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사람보다 동물’ 펫코노미(Pet+Economy) 르네상스
Special Report - ‘사람보다 동물’ 펫코노미(Pet+Economy) 르네상스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은 1983년 동물학자 K. 로렌스가 애완동물(Pet) 대신 사용하자고 제안한 용어다. 주종 관계를 벗어나 사람과 생활하며 정서를 교류하는 ‘가족’의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동물보호법 개정 이후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늘면서 반려동물 관련 시장 또한 해마다 급성장 중이다. 사료뿐만 아니라 용품업·수의업·서비스업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2020년 6조원대의 시장으로 커질 전망이다. ‘펫코노미(Pet+Economy) 르네상스’라는 말도 나온다.
“소고기를 잘 먹긴 하는데 너무 비싸서 좀 그래.” “그래도 닭고기보다는 나은 거 같아. 우리 애는 지난번에 알레르기 때문에 한달 넘게 고생했잖아.”
롯데 빅마트 서울 영등포점 1층의 ‘펫가든’을 찾은 두 여성 고객의 대화다. 여기서 말하는 ‘애’란 김지은(35)씨가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 ‘신디’를 말한다. 그는 “반려견 용품 할인행사를 한다기에 나와봤다”며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싼 것 같아 사료와 간식을 좀 사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신디를 위해 김씨가 쓴 돈은 9만3000원. 이빨이 좋지 않은 신디를 위해 사료는 입자가 작은 걸로 골랐고, 자동 급수기, 목욕 샴푸, 소고기 간식, 쿠션 등을 샀다. 김씨와 함께 온 이정아(34)씨는 5만5000원짜리 여행용 가방을 샀다. 이씨는 “외출할 때 거의 함께 다니는 편인데 어깨끈이 없어 좀 불편했다”며 “밝은 색상이라 아이가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11월 14일부터 27일까지 ‘제1회 펫가든 위크’를 진행했다. 펫가든은 롯데마트 서울 송파점·영등포점과 경기 구리점 등 16개 점포에 입점한 자체 반려동물 용품 판매 브랜드다. 행사 기간 동안 사료와 간식 등을 20~50% 정도 할인 판매하고, 구매금액별 사은행사도 마련했다. 직접 찾은 펫가든에는 평일에도 고객이 북적거렸다. 오전 시간이라 한산한 다른 매장과는 대조적이었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소비 위축까지 겹치면서 대형마트의 매출 신장률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 관련 용품은 불황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롯데마트의 반려동물 용품 매출은 2006년보다 2.5배나 신장했다.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올해도 1월부터 10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 늘었다.
롯데마트가 이번 이벤트 기간을 2주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마트 김종현 애완원예팀장은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국내 반려동물 용품 시장도 성숙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라며 “정기적인 이벤트 행사를 마련해 다양한 고객의 욕구에 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작 신디는 어디 있나 했더니 김씨의 점퍼 속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미혼인 김씨에게 신디는 단순한 애완견이 아니다. 친구이자 애인이고 가족이다. 그는 “처음엔 지인이 공짜로 줄 테니 키워보라기에 데려왔는데 이제 신디 없이는 하루도 못 살것 같다”며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함께 있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김씨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7.9%인 359만 가구에서 556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새나 도마뱀 등 다른 반려동물을 포함하면 20%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1990년대부터 꾸준한 증가세다. 국내 수입도 늘었다. 반려견 수입은 2009년 8465마리에서 2011년 1만1222마리로 크게 증가했다. 고급 견종 중심으로 수요가 꾸준하다.
고령화와 1~2인 가구의 증가라는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1990년부터 지난해 사이 우리나라의 가구 구성은 노인가구와 아동이 없는 가구가 증가하고, 가구 규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1990년 9% 수준이던 1인 가구 비중은 지난해 처음으로 25%를 넘어섰다.
10.4%였던 2인 가구 비중도 지난해 3배 수준(29%)으로 증가했다. 특히 아동 없이 성인 2명으로만 구성된 가구는 1990년 9.9%에서 지난해 27.9%로 18%포인트 늘어 모든 가구 유형 중 가장 많이 늘었다. 사람이 느끼는 ‘외로움의 총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식 변화도 한 몫 했다. 애완동물이란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서부터 위상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단순히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아니다. 인생을 함께 하고, 고락을 나누는 동료라고 인식한다. 기르는 사람의 만족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질까지 배려한다는 얘기다. 사람만큼 귀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니 투자도 늘었다. 자연히 시장은 팽창한다.
농협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는 약 9000억원이다. 반려동물의 구입 비용을 제외하고 사료 등 관련물품 구입비, 관련 서비스 지출 등만 합한 수치다.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올해는 1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게 업계의 예상이다. 가구당 반려동물 관련 물품구입비는 1990년 연 3156원에서 지난해 2만7900원으로 크게 늘었다. 1990년대에는 6% 정도 성장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14.3%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서비스 지출도 3420원에서 1만6764원으로 늘었다.
반려동물 생활인구 1000만명예전엔 사료 하나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료도 기왕이면 좋은 것을 먹이고, 간식도 챙겨준다. 형형색색 예쁜 옷과 함께 잠자리와 장난감도 마련해줘야 한다. 주말엔 애견 카페를 찾아 친구를 만들어주고 혹시 장기간 집을 비워야 할 때는 호텔에 맡겨둔다. 목욕용품과 미용용품도 테마별로 다양하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처럼 때에 맞게 예방주사도 맞춰준다. 죽으면 사람만큼 신경 써 장례를 치른다.
반려동물 산업은 대표적인 선진국형 산업이다. 미국의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는 약 57조원, 일본은 약 16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각각 0.34%, 0.23% 수준이다. 0.07% 정도인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그 비율이 4~5배 정도 높다. 그래도 포화상태는 아니다. 전체 가구 중 62%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에도 사료나 의약품·장난감 등 반려동물 용품 시장이 흔들리지 않았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3.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프리미엄 제품과 서비스 수요가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 유기농 사료와 고급 간식 등의 수요가 늘었고, 단순 미용이나 훈련을 넘어 테라피·캠프 등도 큰 인기다. 가구 회사들도 제품 영역을 반려동물용으로 확대해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실내 사육이 늘어난 일본에서는 배변시트, 잠자리 용품 등이 크게 성장했다. 특히 반려동물 의료보험 사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11년 일본의 반려동물 보험 판매실적은 약 61만건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다. 월 일정액을 내고 반려동물이 아플 경우 치료비의 일정액을 보상받는 개념이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지난해 27% 수준인데 입양 의향이 있는 가구가 50%에 달해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중국·인도 등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전세계 반려동물 시장은 미국이 45%, 유럽이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비율은 곧 깨질 전망이다. 2012년 중국의 반려동물 수는 2010년 대비 5배로 늘어난 약 1억7000만 마리에 달한다. 관련 제품 시장도 약 400억 위안(약 7조원) 규모로 커졌다. 연평균 20~30%씩 성장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2015년 시장 규모가 1000억 위안(약 17조43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태국 등도 매년 10~15%씩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시장 급성장우리나라 반려동물 관련 시장 역시 2020년에 약 6조원대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2035년 34.3%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65세 이상 1인 가구가 빠르게 늘면서 반려동물 수요가 증가하고, 산업의 성장 속도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황명철 농협경제연구소 축산경제연구실장은 “의식변화에 따라 반려동물 관련 시장은 더욱 고급화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소비 취향의 고급화에 따라 반려동물 관련 용품 소매 시장은 2009년 1687억원에서 2011년 2874억원으로 커졌다.
앞으로 반려동물의 건강관리·치료 등 수의진료 시장과 동물보험시장이 특히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용품을 생산·유통하는 업체와 서비스 업체 역시 대형화·전문화되고 반려동물 훈련학교, 모델 에이전시, 미용업·동물매개치료 등 서비스 분야는 더욱 세분화될 것이란 게 업계의 예측이다. ‘펫코노미(Pet+Economy) 르네상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르지 않는 사람 배려해야시장이 커지는 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다. 일단 사료나 용품의 수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늘면서 사료 수입액(개·고양이)도 최근 5년 새 6배 이상으로 늘었다. 2011년 기준으로 약 3855억원 가량이다. 세계 반려동물 사료시장은 마스(Mars)·네슬레(Nestle) 등 5개 미국 업체가 85%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유기농과 프리미엄 제품은 수입산이 시장을 거의 점령했다. 대한사료·CJ 등도 반려동물용 사료를 생산하고 있지만 중저가품 위주라 경쟁이 쉽지 않다.
해외 대형 업체들은 반려동물용 사료만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산업가축(축산물 생산을 위해 농가가 사육하는 소·돼지 등을 통칭하는 말) 사료와 같은 기준을 적용해 생산한다. 전 세계의 성장세를 고려해 우리 기업들도 적극적인 투자로 해외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반려동물이 늘어난 만큼 유기동물도 늘었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입양한 뒤 관심이 떨어지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버린 유기동물이 한 해 약 10만 마리에 이른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보호기간 동안 새 주인을 찾거나 입양되지 못하면 유기동물들은 안락사 또는 폐사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올해부터 ‘반려동물 등록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등록율은 아직 10% 수준이다. 반려동물과 주인의 신상정보를 전자칩에 담아 체내에 심거나 목걸이 형태로 거는 방식인데 홍보가 덜 돼 제도 시행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칩의 안정성도 논란이다. 내년부터는 등록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지만 단속의 실효성 역시 의문이다.
동물보호 시민단체 카라의 임미숙 사무국장은 “반려동물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 목줄을 채우고, 배변봉투를 챙기는 등 기본적인 주인의 의무를 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은 사람까지 배려하는 의식이 성숙해야 인간과 반려동물이 공존하는 좋은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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