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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믿는 구석 있다면 판 깨뜨릴 각오로

Management | 박용삼의 시네마 게임이론 - 믿는 구석 있다면 판 깨뜨릴 각오로

유괴범과의 몸값 협상 과정을 그린 영화 ‘랜섬’.



1996년 개봉한 영화 ‘랜섬(Ransom, 몸값이라는 뜻)’. 미국 메이저 항공사의 사장인 톰(멜 깁슨)은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성공한 사업가로서 언제나 매스콤의 주목을 받는다. 그의 아내 케이트(르네 루소)도 뉴욕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저명인사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이들 부부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닥친다. 돈을 노린 유괴범 일당에게 외아들이 납치되고 유괴범은 몸값으로 200만 달러를 요구한다.

톰은 아들을 되찾기 위해 돈을 준비해서 납치범과의 약속 장소에 나간다. 그런데 접선하기로 했던 범인 일당 중 한 명이 FBI 매복팀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되면서 아들을 찾으려던 기대는 무산되고 만다. 구출 작전이 실패하자 톰은 전략을 바꾼다. 설령 몸값을 준다 한들 아들을 구하기는 힘들 거라고 판단하고 생방송에 출연해서 200만 달러를 몸값 대신 유괴범의 목에 현상금으로 걸어 버린 것.

그러자 범인은 오히려 톰의 아내를 유인해 테러를 가하고 몸값을 안주면 아들의 목도 칼로 그어 버리겠다는 잔인한 경고를 남긴다. 분노한 톰은 한 술 더 떠 유괴범과의 사생결단을 선언하며 현상금을 400만 달러로 올린다. 톰과 유괴범 사이의 팽팽한 기 싸움,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상대방을 끌어오는 설득의 과정게임이론에서 다루는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협상(negotiation)’이다. 혼자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결국 세상 모든 일이 협상의 연속이다. 협상이란 결국 내가 원하는 목표 지점으로 상대방을 끌어오는 ‘설득’의 과정이다. 협상이 성공하려면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대안 개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협상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면서 흥분하게 된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되면서 미친 듯이 달려든다. 자존심도 한 몫 거든다. 마케팅 흥정이나 인수합병(M&A) 협상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남발하는 이유다.

파는 사람은 비싸게, 사는 사람은 싸게 사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 즉 합의 가능한 영역을 찾아내는 것이 협상의 요체다. 이때 협상의 ‘요구(position)’와 ‘욕구(interest)’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냉정해져야 한다. 눈 앞의 요구에만 집착하다 보면 원래 협상에 임할 때 원했던 욕구가 무엇이었는지 잊는 경우가 많다.

갈증이 나니까 물이 필요하다고 해보자. 여기서 물은 요구일 뿐 진정한 욕구는 갈증 해소다. 물 한 잔을 앞에 놓고 상대방과 신경전을 벌이면 답이 없다. 대신 진정한 욕구인 갈증에 초점을 맞추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갈증 해소 수단을 떠올릴 수 있고, 이로부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협상의 길이 열린다.

회사 내부에서도 협상을 빼 놓을 수 없다. 어느 조직이든 세대간, 직급 간 갈등이 늘 존재해 왔다. 이때 서로의 입장만 강조해서는 적개심만 쌓일 뿐이다. 결국 직장은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공간이 아니라 공통의 이해를 향해 모인 협상의 장(場)일 뿐이다. 기업 간 경쟁에서도 중국의 추격과 선진 업체들의 견제로 우리 기업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제 혈혈단신 뚝심으로 싸우는 시대는 지났다.

중국 대비 고가이고, 선진 업체 대비 품질이 쳐져도 우리 제품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 이때도 가격과 품질을 넘어 구매자가 원하는 숨은 욕구(납기 조건, 부대 서비스, AS, 장기공급보장 등)를 파악하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핵심이다.

협상의 기술 한 가지를 소개한다. 여자와는 협상하지 말라는 남자들 세계(?)의 불문율이 있다. 웬만해서는 그녀들을 이길 수 없다. 얘기가 좀 되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그녀들은 ‘아님 말고’라는 한 마디로 협상을 원점으로 돌려버린다. 여자들이 협상에 강한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여차하면 협상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그녀들의 단호함, 협상이론에서는 이것을 ‘바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협상이 결렬됐을 때 서로가 가진 차선책을 뜻한다.

협상을 하다 보면 그동안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어떻게든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소심한 남자들이 대개 그렇다). 협상 시한이 정해져 있어 다급함을 내비치기라도 하면 더욱 불리하다. 이때 협상이 깨지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다면(혹은 그렇다고 상대를 믿게 할 수 있다면)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여자들은 협상이 결렬돼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다는 뜻을, 즉 외식을 안 해도, 여행을 안 가도 그만이고 다른 대안(바트나)이 많다는 메시지를 ‘아님 말고’ 한마디로 선언해 버린다. 그녀들이 제시한 조건에 단서를 달거나 조정을 시도하려고 하면 ‘싫음 관둬’라는 최후통첩까지 들어야 한다.

바트나는 협상력의 원천(‘믿는 구석’)이자 마지노선이다. 노사협상에서 노조의 바트나는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것이고, 사측은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어느 쪽 바트나가 더 현실성과 파괴력이 있는가에 따라 노사협상의 결과가 달라진다. 나와 상대가 각기 구사할 수 있는 바트나를 파악하고 나의 것을 개선시키되 상대의 것을 약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협상전술이다. 협상 중간에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슬쩍 나의 바트나를 내비쳐보라. 만일 상대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호흡이 가빠진다면 게임 끝이다. 그 다음부터는 내 페이스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

영화에서 톰의 바트나는 사실상 별게 없었다. 협상이 깨져 아들이 죽기라도 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톰은 현상금을 올려가면서 유괴범을 끝까지 찾아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고, 이것을 협상이 실패했을 때 자신이 사용할 바트나라고 유괴범이 믿게 만들었다. 아슬아슬한 전략이기는 했지만 이로부터 톰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자, 영화의 결론 부분. 톰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유괴범 리더는 몸값을 받아내기는 글렀다고 판단하고 작전을 바꾼다. 동료 유괴범들을 FBI에 신고하고 자신은 아이를 구한 영웅으로 둔갑해 보상금 400만 달러를 챙긴다는 것. 이로써 협상은 타결 국면으로 접어들고 각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톰은 사랑하는 아들을, 유괴범은 엄청난 보상금을(물론 유괴범을 응징하고픈 관객들을 배려해서 영화는 우연한 계기로 진실이 드러나며 유괴범이 잡힌다는 사필귀정의 결말을 보여준다).



팝페라 가수 키메라 딸의 실화영화 뒷얘기 한 가지. ‘랜섬’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한국 국적의 팝페라 가수 키메라가 그 주인공이다. 키메라의 딸 멜로디가 5살이었을 당시 벌어진 유괴 사건은 당시 유럽 전역에 큰 화제였다. 범인들은 학부형으로 위장해 6개월 전부터 철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약 230억원의 몸값을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키메라 부부는 범인들이 요구한 금액보다 더 큰 현상금을 걸고 유괴범들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멜로디는 납치 11일 만에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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