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MICRONATIONS -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하나 만들어라”
FEATURES MICRONATIONS -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하나 만들어라”
조지 크룩섕크는 황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황제와는 다르다. 그의 황실에는 전기도 수도도 없다. 그의 제국엔 사람보다 캥거루가 더 많다. 그는 오후에 샴페인을 마시며 지도자로서 호사를 누리지만 싸구려 핑크 샴페인만 찾는다.
10월 초 호주 시드니 서남쪽으로 5시간 정도 차로 달려 아틀란티움 제국(the Empire of Atlantium)에 입국(?)해 크룩섕크를 만났다. 바티칸의 약 두 배, 모나코의 절반 정도 크기의 진흙과 목초지로 ‘호주 안에 있는 가장 작은 나라’다. 슈퍼마켓이 있는 가장 가까운 두 마을이 차로 한 시간 또는 그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고 그 마을들은 15m 높이의 머리노 양 조각상과 호주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감옥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크룩섕크에게 이 농촌 낙원인 아틀란티움 제국은 자신의 거주지만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적인 제국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보이자 부모님은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크룩섕크는 돌이켰다. “그 말은 정계에 진출하라는 뜻이었지만 나는 조카들과 함께 집 뒤뜰에서 우리만의 나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가 1981년 10월이었다. 크룩섕크는 시드니 교외에 있는 집 마당 구석에 선을 긋고 그곳을 아틀란티움 제국의 수도로 명명했다. 머지 않아 조카들이 그를 조지 2세 황제(종신직)로 추대했다. 1990년대 말 조지 황제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 땅을 구입해 ‘오로라’로 명명하고 “글로벌 행정 수도, 의전의 중심, 정신적 고향”이라고 선언했다.
아틀란티움은 올해로 건국 32주년을 맞았다. 조지 황제는 다양한 곳에서 온 방문자들(일부는 군복, 일부는 기모노 차림이었다)과 나에게 각자가 서야 할 곳을 정해 주었다. 건국 32주년 기념탑 제막식의 비디오 촬영에 방해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비디오는 페이스북에 올라 이 ‘초소형 국민체(micronation)’의 약 2000명 국민에게 전파됐다. 그들은 탄자니아와 터키 같은 먼 나라 출신들이다(특히 터키에서 아틀란티움의 인기가 높다).
조지 황제는 매일 약 1건의 시민권 신청을 받으며 매년 건국일에 기념식을 갖는다. 그러나 호주나 유엔 또는 세계의 어떤 정부도 아틀란티움 국민이나 건국 기념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틀란티움의 황제는 “호주에서 일하는 외국인처럼” 호주 정부에 세금을 낸다. 사실 호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대사관처럼 생각하면 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곳을 둘러싼 나라가 허용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지 황제는 국경일을 기념해 솜사탕 색깔의 샴페인 한잔을 들고 “이런 상황에는 약간의 악의적인 요소가 있다”며 내게 윙크를 했다. 그는 아틀란티움을 실제 제국으로 생각한다. 그가 선포한 칙령은 로마 공화정 말기와 영국 크롬웰 시대에서 따온 표현으로 가득하다. 기후변화부터 안락사, 낙태권, 자기인식적 존재의 기본적 평등, 미터법 개혁 등 주장하는 의제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어떤 면에선 정치이론의 대담한 실험이고 또 어떤 면에선 야심적인 이상향 추구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행위 예술인 셈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어떻게 부르든 간에 아틀란티움은 고유한 국기, 휘장, 우체국, 우표, 통화(‘임페리얼 솔리더스’로 부르며 미국 달러화와 연동돼 있다)를 갖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국가 출신의 헌신적 추종자들도 있다. 홍콩 정부에서 고위 정책입안자로 일했던 인물이 국무장관이고, 인도 출신의 유명한 의사가 사회복지부 장관이다.
조지 황제는 “내가 15세에 생각해낸 이 작은 아이디어에 세계 도처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시민권을 갖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어떤 면에선 그 자신도 놀랐다. “그들은 아틀란티움 국민으로 불리고 싶어한다. 아주 강한 열망이지만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다.”
홈메이드 제국의 부상1964년 7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동생 레스터는 2.5x9m 크기의 대나무 뗏목을 타고 자메이카 서남부 해안에서 약 20㎞ 떨어진 먼 바다로 나갔다. 당시 그곳은 공해였다. 그는 낡은 포드 자동차 엔진 블록을 사용해 그 뗏목을 해저에 고정시키고 그 뗏목을 ‘뉴아틀란티스(New Atlantis)’로 선포했다.
1856년 미국 연방의회에서 가결된 모호한 ‘구아노섬법(Guano Islands Act, 미국 시민은 바닷새의 배설물인 구아노가 퇴적된 섬을 점령하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다)을 근거로 내세우며, 새 나라의 헌법도 만들었다. 미국 헌법에서 ‘미국’이라는 단어만 ‘뉴아틀란티스’로 바꾼 문서였다.
그의 별난 행동은 주화나 우표 등의 용품판매를 통해 해양학 연구소를 설립한다는 명분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대자연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뉴아틀란티스는 1966년 강한 허리케인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레스터 헤밍웨이의 발상은 오래 가지 못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널리 알려졌다. 그러면서 우익 자유주의자들은 인공섬 국가를 만든다는 발상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 아이디어는 근래 들어 인터넷 결제 서비스 페이팰의 공동 설립자 피터 티엘이 공해상에 떠있는 인공도시를 건설하는 시스테딩연구소에 거액을 투자하면서 다시 유행했다.
초소형 국민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19세기 초부터 있었다. 거의 국민국가(nationstates) 개념의 도래와 일치한다. 그러나 1960~70년대가 돼서야 부유한 서방의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 현상이 진정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7년 영국 근해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상요새에 세워진 시랜드(Sealand) 공국, 1970년 서호주에 세워진 헛리버(Hutt River) 공국, 1971년 덴마크 코펜하겐 근처에 세워진 자유의 마을 크리스 티아니아(Freetown Christiania)가 대표적이다.
호주 시드니 소재 매커리대의 주디 래타스 박사는 초소형 국민체 현상을 연구하는 몇 안 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래타스는 세계 전체에 공식으로 인정 받는 국가와 맞먹는 수만큼 초소형 국민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중 약 35개가 호주에 있다. 지구상에서 자칭 왕, 해적, 몽상가들이 가장 많은 나라가 호주다.
“유럽이나 세계의 다른 곳과 달리 호주의 초소형 국민체 중 다수는 정부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돼 투쟁을 지속하는 방편이 됐다”고 래타스가 말했다. “호주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고 당국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고방식이 그 연결 고리다.”
1776년 미국이 혁명으로 독립하자 영국은 그때까지 미국으로 보내던 죄수를 처리하지 못하게 됐다. 그 대안이 호주였다. 호주로 이송된 죄수들은 무자비한 억압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은밀한 멸시가 생겨나 오늘날 호주인들의 특성 중 일부가 됐다. 따라서 초소형 국민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불만을 표하고 반항하는 표시로 해당 국가에서 이탈해 자신의 나라를 세웠다.
예를 들어 폴 왕자가 이끄는 와이(Wy)공국은 자연보호구역을 통과하는 도로를 두고 지방의회와 오랜 분쟁 끝에 2004년 세워졌다. 데일 황제의 산호해 제도 동성애자 왕국(Gay and Lesbian Kingdom of the Coral Sea Islands)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호주 정부에 대한 반발로 2004년 만들어졌다. 초소형 국민체의 유일한 여성 지도자인 폴라 공주는 주택 저당권 실행 분쟁으로 2003년 스네이크힐(Snake Hill) 공국을 만들었다.
초소형 국민체 거의 전부는 군주제를 모델로 ‘국가’를 운영한다. 하지만 리히텐 슈타인이나 산마리노 같은 미소국가(microstate, 微小國家) 또는 민족자결단체나 망명정부와는 다르다. 초소형 국민체 중 일부는 정치적 망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내줘야 할지 거부해야할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저질 지도자들은 시민권 신청을 기꺼이 받아 들여 거짓 꿈으로 사람들을 유혹해 돈을 갈취한다. 래타스는 “일부는 괴짜이면서 남에게 해를 주지 않지만 사악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난 선구자가 아니다”호주에 자칭 황제가 그렇게 많은 이유를 다른 역사적인 단서에서 찾을 수도 있다. 1930년대 서호주의 분리독립 제안이 그 단서라고 래타스는 말했다. 그 제안은 호주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1970년대 들어 헛리버 공국을 설립한 서호주의 레너드 왕자는 대중의 영웅이 됐다. 헛리버는 그 후에 세워진 대다수 호주 초소형 국민체의 모델이 됐다.
레너드 왕자는 ‘대중의 영웅’이라는 호칭은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초소형 국민체 운동의 선구자’라는 칭호는 원치 않는다. 그의 대변인(이제 그는 언론 인터뷰를 사절한다)은 헛리버 공국이 초소형 국민체 현상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는 데 반발했다. “독립 선언이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문득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사소한 분쟁 또는 단순한 의견 불일치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헛리버는 그런 것과 전혀 다르다. 우리는 그런 초소형 국민체 운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헛리버 공국은 서호주 주도 퍼스에서 북쪽으로 차로 5시간 걸리는 곳의 건조한 지역에 있다. 크기는 홍콩 정도다. 그곳 주민들은 야생화를 아시아에 수출하고 관광과 주화, 우표, 장신구의 판매로 살아간다. 완전히 독립한 주권 국가라고 주장하며 호주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대신 세금에 상당하는 가치의 ‘선물’을 기증한다).
레너드 왕자의 사례는 세계 전역의 법학, 사회학 교과서에 실린다. 그가 인정하든 않든 그가 만든 모델은 오늘날까지 건재하다. 그가 저버렸다고 주장하는 나라 호주에서 특히 그렇다.
자기 침실 안의 왕자가 되려면조지 황제는 건국일 하루 뒤 공식 복장(양복, 장식띠, 메달) 차림으로 자동차를 타고 인근 도시 부로와(인구 1070명) 거리를 누볐다. 국기가 휘날리는 그의 차는 어린이 엔터테이너 피트 해적과 이동형 양털깎기 전시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고 이웃 왕국의 통치자라고 그를 소개했다. 군중은 ‘아니, 뭐라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조지 황제의 이런 행동은 아틀란티움이 실제 지도자를 가진 실체 있는 제국이라는 물리적 현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또 그의 자기비하적인 자기확대라는 모순된 조합의 일부이기도 하다. 조지 크룩섕크는 자신이 하는 일에 위엄이 있다는 착각을 하지않는다. 그는 머리가 비상하고 기이하게 매력적이며 유머가 있다. 그의 초소형 국가 실험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처럼 호소력을 갖는 이유다.
그는 차량 퍼레이드 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계에서 실제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 스스로 ‘내 집 안의 왕자’라고 부른다고 자신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나 그 후계자들과 동급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호주의 대다수 초소형 국민체가 실패한 이유가 그런 사고방식이라고 크룩섕크는 말했다. 그들은 한 가지 재능만 있는 사람으로 정부에 대한 한 가지 불만이 그들의 자칭 독립을 부추겼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때문에 모든 일을 망치고 말았다. “초소형 국민체를 시작하는 사람 중 다수는 자신이 시찰하며 둘러보는 모든 것의 군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실제로 기대한다. 그들이 시찰하고 둘러보는 것이 작은 땅과 빨랫줄이라고 해도 말이다. 말도 안 되는 난센스 아닌가?”
조지 황제에겐 아틀란티움 제국이 자신의 근거지인 동시에 자신이 열렬히 추구하는 운동의 무대다. 또 자신의 취미인 동시에 “어린 시절의 정치이론 실험이 되물릴 수 없게 된 상황”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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