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북한 경제개방 도로 빗장 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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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의 칼날은 매서웠다.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29살 조카는 자신의 후견역할을 해온 67세의 고모부를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서 반성문을 쓰는 처지로 전락했다. 최측근은 공개 처형됐다. 북한 권력의 2인자로 불리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 움직임 얘기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장성택 부위원장의 직위를 박탈하고 측근들을 줄줄이 숙청했다는 보도의 충격파는 컸다. 그가 김정은 정권 들어 가장 잘나가던 핵심 실세였다는 점에서다. 국가정보원이 12월 3일 국회에 보고한 장성택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장성택 측근인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차관급)과 장수길 부부장이 반당(反黨)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11월 하순 공개 처형됐다. 비리 혐의까지 받은 이들은 군부와 권력 내부에 미리 고지된 이후 총살형으로 처리됐다고 한다.
장성택이 부장을 맡고 있는 행정부는 인민보안부(경찰) 등 공안기관을 관장하는 노동당 내 핵심 부서 중 하나다. 국정원은 “공개 처형 이후 장성택 소관 조직과 연계 인물에 대해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성택 계열에 대한 숙청이 상당 기간 더 진행될 것이란 의미다.
지난해 7월에도 군 핵심 실세인 이영호 군 총참모장이 숙청된 일이 있었다. 아버지 김정일이 생전에 어린 후계자인 김정은의 군부 과외교사로 낙점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권력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상징적 의미 등으로 볼 때 장성택 계열에 대한 숙청작업은 훨씬 심각하다.
일명 ‘장 부장’으로 통하던 장성택은 유일 지배 체제의 북한에서 김일성 로열패밀리의 멤버였다. 1972년 김일성의 장녀 김경희와 결혼한 것을 계기로 40여 년 간 권력의 중심축에 자리했다. 한때 김정은 사망 이후 후계 권력을 넘겨받을 인물로 꼽힐 정도였다.
유일 지배 체제 강화하려는 포석숙청의 칼끝이 장성택을 겨누는 형국이 되자 우선 권력투쟁설이 제기됐다. 2년 전 김정일의 급작스런 사망 직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은에겐 든든한 ‘후견 3인방’이 자리했다.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그의 남편 장성택, 그리고 최용해 총정치국장이다. 혈족인 김경희를 제외하고 권력의 양대 축을 맡았던 장성택과 최용해의 권력다툼에서 장성택이 밀린 것이란 말이 나왔다.
군부의 외화벌이 이권을 노동당과 내각에 돌리려던 정책에 반기를 든 이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숙청된 데 이어 이번에는 당과 권력기관의 핵심 실세인 장성택을 향한 군부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해석도 제기됐다. 집권 2년차를 넘어서는 김정은이 권력 장악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일 지배 체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란 분석도 있다. 후견 3인방의 한 축을 없애버리겠다는 건 그만큼 권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란 얘기다.
장성택 계열의 몰락은 북한 권력구도에 거센 후폭풍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 세력이 김정은에게 반기를 들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장성택의 호위무사 역할을 해온 인민보안부와 사법·검찰, 그리고 당 간부들에 대한 숙청의 회오리바람이 혼란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 연구위원은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 때 3000여명의 측근과 제자 등이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며 “장성택 사태의 여파는 그 10배 정도며 희생자가 3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성택의 공백이 가져올 파장 가운데 관심이 큰 것 중 하나가 경제다. 그가 김정은 체제의 외자 유치와 개혁·개방 문제를 주도적으로 맡아 추진했다는 측면에서다. 장성택은 김정일 정권 때인 2011년 6월 북·중 간 경협을 위한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와 나선경제무역지대 공동개발 착공식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다.
김정은이 북한 지방도시 13곳에 경제개발구를 만들고, 신의주 특구개발을 하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밝힌 시점이 장성택 측근 처형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새로운 개혁·개방 조치는 장성택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다.
일각의 기대에도 김정은의 경제 분야 구상이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촘촘히 가동 중이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경제·핵 병진노선을 밀어붙이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2월 3일 한 특강에서 김일성의 국방·경제 병진정책을 거론한 뒤 “정책이 잘못돼서 실패한 것이 아니고 잘못될 수밖에 없는 정책을 선택해서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북한 경제의 실상을 무시한 무리수가 이어진다.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그곳의 유명 워터파크인 ‘알파마레’를 본떠 문수물놀이장을 10월 개장했다. 파리 센느(seine)강에서 유람을 하며 식사를 하는 바토무슈(Bateau Mouche)와 같은 배를 만들라고 한 뒤 대동강에 선상 레스토랑을 운영토록 했다.
마식령스키장과 평양 능라인민유원지의 골프코스, 미림승마구락부 등에서 나타나듯 민생이 빠진 특권층 챙기기 경제로 질주하고 있다. 우상선전물 공사에 2억3000만 달러, 특권층을 위한 위락시설에 3억 달러 등 김정은 체제들어 써버린 5억3000만 달러는 북한 주민이 5개월 간 먹을 옥수수 140만t을 구매할 수 있는 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갈팡질팡하는 김정은의 인사 스타일과 리더십도 문제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군 핵심자리인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각각 5.4년과 6.6년이었으나 김정은 체제 들어서는 1년 미만이다. 이런 문제는 경제 부문에도 이어졌다. 김정은 체제들어 교체한 내각 장관급 인사는 27명으로 85%인 23명이 경제 분야였다.
상처 입은 김정은 경제 리더십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경제 문제에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경제 부문 업적으로 삼으려 2009년 11월 시도한 화폐개혁은 주민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이듬해 봄 경제관료인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을 희생양 삼아 공개 처형하는 걸로 불을 껐지만 경제리더십은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4월 첫 공개 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도록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성과는 없다.
실각설에도 장성택의 복귀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과거 숙청 위기 속에서 여러 차례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전례가 있다는 점에서다. 일시적 직무정지든 영구퇴출이든 장성택을 권력 핵심에서 축출함으로써 김정은은 경제정책 등의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조언을 해줄 측근을 잃었다. 공개 처형을 동반한 공포정치 속에서 입을 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비운의 2인자’ 장성택이 없는 김정은 집권 3년차의 문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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