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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 - 진화된 쇼룸이 충성고객 만든다

TRENDS - 진화된 쇼룸이 충성고객 만든다

기업들이 럭셔리한 체험공간을 꾸미고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등 고객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쇼룸에서의 경험을 통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오디오갤러리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청담쇼룸의 프라이빗 리스닝 룸. 방문객은 7억원 상당의 풀 아폴로그 스피커 시스템이 쏟아내는 환상적인 음향을 경험할 수 있다.



미국 가수 비욘세의 ‘크레이지 인 러브(Crazy in love)’가 이렇게까지 화려하고 파워풀한 노래인지 미처 몰랐다. 귀에 익숙한 노래지만 아폴로그 애니버서리 오디오 시스템이 쏟아내는 소리는 이전의 느낌과 확연히 달랐다. 150인치 스크린까지 더해 마치 콘서트 현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12월 초 방문한 서울 청담동 오디오갤러리 청담쇼룸의 프라이빗 리스닝 룸. 이곳에 설치된 오디오 시스템 ‘아폴로그 애니버서리 리미티드 에디션’은 스위스 골드문트가 아폴로그 출시 25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에 25세트 한정판으로 선보인 제품이다. 전체 구성 가격이 7억원에 달한다. 스피커 속으로 오디오 시스템이 들어간 와이어리스(줄이 없는) 시스템이다. 높이 185㎝의 유니크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국내에선 몇몇 대기업 총수, 벤처기업 CEO 등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디오갤러리의 이유진 씨는 프라이빗 리스닝룸에 배치된 소파 한가운데 앉기를 권했다. 그는 “케이블 종류, 스피커 위치는 물론 소파의 유무와 위치까지 음질을 좌우한다”며 “스피커의 차이를 느끼려면 귀에 익숙한 음악을 듣고 판단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최근 청담동은 하이엔드 오디오(고급 오디오)업계의 각축장이다. 오디오갤러리를 비롯해 디자인앤오디오, 모뉴엘, JBL하만 등이 고급 청음실을 갖추고 오디오파일(Audiophile, 오디오 애호가)을 유혹한다. 그중에서 오디오갤러리는 독립적인 공간에서 럭셔리 경험을 제공한다. 이곳에서 청음하려면 예약해야 한다. 이유진 씨는 “오디오와 스피커 가격은 성능에 따라 수백만원부터 수십억원까지 있다”며 “오디오파일에게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유 욕구가 절로 생기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8월 문을 연 청담쇼룸은 330m²(약 100평) 공간에 골드문트 시스템을 비롯해 천재 스피커 개발자 로렌스 디키가 만든 비비드오디오의 기야(GIYA) G3, 프랑스의 드비알레 인티앰프, 독특한 디자인이 인상적인 독일 스피커 보자티브 암페지오 등을 전시해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 대부분은 소스기기·앰프·스피커 등 기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찾는다. 하이엔드 오디오는 중고 거래가 활발해 교체 비용 부담이 적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경기 불황과 상관없이 하이엔드 오디오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청담쇼룸은 실제 구매자의 청음 조건에 가장 가까운 환경으로 꾸몄다. 흡음재·차음재 등 룸 튜닝재를 사용해 최상의 소리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에서 들은 소리 그대로 거실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사전에 개인 취향, 설치 장소 등에 대해 충분한 상담을 진행한다.”

로얄&컴퍼니의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로얄’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처럼 기업의 쇼룸은 단순한 제품경험의 차원이 아닌 고객이 기업의 브랜드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즐겁고 강렬한 체험을 제공한다. 주로 명품업체나 브랜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이 적극적이다. 『스페이스 마케팅』 저자 홍성용 건축디자이너는 “최근 기업의 마케팅은 직접 수입을 올리는 방식에서 정기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고객의 관심과 신뢰를 얻는 방향인데, 쇼룸의 변신이 대표적이다. 쇼룸 마케팅은 강한 인상을 통한 브랜드 기억 또는 브랜드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로얄&컴퍼니는 서울 논현동에 전시장·갤러리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로얄’을 운영한다. 1층에 들어서니 먼저 북카페와 와인바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 통창으로 들어오는 초겨울 한낮의 햇볕을 받으며 늦은 점심과 차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2층은 갤러리와 다이닝이다. 3층에서 5층까지는 사무실이고 6층은 강의실이다. 지하 1층엔 욕실용품 쇼룸을 마련했다. 사옥의 절반을 제품 전시와 문화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쇼룸은 1층과 열린 공간으로 연결됐고 층고가 높아 그 자체로 시원한 전시장이자 갤러리다. 통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해 일반 가정집 거실 분위기가 난다. 욕실시스템 ‘로얄 컴바스’를 비롯해 수전(수도꼭지)·위생도기·비데 그리고 욕실제품을 이용한 미술작품까지 전시했다.

로얄&컴퍼니 마케팅팀 이혜영 대리는 “2006년 사옥을 지을 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북카페와 와인바·다이닝도 입점업체가 아니라 직영이며, 직원들 역시 정규직이다. 쇼룸을 찾은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업 철학을 실천한다.”

갤러리에선 황세준의 ‘목단행성’을 시작으로 김은주의 ‘바람이 분다’까지 올 한 해 동안 여섯 차례 전시회를 했다. 마침 12월 말부터 1월까지 열리는 ‘금속공예가들의 조명’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6층 강의실에서는 로얄아카데미가 진행된다. 욕실인테리어강좌에서 사진·미술·음악·독서강좌와 수경재배식물 만들기, 핸드드립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이 대리는 “서울 강남 일대의 주부뿐 아니라 인테리어에 관심 많은 젊은 층 등 잠재 고객도 많이 찾는다”며 “단순히 제품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즐거움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새로운 매력과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쇼룸과 갤러리·강의실이 만드는 선순환 효과는 크다. 쇼룸을 찾는 고객은 갤러리에 올라가 작품을 감상하고 기회가 닿으면 강의도 듣는다. 또 북카페나 식당에 들러 휴식을 취한다. 반대로 강의실과 갤러리를 찾은 사람도 내친 김에 지하로 내려와 쇼룸 구경에 나선다.

이 대리는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보고 시연하기 때문에 반응을 직접 알 수 있다”고 했다. “최근 욕실업계가 디자인 경쟁에 힘을 쏟고 있지만 정작 주부들은 세면대 물이 튀지 않도록 볼을 더 깊이 하는 것이 좋겠다, 전기제품의 안전성을 보여줘야 한다 등 제품 기능에 관심이 높아 품질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다.”

다른 욕실업체도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마케팅에 열심이다. 아이에스동서는 서울 청담동 사옥에 쇼룸을 열고 가격대별로 4개의 실제 화장실 모습을 선보였다. 대림B&co도 서울 논현동 사옥에 욕실 아이템 체험공간을 마련했다. 특히 ‘절수과학존’에는 세로로 단면이 잘린 실제 위생도기가 전시돼 소비자가 직접 물을 흘려보내면서 수세원리를 체험할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타일공예클래스 등 무료강좌를 진행한다.

욕실업계의 이 같은 움직임은 건설경기 침체로 움츠러든 특판(B2B)시장 대신 ‘기업·소비자 간의 거래(B2C)’를 개척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리는 “수전 하나도 취향에 따라 꼼꼼하게 고르는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기에 쇼룸만큼 좋은 공간이 없다”며 “제품을 보고 바로 구매의사를 밝히는 고객이 있어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했다.
까사미아가 운영하는 라까사 호텔의 스위트룸은 자사 제품으로 채워졌다.





고객 니즈 파악해 신상품 개발 효과도쇼룸에서 나타난 고객의 반응과 니즈는 신상품 개발 효과도 낳는다. 까사미아가 선보인 호텔식 침구세트 ‘까사블랑’이 대표적이다. 까사미아는 2010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뉴삼화관광호텔을 인수해 디자인 호텔 ‘라까사’로 리모델링했다. 61개 객실을 18개 타입으로 재구성하고 자사 브랜드의 가구와 인테리어·소품들로 채웠다. 최근 유행하는 부티크 호텔의 형식을 빌어 일종의 거대한 쇼룸 역할을 수행토록 했다.

4층 스위트룸에 들어서니 화려한 호텔이라기보다는 잘 꾸며놓은 대저택의 마스터 룸 같았다. 오픈형 수납장과 조명기구들이 호텔이 아닌 편안한 공간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침대에서 소파·책상과 러그, 심지어 휴지통까지 모두 까사미아 제품으로 꾸몄다. 6층 가든하우스와 로프트하우스에는 까사미아가 지향하는 럭셔리 리빙 브랜드로 장식했다.

까사미아는 호텔 오픈과 함께 기존 서울 압구정동 직매장을 라까사 호텔로 이전했다. 호텔 지하1층과 지상 1·2층, 옆 건물 3개층에 직매장을 열었다. 호텔에서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접한 고객의 관심을 구매로 연계하기 위한 것이다.

조현정 라까사 호텔 마케팅팀장은 “잠재 소비자인 투숙객이 호텔에서 직접 제품을 체험해보고 생활해 볼 수 있어 홍보 효과가 일반 쇼룸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며 “호텔 투숙객 중 60% 이상은 매장을 방문하고 있으며 매출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객실 내 꾸며진 콘셉트를 원하는 고객이 침대와 서랍장 등을 세트로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 인테리어 관련 블로그엔 자신의 침실을 우리 호텔의 스위트룸과 똑같이 꾸며 올린 사람이 적지 않다.”

까사미아는 지난해 11월 호텔침구 브랜드 ‘까사블랑’을 출시했다. 까사블랑은 이탈리아어로 집을 뜻하는 ‘casa’와 프랑스어로 흰색을 뜻하는 ‘blanc’을 합친 조어로, 흰색 컬러를 주로 사용한 침구 브랜드다. 인도 남부 마드라스산 고급 면 등 특급호텔 침구류에 사용하는 원단으로 얇고 부드러우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이불세트를 선보였다. 지난 3월 GS홈쇼핑 방송 7회 만에 1만8000여 세트(55억원 상당)가 팔릴 정도로 인기다.

조 팀장은 “호텔 침구는 매일 세탁해 늘 포근하고 청결하지만 가정에선 그렇게 할 수 없어 주거 환경에 맞는 호텔식 침구류를 개발했다”고 얘기했다. “호텔 운영에서 얻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잠옷과 욕실용품도 호텔식 제품라인을 구성해 주요 직영매장 및 백화점에 별도 매장을 마련했다.”

자동차 업계도 쇼룸 변화에 적극적이다. 전시장·서비스센터 등을 미술관·골프클리닉·카페 등 다양한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현대자동차 서울 강남구 대치지점 ‘대치 H·art 갤러리’는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개장 기념으로 ‘고갱과 인상파 화가에 대한 헌정’을 주제로 전시회를 했고 최근에는 ‘고갱과 그의 친구들’을 테마로 국내 대표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지점 등엔 플라워숍 전문브랜드가 입점해 화훼 강좌를 하고, 부케로 장식한 웨딩카를 제공하는 등 꽃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지점은 지난 7월부터 골프 클리닉을 진행하고 있다. 최첨단 비디오 시스템과 골프 클럽 피팅룸 등을 마련해 프리미엄 골프 클럽 하우스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시장을 찾은 고객은 미국 골프클리닉 브랜드 골프텍의 프로그램에 따라 일대일 맞춤 교습과 최첨단 스윙분석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다.

BMW코리아는 광주광역시 통합 전시장을 상설문화예술공간인 ‘스페이스K 광주’로 꾸몄다. 1층은 자동차 전시장, 2층은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는 ‘스페이스K 광주’로 활용해 BMW 고객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에게 개방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전시장, 서비스센터 등은 고객이 제품을 처음 접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브랜드에 대한 첫인상이 정해진다”며 “첫 구매, 서비스, 그리고 재구매의 경험이 자동차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에 자동차업계의 전시장 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벤처기업에서도 전략적으로 쇼룸과 판매장을 결합하고 있다. 친환경 수제 원목가구 브랜드 ‘카레클린트’는 서울 청담·홍대점, 경남 김해점과 경기 수원점을 카페식으로 운영한다. 애초 온라인에서만 판매했지만 가구를 직접보고 구매하고픈 사람들을 위해 쇼룸을 열었다. 가구 쇼룸에 카페 콘셉트를 적용시켜 커피를 즐기며 가구를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는 이색공간이다. 특히 수원점은 24시간 오픈해 주중 낮 시간대 가구를 보기 힘들었던 직장인이나 예비 신혼 커플에게 인기다.

이처럼 자사 쇼룸을 체험공간으로 바꾸는 것은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다. LG경제연구원 황혜정 연구위원은 “인터넷 쇼핑이 크게 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했다. “따라서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쇼룸이 중요하다. 소비자는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유통 업체를 선택할 뿐이다. 일관성 있는 온·오프라인 통합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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