문진영 교수, 정승일 박사.



또 다시 복지다. 박근혜정부의 기초연금 공약을 두고 정·재계와 시민단체, 학계가 대립 양상을 띠고 있다. 2011년 초 민주당이 무상복지를 들고 나온 이후 한국 사회는 시도 때도 없이 ‘복지 갈등’을 빚었다. 갈등이 계속되면 결과 없는 정치적 소모전이 될 뿐이다. 한국 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중앙일보·JTBC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10월 14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2013 유민포럼’을 열어 한국형 복지모델을 탐색했다.

3부로 나눠서 진행된 포럼에는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최병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비롯한 복지 전문가 18명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교수·정치인·관료가 폭넓게 참여해 의견을 내놨다. 오전에 진행된 1부에서는 선진국의 복지모델과 비교해 한국 복지의 현황을 살피는 자리가 마련됐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 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었고, 마지막 3부에서는 전체 내용을 종합하는 100분 토론을 진행했다.



한국 복지 지출 OECD 회원국 절반 수준토론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대립되는 의견이 있으면 차분하게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하는 성숙한 토론문화를 보여줬다. 자칫 분위기가 과열되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는 부분에서는 재치 있는 발언과 비유·유머를 섞어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긴 시간 진행됐음에도 대다수 참가자들은 끝까지 행사에 집중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300여명은 마지막까지 거의 자리를 지키며 한국형 복지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중요한 순간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보태며 토론을 더욱 알차게 만들었다.

진보·보수 모두 복지 확대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부원장은 양쪽의 중간자 입장에서 방안을 제시했다. 신 부원장은 ‘한국 복지의 지속가능성’ 발제에서 “한국이 일정 수준까지 복지 지출을 늘리되 장기적 계획에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은 재정이나 국가 부채가 양호하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국가경쟁력 순위가 상승하고 있어 지속가능성 면에서 월등하다”며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9.3%(20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8%)의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 복지 확대 욕구도 확인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날 심포지엄에서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성장과 복지 중에서는 복지 확대(42%)보다 경제 성장(55%)을 중시했다. 복지만 따지면 확대(53%)를 원하는 사람이 현 수준 유지(33%)가 축소(11%)보다 많았다. 청년층의 확대 요구(20대 70.5%, 30대 66.1%, 60·70대 34.5%)가 특히 높았다.

하지만 이날 심포지엄에서 복지 확대 속도를 두고서는 의견이 갈렸다. 인하대 윤홍식 사회과학부 교수는 ‘진보가 그리는 복지국가’ 발제에서 “복지에 공짜는 없지만 나눠 쓸 것은 있다. 1993년 이후 경제 성장을 해도 부(富)가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상위 30%만 소득이 는다.

소득 불평등이 반복될 때 경제위기가 온다”며 북유럽형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상호 연구위원은 ‘주요국의 복지모델’ 발제에서 “복지 지출을 OECD 수준으로 급속하게 확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감내할 정도여야 하고 차입해서 확대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며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은 사회통합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유럽 선진국과 단순 비교는 곤란양측은 조세 부담 증가의 방향에는 일치했지만 속도에는 이견을 보였다. 남 위원은 “점진적으로 늘리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도 “복지를 확대할 때 반드시 세출 절감이나 세수 증대 방안을 함께 제출하도록 재정준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하대 윤 교수는 “재원 뒷받침 없이 보편적 복지가 불가능한데, 모두가 부담하되 부자가 더 부담하는 누진적 보편 증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문진영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977년 도입 이후 손대지 않은 부가가치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가 바라보는 복지는 어떤 모습일까. 보수 진영 학자들은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는 주로 유럽 등 복지 선진국과의 비교에서 출발하는데, 이런 단순 비교가 곤란하다”고 입을 모은다. 복지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무상복지를 쏟아내서는 안 된다. 신중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한번 쏟아낸 복지는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수의 시각에서 진단한 한국 복지의 현주소다.

이날 포럼 첫 발제자로 나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상호 연구위원은 복지 예산 확충 때 간과하기 쉬운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요국의 복지모델 비교’ 발표를 통해 복지 모델을 고부담-고복지 지출 국가(북구형), 중부담-고지출 국가(남유럽형), 저부담-저지출 국가(영미형) 등 세 가지로 구분한 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한국은 중부담-고복지 지출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부담(세금)을 늘리기는 쉽지 않은 반면 고령화·국민연금 성숙 등으로 지출은 급증할 것이어서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크게 위협받게 된다는 뜻이다.

현진권 한국재정학회장은 무상복지와 같은 복지 팽창을 ‘정치 실패’라는 틀로 해석했다. ‘경제 여건에 맞는 복지정책 모색, 정치 실패로서의 복지 팽창’ 발제를 통해서다. 현 회장은 “복지정책은 경제적 합리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정치적 합리성에 의해 결정된다”며 “정치인이 지지도를 얻기 위해 무상복지 정책을 펼치면, 결국은 미래의 공익에는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복지정책이 포퓰리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정 건전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현 회장은 “한국의 국가부채가 GDP 대비 35%로 양호한 듯 보이지만 50조원가량의 빚더미를 안고 있는 공기업을 뺀 수치”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임현진(사회학) 교수는 “김대중 정부 때 20조원, 노무현 정부 때 30조원, 이명박 정부 때 100조원으로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세부 사안 놓고 여야 대립보수 진영의 반박도 만만찮다. 노인빈곤·청년실업·빈부격차 등 손 쓸 현안이 곳곳에 널렸다. 진보 진영에서는 복지 확대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방향이라 역설했다.

복지 확대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고, 그럴 여력도 있다는 주장이다. 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보편적 증세’의 필요성을 내세웠다.

“시장에서 개별로 구매하는 것보다 사회연대 차원에서 공동구매해 나눠 갖자는 게 복지국가의 가치”라는 서강대 문진영 사회복지학 교수의 시각으로 대표된다.

인하대 윤홍식(사회복지학) 교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한국의 미래 모델로 제시했다.

그는 ‘체제 차원의 보편주의 복지국가:진보가 그려야 하는 한국 복지국가’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윤 교수는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5대 민생 불안을 제시했다. 높은 청년실업과 노인 빈곤율, 집값 불안과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 높은 교육비 등이다. 이런 문제를 보면 시장의 실패와 경제성장의 허상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숭실대 이상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토론자로 나서 보수 진영의 복지 속도조절론을 비판했다. 복지라는 것이 물건값을 올리기만 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인식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전체 산업의 60~70%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분야다. 경제 중심이 수출제조업에서 서비스 내수산업 분야로 이동했다는 말인데, 이제는 복지라는 것이 우리 내수를 활성화시키고 그것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이 생각하는 한국형 복지모델은 대체로 복지 혜택을 늘리고, 그에 따른 부담도 보편적으로 늘리는 방식이었다. 요컨대 보편적 증세에 따른 보편적 복지의 확대다.

서강대 문 교수는 “경제·문화적 여건 하에서 적정 수준으로 부담하고 적정 수준의 복지를 늘리면 된다. 복지천국인 스웨덴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인들의 안정적 소득보장을 위해선 기초연금·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계획과 목표를 제시하고, 얼마의 돈이 드는가 합리적으로 얘기한다면 국민도 (보편적 증세를) 수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승일 박사는 “교육·보육·주택 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선 보편적 복지를 해야만 혜택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고, ‘세금을 더 내야지’란 말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새누리당이 공약을 지키겠다는 것보다는 증세를 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하겠다고 하고 더 나아간 얘기는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공약을 깨겠다는 뜻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세에 대한 민주당의 생각은 좀 차이가 있다. 민주당 홍종학 의원은 보편적 증세보다는 부자 증세와 부자 감세 철회를 강력히 주장했다. 홍 의원은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중산층 복지이며 가난한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보편복지·선별복지 소득과 자산으로 수령 자격을 제한하는 게 선별적 복지고 그런 제한이 없는 게 보편적 복지다. 건강보험·무상보육 등이 대표적 보편복지고, 기초수급자 생계비 등이 선별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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