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新사업의 숨은 함정 ⑤ - 큰 거 ‘한 방’은 동화 속 공주의 꿈일뿐
- Management 新사업의 숨은 함정 ⑤ - 큰 거 ‘한 방’은 동화 속 공주의 꿈일뿐

“우리가 무슨 구멍가게야? 1년 매출이 적어도 100억원은 돼야 사장님께 보고를 하든 말든 할거 아냐?” 한성질 전무의 고함이 아직도 귓전에서 윙윙거린다. 사실 1차년도 매출 목표를 10억원으로 잡은 것도 허무해 팀장 입장에서는 크게 용기를 낸 거다. 그런데 100억원이라니. 우리 회사도 처음에는 서울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빈손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니만….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끝까지 행복했을까? 출산과 육아, 남편 뒷바라지와 시집살이에 짓눌려 평생을 후회하며 살지는 않았을까? 그렇다. 동화 밖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생각한 대로 굴러가 준다면 누군들 재벌이 되지 못할까? 하지만 곳곳이 진흙탕이고 천지가 지뢰밭이다.
재계의 신데렐라는커녕 언제든 쪽박 찰 수 있는 곳이 바로 비즈니스 전쟁터인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은 동화를 꿈꾼다. 새롭게 기획 중인 신사업 아이템이 신데렐라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이름하여 신데렐라(Cinderella) 바이러스. 그러나 신사업은 한 방에 일확천금이 굴러오는 로또 드라마가 아니다.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가는 대하사극에 더 가깝다. 설사 새롭게 시작한 신사업이 기특하게도 황금알을 낳아 준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힘이 빠지고 시들게 마련이다.
성공한 기업일수록 신데렐라 바이러스에 휘둘리기 쉽다. 무의식적으로 현재의 위상에 걸맞은 ‘큰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기업들의 신사업 비전에 습관처럼 등장하는 ‘아시아 넘버원’이나 ‘글로벌 리딩 컴퍼니’ 구호가 그 증거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는 누구나 장밋빛이다. 모든 게 잘 될 것 같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목표의 원대함이 실행에 족쇄가 되어 결국 일장춘몽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무나 신데렐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 기업일수록 신데렐라 바이러스에 약해한때 웅진은 국내외 경영학자들의 칭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재계의 기린아였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학습지·정수기·비대·화장품의 공통점을 방판 유통에서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한 점은 가히 창조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 큰 한 방을 기대하며 기존 사업과의 연결고리가 미약한 건설과 태양광에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신데렐라 바이러스에 희생된 것이다. STX도 마찬가지다. 창립 12년 만에 재계 13위로 올라서면서 매번 인수합병(M&A) 한 방을 노렸지, 숨 고르기와 다지기에 소홀했던 게 결정적 패인이었다.
신데렐라 바이러스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신사업에 치명적이다. 우선 신데렐라가 고만고만한 다른 귀족을 제쳐놓고 곧바로 왕자에게 뛰어든 것처럼 신사업 표적을 너무 크게 잡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큰 시장, 즉 매스마켓(Mass market)의 특성상 개개 소비자군(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사업(제품 혹은 서비스)이 탄생할 공산이 크다. 주머니에 넣기도 가방에 넣기도 아리송한 크기, 경쟁 제품과 엇비슷한 그저 그런 기능, 과히 비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 싼 것도 아닌 애매한 가격…. 결국 죽도 밥도 아니게 된다.
두 번째는 조바심이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순간 마음이 급해진다. 무도회장에 벗어 놓은 유리구두가 왕자에 눈에 띄었을까, 신하들이 제대로 유리구두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혹시라도 발 사이즈가 비슷한 다른 처자가 행운을 채가지는 않을까 등등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비즈니스에서는 이런 조바심이 신사업 실행부서에 과도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처음 얘기와는 달리 당장 실적을 내야 하고 모두가 감동할 만한 이익률을 보여야 한다. 결국 제대로 안착도 못하고 우왕좌왕 부산만 떨다가 날 새게 된다.
신데렐라 바이러스는 종종 또 다른 바이러스를 동반한다. ‘오늘 잃었으니까 내일은 따겠지’라고 기대하는 도박사처럼 여기저기 신사업의 씨앗을 잔뜩 뿌려 놓고 그중에서 몇 개라도 싹이 날 것을 바라는 경우이다. 이름하여 갬블러(Gambler) 바이러스. 인간은 객관적 확률보다는 세상의 균형을 맞춰주는 운명의 힘을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서 똑같은 카드가 열 번 이상 나왔다고 해서 다음에 그 카드가 나올 확률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카드는 자신의 등장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개 신사업 아이템의 성공 여부는 모두 독립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업을 벌여 놨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성공확률이 높아지지는 않는다. 씨뿌리기보다는 사후 관리가 열쇠인 것이다.
현실에서 씨뿌리기(Seeding)는 훌륭했지만 수확(Harvesting)이 취약해 실패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미국 대형마트 모델의 원조는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K마트. 1970년대 월마트의 추격에 당황한 K마트는 도서 유통, 스포츠용품 매장,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온갖 군데에서 활로를 모색한다. 하지만 결국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2002년 역사에서 퇴장하는 비운을 맞는다.
제록스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 말 IBM이 복사기 시장에 진출하자 제록스는 역으로 정보기술(IT) 분야를 두드린다. 그리고 레이저프린터ㆍ이더넷ㆍGUI(그래픽유저 인터페이스)ㆍVLSI(초고집적 반도체)ㆍ유비쿼터스 등 지금 우리가 누리는 온갖 첨단 IT기술을 개발한다. 훌륭한 시딩이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도 자기 것으로 상품화하지 못하고 결국 애플·HP·인텔 등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만다.
신사업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성장의 파이프라인이 마르지 않게 지속적으로 키워야 한다. 방법은 있다. 리얼옵션(Real option, 미래의 선택권(옵션)을 구매한다는 개념에서 붙여진 이름) 투자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단 여러 대안에 소액 투자를 하고, 추후 상황의 전개에 맞춰 투자를 확대·유지·축소·포기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리얼옵션 투자의 본질이다.
미국의 시스코(Cisco)는 그 어느 분야보다 변화가 빠른 인터넷 장비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인수 후 개발(A&D)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리얼옵션 전략을 잘 활용한 덕분이다. 즉, 여러 유망 벤처에 소액 투자를 하고 시장 상황의 전개에 따라 추가 투자 여부를 결정한 것이다. 갈수록 빨라지고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초(超)경쟁 세상에서 우리 기업이 반드시 고려할 전략이다.
홈런 한 방보다 안타·도루가 승부 좌우결국 신데렐라 바이러스와 갬블러 바이러스는 땀 흘린 과거에 대한 건망증과 손쉬운 성공을 바라는 오만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애써 찾아간 무도회에서 왕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혹은 벗겨진 유리구두가 왕자에게 발견되지 않으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신데렐라로서는 한 방에 인생역전을 기대하기보다는 여기저기 사교계에 얼굴을 알리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비록 동화적 감동은 덜하겠지만) 훨씬 더 현명한 전략이다. 홈런 한 방보다 소소한 안타와 도루가 실제 승부를 좌우한다. 지금 진행 중인 귀사의 신사업에 신데렐라와 갬블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는 않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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