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광경에 감탄사 절로 나와 … 자동차로도 오를 수 있어

우리나라는 반도에다 산지(山地)가 70%에 달하지만 뜻밖에 바닷가의 높은 산은 드물다. 서해안 최고봉은 충남 홍성의 오서산으로 높이는 791m에 불과하다. 남해안의 최고봉은 경남 하동 금오산으로 849m에 그친다. 동해안도 강원도로 넘어가서야 삼척 두타산(1353m) 같은 고봉이 나온다. 따라서 서해안, 남해안, 동해 남부를 통틀어 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하동 금오산이다.

849m라는 수치만 생각한다면 남해를 바라보고 하늘 높이 솟구친 금오산의 고고하고 웅장한 자태에 놀랄 수밖에 없다. 지리산의 한 준봉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고작 849m 높이로 주변을 압도하는 고도감과 스케일을 주는 것은 바닷가 산의 공통된 특징이다. 해변에서 솟구친 산체는 해발 높이가 에누리 없는 실제 키가 된다. 강원도 내륙에 있는 높이 1000m 이상의 고산도 실제 산 덩치는 얼마 되지 않는 듯하다. 산이 버티고 선 바닥의 높이가 이미 해발 500~800m에 달하기 때문이다.

금오산은 주변에 비슷한 높이의 산이 없다. 고고한 독립봉이어서 헌걸찬 기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렇게 높고 늘씬한 덩치를 가졌지만 산의 너비는 고작 지름 6㎞ 남짓하다. 그마저 원형으로 바짝 모여 있어 군더더기 없이 한층 뾰족하고 가파른 산세를 이룬다.



해발 높이가 에누리 없는 실제 키웅장하면서도 우아한 산체 외에 금오산이 가진 특별한 매력은 또 있다. 바다와 산을 바라보는 최고의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냥 바다와 산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섬이 점점이 흩어진 남해의 다도해와 사방 800리를 아우르는 거대한 지리산이다.

금오산의 매력은 더 있다. 워낙 전망이 좋고 탁 트인 독립봉이어서 예로부터 전략적 가치가 높아 조선조에는 봉수대가 있었고, 지금도 각종 통신시설이 들어서있다. 이런 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정상까지 도로가 나있어 자동차로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다만 길이 좁고 경사가 매우 심해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에 서는 순간, 하루 종일 걸어서 올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감탄사를 뱉지 않을 수 없다.

금오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그냥 막연한 원경이나 경치가 아니다. 먼저 북쪽으로는 약 40㎞의 거리를 두고 지리산 주능선이 올곧게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노고단(1507m)에서 동쪽의 천왕봉(1915m)·중봉(1875m) 연봉까지 한 시야에 보인다. 고만고만한 산야의 파노라마를 산자락 저 아래로 외면하며 아득히 우주로 머리를 내민 지리산 주능선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에 대한 외경과 감동을 부른다.



정상 데크에서 일출·일몰 동시에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야 말로 눈이 씻기고 가슴이 트이며 터져 나오는 감탄사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사천만에 흩어진 수많은 섬, 그 너머로 보이는 삼천포 대교, 더 멀리는 가파른 암릉이 선명한 사량도(여기에도 지리산이 있다)를 비롯해 통영의 섬이 아득하다.

바로 남쪽에는 남해도가 큰 산으로 빽빽하다. 거의 눈높이로 보이는 둔중한 봉우리는 남해도의 최고봉 망운산(786m)이다. 남해도 서쪽으로는 거대한 공업지대를 이룬 광양만 일대가 펼쳐진다. 세계로 뻗어가는 대한민국 중공업의 동맥이 바로 발 밑에서 맥동한다. 바다를 가르는 새하얀 이순신대교는 회색빛 공업지대를 무마하는 설치작품이 된다.

하늘 높이 연기를 뿜는 하동화력발전소의 거대한 굴뚝은 음료잔의 스트로처럼 가녀리기만 하다. 여기 까마득한 산꼭대기에서는 발 아래로 보이는 인류문명의 대역사도 한낱 소꿉장난처럼 동떨어지고 축소돼 보인다. 옛 사람들이 웅장한 대자연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운다고 한 것은 지금도 진리다.

정상 남쪽에는 데크 형태로 해맞이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여기서는 한 자리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어 발 빠른 캠핑족 사이에는 벌써 이름이 높다. 밤이 되면 이번에는 우주의 별이 눈앞으로 내려앉아 산꼭대기는 우주로 확장되고, 발 밑의 도시는 불야성으로 화답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