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ON - 속도의 유혹에 빠지다
PASSION - 속도의 유혹에 빠지다
진정한 수집가는 소유보다는 뭔가를 찾아 헤매는 행위에 흥미를 느낀다. 세월이 흘러도 가치 있는 물건을 찾기 위해선 남다른 안목이 필요하다. 지난 10월 9일, 디자인이 예쁜 클래식 슈퍼카만 모으는 더리츠아이엔씨의 온대호(47) 대표를 그가 살고 있는 서울 반포동의 한 아파트 지하 2층 주차장에서 만났다. 하얀 셔츠에 네이비 스트라이프 수트, 오렌지 색 넥타이를 맨 그는 “자동차 수집가를 취재하고 있다면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왔다”며 “자동차에 관한 어떤 이야기든 환영한다”고 했다.
1층에서 지하 2층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갈 때 여기저기 흩어져 주차된 클래식 카가 보였다. 한 곳에 모두 세워 두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지하 1층보다는 2층이 한가해 다른 차와 섞이지 않게 한쪽 벽에 차를 주차했는데 민원이 들어와 여기저기 뒀어요.” 민원의 내용은 간단했다. 평소 타지 않는 차는 카 커버를 씌우는데 주민들이 그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고 했단다.
첫째, 너무 오래돼 탈 수 없는 차는 모으지 않는다. 차는 기본적으로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수집한 차 11대는 그가 번갈아가며 타고 다닌다. “나는 운전의 즐거움을 삶의 커다란 재미로 느끼는 사람이에요. 자동차를 타러 가는 순간이 애인 만나러 가는 기분과 흡사하니까요.”
그날의 기분, 약속 장소에 따라 이용하는 자동차가 달라진다. 이른바 ‘골라’ 타는 재미다. 사진 촬영을 한 날 온 대표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저스틴 비버 공연을 보러간다고 했다. 선택한 자동차는 람보르기니다. 람보르기니를 밖에서 촬영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선뜻 기자를 차에 태웠다. 아파트 입구를 나가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비 오는 날은 슈퍼카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차가 미끄러져 손상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날 온 대표는 몇 분 비 맞은 차를 깨끗하게 닦고 공연장에 간다고 했다.
둘째는 디자인이 예뻐야 한다. “자동차는 길에서 만나는 ‘대중예술’입니다. 전시회나 행사장을 가지 않아도 길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까요.” 셋째는 클래식 카여야 한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 카와 올드 카를 착각합니다. 클래식 카는 보관이 잘돼 판매 가능한 10~15년 된 차를 말하고 올드 카는 전시하는 그냥 오래된 차입니다.”
자동차 전문기자에서 수집가로온 대표가 자동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5여년 전. 한국일보·일간스포츠에서 자동차 전문기자로 일할 때부터다. 현재는 SBS ESPN 자동차 전문해설자로 활동한다. 얼마 전에는 전남 영암에서 열린 코리아그랑프리 F1에서 동양인 최초로 현장 캐스터를 했다. “F1은 자동차의 올림픽과 같아 현장 중계는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는 모터스포츠 프로모터 마케팅 사업과 해설자라는 두 가지 일을 한다. 자동차와의 인연이 유년시절부터 시작됐다. 고교 시절부터 하나씩 모은 미니어처가 200여 개나 된다. 그의 사무실에는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자동차 장난감이 몇 개 남아있다고 했다.
온 대표는 소유한 자동차를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눴다. 시스템 1은 슈퍼카인 람보르기니·페라리·포르셰·마세라티 스포츠카다. 자주 타기 때문이다. 시스템 2는 벤츠·캐딜락·재규어다. “이 차들의 특징은 ‘추억’과 ‘향수’입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타던 차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구입하게 됐어요.”
온 대표는 자동차를 통해 ‘시대의 낭만’과 ‘남자의 로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차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과 여유가 생겼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수집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어느 날 똑같은 차인데도 보관 방법에 따라 차 성능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발견했다. “그날 이후 시간만 나면 자동차를 공부했어요. 엔진·부품·드라이빙 스킬까지…” 한때는 자동차 엔진 소리만 듣고 기종이 뭔지 맞출 정도였다. 게다가 자동차를 알기 위해 직접 부품을 사서 조립도 했다.
1995년 처음 구입한 클래식 카는 3세대 포르셰 964 레드 컬러다. 직접 독일로 날아가 테스트한 후 배에 실어 가져오는데 한 달이 걸렸다. 또 한 달 뒤에는 1999년 식 재규어를 샀다. 그런데 1988년 식 포르셰가 시장에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함께 구입했다. 그의 말대로 “쾌거”였다.
이후 자동차에 빠져 틈틈히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한때는 1년에 20대의 차를 샀다. 당시에는 수집이 목표였다. 물론 지금은 노하우가 생겼다. 자동차 재테크다. 평생 갖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특별히 아끼는 차 아니면 원하는 사람에게 팔기도 한다. 그의 차를 사간 사람들 중에는 대기업 3세도 있다.
자동차 수집을 등한시하던 때도 있었다. 자동차전문 케이블 TV ‘CAR TV’를 운영하다 쓴맛을 봤고, 자동차 잡지 CAR를 발행하면서 한 달에 1억원씩 까먹는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휴가 때면 어김없이 소장하고 싶은 자동차를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
꿈이 다시 현실화된 건 2008년 더리츠아이엔씨를 설립하고 어느 정도 벌이가 생기면서다. 자동차에 빠진 그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내는 자동차 해설자로 나서자 두 손을 들어줬다. 다시 자동차를 수집하면서 그가 관심을 가진 자동차는 1989년 벤츠 클래식 카다. 자동차 디자인도 유행을 타는데, 그중 디자인이 가장 클래식해서 선택했다. 온 대표는 오래 돼서 가치가 있고, 관리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1989년도에 나온 벤츠는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 같죠.”
온 대표가 가장 아끼는 차는 람보르기니 무시엘라다. 국내에 한 대 밖에 없고 구입에 2년이 걸렸다. 프랑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팔라고 설득했다.
결국 5억원을 주고 한국으로 가져왔다. 11대 차 값을 더하면 수십억원에 달한다. 가장 어렵게 구입한 차가 궁금해 던진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미국 시애틀에서 가져온 수륙양용차에요.” 차가 큰데다 한국에서는 운전할 수 없어 세관을 통과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 귀한 몸이니만큼 고장 나면 어떻게 서비스를 받는지 궁금했다.
“무조건 외국에 나갑니다.” 캐딜락 드빌이 고장났을 때 이야기다. 한국에서 부품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데 미국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날 비행기를 탄 적도 있다.
온 대표에게는 특별한 자동차 관리법이 있다. 퇴근하고 난 후에는 집보다 주차장 안의 차를 먼저 살펴본다. 시간은 40분 가량 걸린다. 차를 운행하지 않을 때는 배터리를 따로 빼서 보관한다. 엔진은 언제나 깨끗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물걸레로 조심스럽게 닦는다. 한 번 운행한 차는 무조건 세차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제습기로 내부 인테리어 온도를 유지한다. “지하 2층에 차를 세워 놓다 보니 습기가 많이 차요. 안되겠다 싶어 제습기를 구입했어요. 가죽 시트가 망가지면 마음이 아프거든요.”
온 대표는 카트 매니어로도 잘 알려졌다. 기자는 예전에 온 대표와 경기도 파주에 있는 카트장에 간 일이 있었다. 카트는 두 가지로 나뉜다. 자격증을 소유한 사람만 탈 수 있는 선수용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레저 카트다. 레저 카트만 타 본 나는 선수용 카트가 궁금해 온 대표에게 “한 번만 타보면 안되냐”고 물었다. “이 카트는 자동차보다 다섯배는 빠른 느낌이에요. 자격증 없이는 탈 수 없어요.” 온 대표가 소유한 카트는 1000만원이 넘는다.
차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진 온 대표에게 이번에는 1989년에 나온 벤츠 560 SEL을 잠깐 타보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당황한 듯 멋쩍게 웃었다. “그럼 주차장 한 바퀴만 돌아보세요.” 요즘 나온 차와 달리 앞 엔진 후드 부분이 길었다. 관리를 잘한 덕분인지 예전의 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갔다. 내가 주차하려고 전진·후진을 몇 차례 반복하자 차가 상할 것을 염려했는지 온 대표가 단번에 달려온다. 직접 주차하겠다며 재빨리 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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