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우리 모두 변태가 되자!
- Essay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우리 모두 변태가 되자!

고풍스러운 인용을 해본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한 말씀인데,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 받을 만하게 행동하라’. 누가 아니래. 사랑 받고 싶으면 자기가 ‘먼저’ 사랑을 하고, 사랑 받을 만하게 행동해야 하고. 말은 그럴싸한데 하나마나 한 소리 같다.
마땅한 대상이 없는데 먼저 누구를 사랑할 것이며 사랑 받을 만한 행동은 또 뭔가 말이다. 지난 주로 되돌아 가본다. ‘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중년이라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사랑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자기를 사랑하는 일은 뭔가 하는 의문의 꼬리가 붙는다. 북한풍으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도 이씁네까?”되물으면서.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이 의외로 자기를 그리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자기 방기, 자아를 내다버리는 듯한 모습이 많다. 1차, 2차 폭탄주를 들이붓고 정해진 순서처럼 노래방에 몰려가 악악 성대를 찢는다. 스트레스 해소? 그건 뭔 해소가 아니라 자기 학대일 뿐이다. 산에 가서 꼭 정상을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듯, 건강관리라는 이름의 자기학대 증상도 참 많다. 만나서하는 얘기가 일, 일과 연관된 화제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지나친 음주가무는 자기학대간혹 벗어나는 화제라야 재테크, 가정사 뭐 그런 것들이다. 자기 삶에 충실한 것으로 비치는 이런 모습,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건 충실이라기보다 폐쇄병동 입원환자의 삶이다. 무언가에 갇힌 것이다. 온통 자기밖에 모르는, 타인 이해에 깜깜 절벽인 사람도 흔하다.
그야말로 자기애가 넘쳐 보이는 그런 태도를 두고 정말로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인과 생각과 감성의 공유지점을 형성할 줄 모르는 것은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밖에 없는 것은 실상 자기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무지 아무런 특징이 없는, 좌중의 일원으로 언제나 숨어드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뽀글이 슈베르트 머리를 하고 다니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요즘 TV에 잘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것이 요구르트 광고에 나비 넥타이 매고 나오는 모습. 그는 이태 전에 교수 직함을 떼고 다시 학생이 됐다. 인생 바꿔보고 싶다고 노래 부르는 사람은 많지만 그렇게 무모하게 실천하는 인간은 처음 봤다(교수자리 얻느라 총천연색 버라이어티 생쇼를 벌였던 과정을 잘 아는 터라 더 놀라왔다). 그는 현재 일본 교토 소재 미술대학 학생이다. 교수 노릇은 충분히 해봤으니 후반부 인생은 화가로 살고 싶다는 거다. 벌어놓은게 있으니 가능한가 보다 하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사례로 김정운이 떠오르는 이유의 첫 단서는 그러니까 스스로 인생을 ‘선택’ 했다는 용기가 놀라워서다. 그러나 용기·기백 따위는 사랑과는 장르가 다른 것.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지난 연말 그가 다니는 미대에 학생 전시회가 있었다.
스케치 상태부터 완성까지 거의 날마다 과정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는 그의 그림은 죄다 변태에 관한 내용이다. 전시회에 출품한 몇 점의 전체 제목이 ‘변태의 꿈’이다. 개별 작품 제목들은 옮기기에도 좀 남사스러운 모모한 성적 이미지들. 변태적 환상에 탐닉하는 그 문화심리학자 출신 화가는 진짜로 변태일까?
과거엔 오럴섹스 정도로도 “오메, 변태!” 하는 인간이 있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아랍스럽고 북한스러웠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왜 이른바 선진국, 그러니까 잘 살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워 보이는 나라 사람들은 전통의 조선적 시각으로 볼 때 변태스러운 짓들을 많이 할까. 사회문화적 억압, 자기검열, 규범과 상식 따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토양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 또 북한풍으로 “세상에 아름답고 착한 행실 하기도 바쁜데 웬 변태타령이야요?” 하는 힐란이 쏟아지는 듯하다. 지금 변태논쟁 하는 대목은 아니니 가볍게 지나치자면, 한스 페터 뒤르의 매우 고매한 책 ?음란과 폭력?을 참조해 본다. 인간이 벌이는 어떠한 행동도 비정상의 영역일 수 없으며, 성적 행동 가운데 유일하게 변태로 규정되는 것은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김정운 식 변태의 꿈은 욕망과 환상을 탐구대상으로 삼는 일이다. 세상 속에 사느라 스스로 닫아버린 자아의 다채로운 면모를 열어 놓으면 규범 세상과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 그 다른 시선을 통상 창의적 관점이라고 말한다. 변태는 곧 창의성을 뜻한다. 창의적 태도는 우선 좀 이상해 보이는 걸 특징으로 한다. 이상해 보이는 것이 두려운가. 정말 그래 보기나 했는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서 변태의 꿈까지 멀리도 왔다. 자기를 사랑하는 행동은 자기를 ‘있게’ 하는 일과 동의어다. 우리는 각자 구별되는 자아를 갖고 있는가. 그러기 위해 의식적으로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가. 자기 세계의 추구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기고는 있는가. 과연 자기는 자기가 있는가?
다중의 일원으로 모나지 않게, 특이하지 않게 처신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 전통의 가르침이다. 그 비겁한 생존술로 연명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온 토양이었다. 그런데 고작 연명이나 하는 존재를 누가 사랑해줄까. 자기를 사랑하는 행위는 자기라는 독립된 세계를 ‘있게’ 만드는 일이다.
김정운의 경우처럼 자아의 욕망이 넘쳐흘러 변태의 꿈, 변태의 미학을 내놓고 탐구하는 경우는 다소 극단적이라 쳐도 최소한 온갖 사유로 억압된 자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독립운동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게 바로 자기를 있게 만드는 일, 자기를 사랑하는 태도이다.
이성을 찾지 말고 찾아오게 하라자기를 제대로 사랑하여 자기가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말할 나위 없이 누군가가 쳐다본다. 그 쳐다보는 사람 중에는 당연히 이성도 있다. ‘중딩’ 시절부터 암사슴, 숫사슴 찾아 삼만리, 아니 한평생이다. 젊을 땐 이성을 찾아서 획득하는 일이 가능했다. 그런 행동 자체가 자연스럽고 미덕이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중년 소리 듣는 지긋한 나이의 아저씨 아줌씨가 호시탐탐 욕망의 눈을 번득이며 애인을 찾는다면 누가 봐도 애처롭고 추하게까지 여겨진다. ‘하고 싶다’ 몸부림인데 대상을 찾으면 추해진다 하니 방법은 외길이다. 누가 나를 쳐다봐 준다면, 찾아와 준다면 정말로 진짜로 나이스!
그러니 찾지 말고 찾아오게 하라. 말이 쉽지 그게 어디 되느냐는 의문이 든다면 우선 변태의 꿈을 이해하시라.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한 사랑 받을 만한 행동의 하나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성 찾아 헤매는 당신은 이상해 보이는 것이 두려운가? 오등의 조선 중년들에게 고한다. 우리 모두 변태가 되자, 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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