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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의 개혁 과제 - ‘뼛속까지 공무원 마인드’부터 바꿔라

황창규의 개혁 과제 - ‘뼛속까지 공무원 마인드’부터 바꿔라



KT가 이래저래 어수선하다. 개인정보 유출, 이석채 전 회장 기소 등 밖으로도 이슈가 많지만 내부가 더 불안하다. 4월 8일 발표한 특별 명예퇴직 때문이다. 4월 18일 현재 2000~5000명 가량의 명예퇴직 대상자에 대한 면담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 사이에서 ‘방에 불러다 놓고 하루 종일 면담은 하지 않은 채 은근히 퇴직 신청을 압박한다’ ‘짐을 싸기 위한 박스를 나눠주거나 컴퓨터를 수거해 갔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잔류를 희망하는 직원에게는 희망근무지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KT 새 노조 측에서 나왔다. 이는 ‘이번 구조조정은 노사가 뜻을 모은 결과’ ‘직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사측의 공식 입장과 달리 ‘퇴직 종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잔류를 선택하면 지방 발령을 낼 수도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가 명예퇴직 타깃KT는 2009년에도 약 6000명이 명예퇴직 방식으로 회사를 떠난 바 있다. 공식적인 압박은 2009년보다 덜하지만 실제로 대상자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더 크다는 게 내부의 얘기다. KT 관계자는 “유선전화가 국책사업으로 지정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대거 입사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 직원들이 이번 명예퇴직의 주 대상자”라며 “여러 면에서 압박을 크게 받는 세대지만 위로금이 너무 적어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KT는 이번 명예퇴직 조건으로 2년치 급여를 위로금으로 책정했다. 계열사 재취업을 원하면 지원하기로 했다. 위로금이 줄어들지만 2년 동안 급여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퇴직 준비를 할 수 있다.

명예퇴직은 조직 내 동요가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처럼 대규모라면 남은 직원의 사기와도 직결된다. 그럼에도 황창규 회장이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조직 슬림화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일단 인건비 절감 효과가 크다. 지난해 KT의 급여 총액은 2조772억원. 6000명이 나가면 산술적으로 연간 약 4020억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김미송 현대증권연구원은 “KT가 학자금 지원 폐지, 복지포인트 성과연동제로 전환, 임금피크제 도입 등 복지 혜택이 줄어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명예퇴직을 신청할 수도 있다”며 “만약 전체 대상자의 45%인 1만명이 빠져나간다면 2015년 주가수익비율(PER)이 기존 10.8배에서 7.1배까지도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도 어느 정도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다. KT는 이동통신 3사 중 매출과 직원수가 가장 많다. 하지만 1인당 생산성은 가장 떨어진다. 지난해 KT의 1인당 매출은 7억3374만원으로 SK텔레콤(39억6041만원)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LG유플러스(16억8883만원)의 절반 이하다. 1인당 영업이익도 2586만원으로 4억7975만원인 SK텔레콤과 7996만원인 LG유플러스에 크게 뒤진다.

평균 임금은 6700만원으로 가장 낮지만 평균 근속연수가 19.9년으로 SK텔레콤(12.4년)이나 LG유플러스(6.9년)에 월등히 앞선다. 19.9년은 통신업계뿐만 아니라 국내 100대 기업(매출 기준) 중 단연 1위다. 전체 직원 평균 연령도 45.3세나 된다. 그만큼 인사 적체가 심하다. KT 관계자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회사도 숙련된 근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근로자 역시 회사를 벗어나면 마땅히 기술을 쓸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계속 회사에 머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겉으로 보이는 수치만 그런 게 아니다. KT가 최근 몇 년 간 ‘허수(虛數)경영’ ‘자폭경영’이란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외형과 목표만 중시해 실속을 차리지 못한다는 의미고, 그 문화가 회사를 좀먹고 있는걸 알면서도 아무도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터넷 가입자의 약정 기간이 끝났다고 치죠. 가입자의 변경 의사가 없을 경우, 그대로 놔두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굳이 해지를 권유한 다음 재가입을 유도하는 거죠. 실적 때문에요. 가입자 입장에선 신규 가입 때 받는 혜택(상품권 등)을 받을 수 있으니 손해 볼 게 없습니다. 허수경영이 문제가 되고 이런 걸 회사가 막으니 새로운 꼼수가 생겼습니다. 가족 중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해 재가입을 유도하는 거죠. 이게 지금 KT의 현주소입니다.”



업무 비효율에 인건비 과다KT 관계자가 설명한 허수경영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KT 본사가 각 지사에 매출이나 판매대수 등 목표를 하달하면 예외 없이 그 수치를 달성하는데, 목표를 맞추기 위해 회사의 해를 끼치는 행위도 피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사에서 출발한 탓에 소위‘공무원 마인드’와 상명하복 문화도 여전하다.

KT 경영 컨설팅에 참여한 한 회계사는 “민간기업에는 있을 수 없는 시스템과 의사소통 체계가 그대로 남아있어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KT 업무 구조의 비효율성과 높은 인건비는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문제”라며 “이전에는 높은 매출이 이런 비효율성을 커버했지만 이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황 회장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터다. 하지만 통신 분야 최고 전문가라던 남중수 전 사장이나, 조직을 완벽하게 장악했다던 이 전 회장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란 예상이 가능하다.

이번 구조조정의 또 다른 목표는 유선 부문의 교통정리다. KT에게 한 때 유선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 사실상 독점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돈이 됐다. 아직도 이 분야 만큼은 경쟁사에 대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통신 시장의 환경이 무선·모바일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유선 부문은 어느새 계륵 신세로 전락했다. 모바일 시장이 급성장한 2010년 이후 KT의 유선전화 매출은 해마다 4000억~5000억원씩 줄고 있다. 박종수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KT로서는 이미 구축해 놓은 유선 네트워크를 버릴 수도 없고, 계속 안고 가기도 어려운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황 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번 명예퇴직은 사실상 유선 부문을 겨냥한 조치다. KT 측은 ‘명예퇴직 신청은 사업 부문에 관계없이 자발적인 형태로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주로 유선사업에 종사하는 현장 영업조직과 고객응대 인력 등이 주 대상이 될 것이 유력하다. KT의 유선 부문 인력은 약 2만명. 전체 직원의 60%를 넘는다. 유선 부문을 손대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슬림화가 어렵다는 뜻이다.

KT는 5월부터 현장 영업, 개통, 사후관리서비스, 지사 영업창구 업무 등을 KT M&S, KTIS 등 계열사에 위탁하기로 했다. 명예퇴직과 함께 이제껏 주로 본사 직영으로 운영해 온 현장 영업, 애프터서비스 등을 외부로 돌려 비용을 더 절감하겠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겠지만 사내 ‘노노(勞勞)갈등’에 따른 상처도 보듬어야 한다. 밀려나는 유선 부문과 자리를 지킨 무선 부문 직원들 사이의 갈등이다. 노조 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우려가 큰 눈치다.





금융·방송·엔터테인먼트 관련 계열사 교통정리인력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다음 과제는 계열사 재편이다. 이 전 회장의 재임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늘어난 건 매출도 순이익도 아니었다. 바로 계열사 숫자였다. 이는 이 전 회장의 대표적인 경영 실패 사례로 꼽힌다. 그는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른 통신사업 대신 비통신 영역을 새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여러 벤처기업을 인수하며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사업성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비싸게 주고 산 회사는 현재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는 요원하고, 주력인 통신 부문의 경쟁력 약화로 연결돼 부담만 커졌다.

황 회장의 취임 일성은 ‘잃어버린 통신 경쟁력의 회복’이었다. KT는 현재 모든 계열사와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T 관계자는 “통신과 무관한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구상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로 금융·방송·엔터테인먼트 관련 계열사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4월 17일 주요 계열사 CEO, 주요 임원 등 30여명이 참석한 ‘2014년 계열사 1등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취임 이후 첫 사장단 회의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계열사가 계열사 자체의 좁은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그룹 전체 이익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 하는 경향이 있다”며 “KT와 전 계열사가 한 몸처럼 ‘싱글(Single) KT’가 돼 한 방향으로 나가야만 글로벌 1등 KT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뜻 비전 선포처럼 보이지만 부실 계열사에 대한 선전포고로 해석될 수도 있다.

부실 계열사 정리와 함께 무선사업의 경쟁력 강화도 시급하다. 많은 전문가는 “KT가 3G에서 LTE로 넘어오면서 변화의 시점을 놓쳤다”고 지적한다. LTE 시대를 맞아 900㎒ 주파수의 활용폭이 커질 것으로 판단한 KT는 2010년 보유 중이던 1.8㎓ 주파수를 반납하고 900㎒ 주파수를 선택했다.

하지만 900㎒는 신호간섭 때문에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됐고, 다시 1.8㎓ 주파수를 찾아오기 위해 SK텔레콤과 1조원대의 경매 전쟁을 치렀지만 결국 패배했다. 어쩔 수 없이 2G 서비스에 활용하던 또 다른 1.8㎓ 주파수로 LTE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을 세웠는데 방송통신위원회가 ‘서비스를 종료하기엔 가입자가 너무 많다’며 승인을 늦춘 탓에 경쟁사보다 6개월이나 출발이 늦어졌다.

김준섭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KT가 다시 살아나려면 현재 통신시장의 핵심인 무선 통신분야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판단 착오로 시장을 빼앗기는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황 회장이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런 방식의 개혁은 이미 이 전 회장이 시도했고, 그 방식이 실패했음이 증명됐다는 비관론도 많다. 사업구조 개편, 명예퇴직 등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인지 KT 안팎에선 ‘정권과의 유착이나 취약한 지배구조 등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있다. KT 전 임원의 지적은 이렇다.

“이 전 회장이 특정 회사의 납품을 받아주거나 벤처회사를 과도하게 비싸게 인수한 것 등이 지난 정권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정부가 강조하는 정책이 있으면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정부 입장에선 임원 자리 마련해 주기도 좋다. 낙하산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 않는가. 여러 면에서 정권과 KT가 민영화 이후 끊임없이 공생해왔다. 참여정부와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임원들의 고향부터 따져보면 안다. 진짜 민영화는 아직 멀었다.”



정권과 유착 - 취약한 지배구조도 골칫거리3년인 회장의 임기도 변수다. KT의 최대 고민은 ‘주인 없는 회사’라는 점이다. 누가 수장이 맡든 마지막이 깔끔하지 못했다. 임기 초에야 힘이 실리지만 끝날 때가 되면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다. 황 회장으로서는 연임하려면 현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한다. 연임을 안 하는 것도 문제다. 주가와 단기 실적에만 집착할 수 있어서다. 벌써부터 황 회장이 연임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연임했다가 다음 정권에서 임기 2년째를 맞으면 황 회장도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남 전 사장이나 이 전 회장의 학습효과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와 달리 KT에서는 황 회장이 임기를 장담할 수 없다”며 “장기적인 비전과 안목을 가지고 회사를 이끌기 어려운 위치”라고 말했다.

KT는 1월 2일부터 4월 16일 사이 KRX100 종목 중 대차잔고(금액 기준)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1월 2일 81억원이던 KT의 대차잔고는 579억원으로, 주식 수량은 26만주에서 180만주로 늘었다. 대차잔고는 해당 주가의 하락을 예상할 때 쓰는 투자 방식인 공매도와 관련이 깊다. 그만큼 KT가 주가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는 의미다. 하루빨리 실적을 개선하고, 주가도 부양하려면 황 회장으로서는 개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1~2년 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부담이 더욱 커진다.

“황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능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현재 KT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혁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황창규가 나서도 안 된다’는 이미지까지 더해지면 KT는 그야말로 구제불능이 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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