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REPORT -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두 얼굴
- SEOUL REPORT -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의 두 얼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최근 안중근 의사 비석을 둘러싸고 한일 정부가 벌이는 설전을 보면서 떠오른 속담이다. 발단은 한중 정부가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비석을 중국 하얼빈역에 설치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였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1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안중근이 범죄자라는 입장을 한국에 줄곧 전달해 왔다”고 밝히며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은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석 설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범죄자라는 표현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반발했고, 스가는 이를 “지나친 반응”이라고 맞받았다.
논쟁의 배경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 차이다. 스가의 발언이 관방장관으로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은 일본측에서도 나온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안 의사가 ‘범죄자’ 혹은 ‘테러리스트’라는 인식은 일본 국민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안의사가 한국인에게는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의인으로 여겨진다는 점은 일본인들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의 실현을 이유로 살인을 정당화하는 사고방식이 현대 일본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돌이켜 보면,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간에 양국 과거사를 둘러싼 이 두 인물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유학할 당시 한국인 친구에게 무심코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 역사에 해박했던 그 친구는 미소를 머금으며 “이토 히로부미도 테러리스트 아니냐”고 받아쳤다.
나중에 조사해본 결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도시대 말기에 태어난 이토는 21세 때 존왕양이운동(천황을 숭상하고 서구 열강을 배척하는 운동)에 가담해 영국 공사관 방화 사건, 천황 폐위 사례를 연구하던 학자 하나와 지로 암살 등에 관여했다. 그 후 이토는 영국 유학을 다녀오면서 개화론자로 탈바꿈해 메이지유신을 일으키는 데 공헌했다.
하지만 현대 일본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여지 없는 살인범이다. 테러리스트라고만 생각했던 안 의사가 사실 동양평화사상을 선구적으로 주창했으며 한국과 청나라, 일본 간 연대를 부르짖었다는 사실 또한 한국 유학 중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견학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마찬가지로 이토를 침략의 원흉이라고만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인식 또한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토가 초대 조선통감으로서 한국을 실질적으로 일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한일합방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토가 남긴 연설이나 메모에 따르면 그는 만년까지 한국을 무력으로 합방하는 대신 일본 근대화 경험을 모델로 삼아 한국인의 자치 능력을 신장시키자고 주장했다.
이토가 실제로 펼친 정책은 그의 이상대로 진행되지 못해 한국인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토가 암살당하면서 한일합방 추진에 속도가 붙어 무력 통치라는 더욱 잔혹한 길로 접어든 것은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이토를 결코 좋게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사후 100년도 더 지난 오늘날 다양한 관점에서 이토라는 인물을 파헤쳐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서는 ‘이토 암살을 주도한 범인은 안중근 이외에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00년 출간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의 저자 우에가이토 켄이치 오오츠마여대 교수는 사건 당시 이토를 수행하던 무로타 요시후미 의원의 증언이나 미심쩍은 재판기록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우에가이토는 “오늘날에는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만약 안 의사 이외에도 암살범이 있었다면 일본 우익이나 군부 강경파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앞서 말했듯이 한일합방에 부정적이었던 이토는 일본 내 강경 세력으로부터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유력 우익단체였던 겐요샤는 이토 암살을 공언하기도 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 암살사건 당시에도 정부의 공식 입장을 부정하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이토 암살 사건에서도 정부공식 입장과 다른 주장이 제기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역사를 왜곡해선 안 되겠지만, 진실을 추구한다는 공통 목표 하에 한일 학자가 다른 가능성을 함께 연구해보는 건 어떨까? 그런 연구가 이뤄진다면 한일 양국 간 마음의 거리를 크게 좁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필자 다케다 하지무(일본)는 아사히신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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