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기업이 갑자기 쇠락하는 경우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34세에 말라리아로 돌연 세상을 떠나자 제국이 무너져 버렸듯이 브리태니커나 노키아, 코닥 같이 호황을 누리던 회사들이 어느 날 몰락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왕년에 이름을 날렸던 많은 기업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성공신화를 만든 기업들이 갑자기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이 바뀌었다거나 강력한 경쟁자가 출현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업계 최고라는 자만심에 젖어 미래 대비를 못한 것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착각은 패망에 이르는 병그런데 어떤 경우든 공통적인 원인이 하나 있다. 경영층의 판단 착오가 있었다는 점이다. 상황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변수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오판이나 착각으로 적절한 전략을 세우지 못한 것이 패인이었다. 바둑에서도 유리하던 판이 갑자기 뒤집어지는 수가 있다. 엄청나게 유리했던 바둑이 뒤집어지는 ‘대역전극’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패한 쪽은 “다 이긴 바둑을 졌다”며 억울해 한다.
크게 유리했던 바둑을 역전 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커다란 실수를 했을 때 일어난다. 작은 악수(惡手)나 느슨한 완착을 두는 정도로는 형세가 쉽사리 뒤집어지지 않는다. 착각을 해서 대마(大馬)가 끊겨 잡히는 수를 보지 못하는 정도의 커다란 실수를 할 때 승부가 뒤집어진다.
아마추어의 바둑에서는 이런 착각에 의해 승부가 좌우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착각은 패망에 이르는 병’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정한 마음으로 착각에 의한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승리를 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착각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고수들에게서도 나온다. 프로들도 착각해 돌이 끊어지거나 오판을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어떤 경우에는 초보자도 볼 수 있는 ‘단수’를 착각해 망하는 일도 있다. 단수는 바둑을 처음 배울 때 알게 되는 기초 수법이기 때문에 프로가 이런 실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둑계의 정상급 기사들도 단수를 착각하는 실수를 한다. 예를 하나 보기로 하자.
[1도]는 일본의 공식시합에서 고바야시 고이치 9단과 이시다 요시오 9단이 둔 바둑이다. 두 기사는 한 때 일본 바둑계의 최고봉으로 군림한 강자들이다. 고바야시 9단이 흑1에 두자 이시다 9단은 백2로 두었다. 흑0 를 단수한 수. [2도]의 이 수에는 흑2로 이어야 한다는 것을 초급자도 알고 있다. 그 때 백3에 이어 살아가면 다른 곳으로 간다. 이것이 정상적인 진행이다.
[3도]에서 그런데 고바야시 9단은 백1의 단수에 잇지 않고 흑2에 두었다. 그러자 백3으로 흑돌을 따내 버렸다. 잡혔던 왼쪽 백 두 점이 살아가며 오른쪽 흑돌 두 점이 잡혀버렸다. 순식간에 흑이 10집을 날려버린 결과. 프로의 바둑에서는 치명적인 손해다. 결국 이 바둑은 단수를 착각한 고바야시의 패배로 끝났다.
이 예처럼 프로고수가 단수를 못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은 신중하게 두는 기사로 조치훈 9단을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고수다. 그런 기사가 단수를 못 본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의 바둑에서 단수를 착각하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서봉수 9단도 이와비슷하게 단수를 착각해 패한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근래 좋은 성적을 내는 젊은 기사들도 착각을 한 사례가 있다.
바둑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기사들이 이와 같은 실수를 한다는 것은 마치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다. 왜 이런 실수가 나올까. 이런 착각은 상대가 단수를 하지 않았다고 믿은데서 비롯된 것이다. 비즈니스에 비유하면 적이 가슴에 창을 들이댔는데 아니라고 믿는 격이다. 위험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판단하니 중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국가경영이나 기업경영에서도 이런 착각을 한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것이다. 유리하던 형국을 일거에 패배로 반전시키는 역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맑은 마음으로 형세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즈니스를 둘러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바둑의 단수처럼 일거에 역전패를 불러올 요소는 없는지 두루 살펴보아야 한다.
이와 관련된 바둑격언으로 ‘신물경속(愼勿輕速)’이란 말이 있다. 신중을 기하여 경솔함을 삼가라는 말이다. 이것은 중국 북송 때의 바둑고수 유중보가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위기십결』에 들어있는 금언이다. 옛날 사람들도 바둑을 둘 때 경솔하게 두어 실수를 하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일거에 역전패 부를 위험 없는지 살펴야사실 신물경속은 바둑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두루 적용되는 금언이다. 경솔한 판단으로 상황을 오판하여 어려움에 처하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아닌가. 단수 착각과 신물경속에 담긴 교훈을 마음속에 새긴다면 기업경영에서도 돌발적인 사태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혹시 단수와 같은 상황이 아닌지 모니터링을 하도록 하라. 신중을 기하여 경솔한 판단을 하지 않도록 경영자는 늘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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