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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MEET THE AMBASSADOR -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 “잘못된 과거 잊지 않았다는 사실 끊임없이 보여줘야”

periscope MEET THE AMBASSADOR -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 “잘못된 과거 잊지 않았다는 사실 끊임없이 보여줘야”



과거사 청산과 통일이라는 두 주제는 최근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다. 북쪽에서는 북한이, 남쪽에서는 일본이 연이어 도발적인 언행을 계속하며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분단국가라는 특수 상황 속에 이웃국가와의 과거사 청산으로 연일 갈등을 빚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 뿐일 성싶다. 단 한 국가, 독일만 빼면 그렇다.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냉전시기 분단을 겪었으며,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이웃국가에 막대한 피해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오늘날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로서 위상이 굳건하다. 독일은 어떻게 오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 국가로 우뚝 섰을까? 또 어떻게 주변국과 화해하고 지역 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을까?

2월 28일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가진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와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과거사 청산과 통일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압축됐다. 마파엘은 2013년 1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3 과거청산 포럼’에서 “과거사 청산은 물질적 보상에 국한돼서도 안 되고, 지난 부당행위를 결산하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날 만나 그 말 뜻을 좀더 자세히 묻자 마파엘은 독일의 사례를 들어 그 이유를 설명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결산과 보상만 이뤄졌을 뿐 화해가 없었다. 어떻게 유럽 국가 간에 영구적인 평화를 이룩할지 해결책을 논의하지도 않았다.”

결국 화해와 평화를 도외시한 전후 체제는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와 달리 1차세계대전 직후에는 베르사유 조약과 전후 체제에 불만을 품은 독일인이 많았다”고 마파엘은 말했다. 영토 삭감, 물질적 배상, 식민지 상실, 군사적 제한에 오스트리아와 병합 금지까지 포함되면서 독일의 국력이 크게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이런 독일인들의 심정을 자극해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켰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20여년 만인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독일측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참화를 겪은 유럽사회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잘못을 결산하고 물질적 배상을 최대한 받아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프랑스, 폴란드 등 주변국과 어떻게 화해하고 새로운 미래를 지향할지를 놓고 고심했다”고 마파엘은 말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의 화해 의지가 강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각 도시가 협력관계를 맺기도 하고, 청소년들이 상대 국가 학교를 방문하면서 일상을 공유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마파엘은 독일과 이웃국가의 화해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번째는 1963년 독일과 프랑스가 엘리제 조약이라 불리는 화해협력조약을 맺으면서 당시 지도자였던 드골과 아데나워가 포옹하는 장면, 둘째는 아데나워의 뒤를 이은 서독 2대 총리 빌리 브란트가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이다. “특히 드골과 아데나워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 두 사람이 서로 포옹함으로써 양국의 화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마파엘은 말했다. “과거사 청산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회의 화해다.”

물론 포옹 한번으로 전쟁의 참상이 잊힐 리는 없다. 마파엘이 “화해는 아주 장기적인 과제”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2013년 8월에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 다하우의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참배하면서 “깊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파엘은 “어떤 사건이든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잘못을 잘 잊어버린다”며 “유럽연합 내 다른 국가들에게 독일이 과거를 잊지 않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 청산은 통일에도 중요해마파엘은 피해자는 결코 옛 잘못을 잊지 않는다는 사례로 그리스를 들었다. 그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침공 및 학살을 당한 기억을 가진 나라다. 2000년 대 후반 유로존 위기가 닥쳐오고 그리스 경제가 위기에 빠지자 그리스 언론들이 독일의 과거 잘못을 다시 끄집어내면서 새로운 보상을 요구했다. 유로존 경제를 주도하던 독일이 그리스를 비롯한 금융위기 국가들에 엄격한 긴축재정을 요구하자 일부 시민들은 메르켈과 히틀러를 합성한 사진을 들고 나오거나 독일 군복을 입고 나치 깃발을 휘두면서 긴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 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과거사 청산은 끝나지 않았다”고 마파엘은 말했다. “독일과 주변국의 화해는 과거사 청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신뢰를 구축하고 함께 좋은 미래를 꾸려나가려면 과거사 청산은 중요한 요소다. 독일 입장에서는 수백 년에 걸친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에 안겨준 과제는 그밖에도 있었다. 독일을 점령한 서구측과 소련측이 자신의 점령지에 각기 다른 정부를 수립한 것이다. 이로 인해 1949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됐다. 이 분단 상태는 1990년 동독과 서독을 갈라놓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약 40년간 지속됐다.

마파엘은 통일 또한 장기적인 과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을 정치적 통일, 경제적 통일, 사회적 통일로 나눠서 설명했다. “정치적 통일은 동독 출신 총리(앙겔라 메르켈, 2005년)와 대통령(요하임 가우크, 2012년)이 선출되면서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통일의 경우 2019년 구 동독지역에 지급하던 지원금이 종료되면 완성되리라고 본다.”

문제는 사회적 통일이다. 마파엘은 사회적 통일이 통일 후 40년이 되는 2029년 경에야 비로소 완성되리라고 전망했다. “사회적 통일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동독 정부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 둘째는 동독과 서독 사람이 서로 화해하는 것이다.” 동독을 독재통치했던 사회주의통일당 인사의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독일은 통일 직후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일종의 과거사 청산이다.

“1990년에서 2005년까지 동독을 독재 통치했던 사회주의통일당 간부 약 10만 명에 대해 7만4000여 건의 수사가 이뤄졌고, 이 중 1021건이 기소돼 75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마파엘은 말했다. “분단 기간 동안 동독 주민을 감시하고 탄압했던 동독국가보안부의 공안문서를 관리하는 국가보안부 중앙문서관리청 등 다양한 과거사 청산 기관을 신설하기도 했다.”

오늘날 독일 통일의 화두는 동독과 서독이 화해하는 내적 통합이다. “통일 후 23년이 지난 지금도 동독인들과 서독인들 간의 사고방식 차이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마파엘은 말했다. “아직도 동독 정권 하에서 동독 정권을 지지했던 사람이 남아 있고, 동독 정권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과의 화해는 쉽지 않다.” 독일 정부는 내적 통합을 촉진하고자 동독 출신과 서독 출신 시민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서로의 과거를 상대측에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의 분단은 독일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한반도는 독일과 비슷한 시기인 1948년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됐지만 아직까지도 통일이 이뤄지지 않았다. 분단 기간이 독일보다 훨씬 길 뿐만 아니라 독일과 달리 전쟁도 겪었으며, 남북 간 왕래도 거의없다. 남북통일이 독일 통일보다 더 힘겨운 과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파엘은 최근 한국의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12년 한국에 온 뒤로 통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통일에 소요될 비용을 두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통일은 중장기적으로는 큰 잠재력을 지닌다.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한다.” 마파엘은 독일에도 통일 초기에는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독일 통일이 이익이었다는 점을 많은 독일인이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그런 의식이 더욱 강해졌다.”

다만 한국 역시 통일 준비를 하면서 내적 통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마파엘은 지적했다. “통일 이후 북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북한 정권에서 일했던 책임자들은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 조금 이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정치적, 경제적인 요인 못지 않게 심리적인 요인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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