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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25] - 23억명 다스리는 영국의 상징

글로벌 파워피플[25] - 23억명 다스리는 영국의 상징

철저한 자기관리와 헌신으로 오랜 사랑 … 외교·관광 분야 존재감과 유무형 효과 막대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4~7일 영국을 방문하면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새삼 우리 국민의 이목을 끌었다. 고풍스럽게 보이는 마차에 박 대통령을 태우고 남편인 필립 공과 함께 버킹엄궁으로 향하는 여왕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박 대통령이 사열한 호스 가드는 왕실 근위대의 하나로 부대원 상당수가 실전 경험이 있는 거친 군인들이다.

영국인들은 이들을 두고 ‘적을 죽여본 경험이 있는 젊은이’로 부른다. 붉고 흰 군복에 번쩍이는 투구를 쓰고 있어 자칫 테마파크의 군대로 착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강한 군인이다. 영국이 그만큼 전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흔적이다.

이런 군인들의 호위를 받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입헌군주국의 군주로 정치적인 실권은 없다. 하지만 상징적인 권력은 실로 대단하다. 영국에선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국가 정체성을 단단히 지키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영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엘리자베스 여왕이지 않은가.

영국에서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대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및 다른 왕국들과 영토의 여왕이자 영연방의 수장이자 신앙의 수호자인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라틴어: Elizabeth II, Dei Gratia Britanniarum Regnorumque Suorum Ceterorum Regina, Consortionis Populorum Princeps, Fidei Defenso)’가 긴 공식 칭호다.

외국에 나가면 어느 나라라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최고 수준의 의전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 여왕을 모시는 격식에서 그 나라의 품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국 왕실은 결혼을 통해 대부분의 유럽 왕실과 혼맥을 이루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한 나라 만의 군주가 아니다. 여왕은 지구촌 16개 주권국가의 군주를 겸하면서 16개의 왕관을 동시에 쓰고 있다. 물론 모두 입헌군주다.

영국 외에 캐나다·호주·뉴질랜드·자메이카·바베이도스·바하마 등 16개 국가가 그를 군주로 모시고 있다. 이들 나라의 국민이 1억2800만명에 이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와 많은 ‘백성’을 거느린 군주인 셈이다. 모두 영국의 해외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s)’으로 불린다.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과는 다른 개념이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를 빼면 나머지는 작은 나라들이고, 섬나라가 대부분이다.

여왕은 이들 나라에 머물지 않는 대신, 대리자인 총독(Governor-General)을 파견한다. 물론 실권 없는 명예직이다. 하지만, 급료와 대우는 상당하다고 한다. 여왕은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침 없이 군주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입헌군주로서 정치적 실권은 없어여왕은 과거 영국 땅에 노르망디 왕가를 이룬 노르망디 공작의 작위도 이어받고 있다. 형식적인 작위지만 왕실과 귀족 사회에선 역사성과 상징성이 대단하다. 프랑스 노르망디 앞바다에 있는 저지 섬과 건지 섬은 노르망디 공작령으로 여왕의 땅이다. 공식적으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영토가 아니고 영국 군주의 영토다.

형식적으로는 영국에 포함되지 않지만 영국 군주를 자신의 영주로 모시는 것이다. 이곳에서 여왕은 노르망디 여공작으로 불린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는, 준독립적인 만 섬도 비슷한데 이곳에서 여왕은 만 경으로 불리는 영주다. 여왕은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대추장 직도 보유하고 있다.

여왕은 영연방의 수장이기도 하다. 영연방은 영연방 왕국에 더해 영국과 한때 깊은 연을 맺었다가 독립한 뒤 군주가 없는 공화국이 되거나 말레이시아·통가·스와질랜드 등 영국 왕실과는 다른 왕실이 들어선 37개 나라를 더한 53개 주권국가가 회원국으로 있는 국제기구다. 영연방 국가의 면적을 합치면 2995만8050km²로서 지구상 육지 면적의 21%를 차지한다. 단일국가로 가장 넓은 러시아(1709만8246km²)와 중국(970만6961km²)을 합친 것보다 넓다.

지난해 기준으로 회원국 전체 인구는 22억4500만 명으로 지구 전체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을 구매력 기준(PPP)으로 따지면 13조1230억 달러, 명목가치 기준으로 따져도 9조7670억 달러로 전 세계 GDP의 약 15%를 차지한다.

영연방이 단일국가라면 세계 1위의 면적과 인구에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 된다. 물론 영연방은 느슨한 연합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공동 자유무역지대와 비자면제지대 설정, 공동 외교정책 추구, 유엔과 G20 정상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연방연합을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여왕은 영국군 최고사령관이기도 하다. 영국 성공회의 수장이기도 하다. 공식 호칭에 ‘신앙의 수호자’라는 표현이 있는 이유다. 비록 실질적인 통치 권한이 없고 군림만 하는 입헌군주지만 형식적으로는 이렇게 높은 지위의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25주년이나 50주년, 60주년 또는 생일은 영국은 물론 영연방 왕국에서 가장 큰 국가 행사다.

여왕은 지난해 7월27일 런던 여름올림픽에서 개막선언을 했다. 이로써 서로 다른 두 나라에서 개막선언을 한 최초의 국가원수가 됐다. 1976년 캐나다의 몬트리올 여름올림픽에서도 개막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영국 군주를 국가원수로 모시는 입헌군주국으로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다. 런던올림픽에서 여왕은 권위적이지 않고 소탈한 성격을 잘 드러냈다.

런던올림픽 개막공연에서 상영된 단편영화에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등장했다. 제임스 본드가 여왕을 구하는 설정이었다. 올해 4월4일 영국판 아카데미로 불리는 영국 영화텔레비전예술상(BAFTA) 수상식에서 여왕은 영화산업을 후원한 공로로 명예상을 받았다. 그때 여왕은 관계자들로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본드걸’로 불렸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성실하고 흐트러짐 없는 군주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국민이 필요로 하면 언제라도 나서며 헌신하고 봉사해온 것이다.

왕실은 영국에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핵심 역할을 한다. 런던 시내 버킹엄궁과 교외 윈저성을 오가는 여왕은 지극히 은밀한 사생활 공간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부재중인 동안에 궁을 일반에 공개한다. 두 궁은 이제 두 많은 외국 관광객이 찾은 영국 관광의 핵심이다.

(윈저성의 로열 아파트먼트에 가면 중세 갑옷과 무기와 함께 역사적인 유물을 모아둔 방이 있는데 이곳에 임진(IMJIN)이리고 적힌 팬던트가 걸려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가 중공군에 맞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항복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시간을 벌어 서울을 지킬 수 있었던 1951년 경기 파주 적성리 전투를 임진강 전투로 부르며 기억하는 것이다.)





영국 관광의 홍보대사 자임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26년 4월 21일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87세다. 1952년 2월 아버지 조지 6세가 세상을 떠난 즉시 왕위에 올랐고 대관식은 1953년 6월2일 이뤄졌다. 만 26세가 되기 전에 여왕이 된 것이다. 올해로 왕위에 오른 지 61년이 됐다. 1977년에 즉위 25주년을, 2002년에 50주년을, 지난해 60주년을 각각 맞았다. 영국에선 즉위 25주년은 실버 주빌리(Silver Jubilee), 50주년을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 60주년을 다이아몬드 주빌리(Diamond Jubilee)라고 각각 부른다.

각각 결혼 25주년, 50주년, 60주년을 뜻하는 은혼식·금혼식·다이아몬드혼식과 같은 용어다. 여왕은 지난해 영국 군주로는 처음으로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혼식을 맞았다. 런던 지하철 노선 중에는 주빌리 라인이 있다. 1977년에 개통된 이 노선은 원래 플리트 라인으로 명명할 예정이었으나, 여왕 즉위 25주년인 해에 개통됐다는 이유로 이름을 그렇게 고쳤다. 런던 시내 중심지를 지나는 주빌리 워크웨이란 산책로는 즉위 25주년에 만들고 50주년에 대대적으로 수리를 했다.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01년 82세로 세상을 떠난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사상 최장수 국왕이다. 61년 270여 일간 왕위를 지켜 63년 216일간 재임한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최장 재임 부문 2위를 차지한다. 여왕은 현재 전 세계 군주 중 46년 6월에 즉위해 67년째 왕위를 지키고 있는 태국의 부미볼 국왕에 이어 최장 재임 2위다.

2015년 9월 9일까지 재위에 있을 경우 영국 1000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군주 기록을 갱신하게 된다.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모후가 2002년 102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여왕이 앞으로 어떤 장수와 최장 재임 기록을 세울지 관심이 모인다.

여왕은 세계적인 부자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201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개인 재산을 4억5000만 파운드(약 7680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전 세계 왕족 가운데 12위에 올렸다. 하지만, 버킹엄궁 측이나 여왕을 모셨던 사람들의 증언은 이 수치가 과장됐다고 주장한다. 왕관의 보석 등은 천문학적인 가치가 있지만 여왕 개인의 소유가 아니며 문화재 신탁에서 관리한다.

런던 시내의 관저인 버킹엄궁이나 교외의 거처인 윈저궁 등의 가치는 올해 4억2900만 파운드(약 7320억원)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 역시 점유할 뿐 소유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코틀랜드의 가족 별장인 밸모럴성 등 런던 이외의 일부 성과 거처는 여왕 개인 소유다.

영국 왕실 소유 전체 부동산은 73억 파운드(약 12조4270억원) 정도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역시 신탁재산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며 여왕 개인이 팔 수 없다. 다만 부동산 임대를 통해 수입을 올릴 수는 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왕실은 랭카스터와 콘월에 있는 영지에서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

여왕이 수입을 가져가는 랭카스터 영지에서는 매년 2800만 달러(약 297억원) 정도의 지대가 나온다. 찰스 왕세자가 맡고 있는 콘월 영지에서는 연간 4500만 달러(약 477억원)의 수입이 나온다. 여기에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를 중심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은행들이 몰려있는 영국이니만큼 왕실 재산을 굴려서 얻는 투자 수익도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포브스 선정 세계 왕족 재산 12위여왕과 왕실은 국민의 세금에서 상당액을 지원금으로 받는다. 과거 절대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물러나면서 왕실 재산을 인정받은 것과 함께 정부에서 상당한 지원금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왕은 자신과 남편 필립 공의 활동비로 영국 정부로부터 2600만 달러를 받는다. 국가 소유지만 여왕이 살고 있는 버킹엄궁을 비롯한 왕궁의 유지 비용과 왕실 구성원들의 대외관계, 여행경비 명목으로 4200만 달러를 받는다.

정부가 아닌 다른 기관으로부터도 여러 가지 명목으로 800만 달러를 받는다. 이 돈으로 여왕은 왕실을 꾸리고 외국 의전 행사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석하며 해외를 순방해 외교활동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여왕이 만드는 각종 경제 효과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살아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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