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Estate - 오피스시장에 돌아온 외국인 ‘큰 손’
Real Estate - 오피스시장에 돌아온 외국인 ‘큰 손’
서울파이낸스센터(SFC)와 강남파이낸스센터(GFC). 서울 강남·북을 대표하는 프라임급 빌딩이다. 두 건물의 소유자는 세계 5위의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이다.
GIC는 2000년 롯데관광개발의 계열사인 유진관광으로부터 SFC를 4억 달러(4500억원)에 매입했다. 외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 투자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해외 국부펀드나 사모펀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헐값에 매물로 나온 국내 대형 빌딩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외환은행 인수 후 매각으로 수조원대의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먹튀 자본’으로 불리는 미국의 론스타 펀드는 2001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역삼동 스타타워(현 GFC)를 6332억원에 매입한 뒤 2004년 GIC에 9300억원에 매각했다. 3년 만에 3000억원 가량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싱가포르투자청·론스타 막대한 시세 차익GIC의 투자 수익은 론스타 펀드를 능가한다. 그 사이 건물 가격이 많이 올라 SFC의 경우 시세가 9000억~1조원에 달한다. 매입 가격의 곱절이 넘는다. GFC도 현재 시세가 1조3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시세 차익뿐 아니라 빌딩 임대료와 배당금으로 매년 수백억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SFC와 GFC의 2012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영업이익은 각각 256억원과 706억원에 달했다.
배당금으로도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GFC로부터 2009년부터 2012년까지 615억원, SFC로부터는 2011년과 2012년 배당금으로 245억원을 챙겼다. GIC는 두 건물 외에도 광화문 코오롱빌딩, 무교빌딩, 2001아울렛 분당·중계점 등을 잇따라 매입해 국내 오피스 시장에서 대표적인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대 국내 오피스 시장은 외국 자본의 ‘놀이터’였다. 외국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고가의 우량 빌딩을 사들였다.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2004년에는 외국 자본이 국내 빌딩 16곳을 매입했다. 2006년 7건, 2007년 8건을 사들였다. 전체 거래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거래금액은 절반이 넘는다.
공실 위험이 적은 도심의 알짜배기 건물 위주로 사들인 때문이다. 2006년의 경우 총 37건의 대형 오피스가 거래됐는데 외국계 자본이 매입한 빌딩은 8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총 거래금액 1조4273억원 중 외국 자본이 매입한 건물 가격은 7458억원으로 52.3%를 차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외국자본의 국내 대형 오피스 매입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글로벌 경기 악화로 투자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에 매입한 건물 가격이 많이 올라 시세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매각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서울 중구·종로구의 중심상업지구(CBD)와 여의도권에 대형 오피스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공실률이 늘어나 임대수익이 하락한 것도 외국 자본들이 국내 오피스 시장에서 탈출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2010년의 경우 외국 자본이 매수자로 나선 건물은 독일계 펀드인 RREEF가 사들인 서울 회현동 프라임빌딩과 서린동 알파빌딩 정도에 불과했다. 2011년에도 YSD 코리아펀드와 내셔널 파이낸셜 리얼티가 각각 매입한 솔로몬 역삼·대치타워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서울 서초동 하이트진로 서초사옥과 신문로 씨티은행센터빌딩, 무교동 한국정보화진흥원 사옥, 역삼동 아남타워가 외국 자본으로 넘어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뜸하던 외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 투자가 올 들어 슬슬 활기를 띠고 있다. 도이치자산운용은 ‘도이치오피스제2호부동산펀드’를 통해 4월에 대우건설 신문로사옥을 3900억원에 매입했다. 2000년 준공된 이 건물은 지상 18층 연면적 5만4363㎡ 규모의 A급 빌딩이다. 오피스 빌딩은 연면적 기준으로 6만6000㎡가 넘으면 프라임급, 3만3000~6만6000㎡면 A급, 3만3000~1만6500㎡는 B급, 1만6500㎡ 이하면 C급으로 분류된다.
이 건물은 4대문 안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한데다 매각 후 대우건설이 전체를 다시 임차해 본사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실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인수의향서 접수 때 총 10곳의 부동산 관련 업체가 참여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몇몇 자산운용사 사이에서는 빌딩 연면적 3.3㎡당 2100만~2200만원선에서 가격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이치자산운용을 포함해 코람코·삼성생명 등 2200만원 이상 제시한 곳이 5곳이나 됐다.
도이치자산운용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도이치뱅크는 국내에서 꾸준하게 부동산 투자를 해온 외국 자본으로 분류된다. 앞서 2010년에 중구 회현동 프라임빌딩과 종로구 서린동 알파빌딩을 사들인 RREFF는 도이치자산운용의 부동산펀드 사업부문이다. RREFF는 영등포구 양평동 이레빌딩(2007년)과 중구 순화동 SK순화빌딩(2009년)도 매입했었다.
도이치뱅크의 또 다른 계열사인 DBREI는 2007년 서울 여의도의 동양증권빌딩과 대우증권빌딩을 매입한 뒤 되팔아 수천억원의 차익을 얻었다. 도이치자산운용은 올 2월에도 RREFF를 통해 서울 신림동의 종합쇼핑몰 ‘포도몰’을 2000억원 가량에 인수하는 등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고 있다.
미국계 보험사인 라이나생명은 9월에 서울 종로구 청진구역 제5지구에 위치한 스테이트타워 광화문을 2420억원에 사들였다. 지상 23층 연면적 4만991㎡ 규모로 올 초 준공됐다. 현재 서울역 앞 서울시티타워(옛 대우 본사)를 임차해 쓰는 라이나생명은 내년 초 이 오피스빌딩으로 본사와 남대문·강남 등지에 위치한 4곳의 텔레마케팅센터를 이전할 계획이다.
최근 아시아·태평양지역 최대 글로벌 보험사인 AIA는 서울 순화동의 ‘N타워’ 매입을 위해 개발업체 넥스트프로퍼티스와 양해 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매가격은 200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5월 준공된 N타워는 지상 27층 연면적이 5만1378㎡에 이르는 A급 빌딩이다. 애초 이 빌딩은 국내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매입을 검토했지만 공실 우려 등으로 포기했다. AIA는 건물을 사들인 후 국내 법인인 AIA생명의 본사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눈 돌려부동산 업계에서는 외국 자본의 국내 부동산 투자가 다시 활기를 띠는 이유에 대해 글로벌 저금리 기조 때문으로 분석한다. 장기투자 성격이 강한 외국 금융회사나 펀드 등이 저금리 기조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자산 운용에 애를 먹으면서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부동산 시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먹잇감이 많아진 것도 한 이유로 꼽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썰물처럼 빠져나간 외국계를 대신해 국내 기업과 펀드가 오피스 매수에 적극 나섰지만 최근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시장에 매물을 속속 내놓고 있다. 자산 유동화가 필요한 기업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매물을 내놓고 있어 합리적인 가격에 매입한 뒤 비싸게 팔아 자본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김태호 알투코리아 이사는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한국 경제가 비교적 선방하고 있고 경기 회복에 따라 자산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판단한 외국 자본들이 국내 오피스 투자를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규모가 적당하고 임차인 확보가 용이한 A급 오피스 위주로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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