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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세계의 수퍼리치 슬슬 지갑 여나

Special Report - 세계의 수퍼리치 슬슬 지갑 여나

크리스티·소더비 잇단 사상 최대 판매가 … 중국은 경매시장 큰 손 자리 굳혀



11월 12일 오후 7시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브렛 고비 크리스티 전후·현대미술 부문 대표는 반년 간 동분서주하며 모은 미술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소더비와 함께 세계 예술작품 경매 시장을 양분하는 크리스티에서 반평생을 보낸 최고의 경매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고비 대표의 눈 앞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세 폭짜리 대작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가 걸려있었다. 베이컨이 1969년 자신의 화가 친구 프로이트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 옆에는 제프 쿤스의 ‘풍선개’와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병’이 있었다. 그 밖에도 크리스토퍼 울, 게르하르트 리히터, 드 쿠닝, 잭슨 폴락 같은 유명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이 즐비했다. 하루 저녁 진행되는 경매를 위해 모인 최대 규모 컬렉션이었다. 경매장 안은 억만장자와 유력 인사, 미술품 애호가와 기자로 가득했다.

경매는 두 시간 만에 6억9158만 달러(7386억원)라는 어마어마한 낙찰액을 기록했다. 크리스티 247년 역사상 최대 낙찰액이다. 기대를 모은 베이컨의 작품은 1억4200만 달러(1491억원)에 낙찰되며 역대 예술품 최고가를 기록했다. 제프 쿤스의 ‘풍선개’는 5840만 달러(약 626억원)에 낙찰돼 생존 작가의 작품 경매가로는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크리스티가 기록을 세운 다음날인 13일 저녁 소더비 경매가 열렸다. 소더비에서 21년간 경매를 진행한 토바이어스 마이어는 큰 부담을 느끼며 경매장에 들어섰다. 그는 크리스티가 세운 경매 기록을 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반년 간 세계 미술품 수집가를 설득해서 모은 예술품을 최대한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마이어는 소더비에서 경매를 진행하며 세계 최고 낙찰액을 여러 번 이끌어낸 기록의 사나이다. 베이컨의 작품이 최고가 경매 신기록을 세우기 이전까지는 그가 지난해 1억1992만 달러(1260억원)에 판매한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가 역대 최고가 판매 작품이었다.



크리스티 247년 역사상 최대 낙찰액이날 마이어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앤디 워홀의 ‘실버 카 크래시’라는 작품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묘사한 워홀의 재난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이외에도 피카소의 작품과 56.9캐럿의 핑크 다이아몬드가 이날의 주요 작품이었다. 워홀의 작품은 경매 시작 5분 만에 팔렸다. 가격은 1억544만 달러(1107억원). 추정가를 크게 웃돌았고 워홀의 기존 최고가 낙찰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소더비는 이날 3억8064만 달러(40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소더비 역대 최고의 낙찰액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역대 최고 낙찰품이 등장할 때마다 이야기 거리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1980년대에는 일본이 세계 미술시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물량의 미술품을 사들인 때문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이 사들인 해외 미술품 수는 당시 전 세계에서 거래된 미술품의 절반 이상이었다. 그 기간 동안 매입가는 계속 사상 최고가를 갈아 치웠다. 일본 미술시장의 거래 총액은 1987년 2000억엔(약 2조334억원)에서 절정기인 1990년에는 1조5000억엔(15조2550억원)으로 뛰었다.

1990년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인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을 사간 사람도 사이토 료헤이라는 일본 기업인이었다. 고흐가 자신의 주치의를 그린 초상화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8250만 달러(약 868억원)에 팔렸다. 료헤이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작품과 함께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겨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다행히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이 스위스의 미술품 애호가에게 판매한 덕에 작품은 화장 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14년 간 최고가 미술품 자리를 지킨 고흐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는 파블로 피카소다. 2004년 5월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의 1905년 작품 ‘파이프를 든 소년’이 등장했다. 경매는 소더비의 마이어가 진행했고 모두 7명이 참여해 7분 간 숨막히는 공방을 벌였다. 승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통해 신호를 보내며 경매에 참여했다. 전화기 너머의 고객이 최종 제시한 금액은 1억416만8000달러(약 1096억원). 이 작품은 처음으로 1억 달러 벽을 넘어선 미술품으로 기록됐다.





크리스티·소더비 올해 사상 최대 실적2010년 2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 I’이 소더비에서 1억430만 달러(약 1098억원)에 팔리며 최고가 미술품에 올랐지만 불과 3개월 만에 피카소가 다시 정상을 차지했다.

같은 해 5월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피카소의 1932년 작품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이 1억648만 달러(약 1121억원)에 낙찰되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애초 ‘누드, 녹색잎과 상반신’은 7000만~9000만 달러로 책정됐지만 신원을 밝히지 않은 전화 경매 참여자가 최고가에 낙찰받으며 이 작품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크리스티에서 인상파 작품을 담당하는 코너 조단은 “미술품 수집가인 브로디 부부가 1950년 1만9800만 달러를 주고 구매한 이후 1961년 딱 한번만 전시됐을 정도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8년 간 정상을 지킨 피카소의 뒤를 이은 화가는 노르웨이의 에드바르트 뭉크다. 그의 작품 ‘절규’는 지난해 소더비에서 진행된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인 1억1992만 달러에 최종 낙찰됐다. 애초 예상가였던 8000만 달러를 크게 웃도는 액수다. 경매는 2명의 입찰자가 대리인을 통해 전화입찰 방식으로 참여하며 진행됐다. 4000만 달러에서 시작한 경매가는 불과 12분 만에 1억1992만 달러로 치솟으면서 순식간에 끝났다. 낙찰자의 신원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뭉크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토마스 올센의 아들 페테르 올센이 소장하고 있다가 경매에 내놓았다. 페테르는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평생 이 작품과 함께 해오면서 늘 힘과 에너지를 얻곤 했다”며 “이제는 이 소중한 작품을 다른 사람도 소유할 기회를 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경매에 내놓은 이유를 밝혔다.

‘절규’가 세운 최고 낙찰 기록은 올 11월 크리스티에서 베이컨의 작품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가 1억4200만 달러에 팔리며 깨졌다. 올해 새로운 기록이 탄생한 것과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경매시장에 훈풍이 부는 신호로 본다. 뉴욕타임스는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며 “마침내 수퍼리치들이 그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후 추춤했던 해외 미술시장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중국인 지난해 경매에 5조5923억원 풀어실제로 지난해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에는 2011년보다 6% 늘어난 122억 달러(약 13조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올해는 이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오고 갔다는 분석이다. 에이트인스티튜트가 분석한 미술품 경매 역사상 가장 비싼 작품 10점 중 절반이 최근 3년 사이 바뀌었다.

경매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배경에는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 부자들의 등장이 있다. 10년 전 유명 경매장에서 열리는 이브닝세일(하이라이트 작품 50~70점을 추려 판매하는 특급 경매)은 미국과 유럽·일본 고객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큰 손’이 나타났다. 중국·중동·러시아·인도·남미 부호들이 경매장에 자리잡고 예술품 수집에 나섰다.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 고가의 예술품을 구매한 실구매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경매인과 미술품 전문가,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예술품에 수천만 달러를 베팅하는 새로운 부호들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다. 소더비에 처음 나온 한 브라질 신사는 하루에 6700만 달러를 썼다.

아시아에서 온 미술품 애호가는 지난 여름 크리스티 경매에서 1000만달러, 11월 경매에서는 3000만 달러의 예술품을 구입했다. 11월 크리스티 경매에 나타난 중국 재벌 왕잔린은 피카소의 작품 ‘클로드와 팔로마’를 작품 추정가 900만 달러의 세 배 수준인 2820만 달러에 낙찰 받았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국이 세계 경매시장의 큰 손으로 굳어질 것으로 본다. 배혜진 크리스티 서울사무소장은 “중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예술품 수집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며 “중국 부호들이 해외 작품에 눈을 돌리고 있어 글로벌 경매시장의 낙찰가가 계속 상승세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주최한 경매에 참여한 중국인 수는 2008년 이후 두 배로 증가했다. 지난해 중국인이 미술품 경매에 사용한 금액은 5조5923억원으로 세계 1위 규모다.

중국의 부상은 글로벌 예술시장에 커다란 호재다. 미술품 수집을 열망하는 수많은 부자가 새로 등장한 셈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올해 자국 경매시장을 개방했다. 그동안 베이징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 경매시장에 해외 기업은 참여할 수 없었다. 문턱을 낮추자마자 미술 경매의 양대 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중국에 진출했다. 소더비는 12월 1일 베이징에서 첫 경매를 개최해 3700만 달러어치의 예술품을 판매했다.

소더비는 이번 경매와 세번의 개별 판매를 통해 동서양 미술품·가구·보석류 2억1200만 달러 상당의 작품 144점을 중국 고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소더비의 루프레히트 회장은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미술가 히라노 료이츠 등을 영입했다. 크리스티는 9월 26일 상하이에서 첫 경매를 열었다. 스티븐 머피 크리스티 회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예술품 시장에서 중국은 유례없는 성장세를 보였다”며 “중국 본토에 단독으로 지점을 내 향후 30년간 중국 전역에서 경매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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