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상대를 어르고 달래 공멸 피하라
- 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상대를 어르고 달래 공멸 피하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사람은 몇 안 되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1955년에 개봉한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이다.
생전에 단 3편의 영화를 남긴 제임스 딘의 2번째 작품으로 사회와 부모로부터 이해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학교에 적응 못하고 떠돌던 소년 짐(제임스 딘)은 술을 마시고 잡혀간 경찰서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주디(나탈리 우드)를 만난다. 주디에게 호감을 느낀 짐이 그녀와 가까워지자 이미 그녀와 사귀고 있던 버즈가 짐에게 시비를 건다. 그리고 절벽에서 자동차 게임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 유명한 ‘치킨게임(chicken game)’의 시작이다(‘치킨’은 속어로 겁쟁이라는 뜻). 치킨게임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영화에서는 절벽을 향해 달리다가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는 쪽이 게임에서 져 겁쟁이로 낙인 찍히게 된다. 통상은 직선도로의 양쪽 끝에서 서로를 향해 자동차를 질주하다가 먼저 핸들을 돌리는 쪽이 진다.
그 외에도 목숨을 걸고 서로의 담력을 겨루는 게임은 어느 것이나 치킨게임의 범주에 속한다. 치킨게임은 케빈 베이컨 주연의 ‘자유의 댄스(Footloose)’나 조니 뎁 주연의 ‘사랑의 눈물(Cry Baby)’ 등 여러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만큼 솔직하고 드라마틱한 설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도 염상구와 땅벌이 기차가 달려오는 철로 가운데 서서 오래 버티기를 하는 버전으로 나온다.
치킨게임은 냉전 시절(1950~70년대) 미국과 옛 소련 간의 극심한 군비경쟁을 빗대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국제정치학 용어로 굳어졌다. 1990년대 말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의 핵 문제를 둘러싼 대립,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안 가결까지 부른 여당과 야당의 극단적인 대결도 모두 치킨게임으로 볼 수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종종 치킨게임이 목격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반도체 산업이다. 1980년대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이 치킨게임을 유발하면서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인텔을 굴복시킨 바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삼성과 하이닉스가 증설경쟁을 유발하면서 치킨게임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히타치제작소·NEC·후지츠·미쓰비시전기 등 일본 업체들이 수렁에 빠진다. 이들 업체들이 힘을 합쳐 결성한 엘피다도 지난해에 파산, 결국 미국의 마이크론에 흡수되고 만다.
목숨 걸 것인가 겁쟁이로 낙인 찍힐 것인가치킨게임에서의 균형은 둘 중 한 명은 직진하고 다른 한 명은 핸들을 돌리는 것이다. 둘 다 직진해서 목숨을 잃거나 둘 다 핸들을 돌려 겁쟁이가 되는 것은 균형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 게임이론에서의 균형 개념은 상대방이 선택을 바꾸지 않는 이상 나도 바꿀 유인이 없을 때를 의미한다.
그런데 치킨게임은 기본적으로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밀어붙이는 게임이다. 게임에서 승리해 상대를 퇴출시키면 한동안 독점력을 향유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설사 이기더라도 그 과정에서 나도 상처가 너무 깊다면 좋을 게 없다.
치킨게임에서 승리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약 37조원의 매출과 7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기록했다(영업이익률 18.4%). 하이닉스도 약 14조원의 매출과 3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영업이익률 23.9%). 하지만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만간 새로운 치킨게임이 펼쳐질 것이고 우리 기업들이 그때도 승자로 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不戰而屈·부전이굴)이라고 했다. 가급적이면 치킨게임의 상황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비즈니스 전략이다. 치킨게임에 빠지더라도 끝까지 세게 나갈지 중간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지 재빨리 판단해야 한다. 눈치가 발바닥이 아니라면 성질을 못 이겨 공멸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치킨게임의 상황에 빠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필살기가 있다. 첫 번째는 기선 제압. 핸들을 밧줄로 고정하고 핸들에 손을 묶어서 절대로 피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반쯤 미친 터프가이로 상대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면 상대는 핸들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이 전술을 가장 즐겨 사용하는 나라가 북한이다).
두 번째는 시치미 떼기 전략. 특히 상대가 먼저 터프가이 시그널을 보낼 때는 못 본 척 하는 것이 상책이다. 상대가 아무리 겁을 줘도 절대 동요한 내색을 하지않고 묵묵히 자동차 가속페달을 밟는다면 상대는 조바심을 내다가 결국 먼저 핸들을 돌리게 된다(박근혜 정부의 대북전략이 여기에 가까운 듯 보인다).
세 번째는 상대에게 물러설 명분을 주는 것이다. 퇴로를 열어주라는 말이다. 삼국지에 보면 조조가 1만 병력으로 원소의 10만 대군을 괴멸시키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원소의 막사에서 원소와 몰래 내통한 조조 부하들의 편지가 다수 발견된다. 이때 조조는 발견된 편지들을 공개적으로 즉시 태워 버린다. 이를 초소밀신(楚燒密信)이라고 하는데 만일 편지를 공개하면 당사자들은 죽기 살기로 덤벼들게 분명하다. 그보다는 배신자들에게 퇴로를 열어줘 치킨게임에 따르는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는 한편 포용정치라는 대의명분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블루오션 찾은 인텔 사례 배울 만결국 치킨게임은 흔히들 생각하듯이 배짱과 담력의 승부일 필요가 없다. 최선으로는 치킨게임의 상황을 미연에 예방해야 하고, 차선으로 상대를 어르고 달래가며 최악의 공멸 상황을 피해야 한다. 성미 급하고 한 성질 하는 한국인들은 치킨게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뭘 해도 ‘죽기 살기로’하고 일단 시작하면 ‘갈 때까지’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전쟁터에서 반드시 피를 볼 필요는 없다. 레드오션(반도체 메모리)에서는 패배했지만 그 대신 새로운 블루오션(마이크로프로세서)을 찾아낸 인텔의 경험을 두고두고 곱씹어 볼 것을 권한다.
자, 다시 영화 이야기. 짐과 게임을 벌인 버즈는 옷이 자동차 문고리에 끼는 바람에 제때 탈출하지 못하고 절벽으로 떨어지고 만다. 치킨게임에서 승리했으나 상처뿐인 영광일 뿐이다. 그 다음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짐, 버즈 일당의 복수극, 경찰의 출동, 그리고 실랑이 중에 총에 맞아 죽는 짐의 또 다른 친구. 예나 지금이나 사춘기 청소년들의 방황은 다름이 없다.
제임스 딘은 ‘이유없는 반항’ 외에도 ‘에덴의 동쪽’과 ‘자이언트’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지만 1955년 24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영화 같은 삶을 마감한다. 제임스 딘이 몰던 차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였는데 그의 사후 이 차를 몰던 사람들은 연이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폐차 후에도 이 차의 부품을 떼어다 붙인 다른 차량 역시 같은 교통사고로 운전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요절한 제임스 딘의 저주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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