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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ISM - 아프가니스탄에서 스키를 즐긴다?

TOURISM - 아프가니스탄에서 스키를 즐긴다?

아프간인들은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광산업을 꿈꾸지만 여전히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 시설 미비와 현지 업체들의 인식 부족까지 겹쳐 시기상조
바미얀 지방의 스키장에는 리프트가 없어 스키를 타려면 산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사진은 2014 아프간 스키 챌린지에 참가한 선수들.



요즘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상황은 언뜻 보기엔 희망적이다. 지난 1월에는 에미리츠항공이 취항했고 신흥도시 같은 활기가 느껴진다. 보도는 행인들로 붐비고 간이 포장된 도로 위엔 자동차들이 줄을 잇는다. 또 곳곳에 반쯤 지어진 건물들이 눈에 띈다. 미국 대사관 옆에 자리잡은 야심 찬 매리어트 호텔 건물이 대표적이다. 거대한 올림픽 스포츠 단지까지 있다. 경기장 한 곳과 스케이티스탄(Skateistan)으로 불리는 스케이트 공원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카불은 신흥도시치고는 실패작이다. 한창 진행되는가 싶던 발전이 요즘은 중단된 듯하다. 거리에선 여성들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이란 대사관 앞에는 이민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몇 블록에 걸쳐 줄을 서 있다. 도시 상공에는 미군의 첩보 비행선들이 위협적으로 떠 있다. 올림픽 공원은 텅 비어 있고 탈레반이 선거 사무실과 서양 호텔들을 공격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리어트는 2013년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호텔 건설을 보안 상의 우려로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 나라에 도사린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아프간 사회에서는 관광산업에 대한 꿈이 점점 커져간다. 1970년대 이후 이곳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매년 국제 관광에 쏟아지는 수조 달러 중 일부를 이 나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북부로 눈을 돌린다. 바미얀 지방과 흰 눈에 덮인 힌두쿠시 산맥의 가파른 계곡, 코이바바 산맥 등이다.

아프간의 바미얀은 이라크의 쿠르디스탄 같은 지역이다. 시아파 무슬림의 일족인 하자라족이 모여 사는데 수니파인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 심한 핍박을 받았다. 이 지역은 아프간의 다른 곳들과 달리 긴장을 풀고 쉴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여가활동 중 하나가 스키다. 바미얀 스키 클럽과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연례 ‘아프간 스키 챌린지’가 이 지역의 스키 산업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2009년 아가 칸(시아파에 속하는 이스마일파 교주의 세습 칭호)이 스키 사업 개발 방안을 모색했다.” 아가 칸 개발재단의 커뮤니케이션 담당관을 지낸 이언 맥윌리엄이 말했다. “우리는 산악 스키 전문가를 스키 컨설턴트로 고용했다. 그가 이끄는 조사팀이 이 지역의 계곡들을 조사하고 마을 원로들과 상의했다. 우리는 주민들에게 1960년대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게 될 거라고 말했다. 2010년 아가 칸 개발재단은 안내책자를 제작하고 역내의 한 게스트하우스에 스키 대여점을 열었다. 이곳에 갖춰진 장비 중엔 프랑스인들이 가져온 오래된 것들도 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손님은 카불에 사는 외국인들이었다. 휴식이 필요했던 그들은 이곳에 와서 돈을 썼다.”

또 스위스 기자 크리스토프 추르허(지금은 노이에 추르허 차이퉁의 특집 기사 편집자)는 제1회 아프간 스키 챌린지 대회를 계획했다. “난 관광객으로 바미얀에 왔다”고 추르허는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호텔 옥상에 앉아 산을 바라보다가 (스위스인답게) 문득 스키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신문사의 도움을 받아 후원자 몇 명을 구했고 2011년 첫 대회를 열었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스키는 낯선 스포츠였다. 그래서 첫 대회 때는 별로 내켜 하지 않는 주민들을 설득해 간신히 참가 약속을 받았는데 도중에 참가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완전한 실패였다”고 추르허는 그 때를 돌이켰다. “아무도 스키를 타고 싶어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햇볕에 피부가 검게 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밝은 피부색을 높이 산다. 또 제대로 된 병원도 없는 곳에서 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이 대회는 차츰 국제적으로 주목 받게 됐고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미얀은 농업 사회이기 때문에 겨울철엔 실업률이 치솟는다. 또 중앙정부가 이곳에 신경을 쓰지 않아 지난 2월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처음엔 외지인들을 경계했지만 외국인들이 와서 돈을 쓰는 걸 보고 태도가 바뀌었다. 더 중요한 건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겨울 일자리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전에 쿠시카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알리 샤 파랑(22) 같은 주민들은 겨울이면 염소 떼를 몰며 지냈지만 지금은 이 프로그램 덕분에 스키 가이드로 일해 생활비를 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스키를 타기는 쉽지 않다. 스키 리프트가 없고 스키를 타고 내려온 뒤 언 몸을 녹일 자쿠지(물에서 기포가 생기게 만든 욕조)도, 따뜻한 토디(독한 술에 설탕과 뜨거운 물, 향신료 등을 넣어 만든 음료)도 없다. 그 대신 총을 들고 서서 자기 땅에서 나가라고 고함을 지르는 물라(이슬람교 율법학자)를 만날 확률이 높다. 스키어들은 육체적으로도 진이 빠진다. 슬로프의 고도가 해발 2700m에 이르다 보니 산소가 희박하고 공기가 건조하다. 게다가 슬로프가 매우 가파르고 바위가 많으며 바람에 날려 쌓인 눈더미의 두께가 최고 1.2m에 이른다. 고도로 숙련된 스키어들도 힘든 코스다.

찹다라 계곡에서 열린 올해 아프간 스키 챌린지에는 외국인 18명을 포함해 총 48명이 참가했다. “이번 코스는 과거에 비해 더 어려웠다”고 추르허가 말했다. 미국으로 치면 ‘블랙 다이아몬드(상급자용)’ 코스에 해당한다. 추르허는 관람객들에게 구경거리를 만들어줄 요량으로 매우 힘든 트랙 막바지, 결승전 직전에 점프대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현지 소년 한 명이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영국인 한 명은 손을 다쳤다.

부상을 입지 않은 참가자들도 결승선에 다다르면 녹초가 된다. 스플릿 보드 부문에 출전한 미국인 선수 샘 그레고리는 “내가 간신히 슬로프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아프간인 참가자들은 이미 언덕 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과거 대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프간인 참가자가 우승했다.

“아프간 사람들은 마치 산양 같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한 참가자가 말했다. “그들은 산소가 희박한 공기 속에서 산에 오르는 데 익숙하다. 다른 참가자들이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오르는 동안 그들은 산 꼭대기까지 달리다시피 해서 올라간다.”

주경기가 끝난 뒤 마을 소년들을 위한 소규모 ‘나무 스키’ 경주가 열렸다. 진짜 스키를 살 돈이 없는 그들은 널빤지와 금속 캔, 그리고 고무장화나 타이어를 이용해 자기 나름의 스키를 만들었다. 주경기에서는 참가자들이 티소 시계, 아크데릭스 아웃도어 재킷 등의 상품을 놓고 경쟁을 벌이지만 이 경주에는 현금 80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

이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현지 여성들의 경기다. 다른 경기가 모두 끝난 다음날 별도의 장소에서 열린다. 이 경기는 여자가 스키를 타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아프간 남자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비밀리에 치러진다. 이번엔 8명의 여성이 참가했는데 현지인 30명(대다수가 참가자의 가족)만이 관람했다.

이 여성들은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의 해상운송 컨설턴트 헨리에타 비오르크에게 약간의 훈련을 받았다. “바미얀은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더 진보적”이라고 비오르크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여성도 드러내놓고 스키를 타게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라디오에서 공지되지도 않았다. 지난해에는 부주지사가 참석해 행사 규모가 조금 더 컸다. 하지만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 이 행사를 아예 못하는 것보다는 쉬쉬하면서라도 하는 편이 더 낫다.”

올해 행사는 전반적으로 성공했다. 1주일 동안 호텔 두 곳과 게스트하우스 네 곳이 만원이었다. 현지 관광 관리들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관광객들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방문객이 바미얀을 찾았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아프간 업체들이 관광사업에 발맞춰 재빠르게 사업을 재조정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서비스업에 필요한 세부 사항들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스키 챌린지 대회가 끝난 뒤 기자와 스키어들, 현지인 등 많은 사람이 1주일에 두 번 출발하는 이스턴 호라이즌 항공의 카불행 비행기를 타려고 몰려들었다. 이스턴 호라이즌은 바미얀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편을 제공하는 유일한 상업 항공사다. “저 건물이 장차 국제 터미널이 될 것이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인도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여행사 ‘언테임드 보더스’의 제임스 윌콕스가 활주로 옆의 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미완성 건물은 비어 있었고 공사가 진행되는 듯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각양각색의 승객들이 비행기만 멍하니 바라보면서 세 시간 동안 활주로 위에 앉아 있었다. 이스턴 호라이즌 항공의 소유주인 파힘 하시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시미는 그날 갑자기 친구들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당일치기로 바미얀까지 왔다가 볼 일을 보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항공사의 비행기를 자신의 자가용 제트기처럼 이용했다. 몇 달 전에 항공권을 예약한 승객들이 가방을 옆에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아예 비행기를 못 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바미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한 승객들이 카불 국제 공항에서 국제 항공편을 타려면 ‘죽음의 길(Death Road)’이라고 불리는 위험한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현지인들이 자동차 곳곳에 여권과 지갑을 숨기는 걸 보기 전에는 그렇게 초조하지 않았다”고 독일인 기자 모리츠 바움슈타이거가 나중에 말했다.

카불 시내에선 여전히 긴장감이 느껴진다. 상점은 문을 닫은 곳이 많고 관광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바미얀의 주민들은 눈이 더 와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돈을 더 많이 벌게 되기를 바란다. 아프간 스키 챌린지 방문객들은 그곳을 떠나기 전 바미얀주의 부주지사 아시프 무발리의 연설을 들었다.

“우리는 바미얀을 아프간의 평화로운 지방으로, 그리고 세계인들을 위한 관광지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는 또 아가 칸 개발재단의 외국인 여성 직원 두 명(지난해에 납치됐었다)이 “60시간 이내에 구출됐으며 그 후 꽃처럼 소중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듣고 과연 관광객들이 몰려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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