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BES WOMAN - “우리 손 거치면 거짓 이력서 안 통하죠”
- FORBES WOMAN - “우리 손 거치면 거짓 이력서 안 통하죠”

한때 영국 최고(最古)의 상업은행이던 베어링의 싱가포르 지점 선물담당 책임자였던 닉 리슨은 입사심사 때 우리 돈 20만원 정도 연체한 사실을 숨겼다가 들통나 적격 심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베어링은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채용했다. 그는 1995년 파생상품의 위험을 무시하고 일본 증시의 닛케이 지수선물에 무리하게 투자해 회사에 8억6000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혔다. 그 여파로 베어링은 거덜나 네덜란드 ING그룹에 1달러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잘못된 채용이 기업에 미치는 손실은 얼마나 될까. 미국 스마트앤어소시에이츠의 브래드 스마트 대표가 2011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연봉 11만 달러의 임원급 1명을 잘못 채용할 경우 회사가 떠안는 손실은 연봉의 24배인 271만 달러에 이른다. 금전 손실 외에 해직 비용과 사업상의 기회비용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 한 사람의 잘못된 사업적 판단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면 납득 못할 수치는 아니다.
글로벌 평판조회 전문기업 퍼스트어드밴티지의 정혜련(38·사진) 한국지사장은 이 같은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구직자의 경력과 평판 조회 대행 사업이 성황이라고 했다.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우리나라는 관련 사업이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리의식이 높아지고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투명한 채용을 위한 검증서비스는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퍼스트어드밴티지는 현재 전 세계 35개국 50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다. 국내외 학력·경력조회, 신용 관련 기록, 범죄경력조회 등 사실확인 조회와 평판 조회를 대행한다. 모든 절차는 구직자 동의 하에 진행한다. 연간 2300만 건의 고용심사를 수행하고 연 매출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한 사람의 평판 조회에 드는 비용은 10만원부터 200만 원까지 다양하다. 한국지사는 2008년 이후 연 20~30%대 매출 성장을 이어왔다. 외국계 기업·국내 대기업·정부기관 등 고객사도 다양하다. 올 초에는 정보보호 분야의 국제인증인 국제정보보호표준(ISO27001)을 획득했다.
고졸 학력을 해외 MBA로 속이기도범죄경력조회의 경우 전 세계 160여개 금융감독기관과 정부기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범죄 경력을 추적한다. 평판 조회는 해당 지원자의 주변인들과 접촉을 통해 직접 조사하는데 주로 이전 직장의 직속상사가 대상이다. “치밀하게 구성된 질문을 통해 업무상 강점과 보완점, 대인관계와 전문지식 등을 통해 구직자의 역량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임원급 구직자의 경우 한 쪽 반에서 두 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퍼스트어드밴티지가 검증 의뢰를 받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구직자 이력서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된 경우는 20%가 넘는다고 한다. 외국 구직자는 재직기간과 직함 등 경력과 관련된 내용을, 상대적으로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학력을 속이는 사례가 많다.
“요즘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구직자 성향을 파악하는 기업이 늘면서 미국에서는 해당 사이트 글을 그럴듯하게 꾸며주는 대행업체가 성업 중입니다. 거짓으로 꾸민 이력서에 이전 근무처 전화번호를 본인이 받을 수 있게 기재해 놓는 경우도 있어요.”
서울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정 지사장은 2002년 사진작가인 일본인 남편과 결혼한 뒤 일본에 있는 평판 조회 전문 업체 브룩컨설팅에 입사했다(2006년 퍼스트어드밴티지에 합병). 이후 미국 본사는 2008년 정 대표에게 한국 지사를 맡겼다. 일본에서 근무할 때 유일한 한국인으로 한국기업과 한국인 구직자 관련 업무 요청에 성실하게 임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채용을 하는 곳의 인사담당 부서가 평판조회를 직접 하지 않고 왜 전문 대행사에 맡기는 것일까. 정 지사장은 세가지 이유를 들었다. “내부 추천은 정서적인 이유에서 인사부서가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채용담당자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추천했다면 말할 것도 없죠. 심지어 우리가 작성한 평판 자료에서 ‘부정적인 내용을 빼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어요.”
둘째는 법적인 이유다. 개인정보보호법에 근거해 조사영역과 절차에 대한 법적인 이해 없이 덤볐다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 있다는 것. 민감한 사안인 만큼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자문한다고 한다. “검증업무로 본연의 인사업무에 소홀한다면 만만치 않은 기회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죠.”
마지막으로 전문적인 글로벌 검증 네트워크다. 해외 유학생과 국내 거주 외국인 증가로 구직자의 정확한 해외 경력 검증이 중요해졌다. 따라서 퍼스트어드밴티지 한국지사는 영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경험이 풍부한 리서치 전문 인력을 다수 고용했다. 현재 한국지사에는 1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정 대표는 이와 관련한 국내 사례를 소개했다. A 기업은 퍼스트어드밴티지에 미국의 모 주립대를 다니다 국내 명문대에 편입하고 다시 미국에서 MBA 과정까지 마쳤다는 직원의 검증을 의뢰했다. 업무능력이 기대치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미국 본사를 통해 조회한 결과 그 직원이 미국에서 얻은 학력은 2개월 어학과정이 전부였다. 물론 MBA과정도 밟지 않았다.
이력서에 기재된 미국 모 주립대와 학점교환이 되는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의 어학코스를 다녔을뿐이다. 편입했다는 국내 명문대학에도 그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의 최종학력은 고졸이었다. 경력직에다 전 직장도 훌륭해 별도 검증 없이 이력서를 그대로 믿은 게 문제였다.
정 지사장은 인사 사고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기업 인사 담당자는 구직자의 서류를 최대한 많이 받으라고 조언했다. “꼼꼼하게 서류를 챙기는 구직자의 모습에서 관심과 열정을 가늠할 수 있어요. 회사가 인사검증을 까다롭게 진행하면 구직자가 경력을 속이려다가도 겁을 먹고 지레 물러납니다.”
그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구직자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사실 여부를 조회할 수 없는 인턴십이나 자원봉사경력 나열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기억에만 의존해 이력서를 쓰다가 경력기간에 착오가 생기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평소에 잘 정리해 놓는 게 좋습니다.” 회사를 옮길 때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도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너무 좁거든요. 그만둔다고 대충 마무리하고 나오면 나중에 회사 옮길 때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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