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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REPORT - 사교육 문제, 끊지 말고 풀자

SEOUL REPORT - 사교육 문제, 끊지 말고 풀자

정부는 일방적인 규제 대신 학생, 학부모와 함께 해결책 모색해야
사교육과 입시제도를 둘러싼 문제는 오랜 기간 갈등을 유발해 왔다.



2300여 년 전 알렉산더 대왕이 아나톨리아 반도를 정복했을 때였다. 그는 전설을 하나 듣게 되는데, 지금껏 한 번도 풀린 적이 없는 어떤 매듭을 풀면 이 시대의 제왕이 되리라는 이야기였다. 알렉산더는 자신이 그 매듭을 풀겠노라고 나섰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그는 매듭을 칼로 잘라버린 뒤 “내가 매듭을 풀었다”고 선포했다.

최근 아나톨리아 반도, 다시 말해 터키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교육 평등주의’를 내세우며 학원을 전면 폐쇄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온 나라가 들썩인다. 사교육이라는 매듭을 잘 풀어내 활용하기보다 아예 잘라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이다. 나는 터키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학원 덕분에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 나 같은 사람들은 학원이 터키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안다.

사교육은 한국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문제다. 터키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학생들은 주로 시험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다. 시험을 치자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을 피하자고 입시 시험 대신 면접을 도입한다면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돈 많은 학생들은 면접에 합격하기 더 쉬워지고, 반대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불평등하긴 마찬가지다. 먼저 대학 입시 제도부터 손봐야지 무턱대고 학원만 없앤다고 될 일이 아니다.

높은 사교육 비용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교육과 사교육 비용은 별 관계가 없다. 사교육을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1980년대 과외금지법이 실시됐을 때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오히려 사교육이 음지로 숨어버리면서 가격은 더욱 올랐고, 교육이 공평해지지도 않았다. 많은 가정이 사교육비로 인해 힘들다고 해서 학원을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교실마다 다양한 학생들이 있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매일 다투는 탓에 불행한 학생이 있는 반면 행복한 가정에서 생활하는 학생도 있다. 부지런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게으른 학생도 있다. 교사는 최대한 학생들의 차이를 파악하고 개인별로 가르치려고 하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렇다 보니 결국 공교육이란 어느 정도 평균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똑똑한 학생이라도 진도를 더 빨리 나갈 수는 없고, 게으른 학생을 위해 같은 내용을 몇 번씩 반복할 수도 없다. 인구가 적고 사회가 안정된 나라라면 공교육에 집중 투자해 난관을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공교육만으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학원의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학원이라고 해서 입시 학원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공부 이외의 재능를 가르치는 학원도 많다. 김연아 선수나 박태환 선수는 학교나 입시 학원에서 재능을 배우지 않았다. 본인의 재능에 강사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다. 한국의 모든 학생이 좋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나 카이스트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

자식을 오로지 명문대에만 보내려는 부모들이 사교육을 조장하고 많은 학생의 재능을 없애버린다. 한국 학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재능이 있고, 자식을 어떤 학원에 보내야 유리할지 고민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사다리만 오르려고 하니 경쟁이 지나치고 불평등하게 보이지만, 사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그밖에도 많다.

학생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 부모는 나를 과학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고, 내가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공대 전자학과에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내 꿈을 찾아 한국 유학을 택했다. 한국에서 새로운 세상을 접했고, 부모를 설득해 전자학과 대신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재주를 발견하고 발휘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것도 사교육 문제 해결의 열쇠 중 하나다.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모르는 학생, 자식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모르는 부모는 내버려 둔 채 사교육을 자유시장에 맡기거나 아예 없애려고 나서는 정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세 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필자 알파고 시나시(터키)는 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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