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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2014 -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한국의 선택

OUTLOOK 2014 -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전환과 한국의 선택

미국이 약진하고 일본이 뒤따르는 가운데 중국은 부진할 가능성 높아 … 중국 의존도 낮추고 미·일과 연대해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 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으로 미국 경기 부양을 이끌었다.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났다. 지난 수 년 간 나는 이 금융위기가 역설적으로 향후 30년 간의 미국 헤게모니 강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위기는 역설적으로 강자에게 국면을 전환시킬 기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 동안 미국이 추진한 이례적인 통화정책과 전향적인 개혁 목록은 꽤 길다. 우선 최고의 디플레이션 전문가인 벤 버냉키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임명한 후 엄청난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다. 위기 당시 5.25%였던 기준금리를 0.25%로 낮추고 세 차례의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시장 금리를 낮췄다. 어려움을 겪는 제조업에 유동성을 공급해 주는 대신 기업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회생했고 주가는 크게 올랐다. ‘볼커 룰’과 ‘도드 프랭크 법안’으로 대표되는 금융시장 개혁으로 은행이 무리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을 제도적으로 차단했다. 그 결과 자원과 인재가 월스트리트에서 메인 스트리트와 실리콘 밸리로 이동하고 있다. 2013년 미국 주가지수는 30% 가까이 올랐고 특히 나스닥의 상승률은 다른 어떤 지수보다도 높다. 새로운 기업을 일으키겠다는 ‘기업가 정신’은 실리콘 밸리 곳곳에서 타오르고 있다.

2014년에도 미국의 약진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FRB의 통화정책 변화가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 것이다. 역사적인 경험으로 보면 유동성을 공급하던 통화정책을 변화시킬 것이란 신호를 FRB가 내보내기 시작할 때 시장은 큰 충격을 받는다.

2013년 5월 버냉키가 양적완화를 축소해 채권매입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시사하자 미국의 전세계 채권 금리는 크게 오르고 주식 시장도 흔들렸다. 버냉키는 여러 경로를 통해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시장을 달랬다. 결국 양적완화 축소는 2013년 12월에야 소폭으로 이루어졌다. 여섯 달 동안 주가는 더 오르고 금리는 비교적 안정됐다.

이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FRB의 전략이 성공적이기도 했지만 미국 경제의 회복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통화정책 변화가 경제 회복 때문이라면 유동성 축소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3년 3분기 미국 경제는 4.1% 성장했다.

4분기 성장률은 정부 폐쇄의 영향으로 2% 수준으로 감소하겠지만 2014년 1분기 성장률은 다시 3%대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 2013년 10월의 정부 폐쇄 이후 발표된 미국의 11월 산업생산, 제조업, 주택관련 지표들은 모두 시장의 예상을 상회했다. 특히 11월 주택착공 지수는 전월대비 22%나 개선된 6년 간 최고치였다.

20년 동안 멈췄던 일본 경제의 시계는 ‘아베노믹스’의 등장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고전2013년은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힘든 해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주식 시장이 유례없는 상승세를 보이는 동안 한국의 지수는 크게 하락했다가 겨우 반등했다. 이러한 상황은 2014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둘러싸고 있는 경제환경이 매우 척박한 상황이고 정책적 대응도 부실하기 때문이다.

우선 10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소비 회복을 계속해서 지연시키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첫째 방법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담보인 주택을 매도해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하지만 금리를 인하하는 거시 정책을 사용해도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시 정책으로 추가적인 대출을 늘려서 가격을 부양하기에는 구조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 둘째로 가능한 방법은 소득 증가다. 소득 증가가 이자 증가보다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하지 않는다면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소비 위축을 가져 온다. 당분간 소비의 의미 있는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2013년 한국 경제를 위협했던 또 다른 거시 경제 변수는 환율이었다. 환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서 한때 원-달러 환율은 1050원 선이 붕괴되었다. 특히 엔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는 지난 1년 동안 30% 가까이 절상되어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크게 악화시켰다. 선진국의 주식시장이 크게 상승하는데도 한국 주식시장이 고전한 데는 엔화 가치의 하락이 결정적이었다.

문제는 2014년에도 엔화 가치의 하락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엔-달러 환율은 잠깐의 반등 추세가 있긴 했지만 140엔에서 90엔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일본은 디플레이션으로 고통 받는 국가였기 때문에 통화 강세는 일본을 디플레이션의 수렁으로 깊게 밀어 넣었다.

인위적인 엔화가치 약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지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만, 일본이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엔화의 구매력을 보장받기 원하는 고령의 연금생활자들을 정치적으로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미국의 용인 하에 일본의 아베 정권은 무제한 자산매입을 근간으로 하는 디플레이션 극복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할 경우 엔화의 약세는 지금보다 가속화될 것이다.
고가도로 밑에서 노숙하는 중국 농민들.





패러다임의 변화세계 경제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를 정도로 큰 변화의 추이는 2016년까지 점진적으로 다양한 경제 금융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첫째는 달러의 강세와 나스닥의 강세로 대변되는 미국 경제의 회복이다. 미국은 고령화와 인구감소 문제에서 자유로운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상당한 수준의 사회보장제도 변혁과 금융시장 개혁을 이루어냈다.

지금 세상에는 미국 경제 회복을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5년 말 혹은 2016년 초에 FRB가 금리를 인상하면서 유동성을 흡수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미국이 이루어낸 변화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FRB는 미국 경제가 유동성 축소를 감당할만한 체력을 갖췄을 때 금리를 인상하겠지만,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특히 1000조 원이 넘는 가계 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유동성을 걷어갈 때 유출될 역외 자금 때문에 시장 수익률이 상승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인하해도 FRB의 금리인상 때문에 한국의 시장 수익률이 상승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되면 가계부채 때문에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가계들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둘째로 주목해야 하는 현상은 일본 경제의 회복이다. 20년 동안 멈췄던 일본 경제의 시계는 ‘아베노믹스’의 등장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시점에서 일본 경제와 ‘아베노믹스’에 대해 생각해볼 것은 ‘이렇게 쉽게 경제를 회복할 방법이 있었는데 왜 지난 20년 동안 일본의 시계는 멈춰 있었는지’다.

내 관점으로는 ‘아베노믹스’는 몰라서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어서 못했던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아베노믹스’가 추진될 수 있는 까닭은 미국이 용인한 덕분이다. 미국이 일본의 엔화 절하를 포함한 ‘아베노믹스’를 용인한 이유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을 극복하려는 일본의 노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일본 내부에서도 의구심이 높지만 성공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성공이 한국 경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것이다. 일본이 성공적으로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엔화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수출 비중이 40%에 달하는 한국으로서는 경쟁자 일본의 통화가치 하락에 지속적인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셋째로 주목할 현상은 중국 자산버블의 붕괴 가능성이다. 중국은 지난 수 년간 8% 넘는 성장을 지속해왔다. 중국처럼 거대한 인구를 가진 국가가 투자와 수출 위주의 성장을 통해 지금의 성장률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아직 인적 자본과 생산성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은 중국 경제가 마주한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야심있게 추진하고 있는 도시화 정책은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대중국 수출 비중이 큰 대만과 한국으로서는 좋은 소식이다.

인적 자본 수준이 낮은 농민들을 도시를 만들어 이동시키는 사업은 단기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성장률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수요가 없는 도시는 유지가 불가능하다. 경제문제뿐 아니라 사회문제도 야기할 것이다. 게다가 중국이 안고 있는 ‘그림자 금융’(은행과 같은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이나 부동산 가격 거품 문제는 단기적으로 치유가 어렵고 장기적으로는 위기를 야기할 잠재 요인으로 중국을 괴롭힐 것이다. 중국의 거품이 붕괴될 경우 한국 경제가 입을 충격은 상당하다.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전세가 월세로 빠르게 바뀌면서 젊은 계층의 어려움도 커진다.


한국의 선택지금 한국경제가 경험하고 있는 불황 상태의 경상수지 흑자, 부동산 가격의 하락, 부채 부담으로 인한 디레버리징과 그로인한 소비위축은 모두 일본이 디플레이션에 들어갈 때 경험했던 현상들이다. 지금의 낮은 인플레이션 압력까지 포함하면 거의 모든 경제현상들은 한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다.

다행인 것은 한국의 정책금리가 높아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고 환율 하락이 클 때 금리인하로 대응할 정책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비록 기축통화가 아니긴 하지만 만일의 경우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해 실질금리를 더 낮출 수도 있다. 미국의 본격적인 금리인상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통화정책의 시작과 더불어 금리인상의 크기와 속도는 상당히 빠를 것이기 때문에 그 이후 1년까지는 한국 정부와 통화 당국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에 대비해서 일본이 지난 20년 동안 사용했던 거시정책 뿐 아니라 미시 정책도 잘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 하에서 가장 고통 받는 것은 인구 구조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자와 연금 생활자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낮은 이자가 고착화되면 전세가 월세로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소득이 낮고 자산이 없는 젊은 계층의 고통도 커진다. 임대 서비스의 공급을 늘려 월세 가격을 안정화시키고 임대사업자들이 쉽게 임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세금을 포함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경제구조적으로 보면 한국은 수출 비중이 40%나 차지하는 수출의존형 성장을 추구한다. 지역적으로 보면 지난 10년 간 미국의 비중은 줄고 중국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한국이 중국에 자본재를 중심으로 한 수출을 한 후 중국은 완성품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수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이 더 이상 수출 중심의 성장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규모가 커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역시 커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경제적으로 회복하고 군사적으로 ‘정상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중국은 투자와 수출 중심의 경제를 내수와 도시 중심의 경제로 바꾸려고 하고 있지만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화 정책은 단기적으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생산성과 인적자본의 질이 향상되지 않은 도시는 존립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은 성장 위험을 갖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 연대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내수의 비중을 지금보다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남북 경협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유통과 농업의 생산성 확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선의는 훌륭할지 몰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주 나쁜 정책이다. 2만 3000달러 수준인 지금 1인당 GDP를 3만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현 유통시장의 모습으로는 불가능하다.

한국은행의 내년도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3.9%로 3% 성장률 달성이 힘들어 보이는 2013년보다 훨씬 낙관적이다. 하지만 분기별 성장률로 보면 높은 성장률이라고 하기 어렵고 좋은 체감 경기를 느끼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주식 시장은 올해처럼 힘겨운 한 해를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2014년에 경험할 변화들은 2015년 이후에 겪을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거시와 미시 정책을 망라한 철저한 정책적 대비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 필자는 투자자로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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